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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국현 IT 사회학] 하드웨어 향한 페이스북의 욕심과 열정

[김국현 IT 사회학] 하드웨어 향한 페이스북의 욕심과 열정

마음 읽는 AR 손목밴드 상용화 가능성 보여줘… 애플·구글 플랫폼 탈출 위한 몸부림
페이스북 리얼리티 랩스에서 선보인 AR 손목밴드 동영상. / 사진:유튜브 캡쳐
페이스북은 지난 3월 18일, 마음을 읽는 기술을 언론에 뽐내기 시작했다. 아직 프로토타입이지만 손목에 차는 웨어러블 인터페이스는 손을 움직이려 할 때 뇌로부터 내려오는 신경 신호를 손보다 먼저 가로챈다.

손을 움직이려는 뇌의 자유의지는 척추 신경을 타고 손목을 향한다. 이 전기 신호를 손목시계형 근전도(EMG, electromyogram) 센서가 탐지한다. 근전도란 신경과 근육의 전기적 신호를 읽어 말초신경을 살피는 의료 검사 기술. 이 신호는 매우 뚜렷해서 단지 1㎜의 손가락 움직임마저도 EMG는 이해할 수 있다고 페이스북은 주장한다.

이제 맨손으로 클릭할 수도 있고, 빈 책상 위에서 타자 칠 수도 있고, 심지어 활을 쏘는 자세와 같은 복합적인 동작도 입력할 수 있다. 게임 등에서 요긴할 것 같다.

오늘도 우리는 타이핑을 하고 마우스를 클릭하고 화면을 터치하며 컴퓨터와 대화하지만, 지금의 입력 장치가 미래에도 변치 않을 완성형은 아닐 것이다. 차세대 인터페이스를 향한 탐구열은 곳곳에서 식지 않는다. 연구 성과 중 기발하기로 치자면 뇌에 칩을 심어 통신하자는 일론 머스크의 뉴럴링크를 빼놓을 수 없다. 적어도 나는 그럴 생각이 없고, 페이스북도 마찬가지인 듯하다.
 AR 손목밴드, 맨손으로 책상 위에서 타자도 가능
페이스북의 손목 밴드는 피부에 상처를 내지 않고 전기 신호를 읽는다. 손짓하듯, 더 나아가선 수화를 하듯 컴퓨터와 대화하게 되면 쿼티 자판과 마우스의 조합과는 또 다른 편리함이 있을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쿼티 배열이 굳이 그런 형태로 그 오랜 기간 존속되고 있는 사정에서도 알 수 있듯이 소비자에게 새로운 인터페이스를 소개하는 일은 참 힘든 일이다. 지금은 스마트폰에서 익숙한 옆으로 넘기는 ‘스와이프’나 꼬집는 ‘핀치’도 그나마 크게 위화감 없는 아날로그 동작이었기에 퍼질 수 있었던 것. 새로운 소통법을 만사 귀찮은 소비자에게 교육하는 일에는 노력과 열정이 필요하다.

그런데 페이스북은 이에 더없이 진지하다. 지금처럼 크고 작은 화면, 즉 터치할 수 있는 유리 화면을 구글과 애플이 다 점령해 버린 이상, 그들의 울타리를 벗어나는 유일한 길은 그 화면 자체를 피해 가는 길뿐이다. 손바닥만 한 스크린에 고개를 파묻고 구부정하게 거리를 걷는 풍경이 유일한 미래의 모습일 리는 없기에 그 기회는 많다. 누구보다 페이스북은 스크린 이후의 플랫폼을 꿈꿔왔고, 2014년 2조5000억원을 들여 VR 회사 오큘러스를 인수하는 시점에서 이는 공식화된 일이다.

페이스북이 한낱 게시판에서 시작한 회사 같아도, 그 야심만큼은 수익성과 자본력만큼 웅대하다. 이를 실현할 기술력과 인재도 있다. 지금은 페이스북 직원 다섯 중 한 명은 가상현실(VR) 및 증강현실(AR) 분야에서 일하고 있다. 1만명에 가까운 직원이 리얼리티 랩(Reality Labs)에 근무 중인데, 2017년에 1000명의 팀이었음을 돌아보면 급증했다.

하드웨어에 대한 그들의 욕심과 열정은 숨겨지지 않는다. 이미 상품화된 영상 하드웨어 포털 등을 연구한 ‘빌딩 8’, 현 리얼리티 랩의 전신인 오큘러스 리서치 그룹 등 이런저런 프로젝트의 우여곡절 역사는 길기도 하다. 그 과정에서 쓴맛도 많이 보았지만, 그 열망은 식지 않는다. 페이스북은 애플과 구글의 모바일 플랫폼을 탈출해야만 하는 숙명을 느끼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까지 한다. 근래 프라이버시 정책을 둘러싸고 애플과 옥신각신하고 있는데, 아마 지금 겪고 있는 진퇴양난의 미래를 오래전부터 느끼고 있었을 수도 있다.

VR·AR처럼 현실의 시청각 감각을 왜곡하는 기술은 일취월장 발전하고 있다. 시야를 뒤덮어 콘텐트에 몰입하게 할 수도 있지만, 현실 위에 한 겹 더 레이어를 입혀 새로운 정보의 창구를 만들 수도 있다.

페이스북의 신작 VR 헤드셋 오큘러스 퀘스트 2는 평도 좋고 7주 만에 전작의 실사용자 수 전체를 뛰어넘을 정도로 흥행에 성공하기도 했다. 여전히 머리에 묵직한 걸 뒤집어쓰고 있는 겉모습은 영 아름답지 않지만, 레이밴과 공동 개발 중인 안경도 있다니 흥미가 간다.

그런데 아무리 잘나가는 오큘러스라도 한 가지 풀어야 할 문제가 있었다. 그건 인터페이스였다. 지금의 인터페이스는 탐탁지 않다. 두꺼운 목침 같은 것으로 두 눈을 가린 채 조이스틱 같은 걸 쥐고 허공에 흔드는 모습은 부러운 모습이 아니다. 새로운 사물을 사용하는 모습이 부러워야 붐이 일어날 텐데 말이다.

애플의 아이폰이 스마트폰 시대를 열게 된 계기는 화질이나 해상도가 아니었다. 옴니아 등 더 해상도 높은 전자 유리판쯤은 이미 또 있었다. 아이폰이 남달랐던 점은 사용자 인터페이스였다. 손톱이나 막대기 대신 손가락 피부로 움직일 수 있었다. 정확히 움직이는 만큼 유리 밑의 정보가 따라 움직였다. 여러 손가락으로 터치할 수 있었다. 손맛이 있었다. 소비자들을 일깨우는 것은 이처럼 많은 경우 그 제품이 주는 ‘손맛’이다.

아이폰 이전에도 PDA도 스마트폰도 있었다. 하지만 아이폰 이후의 세계에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업계에 어떤 영향을 주게 되었는지 페이스북은 잘 알고 있었다.
 마크 저커버그, ‘트랜스포트’ 대신 ‘텔레포트’ 주장
VR이든 AR이든 아니면 혼합현실(XR/MR)이든 그 장치들의 ‘출력’은 곧 상향평준화될 터, 그때 결정적 차별화를 만들 ‘입력’ 장치를 준비해야 했다. 오큘러스 퀘스트의 다음 버전에는 눈이나 안면 추적 기능이 탑재되어 표정과 시선의 미세한 변화도 감지할 수 있게 될 예정이다. 더 많은 센서가 우리 곁에 달라붙어 우리 몸의 작은 움찔거림 꿈틀댐을 놓치지 않고 해석하려 할 터, 이번의 손목 근전도 입력기는 그 샘플 중 하나다.

마크 저커버그는 다른 경쟁사가 자율주행 등에 매진하는 것을 놓고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트랜스포트(수송)’가 아닌 ‘텔레포트(원격이동)’라고 주장해 왔다. 먼 곳에 떨어져 있는 가족도 같은 방에 있는 것처럼 느끼며 대화하는, 심지어 함께 살아갈 수 있는 미래에서는 시스템이 내 표정의 작은 변화도 놓치지 않고 함께 한 이들에게 전달한다. 이 교감의 축적은 감동이 있는 삶을 만들어 줄지 모른다.

그 체험이 자연스럽다면 굳이 만나러 가려 이동하러 가는 일이 줄어들 테니 지구온난화 대책도 된다고 저커버그는 주장한다. 추석 명절에 모두 헤드셋을 뒤집어쓰고 차례를 지내는 미래는 전기 자율주행차가 고속도로를 메우고 있는 미래보다 에너지 친화적일 테니 틀린 말은 아니다.

소셜 서비스 기업 페이스북이 언제나 꿈꿔온 것은 우리의 인생을 각색하는 일이었다. 적어도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 안에서만큼은 완벽한 인생들. 남들의 그런 인생을 스크롤하며 우리는 그 소셜 미디어 안으로 점점 빠져들어 간다. 기술의 힘으로 감각을 교란해 삶을 각색하는 일. VR이 꿈꾸는 지향점과 흡사할 수밖에 없다※ 필자는 소프트웨어 엔지니어 겸 IT평론가다. IBM, 마이크로소프트를 거쳐 IT 자문 기업 에디토이를 설립해 대표로 있다. 정치·경제·사회가 당면한 변화를 주로 해설한다. 저서로 [IT레볼루션] [오프라인의 귀환] [우리에게 IT란 무엇인가]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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