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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시 정치화’ 논란 뜨겁다] 코스피 3000 만든 ‘동학개미’, 눈치 보는 정치권

[‘증시 정치화’ 논란 뜨겁다] 코스피 3000 만든 ‘동학개미’, 눈치 보는 정치권

공매도 금지, 대주주 요건강화 연기, ESG 공시 의무화… 표심에 바뀌는 증권 정책
1월 7일 오후 한국거래소 로비에서 참석자들이 코스피 3000 돌파를 축하하고 있다. 앞줄 왼쪽부터 정일문 한국투자증권 대표, 손병두 한국거래소 이사장, 나재철 금융투자협회장, 박현철 부국증권 대표.
주식 투자가 경제적 고통에서 벗어날 유일한 탈출구가 된 듯하다. 지난해 2분기 불붙은 주식 투자 열풍이 연말연시를 거치면서 속도가 붙고 있다.

부동산 투자를 제지당한 젊은이들은 물론이고 노후가 불안한 중장년층, 안정된 생활을 찾는 노년층까지 증시에 몰리고 있다. 심지어 미성년자는 1년 새 5배나 늘었다. 1년 전 10조원 안팎이던 하루 주식 거래대금은 지난해 말 가볍게 40조원을 돌파했다. ‘주린이(주식+어린이)’ ‘꼬마개미’ 같은 신조어가 이젠 어색하지 않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증권사 객장에 찾아와 삼성전자 주식을 사려면 삼성전자를 찾아가야 하느냐 묻는 투자자도 있다”며 현장의 과열된 분위기를 전했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주식거래활동계좌 수는 3617만 2217개(1월 14일 기준)로, 전체 경제활동인구(2766만1000명, 2020년 말 기준)보다 약 851만 개 많다. 시중 자금도 증시에 빨려 들어가고 있다. 국민·신한·하나·우리·농협 등 5대 은행의 정기예금 잔액은 14일 기준 630조9858억원으로 지난해 10월 말(640조7257억원) 대비 9조7399억원 감소했다. 이 기간 주식시장에선 개인이 13조4540억원(코스피·코스닥 합산)어치 주식을 순매수했다.

새로 주식에 입문한 투자자들이 정보 확보에 혈안이 되며 월 300만~400만원짜리 유료 정보방도 성행하고 있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유사투자자문 회사의 신입사원 월급이 900만원에 달할 정도로 호황”이라며 “대형 증권사 임직원들도 적극적으로 영입에 나서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수중에 현금이 없는 사람들은 기회를 놓칠까 빚을 동원해 패닉바잉에 뛰어들고 있다. 국내 5대 시중은행 마이너스통장 신규 개설 건수는 지난 12월 31일 하루 1048건에서 1월 14일 2204건으로 2배 이상 늘었다. 마이너스통장 잔액도 48조1912억원으로 불어났다. 증권사 신용대출도 올해 들어 하루 평균 1000억원 이상 증가하며 대출 잔액은 역대 처음으로 20조원을 돌파했다.

저금리가 굳어진 가운데 낮은 임금상승률·취업난·부동산규제 등으로 갈 곳 잃은 자금이 주식시장에 몰리고 있다. 개인투자자들이 증시에서 큰 세력을 형성하며 코스피 3000을 달성을 이끌자, 이에 동참하는 동학개미들이 불어나고 있다.
 ‘물 들어올 때 노 젓자’ 2030 흐름 주도
이런 흐름은 2030 세대가 주도하고 있다. 미래에셋대우·KB·NH투자·한국투자·키움·유안타증권 등 국내 6개 증권사의 지난해 신규 주식계좌 723만개 가운데 54%가 20~30대 명의로 개설됐다. 물 들어올 때 노를 젓듯 언제 다시 찾아올지 모를 기회를 놓쳐선 안 된다는 게 젊은 투자자들의 절박한 심정이다.

3월로 예정됐던 결혼식을 9월 이후로 연기했다는 프리랜서 작가 신지수(36) 씨는 “혼인신고만 3월에 하고, 결혼식·신혼여행에 쓸 돈을 주식에 투자하기로 했다”며 “주택 구매를 위한 종잣돈 마련이 목적”이라고 말했다. 신씨처럼 주택 구매의 막차를 놓쳤다고 판단한 2030 세대는 내 집 마련을 위해 주식에 투자하고 있다.

미래에셋투자와연금센터가 지난해 5월 25~39세 남녀 7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70.6%가 내 집 마련이 필요하다고, 73%가 자기 소득만으로 집을 마련하기는 어렵다고 응답했다. 이들의 재무 목표 1위는 ‘주택 구매를 위한 재원 마련’(31%)이었다.

주식 투자는 기업들의 생산 활동을 지원하기 때문에 투자 저변 확대는 국가 경제에 좋은 일이다. 정부도 부동산 투자 과열을 막기 위해 시중 자금이 증시로 이동하도록 물꼬를 텄다. 다만 최근 증시가 과열 양상이며, 유동성 파티를 개인이 주도하고 있어 우려가 제기된다. 주가가 하락할 경우 피해를 개인투자자가 오롯이 뒤집어쓸 수 있어서다.

실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증시가 최저점을 기록한 지난해 3월 23일 이후부터 올해 1월 20일까지 개인은 코스피 41조8000억원, 코스닥 15조2824억원 등 총 57조824억원 순매수했다. 같은 기간 기관·외국인은 두 시장에서 총 52조2380억원을 순매도했다.

기관·외국인이 정리하는 물량을 개인이 받아내며 코스피는 1482.46에서 3111.62로, 코스닥은 443.76에서 977.66로 각각 2배 이상 밀어 올렸다. 개인은 코스피가 3000을 기록한 7일 이후 코스피에서만 9조322억원을, 코스닥이 900을 넘은 지난달 3일 이후 코스닥에서 2조1765억원을 각각 순매수했다.

증시에 내 집 마련·노후준비·상속 등 인생을 건 개인투자자들의 세력은 커졌고 결속력도 강해졌다. 이에 정부와 정치권도 여론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인생에 승부수를 띄운 듯 증시를 대하고 있어, 여론을 거슬렀다간 반발에 부딪힐 수 있어서다.
 “개미 털기냐” 비판에 대주주 요건 강화 유예
실제 지난해 정부는 대주주 요건 강화를 추진하다가 개인 투자자들에게 무릎 꿇었다. 현행 10억원인 대주주 요건을 3억원으로 강화해 주식 양도시 차액에 대한 과세 대상을 넓히겠단 계획이었는데, 개미들의 반대로 시행 시점을 2023년으로 유예했다.

부동산 대출 조건 강화 여파로 2030이 문재인 대통령과 여당에 등을 돌렸듯, 주식투자 제도 변경이 지지율에 악영향을 끼칠까 우려하고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최근 가장 논란이 되는 것은 공매도 재개 여부다. 지난해 코로나19 사태의 폭풍이 자본시장에 몰아치자 정부는 주가 하락을 방어하기 위해 지난해 3월 16일부터 6개월간 공매도를 금지했고, 지난해 9월에 6개월 연장했다. 현재 일정대로라면 3월 15일 공매도가 재개된다. 공매도는 주가가 하락할 것을 예상해 보유하지 않은 주식을 빌려 매도하고, 저가일 때 매입해 갚는 투자 방식이다.

이에 개미들은 거세게 반발한다. 개인투자자들은 개인이 끌어올린 주가를 기관·외국인이 공매도로 끌어내릴 수 있다는 것이다. 공매도는 다른 투자자의 손실을 기반으로 수익을 실현하는 성격이 있다.

정부는 공매도가 과거부터 증시에 존재했던 투자 방식이고, 증시에 유동성을 공급하고 순기능이 있다며 3월 15일 허용을 염두에 두고 있다. 그러나 여론이 악화하며 여당을 중심으로 공매도 재개를 재고할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가 커진다.

양향자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은 1월 11일 최고위원 회의에서 “공매도 금지 해제로 개인 투자자 피해가 우려된다. 연장을 심각히 고민해야 한다”고 했고,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도 이날 자신의 페이스북에 “공매도 재개는 금융당국의 책임을 방기하는 것”이라고 날 선 비판을 했다. 14일에는 정세균 국무총리까지 나서서 “(공매도는) 좋지 않은 제도라고 생각한다”고 한 라디오 방송에서 언급했다.

이에 11일 출입 기자들에게 “공매도 금지조치는 15일 종료될 예정”이라고 문자를 발송한 금융위원회도 황급히 말을 주워 담고 있다. 은성수 금융위원장은 18일 기자회견에서 “2월 정기국회가 열리면 의원들의 의견도 청취하겠다”고 입장을 번복했다.

이에 야당은 여당이 보궐선거에서 자신에게 유리하도록 정부 정책에 간섭한다고 비판한다. 한국금융연구원장을 지낸 윤창현 국민의힘 의원은 “공매도는 자본시장의 일반적 거래 행태다. 매도자가 수익을 실현하려면 주식을 사서 갚아야 하므로 대중의 우려만큼 증시에 큰 악영향은 없다”며 “여당은 표 계산에 바빠 주가에 좋으면 선이고, 나쁘면 악이라는 식의 접근을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에 대해 국회 정무위원회 여당 간사 김병욱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공매도의 한시적 금지 기간 동안 개선 법안을 통과시키고, 거래소·증권사의 전산시스템을 보완하는 등 실무적 작업을 벌이는 중이다. 여기에 정치 논리가 개입될 여지는 없다”며 “한국의 개인투자자 비중이 크다고 해서, 정책을 정치로 해석해선 안 된다”고 반박했다.

최근 여야 공방처럼 정치세력이 이익 달성을 위해 주식시장을 활용하는 일은 흔하게 발생한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은 표심을 의식해 2019~20년 제롬 파월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을 거세가 압박한 바 있다. 이에 미국 주요 증시 지수가 연일 치솟았고, 트럼프 전 대통령은 이를 자신의 치적이라며 대대적으로 홍보했다.

최근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코스피 상장사의 환경·사회·지배구조(ESG) 공시를 조기 의무화하는 방안을 추진하는 것도 증시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ESG 공시는 이익 공유제 시행을 위해 둔 포석이며, 아젠다 선점을 위한 정치적 행보라는 평가가 우세하다. 재계에서는 반시장 정책이라며 우려를 표하고 있다.
 경제 이슈 정치적 활용, 왜곡된 시그널 가능성
이처럼 경제 이슈를 정치적으로 활용하는 것은 시장에 왜곡된 시그널을 줘 큰 충격을 입힐 수 있다. 1989~92년 노태우 정부 후반기에 밑 빠진 독에 물 붓듯 정책 자금으로 증시를 부양한 게 대표적이다.

1989년 말 종합주가지수가 16% 하락하자 청와대는 증시 불안을 막겠다며 2조원 규모의 증권시장안정기금 마련을 골자로 한 12.12 대책을 내놓았다. 청와대가 주가 하락률에 비해 과민하게 반응하자, 당시 시장은 증시가 떨어지면 정부가 책임질 거란 잘못된 인식을 가졌다. 이에 800대이던 주가는 1992년 8월 507.88로 폭락했다.

정부는 투신사가 은행에서 돈을 빌려 주식을 매입하도록 허용했는데, 이 손실도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이때 정치권과 기업 소유주들은 투신사에 보유 주식을 대량 매도했다. 이에 투신사 부실 문제가 불거지자 결국 한국은행이 연 3% 금리로 투신사의 은행 빚만큼 융자해주는 2조9000억원 규모의 한은특융까지 단행했다.

증권시장에서는 5공화국이 세도가의 주식 매도기회를 주기 위해 중앙은행 발권력까지 동원했다는 비판이 드셌다. 이 일의 책임을 지고 이규성 재무부 장관은 자리에서 물러났다.

최근 공매도 재개, 대주주 요건 강화 등 증시를 둘러싼 정치적 논란은 정책의 일관성을 해치고 시장의 예측 가능성을 떨어트리며, 외국인 투자자들의 오해를 부를 수 있다. 특히 최근처럼 자본시장과 실물경기 간에 괴리가 클 때는 정치적 변수가 주식시장을 더욱 취약하게 만들 수 있다.

이종훈 iGM컨설팅 대표는 “현재 표면적으로 여당은 표심을 염두에 두고 주식시장 정책을 취하고 있고, 야당도 역풍 맞을까 두려워 끌려가는 모양새”라며 “현대 정치에서 전 세계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인데, 아닐 때 아니라고 용기 있게 말할 수 있는 정치 리더십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 김유경 기자 neo3@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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