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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광원의 인간과 조직 사이(2)-2 | 좋은 일의 시작, 분리] ‘꿈보다 해몽’… 본능을 버리고 기회를 잡는 법

[서광원의 인간과 조직 사이(2)-2 | 좋은 일의 시작, 분리] ‘꿈보다 해몽’… 본능을 버리고 기회를 잡는 법

나에 대한 ‘공격’과, 내 의견에 대한 ‘비판’ 분리해야
사진:© gettyimagesbank
어느 날 부처가 제자들과 함께 길을 가고 있는데 갑자기 어떤 사람이 와서 부처에게 갖은 욕설과 악담을 해댔다. 알고 보니 당시 기성 종교였던 브라만의 사제였는데 혜성처럼 나타난 부처가 자기 제자를 빼앗아 갔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자신을 따르는 제자들 앞에서 이런 일을 당하면 보통 쩔쩔매거나 ‘눈에는 눈’ 식으로 행동하기 마련인데 부처는 그렇지 않았다. 그가 하는 모든 말을 잠자코 듣고 있었다. 한참 동안 욕설을 퍼붓던 그가 사라지자 제자들이 물었다.

“아니, 하지도 않은 일을 했다고 저러는 데 왜 가만히 있으십니까?”

그러자 부처가 말했다.

“생각해보자. 만약 누군가 상대에게 꽃을 선물했는데 상대가 그걸 받지 않으면 어떻게 되느냐?”

“받지 않으면 다시 가져가겠지요.”

“그렇다. 지금도 그와 마찬가지다. 그가 내게 와서 욕을 해도 내가 받지 않으면 욕한 자가 다시 가져가는 것이다.”

상대가 무슨 말과 행동을 해도 내 마음 그릇에 담지 않으면 욕을 퍼붓는 사람이 되려 욕을 먹게 된다는 말이다.

그런데 참 이게 말은 쉬워도 절대 쉽지 않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도 모르게 상대가 던진 ‘꽃다발’을 안고 끙끙댄다. 향기롭고 아름다운 꽃다발이면 좋으련만 그런 경우는 별로 없다. 가시가 잔뜩 있을 때가 많다. 당연히 우리 마음은 상처 투성이가 된다.
 부처의 꽃을 기억하라
사진:© gettyimagesbank
2600여 년 전 부처에게 일어났던 일이 지금도 비일비재하게 일어난다. 회의 시간에 괜찮다 싶은 아이디어를 말했는데 생각지 못한 반격을 받을 때가 있다. 생산적인 반대야 그럴 수 있지만, 왠지 감정이 들어 있는 것 같고 이상한 뼈 같은 게 느껴지면 기분이 확 나빠진다. 묘하게 빈정거리거나 깔아뭉개는 느낌이 들면 머릿속에 불길이 일어날 때도 있다. 그들이 하는 말에 들어 있는 ‘뼈’를 추려보면 ‘그게 말이나 되는 소리냐?’ ‘제대로 알고 하는 소리냐?’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받아치자니 뾰족한 수가 없고 가만있자니 바보가 된다. 괜히 얼굴만 벌게진다.

분명 효과적일 것이라 생각한 제안을 했는데 상사가 일언지하에 툭 잘라버릴 때도 마찬가지다. “알았어. 나중에 시간 날 때 얘기하자”고 하지만 느낌은 ‘괜히 시답잖은 딴소리 하지 말고 시키는 일이나 잘하라’는 뜻인 까닭이다. 당황스럽다고 해야 할지, 아니면 황당하다고 해야 할지 모르는 기분이 된다. 친해지자며 악수를 청했는데 주먹으로 한 대 맞은 느낌이랄까. 이럴 땐 정말 어떻게 해야 할지 혼란스럽기 그지없다.

상대가 감정적으로 마구 할퀴었는데도 부처가 아무렇지도 않았던 건 그것을 받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귀를 막지도 않았고 눈을 가리거나 외면하지도 않았다. 그런데도 상대가 던진 걸 마음에 담지 않았다. 자신이 들어야 할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기에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렸을 것이다. 어떻게 이럴 수 있을까?

긍정심리학을 창시한 마틴 셀리그먼이 한 말이 있다. “우리는 어떤 특정한 상황이나 사건보다 그 상황이나 사건을 어떻게 해석하고 평가하는가에 더 영향을 받는다.” 꿈보다 해몽, 그러니까 우리가 그것을 어떻게 여기느냐가 중요하다는 뜻이다. 그러니까 부처는 이걸 무려 2600년 전에 알았다는 건데, 이처럼 사건과 상황에 매이지 않고 해석과 평가를 잘하는 방법은 뭘까?

부처의 일화와 마틴 셀리그먼의 연구에는 중요한 개념 하나가 들어있다. 분리다. 부처는 상대가 쏟아붓는 걸 그대로 받지 않았다. 자신이 받아야 할 게 아니라고 여겨 자신과 분리했다. 누군가의 말이 타당하지 않다 싶으면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듯 그렇게 한 것이다. 덕분에 그는 외면하거나 쳐내지 않고 그의 존재는 받아주되 그의 말과 행동은 받지 않았다. 성인다운 대처였다.

이게 쉬운 일이 아닌 데는 이유가 있다. 우리는 누군가가 나에 대해 부정적으로 행동하면 무의식적으로 나를 공격한 것으로 여긴다. 그래서 대체로 맞받아친다. ‘네가 주먹을 날렸으니 나도 날린다’는 식이다. 하지만 어디서나 그렇듯 본능을 넘어서지 못하면 후회할 일이 많고 이겨내면 기회가 많아진다. 이런 상황에서 필요한 게 바로 분리다. 상대의 말과 행동에 들어 있는 것을 분리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내가 하는 말에 누군가가 반대할 때 그가 하는 말이나 행동이 ‘나’라는 존재에 대한 것인가, 아니면 내 의견에 대한 것인가를 분리하는 것도 그중 하나다.

분리하면 대응이 한결 쉬워진다. 의견에 대한 반대인데 나라는 존재(정체성)를 공격하는 것으로 오해하면 감정이 상하고 갈등과 마찰이 빚어진다. 긁어 부스럼을 만드는 일이 일어나기 쉽다. 욱하는 마음의 강약에 따라 맞부딪치거나 회피를 하게 되는데 부딪치지 말아야 할 때 부딪치면 바위에 던져진 계란 신세가 될 수 있고, 회피만 하면 혼자 스트레스깨나 받는다. 하지 않아도 될 에너지 소모를 하게 된다. 물론 갑자기 당하는 상황에서 나에게 날아온 ‘주먹’을 분석하고 분리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일단 분리가 중요하다는 걸 알고 연습하면 갈수록 후회하지 않을 대응을 할 수 있다. 장착하기가 힘들어서 그렇지 하기만 하면 엄청난 무기가 된다.
 숱한 실패 끝에 투자받는 비결
언젠가 상당한 액수의 투자를 받은 스타트업 CEO와 대화를 나누다 어떻게 투자를 받았느냐고 물은 적이 있다. 그랬더니 “거짓말 조금 보태면 한 1백 번쯤 퇴짜를 맞았을 것”이라고 했다. 제안하는 것마다 퇴짜를 맞은 것이다. 그런데 어떻게 해피엔딩을 이끌어낼 수 있었을까?

그는 그걸 자신에 대한 퇴짜라고 여기지 않았다. 자신이 짜 간 사업계획안에 대한 퇴짜라고 생각했다. 그랬기에 기분 나빠하지 않고 자신의 준비가 부족하다고 여겼다. 그래서 또 찾아가고 또 찾아갈 수 있었다. 투자자들이 나중에 그에게 투자를 해준 것도 그래서였다. 투자자들은 ‘사업하는 자세’를 높이 샀던 것이다.

사실 내가 낸 아이디어를 신랄하게 공격한 사람이 꼭 나에게 반감을 품고 있거나 깔아뭉개려고 그런 것이 아닐 수도 있다. 그의 말투가 원래 그럴 수도 있고 그날따라 그의 기분이나 내 기분이 예민했을 수도 있다. 퉁명스럽게 단칼에 거절한 상사 또한 개인적으로 무슨 일이 있어서 얘기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었을 수 있다. 나에게 오는 상대의 말과 행동을 한 번만 분리해 봐도 속 끓일 가능성을 확 줄일 수 있다. 나에게 하는 반격의 일부를 수용해 ‘하나의 팀’을 만들어버리라고 했던 이전 칼럼의 설명도 같은 맥락이다. 상대가 하는 말을 나를 향해 던지는 돌멩이라고만 여기면, 다시 말해 공격 행위라고만 여기면 할 수 없다. 분리할 수 있어야 가능하다.

이런 분리의 기술은 상대의 말이나 행동이 나에게 행해질 때만 필요한 게 아니다. 내가 누군가에게 행동하거나 영향을 끼칠 때도 필요하다.

한 기업의 임원에게 자신이 자랑스러웠을 때를 얘기해보라고 했더니 과장 시절 때의 경험을 말해주었다. 분명 효과가 있을 것 같아서 팀장에게 ‘이렇게 해보자’고 제안을 했는데 앞에서 말한 것처럼 단칼에 묵살하더라는 것이다. 설득하려고 했지만 되려 짜증만 냈다.

“안 되겠다 싶어 ‘알겠습니다’ 하고 물러가려고 한 걸음 옮기는데 문득 뭔가가 머리를 스치는 거예요. 그래서 몸을 반쯤 돌린 채 한숨을 쉬며 ‘사실 제가 진짜 해보고 싶은 건 이거 하나였는데…’ 하면서 말끝을 흐렸습니다. ‘이거’란 아주 작은 것이었죠. 그랬더니 팀장이 저를 한 4~5초 정도 물끄러미 응시하더니 그러는 거예요. ‘그래? 그러면 해 봐!’”

결과적으로 일은 성공적으로 끝났다고 했다. 그 작은 일에서 의외로 괜찮은 효과가 생겼던 것이다. 마음이 풀어진 팀장이 오케이한 건 물론이었고 말이다.

“그때 정말 중요한 걸 깨달았습니다. 아, 큰일일수록 한 번에 되는 게 없구나, 단번에 하려고 해서는 안 되는구나 하는 걸 말이죠. 그래서 다음부터는 핵심적이지만 얼핏 보기엔 작고 사소하게 보이는 것을 시작점으로 삼았습니다. 근데 그렇게 하려고 하니 남모르게 사전에 준비를 많이 해야겠더군요. 많이 알고 준비해야 핵심적이지만 작고 사소하게 보이는 게 뭔지 알 수 있으니 말입니다. 그랬더니 정말 일이 잘 되는 거예요. 그때 이걸 알지 못했다면 지금의 저는 없었을 겁니다.”
 작게 낳아서 크게 키워라
아마 모르긴 몰라도 그때 그의 팀장에게는 무슨 일이 있었을 것이다. 자신은 생각지도 못한 걸 제안하는 부하에게 질투가 났을 수도 있고, 어쩌면 그 부하가 사실은 도발적으로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는 바람에 기분이 나빴을 수도 있다. 어쨌든 돌아서던 부하가 사소하게 내민 작은 제안이 자신에게 해가 되지 않은 데다 단칼에 묵살한 게 미안하기도 해서 허락했을 것이다.

감정이 상해 만약 정면으로 대들었거나 그냥 물러났다면 어땠을까? 좋은 일은 물 건너갔을 것이다. 그는 자신도 모르게 자신의 제안 중 작지만 중요한 걸 분리해 내밀었기에 둘 모두 실패하는 길로 들어서지 않을 수 있었다. 우리 속담에 ‘아이는 작게 낳아서 크게 키우라’는 말이 있다. 일도 마찬가지다. 작게 시작해서 크게 키우는 게 훨씬 효과적이다.

※ 필자는 인간자연생명력연구소 소장이다. 조직과 리더십을 연구하고 있다. 저서로 [그렇게 일하면 아무도 모릅니다] [사장으로 산다는 것] [사장의 길] [사자도 굶어 죽는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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