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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가 키운 수퍼앱, 빅테크 기업이 피하는 이유 [김국현 IT 사회학]

만능 플랫폼’ 역할하는 수퍼앱, 반독점 규제 대상 될 수도

네이버와 카카오 앱을 이용해 코로나19 잔여 백신 조회와 예약을 할 수 있다. [연합뉴스]
네이버앱과 카카오톡의 잔여백신 화면. 손놀림이 빨라진다. 편리한 세상이다. 지도 위 동네 병원 자리에는 남아 있는 백신의 개수가 뜰 예정이다. 바로 예약도 가능하다. 지금 여분이 없다면 알림도 오게 돼 있다. 원고 집필 시점 현재 대개 전부 0이라서 무용지물이지만, 그래도 민관이 한 몸이 되어 IT의 힘으로 코로나를 극복하려는 모습은 해외 언론에도 소개됐다.  
 
백신 개봉 후 6시간 이내에 소진하지 못해 폐기 처리한다면 너무 아까운 일, 기술의 힘으로 절실한 수요자를 찾아주는 ‘매치’ 능력은 디지털의 장점이다.  
 
그런데 이 일이 실은 쉽지가 않다. 우선 사람은 서버가 아니다. 호출하고 응답을 기다리면 되는 API(소프트웨어의 기능을 사용하기 위한 창구)도 아니다. 바쁜 와중에 잔여 백신 시스템에 입력하면 오히려 현장에는 전화가 빗발친다. 일은 두 배가 된다.  
 
아날로그 시대의 구태를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로 전환하는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 하지만 그것이 정말 구태였는지를 판별하는 지혜는 저절로 따라오지 않는다. 굳이 디지털이 아니라도 괜찮았던 일을 애써 디지털로 바꿔서 혼란만 초래하는 경우도 있다. 그리고 디지털화에는 비용이 든다.  
 
현장이 익숙해질 때까지 혼돈이 초래하는 단기적 사회적 비용 이외에 더 큰 비용이 있다. 그건 바로 사용자와 국민이 장기적으로 특정 기업에 길들어서 발생하는 비용이다.
 

후방이 아닌 전방에 민간이 동원되는 일

QR 전자출입명부가 처음 시행될 무렵, 동네 도서관 입구에서는 어르신들에게 네이버 앱을 깔아드리고 있었다. 통신사 대리점에서 폰을 팔자마자 바로 카카오톡을 깔아드리던 풍경만큼이나 한국적인 모습이다.
 
대국민 창구를 운영하는 일은 귀찮기만 한데 책임까지 따르는 일이다. 대신 꽤 많은 국민이 이미 쓰고 있는 앱들을 ‘동원’하면 손대지 않고 코 풀 수 있다. 예산도 아낄 수 있으면서도 훌륭한 퀄리티의 창구가 생길 수 있다. 그도 그럴 것이 굴지의 테크 기업과 나라장터에서 조달되는 외주 업체의 기술 격차는 그 기술자의 연봉 차이만큼이나 벌어지고 있다. 실행력의 속도도 사용자 체험의 완성도도 정부가 쉽게 조달할 수 없다면, 민간을 동원하는 편이 합리적이라고 생각한 듯하다. 또 정부가 수준 떨어지는 앱을 양산하다가 실적에 눈이 먼 세금 낭비라고 질타를 받은 일 또한 그간 허다했으니 학습효과도 진하게 남아 있다.  
 
게다가 지금은 전시(戰時)라고 설득돼 있다. 전시체제에 기업이 동원되고 이에 이바지한 기업이 크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코로나와의 전쟁도 기회일지도 모른다. 지난 세계대전에 전투기나 트럭 등 군수 물자를 만들던 회사들이 지금은 BMW니 닛산이니 굴지의 자동차 회사가 돼 있는 식이다.
 
그러나 후방 업무에 민간이 투입되는 것과 전방 최전선의 공공 업무가 민간에 의해 대체되는 일은 다른 일이다. 예컨대 애플과 구글의 접촉 감지(노출 알림, Exposure Notification) 기술은 원천 기술만 운영 체제로 배포한다. 그 구현 책임은 정부와 지자체에 일임된다. 우리의 QR 명부도 방역은 정부의 일이니만큼 정부가 직접 QR 코드를 생성하고 이를 국민에게 직접 나눠줄 방법을 궁리할 수도 있었지만, 한국 정부는 그 역할을 대기업에 나눠줬다.  
 
창구의 민원인은 귀찮아 보일지 모르지만, 이들은 곧 소비자다. 기업의 눈에는 접점은 무조건 늘리고, 함께 하는 시간은 어떻게든 늘리고 싶은 고객들이다. 분위기가 형성되면 결국 사람들은 초반의 혼돈을 이해하며 길들어간다. 익숙했던 아날로그는 언제 그랬냐는 듯 당연하게 낯선 디지털로 대체된다. 창구는 하나면 충분해진다.  
 
네이버 앱은 점점 더 거대해지고 있다. 그리고 투하된 자본만큼이나 점점 더 편리해지고 있다. 카카오톡 의존은 전국민적이다. 단톡방 없이는 사회생활이 안 된다. 작년에는 병사들이 단톡방에 암구호를 공유했다가 징계받는 일도 벌어졌다. 평일 오후 6시 이후, 주말에는 종일 내무반에서 카카오톡을 쓸 수 있게 된 이후의 일이다. 오픈 채팅방에서 점호와 작전 등이 펼쳐지는 모습이 구설에 오르기도 했다. 네이버와 카카오는 정부의 비호 안에 수퍼앱이 돼가고 있었다.
 

플랫폼이자 요새를 꿈꾸는 스마트폰 앱들  

수퍼앱이란 2010년에 블랙베리 창업자에 의해 만들어진 조어다. 하나의 앱에 수많은 기능이 들어 있는 걸 뜻하는데, 그 안에서 일상의 모든 것이 완결될 수 있으므로 사용자들은 통합된 체험에 빠져든다.  
 
그런데 정작 수퍼앱을 성공적으로 구현해 낸 이들은 중국에 있었다. 바로 위챗과 알리바바였다.
중국 IT기업 텐센트가 운영하는 모바일 메신저 위챗은 앱 하나로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는 수퍼앱으로 평가받고 있다. [중앙포토]
마치 우리가 웹에서는 포털에 들어가면 그만이었던 것처럼, 중국인들은 이런저런 앱을 깔 필요 없이 두 가지 앱만 있어도 생활에 불편을 못 느끼게 됐다. 하지만 이러한 수퍼앱은 중국 이외의 나라에서, 특히 스마트폰 첫 화면 가득 넘쳐나게 앱을 설치하던 이들의 시각에서는 신기한 일이었다.
 
지금까지 앱은 그 자체가 하나의 기능이자 제품이었다. 그것이 세계의 상식이었다. 사용자가 원하는 기능에 집중해 빠르게 출시해 선택받고 성장해 나가는 스타트업의 무기였다. 그리고 그 결과 만들어지는 다양성이 혁신의 토양을 비옥하게 한다.
 
그러나 어느 순간 앱이 플랫폼이자 요새가 된다. 발판을 먼저 마련한 자는 그 위에 수많은 기능의 탑을 쌓는다. 어느새 우리는 새 앱을 잘 깔지 않는다. 포털 안에서 인터넷 생활이 끝나듯이 앱이 점점 커지며 성곽이 될 때 벌어지는 일이다.
 
수퍼앱의 길이 있음을 알아도 글로벌 빅테크 기업은 그 길을 잘 가지 않는다. 점점 크게 앱을 합쳐 당국의 시선을 끌 필요가 없는 일이라서다.
 
페이스북도 내심 인스타그램과 페이스북 메신저와 페이스북의 시너지를 내고 싶지만 애써 참고 있다. 수퍼앱이란 사용자 데이터를 마음껏 통합할 수 있는 중국이기에 가능했던 현상인 셈이다. 한두 기업에 사용자 데이터가 오롯이 모여 있는 것은 당의 입장에서도 윈윈이다. 지금도 수퍼앱을 꿈꾸고 또 허락되는 곳은 중국의 성장 모델을 부러워하는 동남아 사회 정도다. 
 
※ 필자는 소프트웨어 엔지니어 겸 IT 평론가다. IBM, 마이크로소프트를 거쳐 IT 자문 기업 에디토이를 설립해 대표로 있다. 정치·경제·사회가 당면한 변화를 주로 해설한다. 저서로 [IT레볼루션], [오프라인의 귀환], [우리에게 IT란 무엇인가]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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