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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독한 항공업계, 비상탈출 시작됐다] “면접장 가니 절반이 승무원이에요”

[혹독한 항공업계, 비상탈출 시작됐다] “면접장 가니 절반이 승무원이에요”

휴직 확대에 남몰래 이직 준비… 특수직종이라 타 업계 진출도 힘들어
코로나19 장기화로 휴직이 길어지자, 이직을 준비하는 항공업계 관계자가 늘고 있다. 사진은 출국을 준비하는 승무원들. / 사진:연합뉴스
“은행원을 선발하는 면접 장소에 가니 절반이 승무원이었어요” 지난 9월 23일 직장인 커뮤니티 애플리케이션인 ‘블라인드’에는 에어서울을 다니는 한 익명의 승무원이 올린 이직 면접 후기 글이 올라왔다. 글에 따르면 은행원을 뽑는 최종 면접 장소에는 6명의 지원자가 있었고, 그 중 3명이 항공 승무원이었다. 익명인은 “승무원 경력이 대인 업무에 도움이 될 수 있기 때문에 자신감을 갖고 면접장에 들어섰지만, 차례로 자기소개를 할 때 나와 같은 경력을 지닌 승무원 2명이 더 있는 것을 확인하고 실망했다”며 “코로나19로 나처럼 많은 승무원이 항공업계 탈출을 준비한다는 것을 깨달았고, 나의 승무원이라는 경력이 특별한 변별력을 갖지 못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적었다.

코로나19사태가 장기화되면서 비밀리에 이직을 준비하는 항공업계 관계자가 늘고 있다. 기업의 공식 메일을 통해 소속직원임을 인증한 후, 가입할 수 있는 애플리케이션 블라인드에는 항공업계에서 다른 업계로 이직을 준비한다는 글이 매일 수십 건씩 올라오고 있다. 이 애플리케이션에 게재된 글은 글쓴이의 소속회사는 공개되지만 익명을 보장하는 것이 특징이다.

아시아나항공 승무원인 김모씨는 이코노미스트와 인터뷰에서 “코로나19 전에는 두 달 전부터 비행 스케줄이 나왔지만 코로나19가 터진 이후로는 하루 전에 비행 스케줄이 나온다”며 “이것도 나오면 다행이지만, 현재는 11월부터 추가로 8개월간 휴직 일정이 나온 상황이라 이직을 고민하는 것이 이해된다”고 말했다. 이어서 그는 “동기들끼리도 대놓고 이직을 준비한다고 말하는 분위기는 아니다. 오랜 시간 동안 꿈을 꾸고 준비한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다들 서로에게 이 업계를 떠난다고 말하기 미안해한다”고 말했다.
 조종사·정비사는 이직 꿈도 못 꿔
이직을 준비하는 항공업계 관계자들은 입을 모아 “미래가 보이지 않는다”고 말한다. 악화된 항공업계 상황은 실제 올해 2분기 매출액 수치로 극명하게 나타났다. 금융감독원 자료에 따르면 국내 대형항공사인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올 2분기 매출은 각각 1조6909억원, 8186억원으로 지난해 동기 대비 50%가 감소했다. 이보다 제한된 노선을 운항하는 저비용항공사 상황은 더욱 난항이다. 제주항공의 올해 2분기 매출액은 360억원, 에어부산 273억원, 티웨이항공 246억원, 진에어 232억원으로 지난해 동기 대비 10% 수준을 기록했다. 매출이 90% 정도 감소했다.

11월부터는 더 힘들어질 전망이다. 코로나19 피해를 최대한으로 줄이기 위해 정부가 국내 항공사에게 지원하던 고용유지지원금이 지난 10월 말 기준으로 종료됐기 때문이다. 직원들의 순환휴직이 연장되고 무급휴직이 확대되는 상황 속에서 직원들의 급여도 반토막 이상이 줄었다. 가족들의 생계를 책임져야하는 가장들로서는 ‘이직’만이 유일한 살 길이라고 여겨지는 이유다. 또 최근 이스타항공이 직원 605명 정리해고를 단행하면서 항공업계에서는 ‘실업대란이 현실화됐다’는 불안감도 커지고 있다.

하지만 업계 특성상 ‘항공’ ‘비행’이라는 특수성을 지니고 있어서 타 업계 이직이 쉽지 않은 실정이다. 한 외항사의 마케팅 팀에서 근무하는 이모씨는 “최근 휴직 기간 동안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기로 마음먹었다”고 말했다. 이모씨는 “코로나19가 터진 후, 휴직이 길어져서 이직을 준비하게 됐다. 처음에는 현재 일이 마케팅이기 때문에 항공업이 아닌, 완전히 새로운 분야의 글로벌기업 마케팅 팀으로 이직을 준비했다”며 “그러나 항공업 마케팅은 완전히 다른 마케팅으로 보는 색안경이 있었다. 최종 면접에서 몇 번 탈락 한 후, 기업 이직은 포기하고 공무원 시험으로 시선을 돌렸다. 사실 비행기 좌석을 파는 것이나 일반 물품을 파는 것이나, 매한가지인데 왜 다르게 보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이어서 그는 “항공업에 있으면서 자부심을 많이 느꼈는데 이처럼 여행업 경력이 이직할 때 걸림돌이 될 줄은 몰랐다”고 말했다.

항공사 조종사나 정비사인 경우엔 더욱 이직은 어렵다. 최근 블라인드에 올라온 항공업계 이직 관련 글의 댓글에는 “이직이라도 꿈 꿀 수 있어서 좋겠네. 조종기술 하나밖에 없는 나는 이 판국에 도대체 뭘 해먹고 살아야 하나”, “항공 정비기술이 다른 업계에선 전혀 쓸모가 없다니”, “화물이나 여객 세일즈 쪽에 일하던 사람들은 여행사나 물류회사로 이직 하기라도 하지”라는 등의 푸념의 글들이 올라와 있다. 한 국내 항공사 조종사는 인터뷰에서 “비교적 나이가 아직 어린 승무원들은 항공사 경력을 과감하게 버리고 새로운 기업의 신입사원으로 들어가도 되지만, 대부분의 조종사는 해외에서 긴 훈련기간을 거치거나 국내에서 파일럿 경력을 지내고 왔기 때문에 나이가 30대 후반에서 40대 초반이 제일 어린 편”이라며 “다른 기업의 신입사원으로 들어가지도 못하는 상황이라 무조건 버티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직을 준비하면서 동시에 아르바이트를 하는 항공업계 사람들도 많다. 휴직 일을 활용해 아르바이트를 하는 일명 ‘투잡러’들이다. 현재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등 국내 항공사들은 겸직을 금지하고 있다. 그러나 월급이 줄고, 쉬는 날이 무기한으로 계속되는 상황이 계속되면서 회사 몰래, 아르바이트를 하며 생활비를 버는 경우가 생긴 것이다.
 男 배달, 女 SNS 마켓에서 아르바이트
한 항공사 승무원은 “승무원들 사이에서 남자 승무원은 쿠팡이츠, 배달의 민족과 같은 배달 아르바이트나 대리운전을 하고, 여자 승무원은 인스타그램으로 간간히 물건을 판매하는 SNS마켓을 운영하거나 제품을 받아서 사진 촬영해 SNS에 올리는 뒷 광고를 하면서 용돈을 번다고 들었다”며 “이전에는 승무원을 준비하는 학생들을 가르치는 승무원 과외를 많이들 했는데, 요새는 항공사 취업문도 닫혀서 아르바이트 찾기에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말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겸직을 허용하는 항공사도 나왔다. 아사히신문 보도에 따르면 일본 최대 항공사인 ANA가 코로나19로 임금이 삭감된 직원들이 다른 회사와 시간제 계약을 맺어 겸업을 할 수 있도록 새로운 노동 지침을 만들었다. 새 지침에 따라 ANA 직원들은 내년부터 항공사 일을 하면서 당당히 다른 회사에서도 시간제 계약일을 할 수 있다. 조종사와 승무원 등 ANA 소속 1만5000명 직원 모두에게 적용될 예정이다.

- 라예진 기자 raye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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