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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근영의 팝콘 심리학] 우리는 ‘습관 변화’의 한복판에 서있다

[장근영의 팝콘 심리학] 우리는 ‘습관 변화’의 한복판에 서있다

코로나가 준 메시지… ‘습관의 힘’ 알아야 삶 결정력 강해져
감염병은 익숙했던 생활양식의 변화를 요구한다. 지난 3월 17일 제주도 북 드라이브 스루를 이용하는 제주도민.
파레토의 법칙은 흔히 ‘80대 20의 법칙’이라고 불린다. 이 법칙의 요지는 전체 결과의 80%가 원인으로 알려진 것들 중 20%에 의해서 일어난다는 것이다. 1896년 이탈리아의 경제학자 빌프레토 파레토(V.Pareto)가 이탈리아 전체 인구의 20%가 이탈리아 땅의 80%를 소유하고 있다는 논문을 발표했는데, 조지프 듀란이라는 미국의 경영컨설턴트가 이 논문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이 원리를 다양한 분야에 적용하면서 지금의 명성을 얻었다.

파레토의 법칙이 유명해진 것은 경영컨설턴트의 홍보력 탓이 아니라 실제로 우리 주변에 이에 해당하는 현상들이 상당히 존재하기 때문이다. 대부분 조직이 거둔 성과의 80% 정도가 그 조직 구성원 중 20%에 의해서 만들어진다. 물론 그렇게 성과를 내는 20%만을 모아서 새 조직을 만들더라도 역시 그 중의 20%가 80%의 성과를 만들어내는 현상은 반복된다.
 습관은 당신의 내·외면을 결정한다
이 때문에 이는 단지 특정 조직이나 구성원의 문제가 아니라고 말할 수 있다. 비슷한 예로는 대부분의 언어체계에서 사용되는 문자들 중에서 가장 많이 사용되는 문자 20%가 실제 사용되는 문장의 80%를 구성하고 있다거나, 어떤 상점에서든 그 상점에서 가장 잘 팔리는 제품 20%가 그 상점 매출의 80%를 차지하고 있다거나, 혹은 전체 범죄자의 20%가 그 사회에서 벌어지는 범죄의 80%를 저지르는 현실 등을 들 수 있다.

파레토의 법칙은 우리 생활 속에서도 발견된다. 예를 들어, 당신이 주로 입는 옷들은 당신 옷장에 있는 옷 중 극히 일부일 것이다. 대략 20%의 옷을 평소 80% 정도 입고, 나머지 80%의 옷은 아주 가끔씩만 입거나 아예 입지 않는다. 당신의 사교생활 시간 중 80%는 당신 지인들 중 20% 정도에 집중적으로 사용될 것이다. 당신의 스마트폰 사용시간 중에 80%는 당신 스마트폰에 설치된 전체 앱의 20% 정도가 차지할 것이다.

파레토의 법칙은 생각지 못했던 소수가 의외로 큰 영향력을 발휘하며, 겉보기에는 상당히 큰 비중을 차지할 것 같은 다수가 오히려 상대적으로 적은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우리 인생에서 파레토의 법칙에 해당하는 것 중 하나는 습관이다. 우리는 자신의 삶을 바꾸기 위해 의지를 가지고 계획을 세우고 노력하지만, 그런 노력의 효과보다 평소 별로 의식도 하지 못하는 사소한 습관들이 삶에 미치는 효과가 더 크다는 것이다.

굳이 발달심리학자들의 말을 빌지 않더라도, 인생을 결정하는 요소들을 둘로 나누라면 유전적 요인과 환경적 요인이다. 이 두 변수 중에서 우리가 어떻게든 할 수 있는 것은 환경이다. 그런데 환경은 결국 습관을 통해서 자신의 영향력을 발휘한다. 예를 들어, 당신이 어떤 음식을 좋아하느냐는 어린 시절에 주로 접한 음식의 레퍼토리에서 만들어진다. 그리고 그렇게 평생 선호하며 먹은 음식이 당신의 몸과 건강의 토대가 된다. 여가시간에 어떤 놀이나 활동을 하는지도 마찬가지다.

청소년기에 당신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평소 어떤 활동을 즐겼는지에 따라 당신의 취미활동 목록이 만들어진다. 그것이 흡연이나 음주, 도박이 될 수도 있고 독서나 토론이 될 수도 있다. 이런 습관은 아주 소소하지만 거의 매일 반복됨으로써 우리의 의식 수준을 벗어나 무의식 수준에 깊숙이 자리한다. 그리고 내 삶 전반에 영향을 미친다. 내가 말하면서 몇 번이나 손을 입에 댔는지를 기억 못하는 것처럼, 자신이 그 행동을 하고 있다는 의식조차 못하면서 거의 저절로 행동이 튀어나오게 된다.

이렇게 자동화된 습관 중에는 언어습관도 있다. 영국은 그 사람이 어떤 단어를 쓰느냐를 통해 그가 어떤 계층 사람인지를 판별해 왔다. 화장실을 ‘Toilet’으로 부르느냐 ‘Lavatory’라고 부르느냐, 상대방이 한 말을 잘 못 들었을 때 ‘What?’으로 반문하느냐 ‘Sorry’ 또는 ‘Pardon’이라고 되묻느냐 같은 차이다. 근대화 이후 신분제도가 거의 사라진 우리나라에서도 언어 습관은 그 사람이 속한 그룹을 드러낸다. 어떤 유형의 비속어를 어떤 상황에서 사용하는지 같은 것이 대표적인 예다.

그런 면에서 습관은 영화 [기생충]에서 말하는 ‘냄새’와도 비슷하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가 내뱉는 말이 어떤 커뮤니티, 어떤 정치적 지향, 어떤 가치관이나 태도의 냄새를 풍기는 것이다. 마치 내 등 뒤에 팻말이라도 붙인 것처럼, 내 눈에는 띄지 않지만 남들에게는 너무도 명확하게 드러나는 것이다. 당신이 남들에게 좋은 인상을 형성하기 위해서 아무리 좋은 옷을 입고 외모를 정돈해도, 무의식중에 튀어나온 몇 마디의 단어가 그 모든 노력을 압도해버릴 수 있다.

습관의 힘을 얼마나 명확히 인식하느냐에 따라 습관이 나를 결정할 것인지, 내가 습관을 결정할 것인지 좌우된다. 미국의 실용주의적 학습심리학의 창시자, B. F. 스키너(Skinner)는 대학원생 시절에 모든 파티에 불참하고 매일 스스로 정한 분량의 책을 읽고 매달 논문을 한 편씩 쓰는 습관을 만들어 하버드대에서 단 5년 만에 심리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미국 심리학계의 거장이 되어 노년에 접어든 이후 그는 노화에 적응하는 비결도 습관에서 찾아냈다. 모든 물건을 정해진 자리에 두고, 메모를 하고 그 메모를 읽는 습관을 통해 나이가 들어 점차 약화하는 기억력을 대처하는 식이었다.
 익숙했던 습관을 포기해야할 시점
이번 신종 코로나 팬데믹으로 부터 비교적 타격을 덜 받은 것처럼 보이는 국가가 인도다. 그 때문인지 한때 우리나라에도 인도의 카레가 그 비결이라며 면역력을 높여주는 건강식으로 잠깐 각광을 받기도 했다. 그런데 인도가 오래 전부터 이런 전염병의 확산을 피하는 문화적 습관들을 만들어왔다는 주장도 있었다. 한 여행가는 주간지에 기고한 칼럼에서 그 습관의 목록을 구체적으로 나열하기도 했는데, 대부분은 지금까지 인도의 부정적인 측면으로 알려져 있던 것들이다. 신분 차별이 공고한 카스트 제도 덕분에 상대방의 신분을 잘 모르는 사람들끼리의 신체적 접촉을 최소화 하는 생활습관, 화장실에서 휴지 대신 손으로 뒤처리를 하는데다 손으로 식사를 하기 때문에 손을 자주 깨끗이 씻는 습관 같은 것들이다.

솔직히 말해 인도의 질병 통계를 얼마나 믿을 수 있는지 의문이지만, 이 주장에도 일면 타당한 면이 있다. 인도에서 살려면 수많은 전염병으로부터 나와 공동체를 지키는 습관을 필요로 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신종 코로나 사태는 이제 단기간에 끝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님이 분명해졌다. 1년 혹은 그 이상 계속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어떤 사람은 앞으로는 코로나 이전(Before Corona) 시대와 코로나 이후(After Corona) 시대로 나뉠 것이라고까지 말한다. 이는 우리가 지금까지 익숙했던 습관들 중에서 많은 것들을 포기하고 새로운 습관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습관은 환경이 허용한 좁은 범위의 자유 속에서 우리가 매일 내리는 사소한 선택의 결과다. 우리는 습관을 만들고, 그 습관은 다시 우리를 만든다. 습관을 통해 우리는 자신의 삶을 조금씩 바꾸고 세상을 바꾸어 왔다. 지금도 우리는 바로 그런 변화의 한복판에 서 있다.



※ 필자는 심리학 박사이자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이다. 연세대에서 발달심리학으로 석사를, 온라인게임 유저 한일 비교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심리학오디세이], [팝콘심리학], [무심한 고양이와 소심한 심리학자] 등을 썼고 [심리원리], [시간의 심리학], [인간 그 속기 쉬운 동물] 등을 번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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