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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 코로나19에 가려진 암 환자의 눈물] 정책 우선순위에서 뒷전, 좌표 잃은 암 보장 정책

[단독 | 코로나19에 가려진 암 환자의 눈물] 정책 우선순위에서 뒷전, 좌표 잃은 암 보장 정책

암 환자 70% ‘경제적 고통’ 어려움 꼽아… 전이·변이 늘었지만 여전히 대부분 비급여
지난해 11월 21일 서울 광화문 정부종합청사 정문에서 한국암환자권익협의회가 ‘무전퇴원, 유전입원’ 집회를 열었다. / 사진:한국암환자권익협의회
폐암 치료차 최근 대형 병원에 입원한 60대 A씨는 병원의 요구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검사를 했다. 올해에만 두 번째. 그런데 검사 비용은 모두 환자 측이 부담해야 했다. 안 그래도 자신의 암 치료비 마련에 고생하는 가족을 생각하면 A씨는 미안한 마음이 커진다. A씨는 “코로나19 사태가 시급하니 응당 검사를 받아야 하지만, 병원에 수시로 오가는 암 환자가 검사비까지 부담해야 해 너무 힘들다”고 토로했다.

코로나19가 세상을 습격한 지도 1년이 다 돼 간다. 그런데도 기세는 전혀 꺾이지 않았다. 높은 전염성에, 예방·치료법은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불씨가 잡히지 않으니 전 세계가 혼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가족이나 직장을 잃는 등 많은 사람이 깊은 상처를 입었다.

이런 가운데 자신의 고통과 어려움을 알리지 못하고 신음하는 사람들이 있다. 암 환자들이다. 사회적 응원과 정부의 지원이 필요함에도 코로나19에 가려 정책 우선순위에서 뒷전으로 밀렸다. 이에 암 환자의 신체·경제적 고통을 덜어줄 수 있는 정책의 추진 필요성이 제기된다.

암은 인류가 앓고 있는 모든 병 중에 가장 오래됐고, 치명적인 질병이다. 기원전 2625년 고대 이집트 파피루스에 유방암에 대한 기록으로 첫 등장한다. 고대에는 환부를 가죽으로 묶거나 불로 태우는 등의 치료법을 동원했으나 효과가 없었다. 1761년이 돼서야 이탈리아의 해부학자 조반니 모르가니가 암을 과학적으로 연구하기 시작했고, 1860년 독일의 의사 카를 티어슈가 악성세포가 전이돼 퍼진다는 것을 증명했다. 이후 암 치료법 연구는 급진전을 이뤘고, 이제는 방사선을 넘어 중입자까지 치료에 활용하는 단계에 이르렀다.

그러나 살충제 계란과 생리대 파동처럼 유해 물질과 환경호르몬이 늘어남에 따라 유전자 변이가 발생하면서 암 환자는 더욱 늘고 있다.
 사망원인 1위 암, 코로나19로 폐암 환자 더욱 심각
통계청에 따르면 새로 암에 걸린 환자는 1999년 10만1603명에서 2017년 23만2255명으로 18년 새 2배 이상 늘었다. 암 발생은 매년 증가 추세다. 4600여년 동안이나 암에 시달렸음에도 인류는 아직 완벽한 통제는 물론이고 정확한 발병 원인도 규명하지 못한 셈이다. 컬럼비아대학 의료센터 암 전문의 싯다르타 무케르지가 암을 ‘만병의 황제’라고 지칭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암이 치명적인 병이라는 사실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지난해 국내 총사망자 수 29만5110명 가운데 27.5%(8만1203명)가 암으로 사망했다. 인구 10만명당 암 사망자는 158.2명이다. 인구 1000명 중 한명 이상이 매년 암으로 세상을 떠나고 있다. 관련 통계가 작성된 1983년 이래로 암은 줄곧 사망원인 1위를 이어왔으며, 그 비중 역시 상승세다.

전봉민 국민의힘 의원이 보건복지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올 3~5월 ‘암환자 산정특례 신규 등록 환자 수’는 6만274명으로 전년 동기(7만2473명) 대비 16.8% 급감했다. 코로나19 사태로 의료접근성이 저하돼 진단을 받지 못한 잠재적 암 환자가 많다는 의미로 풀이할 수 있다.

코로나19의 경우 올해 집계가 시작된 뒤로 4일까지 총 2만4091명이 확진을 받아, 현재까지 421명이 사망했다. 국내 평균 치명률(사망률)은 1.75%다. 아직 11~12월이 남았지만, 현재의 관리 수준을 이어간다면 코로나19 감염자 수는 한해 암 신규 환자 수의 8~10분의 1 수준에 머물 것으로 보인다. 마찬가지로 사망자 수는 암의 200분의 1 수준일 것으로 전망된다. 암이 코로나19보다 우리 생명을 더 위협할 수 있는 병인 것이다.

코로나19의 무서운 점은 높은 전염성이다. 코로나19 바이러스는 공기 중에서도 3시간가량 생존이 가능하며, 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사스)보다 전염성이 10배가량 높다. 이런 성질은 폐암 환자들에게 치명적이다. 코로나19는 돌기 단백질이 숙주의 ‘ACE2’ 수용체와 결합하면 바이러스 침투가 시작되는데, 인간 폐에는 ACE2가 다수 분포해 있어서다. 건강한 사람들도 코로나19에 감염되면 폐 조직이 손상되는 등 돌이킬 수 없는 상태로 이어지고, 폐암 환자는 자칫 사망에 이르게 할 수 있다. 실제 서울에서 코로나19 감염으로 첫 사망한 40대 K씨도 폐암 말기 환자였다.

특히 폐암·폐렴 등 한국인들의 호흡기 질환은 심각한 수준이다. 2019년 폐암으로 사망한 사람은 인구 10만명 중 36.2명으로 간암(20.6명)·대장암(17.5명) 등을 제치고 전체 암 가운데 가장 많다. 1983년 폐암 사망자 수는 10만명 중 5.9명에 그쳤지만 이후 빠르게 늘었다. 2010년 30명을 돌파한 뒤로도 가파르게 증가하고 있다.

폐렴의 경우는 전체 사망 원인 중 암·심장 질환에 이어 세 번째로 많다. 10만명당 사망자 수는 45.1명이다. 폐렴 사망자 수는 뇌혈관질환·자살보다 크게 낮았지만, 2007년께부터 가파르게 올랐다. 폐 조직이 손상됐거나, 이상이 발생한 환자가 코로나19에 감염될 경우 자칫 사망에까지 이를 수 있다.

더구나 코로나19를 피하기 위해 장기간 마스크를 착용하고 활동할 경우 면역력 저하로 이어져 폐암 환자의 건강을 악화시킬 수 있다. 치료를 위해 병원을 자주 방문해야 하는 환자들로서는 곤혹스러운 상황이다. 이 때문에 병원 방문을 꺼리는 폐 질환 환자들도 적지 않다. 한국혈액암협회가 9월 암 환자 및 가족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벌인 결과 ‘코로나19로 병원 치료를 지연했거나 어려워진 경험을 했다’는 응답자가 30%에 달했다. 코로나19 사태로 암 환자들의 건강 상태가 악화할 가능성이 있는 셈이다.
 비급여 치료제에 경제적 부담 가중
코로나19로 암 치료가 어려워지고 기간도 장기화되면서 환자들의 경제적 고통도 커지고 있다. 암의 종류와 진단기, 치료법 등에 따라 치료비 차이는 있지만, 보험업계는 대략 월 평균 치료비를 600만~700만원, 1인당 평균 치료비를 대졸 직장인 평균연봉과 비슷한 4000만~5000만원 수준으로 추산하고 있다.

국민의힘 주호영 국회의원실이 건강보험심사평가원(심평원)으로부터 제출받은 ‘항암제 약품 청구 현황’에 따르면 올 상반기 항암제 급여청구액은 8566억원으로 전년 동기의 7916억원 대비 8.2% 증가했다. 항암제 급여청구액이 늘었다는 것은 암 치료 수요가 늘었다는 의미다. 산정 특례 수진자 수와 요양급여비용은 지난해 상반기 98만3550명, 4조782억원에서 올 상반기 97만9204명, 4조595억원으로 높은 수준을 이어가고 있다.

특히 말기 암 환자의 경우 표적항암제나 면역항암제 같은 항암신약을 사용해야 하는 경우가 많은데 해당 약제들은 1차 치료에 사용할 때 급여가 안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표적치료제는 기존 항암제와 달리 암세포만을 선택해 공격하는 치료제다. 과거 위암·간암에 집중됐던 암 환자가 최근에는 폐암을 중심으로 식도암·췌장암·유방암·전립선암·뇌암 등으로 넓어졌고, 암세포가 전이·변이를 일으키는 경우가 많아 표적치료가 필요한 사례가 늘고 있다.

혈액암협회 설문조사에서도 암 환자 및 가족 10명 중 7명은 ‘경제적 고통’을 암 치료 중 가장 힘든 점으로 꼽았다. 비급여 항암 치료비용과 관련해서는 93%가 ‘매우 부담된다’고 답했다. ‘비급여 항암 치료의 높은 비용 때문에 치료를 중단하거나 연기를 고민한 적 있다’고 답한 응답자도 86.5%(매우 그렇다 56.4%, 약간 그렇다 30.1%)나 됐다. 의사가 환자의 경제적 여건을 고려해 비급여 치료제를 처방하지 않는 경우도 적지 않다는 게 환자들의 설명이다. 의료 현장에서는 최고의 약보다는 최선의 약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비급여 항암신약 치료 중인 환자들은 해당 약제의 급여화를 요구하고 있으며, 청와대 국민청원에도 이런 게시글이 여러 건 올라왔다. 암 종류의 진단기, 환자의 상태에 따라 처방할 수 있는 약이 다를 텐데 현재 의료급여제도는 일률적으로 적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암은 재발·전이가 잦은데 위암의 경우 전체의 40~60%가 재발로 사망하고, 대장암 역시 20~50%가 재발한다. 폐암은 진단 당시 암이 진행됐거나, 전이가 일어난 비율이 55~80%에 달한다. 암은 재발·전이 등 상황에 따라 치료가 실행돼야 하지만, 관행·절차에 따라 외과 수술 및 기존 항암제 치료에만 건강보험 급여가 인정되고 있다. 항암신약이 고가이기 때문에 건강보험재정을 악화시킬 수 있고, 의료 현장에서 남용할 우려를 염려하고 있는 것이다.
 “암질심, 효과보다 비용으로 접근” 암 환우들 비판
다만 환자들의 요구가 커지자 표적항암제 급여화를 논의할 계획이다. 대선 후보 시절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를 공약으로 내건 문재인 대통령도 2018년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를 골자로 한 이른바 ‘문케어’의 시동을 걸었다. 올 3월에는 ‘문케어 플러스’를 발표하고 국민 평생 건강 지원 체계 강화 계획을 밝혔다. 2023년까지 건강보험 보장율을 70%로 끌어올리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표적항암제 보험 급여는 아직 물꼬를 트지 못했다. 코로나19 사태로 연기를 거듭한 끝에 5월 열린 심평원의 암질환심의위원회(암질심)에서 항암 신약 급여는 줄줄이 보류나 부적합 판단을 받았다. 암질심은 표적항암제의 급여를 논의하는 첫 관문이다. 암질심은 암 치료제의 급여 항목을 늘리면 건강보험재정이 악화하고, 다른 질병의 보장성에도 악영향을 줄 수 있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이에 한국암환자권익협의회는 9월 성명을 내고 “암질심은 항암제 선택을 두고 비용을 최우선 가치로 두고 고민하는 모습을 자주 드러내놓고 표현한다”며 “신약의 치료 효과와 신약 사용에 따른 환자의 삶의 질 개선 등 의학적 검토와 심의를 환자 중심으로 하길 바란다”고 촉구했다.

- 김유경 기자 neo3@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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