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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프로의 환율 돋보기 금융 위기와 달러화 위상] 진정되는 달러화 초강세, 달러화 위상은 예전만 못한 것일까

[백프로의 환율 돋보기 금융 위기와 달러화 위상] 진정되는 달러화 초강세, 달러화 위상은 예전만 못한 것일까

원달러 환율 상승했지만, 금융위기 수준에는 미치지 못해코로나19가 글로벌 경제에 단기간 깊은 상처를 남기면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기억 속에서 빈번히 소환되고 있다.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는 금융 규제가 완화된 틈으로, 베어스턴스, 리먼브러더스 등 당시 내로라 했던 투자은행들이 위험을 외면한 채 그럴 듯하게 포장되어 팔리는 부실 대출채권(subprime mortgage loan, 비우량 주택담보대출)을 굴리며 위험한 줄타기를 즐기고 있었다.

선진 금융시스템에서 싹튼 위험한 놀이는 결국 역사상 최대 규모의 파산을 낳으며 금융시스템의 위기로 직결되었다. 이후로는 글로벌 금융위기를 교훈 삼아 공감대가 형성되었고, 각국이 중지(衆志)를 모아 바젤 Ⅲ 등으로 은행에 대한 자본 규제를 대폭 강화하였다. 덕택에 현재 코로나發 충격에서 은행권이 위험하지는 않다는 것이 중론이고, 따라서 금융시스템의 위기 가능성은 낮은 것으로 평가된다.

하지만,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미국 연준을 비롯하여 주요국 중앙은행이 앞다투어 ‘양적완화(Quantitative easing)’로 일컬어지는 국채 등 자산 매입 프로그램에 중독되면서 또 다른 위기의 씨앗이 싹을 틔우게 되었다. 양적완화라는 미명 하에 선진국 중앙은행들이 장기 국채 등을 대규모로 사들이면서 장기 금리를 끌어내려 채권 시장 호황으로 이어졌다. 더불어, 저금리로 인해 기업의 미래 예상되는 현금흐름을 현재가치화하는 할인율도 낮아져 주가를 부양하는 결과도 낳았다.
 정크 본드 시장의 리스크
문제는 초저금리가 지속되면서 고수익을 좇는 투자자들이 고금리 채권으로 눈을 돌리게 된 것이다. 신용이 낮아 차입 금리가 높아질 수 밖에 없는 투자부적격 기업들이 발행한 채권에 대한 수요가 늘어났고, 증가하는 수요에 발맞춰 이러한 채권들의 발행도 덩달아 증가했다. 이른바, 정크 본드(Junk Bond)다.

미국 경제의 호황이 사상 최장기간 지속되자 이들 투자부적격 기업에게 요구하는 위험프리미엄, 즉 가산금리도 낮아졌다. 하지만, 금번 예상치 못한 코로나19 사태로 경제 활동이 마비되며 자산 가격이 연쇄적으로 하락하고 신용 경색을 일으키자 정크본드 시장은 결국 시장 불안의 뇌관이 됐다.

3월 중 미국 연준은 발빠른 시장 안정 조치에 나섰다. 3월 3일에는 기준금리를 50bp 긴급 인하했고, 3월 15일에는 제로금리 도입 및 양적완화 재개를 결정했다. 3월 17일에는 기업어음(CP) 매입을 발표하며 약 보름간 숨가쁘게 움직였다. 그러나 시장이 안정되지 않자 급기야 3월 23일에는 연준이 양적완화를 무제한으로 확대하고 회사채 매입 등 신용 지원 조치까지 더하며 보다 깊고 넓게 움직여야 했다. 제로 금리와 양적완화라는 기존의 ‘이례적’인 조치들이 그간 일상화되어 더는 이례적이지 않게 되었기 때문이다. 미국채 10년물 금리가 이미 3월 9일에 0.5%를 밑도는 등 제로 수준에 근접한 상황이었기에, 장기 금리 하락 유도는 약효가 과거만큼 크지도 못했다.

연준의 CP 및 회사채 매입 등 지원 대상은 기본적으로 투자적격 등급(BBB-) 이상을 대상으로 하여, 정크 본드(BB+ 이하)를 구제하기 어렵다. 코로나19 종식이 여전히 미지수이고, 부채의 덫에 걸린 기업들의 디폴트(default)가 급증할 수 있어 중기적으로는 불확실성이 크다. 이미 기업 실적 및 전망 악화로 신용 등급 강등이 속출하고 있고, 선진국과 신흥국을 불문하고, 부채 리스크가 커져 후유증이 깊어질 개연성이 있다.

3월 9일부터 20일까지의 상황은 단순히 안전자산 선호 현상이 아니라, 그야말로 패닉(panic)이었다. 해당 기간에는 전통적인 안전자산이 안전자산으로 기능하지 못했다. 달러화 자금 외 안전한 자산은 없었다. 자산 가격 급락으로 발동된 마진 콜(margin call)은 연쇄적인 자산 가격 하락을 불러 급기야 대표적 안전자산인 금 가격(국제 금 가격 기준)과 미국채 가격이 급락하는 상황도 연출되었다. 불가피하게 현금 확보가 다급해지자, 금과 미국채까지 매도 압력에 몰리면서 매도하는 물량이 사려는 수요를 압도한 것이다. 달러화 수요가 폭등하자 ‘묻지마 달러화 매수’를 불렀고 달러화만의 초강세가 펼쳐졌다.

전세계인의 돈인 달러화 조달이 어려워지자 FX스왑시장에서도 달러화 조달에 엄청난 프리미엄이 얹어져, 달러화 조달 후 만기 상환시 환율에 직접 가감되는 FX 스왑포인트도 급락했다. 약정한 만기가 향후 도래하는 시점에, 달러화 상환과 함께 돌려 받게 될 원화 금액이 급격히 쪼그라들게 된 것이다.

이러한 신용 경색은 연준의 파격적 유동성 확대와 미국 정부의 역대급 재정 부양에 힘입어 3월 23일 이후 진정되기 시작했고 비로소 연준이 시장을 통제하기 시작한 듯 보인다. 그러나, 코로나19는 단지 생산 차질과 글로벌 공급망 붕괴, 소비 위축에 그치지 않을 변수다. 수면 아래에는 많은 위험 요소들이 도사리고 있다. 전세계 곳곳에서 부채 거품이 터질 경우 그 투자자에까지 신용 리스크가 파급될 수 있고, 현저히 낮아진 유가는 관련 산업 내 기업들의 생존을 위태롭게 할 것이다.
 과도한 비관 대신 신중한 시각 유지
이번 코로나 發 충격에 원달러 환율이 3월 19일, 장중 1296원까지 급등한 뒤 이를 되돌리자 달러화의 힘이 많이 빠졌다는 해석도 나왔다. 1997년 IMF 외환위기 당시 1995원,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1597원까지 상승한 데 비해 이번 역대급 충격에서 달러화의 상승이 1300원에도 미치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환경이 서로 많이 달랐기에 단지 원달러 환율의 상승폭을 두고 달러화 위상을 비교하는 것은 무리일 수 있다.

외환위기 당시는 한국이 1990년대 초부터 금융자유화 및 금융 글로벌화 과정에서 리스크 관리에 실패하여 대외 건전성이 특히 취약해진 시기였다. 2019년 말 현재 한국의 준비자산(외환보유액) 대비 1년 내 상환기일이 도래하는 단기 외채 비율이 32.9%인 데 비해, 1997년 말에는 해당 비율이 무려 657.9%에 달했다.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는 금융시스템이 무너졌던 게 컸다. 선진국의 금융시스템이 무너졌기 때문에 유동성 경색이 초래되면서 충격이 커졌다. 신뢰로 쌓아 올린 금융시스템이 흔들릴 때 경제 전반에 파급되는 충격은 엄청나다. 코로나19로 인한 이번 충격은 은행을 중심으로 한 금융시스템의 위기가 아니라 실물 경제의 충격으로 볼 수 있다. 유럽 은행권이 위험 요소를 안고 있지만, 현재로서는 구제해야 할 지 논란이 되는 은행이 없다.

벌써 최악이 지났다고 주장하는 일부 투자은행의 의견도 등장했지만, 여전히 신중론이 우세하다. 코로나19는 당초 예상보다 그 파급 효과가 계속 커지고 있다. 글로벌 금융위기(2008~2009년) 이후 유럽 재정위기(2010~2012년)가 엄습했듯, 이번에도 후폭풍이 만만치 않을 수 있다. 정부도 실패할 수 있다. 과도한 비관론은 피하되, 신중한 시각을 유지할 필요가 있다.



※ 필자 백석현은 신한은행에서 환율 전문 이코노미스트로 일하고 있다. 공인회계사로 삼일회계법인에서 근무한 경력을 살려 단순한 외환시장 분석과 전망에 그치지 않고 회계적 지식과 기업 사례를 바탕으로 환위험 관리 컨설팅도 다수 수행했다. 파생금융상품 거래 기업의 헤지회계 적용에 대해서도 조언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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