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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조5000억원으로 살린 STX조선, 컨소시엄이 2500억에 인수?

[혈세 '1조' 수혈 기업] ⑥ STX조선해양
“채권단의 잘못된 판단으로 4조4000억원 자금만 소모”
산업은행에서 줄줄 샌 혈세, 지원금도 회수금도 ‘깜깜이’
오는 6월 KHI‧유암코 컨소시엄이 최대주주 등극 예약
KHI, 500억원으로 STX조선 경영권 확보…헐값 매각 논란

 
 
STX 진해조선소의 대형 크레인이 가동되고 있다. [연합뉴스]
정부는 부실기업의 재기‧회생을 위해 다양한 방식으로 자금을 지원한다. '공적자금'을 비롯해 산업은행·수출입은행의 대출 등 이른바 '정책금융'이다. 정책금융의 주체는 은행이고, 이 은행의 최대 주주는 대한민국 정부다. 사실상 국민의 혈세로 지원하는 것이다. 1조원 이상 지원을 받았던 국내 기업의 현 상황은 어떤지 [이코노미스트]가 대표 기업 9곳을 분석했다. [편집자]
 

STX조선해양이 채권단 품에서 벗어나 새 주인을 맞게 될 전망이다. 2013년 경영 악화로 채권단의 공동관리를 받은 이후 8년 만이다. 후보자는 KHI인베스트먼트‧유암코 컨소시엄(K‧U 컨소시엄)이다. STX조선의 기존 주식을 42대 1 수준으로 감자한 뒤 새로 신주를 발행하면 K‧U 컨소시엄이 이를 인수하는 방식으로 최대주주 자리에 오르게 될 예정이다. STX조선 관계자는 [이코노미스트]와 통화에서 “늦어도 올해 6월까지 관련 작업이 마무리될 것”이라며 “(K‧U 컨소시엄이) STX조선 지분의 40%가량을 보유해 경영권을 행사할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K‧U 컨소시엄이 STX조선에 투자한다고 밝힌 금액은 2500억원이다. 이 가운데 KHI의 투자금액이 500억원, 유암코는 2000억원 수준이다. 재계 일각에서는 KHI가 500억원으로 사실상 STX조선 경영권을 확보한 것으로 볼 수 있다는 해석도 나온다. 유암코가 국내 최대 규모의 부실채권(NPL) 투자회사이지만, 기업 운영에는 크게 관여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유암코는 2009년 신한·국민·하나·기업·우리·농협은행이 출자해 만든 회사다.  
 
STX조선이 ‘헐값’에 넘어가는 상황에 부닥치면서 산업은행과 정부의 혈세 낭비에 대한 지적도 이어지고 있다. STX조선을 살리기 위해 투입된 자금은 약 4조5000억원으로 추산된다. 하지만 이 가운데 회수금이 어느 정도인지는 파악조차 어려운 상황이다. 조선업계 한 관계자는 “최근 국내 조선 업황이 살아나고 있어 STX조선의 실적이 개선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을 고려하면 헐값 매각이 아니라 밑지고 판다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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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4위 조선사의 몰락, 4조5000억원 지원금 허공으로  

 
STX조선은 한때 국내 4대 조선사로 꼽혔을 만큼 ‘잘 나갔던’ 조선사 중 한 곳이다. 2008년엔 수주잔량 기준 세계 4위까지 올랐다. 2010년 매출액은(연결기준) 8조9112억원, 영업이익은 1290억원에 달했다. 하지만 STX그룹의 몰락과 글로벌 금융위기로 전 세계 조선 시장이 불황을 겪으면서 직격탄을 맞았다. 정상적인 경영이 불가능해지자 2013년에는 경영권이 채권단으로 넘어갔다. 2016년에는 법정관리를 받기에 이르렀다. 이듬해 회생절차를 마치고 법정관리에서 벗어났지만, 회사 규모는 급격히 쪼그라들었다. 2020년 기준 매출액은 2868억원, 영업손실 668억원을 기록했다.  
 
2015년 STX조선의 사업보고서를 보면 채권단이 이 회사를 살리기 위해 얼마나 많은 자금을 쏟아 부었는지 알 수 있다. 자금 차입거래 내역에 따르면 2015년 말 기준 산업은행 차입금은 2조3357억원이었다. 농협은행은 8203억원, 수출입은행 7065억원, 우리은행 3760억원으로 집계됐다. 하나은행과 신한은행이 넣은 돈은 각각 1088억원, 980억원으로 모두 합치면 4조4456억원에 달했다.  
 
산업은행은 2015년 말까지 STX조선을 청산하기보다 살리는 게 이익이라며 4500억원의 추가 자금 투입을 결정했다. 그러면서 채권단에 4000억원의 추가지원을 요청했다. 사업구조를 대폭 줄이고 인력과 설비를 감축하는 등 STX조선을 중소형 조선사로 재편하겠다는 밑그림도 내놨다. 하지만 채권단 일부는 산은의 요청을 거절했다. 하나은행과 신한은행이 채권단에서 빠져나가면서 STX조선 채권단에는 정부의 입김이 크게 작용하는 은행만 남게 됐다. 2020년말 기준 STX조선의 최대주주는 산업은행으로 지분의 39.8%를 보유하고 있다. 수출입은행 18.27%, 농협은행 15.32%, 우리은행이 7.42%의 지분을 가지고 있다. 
※지분율= 2020년말 기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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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각에서는 은행들이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남아있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해석한다. 금융업계 관계자는 “이들 은행의 지분 구조상 정부의 압력을 벗어나기 어려운 데다, 그동안 쏟아 부은 자금이 너무 많아 매몰 비용으로 치부하고 고개를 돌리기도 쉽지 않았을 것”이라고 했다.  
 
사실상 부도가 예상되는 상황에 처하자 금속노조 경남지부와 경남 창원시 진해지역 도의원들은 “STX조선해양에 투입된 공적자금 4조5000억원의 사용내역을 공개하라”고 촉구했다. 이들은 “운영자금으로 사용된 것으로 추정되는 것은 8000억원이고 그 외에는 행방이 밝혀지지 않고 있다”고 주장했다.  
 
2016년 6월, 법원은 STX조선의 회생절차 개시(법정관리) 결정을 내리면서 “채권단의 잘못된 판단으로 4조4000억원의 자금만 소모됐다”고 밝혔다. 이를 두고 재계 일각에서는 정치적 이해 때문에 막대한 자금을 공중에 날린 것 아니냐는 평가도 나왔다.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 등이 사실상 정부 소유 은행이고 이들이 손해를 볼 경우 정부가 메워주는 것을 고려하면 혈세로 돈 잔치를 벌였다는 것이다. 이듬해 7월 STX조선은 약 1년2개월 만에 법정관리에서 벗어났지만, 수주 물량 부족에 시달리며 어려움을 감내해야 했다.  
지난해 7월 노조의 파업으로 멈춰 섰다 다시 조업을 재개한 경남 창원시 STX조선 진해조선소 선각공장 전경. [연합뉴스]

조선업황 기지개…KHI 대박, 산업은행 쪽박 우려도

  

STX조선은 재도약할 수 있을까. 최근 국내 조선사들의 선박 수주 건수가 늘면서 ‘조선업의 봄’에 대한 기대감도 커지고 있다. STX조선의 재도약도 불가능한 것은 아니라는 평가다. 올해(1~4월) 한국 조선 빅3 업체(한국조선해양·대우조선해양·삼성중공업)의 선박 수주량도 급증한 것으로 알려졌다. 조선업계에 따르면 1월부터 4월까지 3사의 수주금액은 145억1000만 달러(약 16조원)로 지난해 같은 기간(21억7000만 달러)보다 7배 가량 많다. 다만 명확한 수주 계약이라기보다는 선박 건조에 필요한 도크를 선점하는 계약이어서 낙관하기는 이르다는 견해도 있다.  
 
하지만 STX조선 관계자는 “현재 여러 건의 수주 계약이 진행되는 만큼 향후 실적 개선을 기대해 볼 수 있다”고 밝혔다. 회사 차원에서 계약 내용을 일일이 밝히기 어려운 측면이 있지만, 선박 한 척에 500억~2000억원까지 거래가 이뤄지는 만큼 수익이 늘 것이라는 기대감을 밝힌 것이다.  
 
문제는 STX조선의 매각과 투자금 회수다. K‧U 컨소시엄이 STX조선 최대주주에 오를 예정인 가운데, 세금으로 KHI 좋은 일만 시킨 것 아니냐는 지적이다. 채권단의 지분이 60% 수준으로 쪼그라들어 회사가 살아나도 회수할 수 있는 자금은 줄어든다는 것이다. 최대 피해자는 가장 많은 자금을 투입한 산업은행이 될 전망이다. STX조선에 투입한 자금과 회수한 금액의 정확한 규모가 어느 정도인지 묻는 질문에 산업은행 관계자는 “투자금과 회수금의 정확한 규모를 밝히기 어렵다”고 했다.  
 
2500억원이 적은 금액은 아니지만, STX조선을 살릴 만큼 충분한 자금도 아니라는 평가도 있다. 추가 자금을 확보하려면 더 많은 주식을 발행하고, 이 중 40%는 K‧U 컨소시엄에, 나머지는 다른 투자자나 채권단에 넘기면서 돈을 받아야 하는데 이마저도 여의치 않은 상황이다. STX조선 관계자는 “다양한 방법이 논의되는 것으로 알고 있지만, 이미 채권단이 대규모 자금을 투입한 전례가 있어 추가 자금을 투입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밝혔다.  
 
이병희 기자 yi.byeongh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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