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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포장 금지법’의 오해와 진실] ‘1+1 금지법’ 논란에 시행 연기, 전면 재검토

[‘재포장 금지법’의 오해와 진실] ‘1+1 금지법’ 논란에 시행 연기, 전면 재검토

정부 “불필요한 포장 막기 위한 방편”… 유통업체간 역차별 문제도
사진:연합뉴스
지난 6월 18일, 환경부는 ‘재포장 금지’ 규제 가이드라인을 제시했다. 일명 ‘재포장 금지법’은 7월 1일부터 시행할 예정이었지만, 비난 여론이 거세지자 환경부는 22일 “본격적인 시행을 내년 1월로 연기한다”고 발표했다. 각계 의견을 다시 수렴해 법을 보완하겠다는 취지다. 환경부가 발표한 재포장 금지 규제는 쉽게 말해 ‘생산 완료 제품을 추가 포장 판매하는 것’을 금지하는 제도다.

재포장 금지법이 나온 배경은 이렇다. 중국은 2018년 환경오염 문제를 이유로 폐플라스틱과 폐지 등의 수입을 금지했다. 그 영향으로 미처 수거되지 못한 쓰레기가 쌓이며 환경 문제에 대한 경각심을 불러왔다. 동시에 쓰레기를 만드는 주범인 과대포장이나 재포장을 줄여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졌다.

환경부는 불필요한 포장 쓰레기를 줄이기 위해 지난해 1월 관련 입법을 예고했다. 이후 10차례 이상 업계와의 간담회를 거쳐 올해 1월 ‘자원의 절약과 재활용촉진에 관한 법률(자원 재활용법)’ 하위법령에 속한 ‘제품의 포장재질·포장방법에 관한 기준 등에 관한 규칙’ 개정안을 발표했다. 면적이 33㎡ 이상인 매장 혹은 제품을 제조·수입하는 업체는 생산된 제품을 다시 포장해 판매하지 못하게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환경부의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재포장에 해당하는 경우는 크게 세 가지다. 우선 ‘1+1’과 같이 판촉이나 가격할인을 위해 포장된 제품을 2개 이상 묶어서 추가로 포장하는 경우다. 또 사은품 등을 포장된 단위제품과 함께 다시 묶어 포장하는 것도 금지된다. 종합선물세트처럼 여러 제품을 묶어 포장하는 것도 안 된다.
 ‘묶음 할인행사’ 축소로 소비자 부담가중 우려
반면 슬라이스 치즈나 도시락용 김처럼 낱개는 판매하지 않고 일정 수량을 묶어 하나의 제품으로 판매하는 건 재포장에 해당하지 않는다. 또 판촉을 위한 게 아니거나 설이나 추석처럼 특정 시기에 선물세트로 구성해 판매하는 것도 허용된다. 띠지나 테이프로 묶어서 파는 것도 재포장 규제에서 제외됐다. 예외적으로 재포장을 허용하는 경우도 있다. 수송·보관을 위해 불가피하거나 창고형으로 운영되는 매장에서 최소 판매제품이 대량인 경우다. 매장에서 고객이 선물 포장을 요구하는 것도 예외적으로 재포장이 허용된다.

개정안에서 논란이 된 대목은 판촉이나 가격할인을 위해 포장된 제품을 2개 이상 묶어서 추가로 포장하면 안 된다는 내용이다. 예컨대 마트에서 흔히 볼 수 있는 1+1 형태의 묶음 상품의 할인이 금지되는 것이다. 다만 개당 가격 그대로 할인 없이 판매하거나 공장에서 생산할 때부터 묶음 상태로 포장돼 바코드가 찍혀 나오는 상품은 할인 판매할 수 있다.

가이드라인만 보면 ‘1+1 금지법’으로 해석될 여지가 충분히 있는 것이다. 묶음 상품의 할인을 금지한다는 내용을 두고 소비자들은 “정부가 기업들의 할인 마케팅까지 막는다”고 반발했다. 환경부는 “과대포장으로 인한 폐기물 발생을 줄이기 위해 재포장 제품의 경우 할인 행사를 제한하도록 한 것이지, 가격 할인 자체를 규제하려는 것은 아니다”라고 해명했다.

환경부는 이 정책이 플라스틱과 접착제 등 포장용품이 과하게 사용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시중의 수많은 제품과 포장 형태 중 구체적으로 어떤 것이 재포장에 해당하는지에 대한 명확한 세부 지침이 정해져 있지 않아 논란이 일었다. 띠지를 사용해 제품을 묶는 것도 두 차례 번복 후에 허용하는 방향으로 결정하는 등 모호한 태도도 논란을 키웠다.

환경부는 “묶음 할인의 경우 띠지로 상품을 한데 묶거나 매대에 판촉 안내문을 표시하고 낱개로 가져가게 하면 재포장에 해당되지 않는다”라고 설명했다. 반대로 할인 상품이 아닌 경우에는 묶음 방식으로 판매하는데 제약이 없다.
 과대포장 문제 심각한 온라인 업체는 예외
환경부의 이 같은 제재가 결국 제품 가격 인상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유통업체들은 라면뿐 아니라 우유와 요거트·맥주·샴푸·세제 등 대부분의 생필품에 묶음 할인 판매를 적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개정안에 따르면 3000원짜리 우유 두 팩을 묶어 비닐포장해 5000원에 파는 것은 금지되지만 개별 가격의 합인 6000원으로 책정하면 문제가 없다. 이 때문에 식품이나 생활용품 등 유통업계 전반에 활용되고 있는 ‘묶음 할인 행사’가 사라지면 부담은 고스란히 소비자 몫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

유통업체 간 역차별도 문제다. 환경부는 이마트 트레이더스와 같은 창고형 할인마트에 묶음 할인 판매를 허용해줬다. 온라인 쇼핑업체에 대해서도 판단을 보류했다. 과대포장 문제가 가장 많이 제기됐던 쿠팡과 마켓컬리·쓱닷컴 등 온라인 유통업체의 재포장과 관련해서 아직 논의조차 하지 못했다. 마트에서 여러 제품을 한 번에 묶어 파는 것은 안 되고, 온라인에서 제품 여러 개를 한 상자에 담아 판매·배송하는 것은 가능한 것이다. 환경부 측은 “온라인 쇼핑의 경우 2+1 등 할인 가격으로 포장하는 게 아니라 원래 가격의 상품을 한 상자에 한꺼번에 담아 포장하는 것이라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대형마트 관계자는 “온라인 주문 건의 경우 여러 물건을 박스에 담을 수밖에 없고 파손을 막기 위해 스티로폼이나 비닐·얼음팩 등을 넣어 폐기물이 더 많이 발생하는 게 사실”이라며 “소비자들 역시 오프라인보단 온라인 주문에 있어서 불필요한 쓰레기가 많이 발생하는 점을 지적하곤 하는데, 이번 가이드라인에 이에 대한 규제는 아예 빠져있어 반쪽짜리 대책이라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환경부는 결국 재포장 금지법의 세부 지침을 보완하고 시행을 내년 1월까지 유예하기로 했다. 앞으로 6개월간 제조사·유통사·시민사회·소비자·전문가 등으로 구성된 협의체에서 의견을 수렴하고, 제조사·유통사 등 업계의 현장 적용 가능성도 평가한다.

새 규제는 12월까지 계도 기간을 두고 내년 1월부터 본격 시행하며, 1월부터는 이를 위반하는 유통 업체에 대해 300만원 이하 벌금을 부과한다고 밝혔다. 환경부 관계자는 “재포장 제품에 대한 할인 혜택 등을 줄여서라도 과도한 포장을 막겠다는 게 이번 법안의 골자”이라며 “재포장 기준이 모호하다는 업계와 소비자의 의견을 반영해 실효성에 무게를 두고 보완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 허정연 기자 jypowe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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