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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코 물류 자회사 설립 논란] ‘새는 바가지 막겠다’ VS ‘골목상권 침해’

[포스코 물류 자회사 설립 논란] ‘새는 바가지 막겠다’ VS ‘골목상권 침해’

준공기업에 ‘일감 몰아주기’ 잣대는 무리수… 해운사 ‘가격 담합’도 자충수
경북 포항신항 포스코 제품부두 모습. / 사진:포스코
“어려운 경영환경을 극복하기 위해 회사는 고강도 원가절감을 추진하고, 글로벌 최고의 수익성을 유지해 나가겠다. 간접비용의 극한적 절감 등 고강도 대책 실행을 통해 수익성 방어와 재무건전성 확보에 총력을 기울이겠다.”

최정우 포스코 회장이 지난 3월 27일 주주총회에서 밝힌 경영방침이다. 철강업황 악화로 수익성이 떨어지는 상황에서 불필요한 비용을 줄여 이익을 높인다는 게 골자다. 이후 한 달이 지나고 포스코는 물류 자회사 ‘포스코GSP’(가칭) 설립 계획을 밝혔다. 연초부터 태스크포스(TF)팀을 구성해 이를 준비해왔다는 게 포스코 측의 설명이다.

포스코그룹 계열사들이 한 해에 지출하는 물류비용이 3조원에 달하는데, 이 과정을 자체적으로 해결하면 이익률을 개선할 수 있다는 계산이다. 포스코 관계자는 “물류 자회사를 통해 원료와 제품의 수송 계획 수립, 운송 계약 등 물류 서비스를 통합 운영해 효율성을 높이고 인공지능(AI)과 로봇 기술을 접목해 스마트 물류 플랫폼으로 성장할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해운업계가 반발하고 나섰다. 포스코에 물류 자회사 설립 철회를 요구하고 청와대·국회·정부에 이를 막아달라는 청원서를 제출했다. 최근엔 기자간담회도 열었다. 해운업계는 포스코의 물류 자회사 설립에 대해 일종의 ‘골목상권 침해’ 논리를 앞세우며 반대하고 있다. 이에 대해 최 회장은 최근 “해운업에 직접 진출할 계획은 전혀 없으며, 그럴 수도 없다”고 밝혔지만 해운업계의 반발은 여전하다.

포스코가 해운업에 당장 직접 진출하지 않더라도 장기적으로 진출할 수 있다는 게 해운업계가 내세우는 가장 큰 우려다. 그러나 포스코의 주장대로, 국내법 상 포스코GSP가 해운업에 진출하는 것은 어렵다. 해운법 24조 7항에는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대량화물의 화주가 화물을 운송하기 위해서는 국내 정책자문위원회의 의견에 따라 결정된다고 명시돼 있다. 포스코는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주요화물인 제철원료의 화주이기 때문에 해운업 진출은 사실상 막혀있다.
 비효율적 물류 시스템 방치는 ‘배임’ 휩싸일 수도
포스코 물류자회사 설립 관련 해양산업계 합동 기자회견에서 강무현 한국해양산업총연합회 회장이 발언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이에 대해 해운업계는 “직접 선박을 소유하지 않아도 화주와 운송계약을 체결하는 2자 물류회사는 상법상 ‘운송인’의 범주에 든다”고 지적한다. 포스코GSP가 포스코 계열사들로부터 물량을 위탁받아 이를 다시 선사들에 맡기는 과정 자체도 해운업에 해당한다는 게 해운업계의 주장이다. 다만 포스코GSP가 ‘운송인’이 된다고 해서 해운업계의 일감을 어떻게 뺐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지적은 없다.

사실 해운사들의 직접적인 우려는 ‘수익 감소’에 있다는 게 업계 안팎의 시각이다. 실제 해운업계는 그동안 포스코 및 계열사와 직접 거래하던 해운사들이 포스코GSP라는 회사에 통행세를 내게 되는 구조가 돼 이익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고 주장한다. 일리가 없는 주장은 아니다. 거래상 실질적인 역할이 없는 회사를 내세워 이른바 ‘통행세’를 매기는 것은 불법이기도 하다.

공정거래법 23조 1항(부당지원)은 다른 사업자와 직접 상품·용역을 거래하면 상당히 유리함에도 불구하고 거래상 실질적인 역할이 없는 특수관계인이나 다른 회사를 매개로 거래하는 행위를 금지하고 있다. 다만 시장 참여자에 정당한 가격을 지급하고 물류 자회사가 실질적인 역할을 할 경우 공정거래법에 위반되지 않는다. 물류 자회사를 설립한다는 것만으로 이를 문제 삼을 수는 없다는 얘기다.

해운업계가 포스코 물류 자회사 설립에 극렬히 반대하는 이유는 그간 대기업의 ‘2자 물류 자회사’로 인해 매출과 수익성에 타격받은 것에 대한 트라우마가 작용했다. 한국선주협회 등 해운업계 이익단체들은 수차례 대기업 2자 물류 자회사에 대해 문제를 제기해왔지만 별다른 해법을 찾지 못했다. 지난 20대 국회에서 정유섭 전 미래통합당 의원이 2자 물류기업의 3자 물류시장 진입을 막는 내용을 담은 ‘해운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발의했지만 법안소위를 통과하지 못했다.

포스코의 경우 해운업계가 그간 비판해온 ‘2자 물류 자회사’ 문제와는 다르게 봐야한다는 지적도 많다. 일감몰아주기로 인한 총수일가의 사익편취가 문제인데, 오너가 없는 포스코에 이 같은 프레임의 비판은 공허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포스코는 국민연금공단이 최대주주(지분율 12.06%)인 회사다.

철강업계에선 포스코가 물류 자회사 설립을 포기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본다. 비효율적인 물류 시스템을 개선하는 것은 경영진의 의무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이를 인지하고도 방치하는 게 ‘배임’이 될 여지가 있다. 지난 1월 공정위가 과징금을 부과한 운송업자들의 담합 사건은 포스코의 물류 효율화에 대한 필요성을 수면에 드러냈다. 공정위는 포스코 광양제철소에서 철강 제품 운송 용역 수행 사업자 선정에서 8개 해운사들이 2001년부터 담합을 해왔다고 판단해, 이들 사업자에게 약 400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수의계약에서 경쟁 입찰로 계약방식이 바뀌면서 각각 물류 업체의 캐파에 맞춰 기존의 관행이 유지된 것이란 시각도 있지만 ‘주식회사’인 포스코 경영진 입장에선 어쨌건 비효율을 제거해야만 하는 상황이다. 철강업계 한 관계자는 “광양제철소 운송 사업자들의 담합은 지역의 인프라를 감안하면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면서도 “이런 상황이 된 만큼 포스코는 주주들의 눈치 때문이라도 ‘비용절감’을 위한 조치를 취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고 말했다.
 “노력 없는 해운사, 차라리 2자 물류회사 키워야” 지적도
해운업계에서 내놓는 마지막 논리는 포스코의 물류 자회사 설립이 ‘글로벌 3자 물류회사 육성’이라는 정부 기조에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실제 우리나라 물류정책 기본법 37조에는 “국토교통부장관 및 해양수산부장관은 화주기업에 대하여 운송·보관·하역 등의 물류서비스를 일관되고 통합된 형태로 제공하는 물류기업을 우선적으로 육성하는 등 물류산업의 경쟁력을 강화하는 시책을 강구하여야 한다”고 명시돼 있다. 실제 해수부는 이미 포스코에 우려의 입장을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물류업계 전문가들은 해운업계의 이런 주장이 편협하고 이기적이라고 지적한다. 글로벌 해운회사를 키우려면 적절한 투자와 자본유치를 통해 몸집을 키우려는 노력이 필요한데, 수십 년간 투자는커녕 자본유치 노력도 게을리 한 해운사들이 반성 없이 국가 정책방향을 운운하며 화주의 물류효율화를 가로막는 건 문제라는 것이다.

구교훈 배화여대 국제무역과 겸임교수(한국국제물류사 협회장)는 “해운회사가 경쟁력을 가지려면 몸집을 키웠어야 했는데, 국내 대부분의 해운사들은 대주주 지분 희석을 우려해 자본유치도 하지 않고 ‘국적선사’란 프레임으로 물동량을 유치하고 있다”며 “해운사들이 어렵다고 하지만 포스코와 한국전력 등 준공기업의 수입 원자재를 운송하는 일부 업체들은 여전히 과도한 이익을 올리고 있다”고 꼬집었다.

구 교수는 또 “정부 역시 물류정책 기본법에 ‘3자 물류 촉진’이라는 선언적 조항만 넣어놓고 시행령이나 시행규칙 등은 아무것도 마련하지 않고 있다”며 “이대로라면 차라리 현재 대기업 2자 물류회사가 규모의 경제를 통해 글로벌 3자 물류 전문회사로 성장하는 게 빠르지 않겠냐”고 반문했다.

- 최윤신 기자 choi.yoonsh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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