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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세희 테크 & 라이프] ‘NFT’ 뭐길래? 사진 한장 5억원에 팔려

디지털 창작물에 붙은 엄청난 가격표는 거품
창작자에게 보상 안겨준다는 점에서 긍정적

 
 
‘재앙의 소녀(disaster girl)’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유명 인터넷 밈(meme)의 원본 사진이 최근 인터넷 경매에서 우리 돈 약 5억원에 낙찰되어 화제다. 이런 거래를 가능하게 한 암호 화폐 기반 인증 기술, 대체불가 토큰(NFT)에 대한 관심도 커지고 있다.
 
우리나라에는 거의 알려지지 않았지만, 이 사진은 2010년대 서구 인터넷 문화의 아이콘 중 하나다. 2005년 동네 불구경을 나간 4살 소녀를 아버지가 찍었고, 2008년 사진 대회에 출품한 것이 우연히 ‘발견’되어 온라인 바이럴을 탔다.
 
인터넷에 떠돌고 있는 '재앙의 소녀' 밈들. [사진 유튜브 캡쳐]

현대 인터넷 문화 '밈'에 가장 잘 부합해  

불이 나 활활 타오르는 집을 바라보며 귀여운 얼굴과 대조되는 묘한 미소를 짓는 소녀의 표정이 네티즌 마음속 무언가를 자극했다. 사람들은 사건 사고 현장의 이미지를 소녀의 얼굴 뒤에 합성하고, 재미있는 문구를 넣어 인터넷 유머로 즐겼다. 불타는 집을 바라보는 ‘재앙의 소녀’ 사진 위아래 부분에 ‘집에 거미가 한 마리 있었다’ ‘지금은 없다’ 같은 문구를 써 놓는 식이다. 
 
이 사진은 수많은 이미지와 문구와 함께 합성되어 끊임없이 변형, 재생산되면서 수많은 인터넷 밈을 만들어 냈다. 밈은 생물학자 리처드 도킨스가 문화나 사상, 종교가 마치 유전자처럼 사람들 사이에서 복제되어 퍼져 나가는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 제시한 개념이다. 
 
도킨스의 밈 이론은 많은 비판을 받았다. 하지만 수많은 인터넷 사용자들이 함께 이해하고 즐기며, 핵심 사항을 바탕으로 조금씩 바꿔가며 새로운 파생물을 낳는 현대 인터넷 문화는 밈에 가장 잘 부합하는 현상이라 할 수 있다. 
 
서구권 인터넷 밈은 주로 공통의 이미지나 영상을 배경으로 상하단에 웃긴 글귀를 넣는 형태다. 우리나라 네티즌들이 디시인사이드에서 유명해진 강아지 ‘개죽이’나 드라마 ‘야인시대’의 ‘내가 고자라니’ 장면 등 ‘필수 요소’를 활용해 각종 웃긴 ‘짤’(인터넷에서 쓰이는 이미지)이나 영상을 만드는 것과 비슷하다. 디시인사이드나 레딧 같은 인터넷 커뮤니티가 유행의 산실이라는 점도 비슷하다.
 
지금 당장 구글에서 ‘disaster girl’을 검색해 다운로드할 수 있는 이미지가 비싼 값에 팔린 이유는 무엇일까? NFT라는 신기술에 대한 과잉 기대도 한 이유다. 그러나 인터넷 밈에 대해 사람들이 느끼는 가치도 역할을 했다.
 
유명 인터넷 밈은 2000년 이후 사람들 일상의 중요한 부분이 된 인터넷 공간의 추억, 거기서의 기억과 경험 등을 반영한다. 이 당시 본격적으로 확산되기 시작한 인터넷과 소셜미디어, 유튜브에서 즐긴 조악하면서도 재미있는, 그리고 새로운 경험들은 우리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우리는 애착을 가진 것을 지키거나 비용을 들여 갖고 싶어한다. 어린 시절의 추억이 담긴 만화영화 캐릭터 상품을 어른이 되어서도 돈 들여 산다. 프로야구나 프로농구 선수의 카드를 비싼 값에 교환하거나 수집하기도 한다. 인터넷 밈도 마찬가지일 수 있다. 
 
그렇다면 다른 유명한 밈의 주인공도 자신이 등장한 이미지에 NFT 인증을 해 팔면 되지 않을까? 맞다. 원본 밈 이미지를 NFT로 발행해 판 것은 ‘재앙의 소녀’가 처음이 아니다. 마지막도 아닐 것이다.
 
저스틴 비버의 노래를 개사해 부르는 유튜브 영상으로 밈이 된 ‘집착녀 (Overly Attached Girlfriend)’ 레이나 모리스가 경매에 붙인 NFT는 200이더(암호화폐 이더리움의 화폐단위), 우리 돈 약 5억원에 낙찰되었다. 일이 꼬이는 상황을 나타내는데 주로 쓰였던 ‘운 나쁜 브라이언 (Bad Luck Brian)’ 밈의 주인공 카일 크레이븐은 NFT 경매로 약 5500만원을 벌었다. ‘클라리넷 보이’ ‘치과에 다녀온 데이빗’ 등 시대를 풍미한 밈의 주인공들도 NFT를 만들어 경매에 붙였다. (이 밈들은 주로 영미권에서 많이 쓰여 우리에게는 친근하지 않다.)
 
NFT는 뜻하지 않게 인터넷 세계의 공공재가 된 이들 밈의 주인공들에게 보상을 돌려줄 수 있는 기술이다. 이들의 이미지는 본인의 뜻과 무관하게 인터넷에서 무한 복제되었다. 하지만 블록체인을 기반으로 소유권 정보를 남겨 인증하는 NFT를 발행하면 인터넷의 흔한 사진과는 구분되는 희소성을 얻게 된다.
 
로스가 가진 ‘재앙의 소녀’ 원본 사진과 내가 구글에서 내려받은 사진은 차이가 없다. 그러나 로스가 원본 사진과 연결된 소유권 정보를 담은 토큰, 즉 NFT를 발행하면 이는 밈의 주인공이 직접 부여한 어떤 가치를 담고 있다는 증거가 된다. 이는 구매자의 마음을 움직인다. 대부분 NFT의 기반 기술인 이더리움의 ‘스마트 컨트랙트’ 기능을 활용하면 NFT 소유주가 바뀔 때마다 본래 밈의 주인에게 일정한 돈이 지급되게 할 수도 있다.
 

비플의 NFT 작품 역대 미술 경매 사상 세번째 가격 기록 

단지 NFT라는 이유로 디지털 창작물에 엄청난 가격표가 붙는 현상은 분명 거품이라 할 수 있다. 전문 아티스트들이 창작한 디지털 아트의 NFT도 가격에 거품이 끼어 있다는 비판이 나오는 판이다. 비플이란 이름의 예술가가 만든 ‘나날들: 첫 5000일’이란 작품의 NFT가 얼마 전 크리스티 경매에서 6930만달러(785억원)에 낙찰되었다. 이는 역대 미술 경매 사상 세번째로 높은 가격이다.
 
그러니 인터넷 게시판마다 흔하게 널려 있는, 그리고 대부분 진지한 창작 작업의 결과물도 아닌 인터넷 밈이 수천만원, 수억원에 거래된다는 사실에 혼란을 느끼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어떤 예술품에는 본래 내재된 높은 가치가 있고, PC 그림판으로 끄적인 낙서에는 아무런 가치도 없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디지털 기기와 소프트웨어의 발달과 보급, 그리고 인터넷과 소셜미디어의 확산은 사람들의 창작 활동을 지원하는 효과가 있다. 여기에 NFT는 수익원을 열어주며 창작자를 돕기 위한 또 하나의 퍼즐 조각을 맞추었다.
 
실제로 이러한 기술들은 엄청난 수의 콘텐트의 탄생과 확산을 부추기고 있다. 콘텐트 수준은 가장 높은 것에서 가장 저열한 것까지 천차만별이다. 물론 절대다수는 질 낮은 것들이다.
 
하지만 이렇게 쏟아져 나온 수많은 콘텐트는–비록 최고의 작품은 아니더라도-세상 누군가의 마음에 와 닿을 수 있다. 인터넷은 세계 곳곳에 흩어져 있는 이러한 ‘누군가’들을 찾아갈 길을 열어주었다. 이는 창작자에게는 가장 중요한 기회일 수 있다.
 
NFT 인증을 단 인터넷 밈이 경매를 통해 팔리고 창작자에게 보상을 주는 이 현상에 혹시 어떤 의미가 있을까? 어쩌면 수준이 높건 낮건, 세상 모든 것이, 어떤 이유에서건 자신을 필요로 하는 사람에게 다가갈 수 있는 세상의 전조를 보여주는 것일 수도 있다. 모든 사람이 자신이 가진 창의와 능력을 바탕으로 살 수 있는 완전한 예술가의 세상이자, 완전한 시장이다.  
 
※ 필자는 전자신문 기자와 동아사이언스 데일리뉴스팀장을 지냈다. 기술과 사람이 서로 영향을 미치며 변해가는 모습을 항상 흥미진진하게 지켜보고 있다. [어린이를 위한 디지털과학 용어 사전]을 지었고, [네트워크전쟁]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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