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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기업 경영 열쇠는 ‘내부 브랜딩’에 있다 [허태윤 브랜드 스토리]

LH 사태, 내부 브랜딩 부재…틀만 있는 ‘액자 속 브랜딩’의 한계

 
 
노형욱 국토교통부 장관(오른쪽)이 정부서울청사에서 '한국토지주택공사(LH) 혁신방안' 관계부처 합동 브리핑을 하며 LH 투기 사태에 대해 고개 숙여 사과하고 있다. [중앙포토]
지난 3월에 일어났던 한국 토지주택공사(LH) 직원들의 땅 투기 의혹은 현 정권 도덕성의 근간을 흔드는 엄청난 사건이었다. 대통령이 나서서 사과했고, 사건이 일어났던 시기에 사장으로 지냈던 신임 국토부 장관이 임명된 지 3개월 만에 경질되는 등 초유의 일이 일어났다.  
 
부동산 문제는 수도권에 집을 구하는 것은 먼 달나라 이야기가 된 젊은 세대와 그나마 집 한 채라도 챙겨서 덕분에 노후가 보장된 기성세대 간의 세대갈등을 만들고, 자기 집 없이 전세를 전전하며 살다가 ‘벼락거지’가 된 국민과 집 한 채라도 가지고 있다가 ‘벼락부자’가 된 국민 간의 갈등을 구조화시켰다. 결국 이로 인해 유발된 분노가 분출구를 찾다가 LH 사건으로 폭발한 꼴이지만 브랜드 차원에서 보자면 이 사건은 비단 한 공기업의 브랜드 이미지를 넘어 공정을 최우선 가치로 두었던 ‘문재인 정부’라는 브랜드 신뢰를 무너뜨린 사건이었다.
 
또 이 사건은 공기업의 이미지가 정부와 정권의 이미지와 직결돼 있다는 것을 보여준 사건이었다. 이 때문에 공기업 브랜딩은 단순히 공기업의 긍정적 이미지 형성을 넘어 정부와 국민과의 관계를 만드는 중요한 수단이 될 수 있음을 반증한다.  
 

행정은 최대의 서비스 산업

조금 다른 얘기지만, 1989년부터 일본 동북부의 인구 8만7000명의 소도시 이즈모(出雲) 시 시장을 지내며, 작은 도시를 일본의 소니·도요타·기린 맥주와 같은 초일류 기업과 같은 반열에 올린 일본의 이와쿠니 데 쓴 도(岩國哲人)의 이야기는 시간이 지났지만 아직 신선하다.
 
주로 세계적인 증권회사의 임원으로 근무했던 이와쿠니가 10분의 1도 안 되는 연봉을 받으며 시장 생활을 한 그의 시정방침이자 브랜드 이념은 ‘행정은 최대의 서비스 산업’이었다. 그는 행정 서비스는 국민이라는 고객을 대상으로 한 서비스 산업이라는 마인드로 전체 시 공무원을 교육하는 이른바 ‘내부 브랜딩’을 우선으로 실시했다.  
 
우선 직원들에게 기업경영식 서비스 마인드로 시간과 비용에 대한 감각을 주입했다. 모든 민원에 대한 답변은 네 가지로 하도록 바꾸었다. ‘1주일 이내 답변’ ‘1개월 이내 답변’ 그리고 의회의 동의가 필요한 일은 ‘3개월 이내 답변’으로 하고, 이전에 ‘검토해 보겠다’ 혹은 ‘전향적으로 생각해 보겠다’는 ‘안된다’로 바꾸도록 했다.  
 
질질 시간을 끌어서 시간을 보내거나 희망 고문을 하지 않도록 하고 안 되는 일은 분명히 안된다고 말하도록 한 것이다. 또 시민들의 시간을 효율적으로 사용하게 하기 위해 직원들을 5명당 한 조로 1년에 한 번 토·일요일에도 근무하도록 해, 시청 문을 1년 365일 열어 놓았다.
 
그뿐만 아니다. 쇼핑센터에 시청을 이동출장소 형태로 만들어 찾아가는 서비스를 했다. 이 서비스는 이후 일본 전국으로 확산했다. 이러한 ‘이와쿠니 혁명’은 단순히 이즈모시의 지방자치에 대한 인식은 물론 일본 국민 공공부문에 대한 인식을 크게 꾼 것으로 유명하다.  
 

국가 신뢰를 높이는 공기업 내부 브랜딩

이호승 전국철거민협의회 중앙회 대표 등이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열린 부동산척폐청산 시국 기자회견에 참석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중앙포토]
다시 우리 공공기관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이와쿠니 데쓴도의 ‘행정은 최대의 서비스 산업’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공공기관은 최대 서비스 기관이다. 더구나 지금까지 독점적 환경에서 비즈니스를 영위해온 공기업이 이제는 민간 부문과 혹은 해외시장에서 ‘경쟁’이라는 새로운 환경을 맞고 있는 요즘의 현실을 보면 더욱 그렇다.  
 
공기업 소비자인 국민도 민간 부문에서 경험한 서비스 눈 높이로 공기업을 바라보고 있기 때문에 공기업이 자신들의 브랜드 개성과 가치를 구현하지 않으면, 공기업의 혁신적인 아이디어는 국민에게 전달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마케팅 투자가 민간대비 부족할 수밖에 없는 공공부문이 외부 브랜딩보다 내부 브랜딩이 절실한 까닭이다.  
 
내부 브랜딩의 핵심은 직원들이며, 이들이 ‘브랜드 대사(BrandAmbassador)’로서 역할을 해야 한다. 브랜드가 전하는 약속이 전달될 때 브랜드에 대한 충성도가 형성된다. 조직의 구성원들 하나하나가 조직과 브랜드에 대한 이념과 비전을 이해하고 그 약속을 실행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LH 직원들은 억울하겠지만, 사태를 가만히 들여다보면 단순히 몇몇 직원들의 일탈로만 볼 수 없다. 참여연대 발표 후 익명 커뮤니티 애플리케이션인 ‘블라인드’에 몇몇 내부 직원은 “LH 직원들은 부동산 투자를 하지 말란 말이냐…. 열심히 공부해서 투자했다, 억울하면 LH에 입사해라”라는 식의 글을 올려 국민적 분노에 기름을 부은 바 있다. 물론 이것도 일부 직원의 일탈이라고 치부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식의 자기변명은 LH라는 공기업이 자신들의 강령처럼 ‘든든한 국민 생활 파트너’로서 국민이라는 고객을 모시는 서비스 기업이라는 ‘업의 본질’ 조차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LH 내부의 문화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자신 명의로 부동산 투자를 한 직원 말고도 ‘차명으로 한 사람은 얼마나 많을까’하는 세간의 의혹은 상식이 될 수밖에 없다.  
 
LH 직원들이 자신이 하는 일을 국민에 대한 서비스라고 생각하며 고객인 국민의 만족을 위해 일을 했고, 그에 대한 모든 평가가 그 기준에 맞춰져 있었다면 ‘과연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었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LH는 내부 브랜딩이 요즘 말로 ‘1도 안 된’ 기업인 것이다.  
 
그런데 이런 내부 종사자를 대상으로 한 내부 브랜딩이 ‘1도 안 된’ 기업이 LH뿐인가. 아마도 자신 있게 그렇지 않다고 말할 수 있는 공기업은 많지 않을 것이다. 공기업 조직에 내부 브랜딩이 되지 않는 데에는 더욱 구조적인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공기업 CEO는 임기가 3년이다. 또 매번 정권이 바뀔 때마다 임기와 상관없이 그만둬야 하다 보니 길게는 3년, 짧게는 1~2년에 한 번씩 새로운 CEO가 임명되고 그들에 의해 매번 새로운 브랜드 전략이 만들어진다. 이러다 보니 새로운 비전과 약속은 내부 구성원조차 이해하지 못하는 ‘액자 속의 브랜딩’이 될 수밖에 없다. 이러한 상황에서 구성원들이 브랜드 대사(Ambassador)가 되어야 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민간기업도 하나의 브랜드가 소비자의 인식 속에 자리 잡으려면 최소한 5년의 일관된 브랜딩이 필요하다는 점을 미루어 보면, 이런 구조 속에서의 내부 브랜딩은 쉽지 않아 보인다.  
 
우리나라의 공공기관은 36개의 대형 공기업을 포함해 340개(2021년 3월 기준)에 이르며 종사자만도 50만명에 육박한다. 정부조직이 국가 경영의 기획을 한다면, 실행은 공기업이나 공공기관이 담당하기 때문에 최일선 고객의 접점에서 직접 예산을 집행하고, 서비스를 제공하는 주체는 사실상 이런 공공기관이라고 할 수 있다.  
 
정부가 고객인 국민에게 브랜드의 비전과 약속을 보여준다면, 그 브랜드 약속을 체험하게 하고 국민을 충성고객으로 만드는 것은 공기업의 몫인 것이다. LH 사태를 통해 보았듯 공기업의 현실은 정권이 아무리 좋은 비전을 만들어도 국민이 체감하기 어려운 구조다. 제도적 대안이라면 현재 기재부가 주관하는 공기업 경영평가에 내부 브랜딩 관련 항목을 강화하는 것이다.  
 
내부 브랜딩 관련 평가는 양적인 평가로 인한 공기업 구성원들의 형식적 고객 만족을 위한 업무수행 방식을 질적이고 실질적인 업무가 되도록 만든다. 또 3년 단위의 CEO 교체에도 공기업 내부 브랜딩 활동의 지속성과 계속성을 평가하면 공기업의 고객인 국민에 대한 고객 만족을 만들어 내고 궁극적으로 공공부문과 정부에 대한 신뢰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 허태윤 필자는 칼럼니스트이자 대학교수다. 제일기획과 공기업, 플랫폼과 스타트업에서 광고와 마케팅을 경험했다. 인도와 미국에서 주재원으로 일하면서 글로벌 마케팅에 관심을 가졌고, AR과 플랫폼 기업에 관여하면서 플랫폼 기업의 브랜딩을 연구하고 있다. 한국외국어대 광고학 박사학위를 받았고, 현재 한신대 평화교양대학 교수다. 

허태윤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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