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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전세버스는] 르포②- “운전대 손 놓고 공사장 알바로 연명"

‘백수’된 관광버스 기사들, 일용직·퀵배달·택시로 전환
45인승 버스에 4명만 태우라는 정부 방역 지침에
전세버스업계 “직접피해업종으로 지정해달라” 요구
정부 “경영위기업종 유지, 추가지원 계획은 없어”

 
 
서울 전세버스의 차고지로 쓰이는 송파구 탄천공영주차장. 코로나19 전에는 발 디딜 틈 없을 정도로 꽉 찼던 주차장이다. 지금은 전세버스 기사들이 살 길을 찾아 뿔뿔히 흩어져 한산한 모습이다. [정지원 인턴기자]
 
전세버스업계가 생존 위기에 처했다. 코로나19로 일감이 끊기면서 기사와 업체 모두 악전고투 중이다. 하지만 정부의 자금지원은 부족하기만 하다. 수십 년간 해결되지 않은 ‘불법 지입’ 문제 때문에, 지원의 사각지대에 놓인 탓이기도 하다. 코로나 대유행이 시작된 지 20개월째, 전세버스업계가 어떻게 버티고 있는지 현장을 찾았다. [편집자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면서 전세버스 지입기사들은 운전대를 놓고 살길을 찾아 업계를 떠나고 있다. 지입기사의 고정지출 비용은 코로나 국면에도 줄어들지 않았다. 전세버스업체와의 계약 때문이다. 다른 업종으로 자의반 타의반 벌이를 찾아 나서는 이유다.  
 
전남 순천에서 지입차를 운전하는 50대 엄상명 기사는 [이코노미스트]와 통화에서 “지금은 주로 공사장 등에서 일용직으로 일하며 하루하루 생계를 이어가고 있다”고 말했다. 그가 마지막으로 차를 몬 건 코로나 바이러스 델타 변이가 퍼지기 전인 지난 7월 초다. 그는 “수도권 등 대도시에는 통근·통학 수요가 남아 있지만, 지방은 회사도 학교도 많지 않아 일반일(통근·통학 운행) 운행이 적다”며 “물론 일반일과 관광일(관광 운행)의 비율은 회사마다 기사마다 다른데, 관광일만 뛰었던 기사들은 현재 다 백수라고 봐도 된다”고 말했다. 또 "퀵서비스를 하거나 택시기사가 된 동료가 적지 않다"고 말했다.  
 

“개인택시 300만원 받는 동안, 전세버스 70만원뿐” 성토

생존 위기에 내몰린 전세버스 기사들이지만 지금까지 받은 재난지원금은 70만원이 전부다. 지난 3월 통과된 정부 추가경정예산(추경)으로 4차 재난지원금이 지급될 당시 전세버스운수종사자 3만5000여명은 소득안정자금 70만원을 받았다. 이에 더해 지방자치단체별로 50만원 안팎의 재난지원금을 한두 차례 지급한 곳도 있다. 하지만 줄어든 소득을 메꾸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고 기사들은 하소연한다. 
 
택시업계가 지난해 2차 재난지원금 때부터 정부 재난지원금을 받아온 것과 비교하면 전세버스 기사에 대한 지원은 많이 지체된 편이다. 총 지원 금액도 차이가 난다. 전세버스 기사가 지금까지 한 차례 지원으로 70만원을 받는 동안, 법인택시는 고용안정지원금·소득안정자금 등 명목으로 최대 220만원, 개인택시는 소상공인 새희망자금·버팀목자금 등으로 최대 300만원을 2~4차 재난지원금 지급 당시 받았다. 
 
한편 올해 2차 추경으로 통과된 5차 재난지원금으로 택시기사와 전세버스기사는 소득안정자금 80만원을 공통적으로 받게 될 전망이다. 업계마다 차별에 불만이 이어지자 법인택시·개인택시·전세버스 간의 지원금 형평성을 위한 조치로 해석된다.  
 
올해 1차 추경에서야 전세버스 지원이 이뤄진 이유는 불법인 지입제도와 무관하지 않다. 지난 3월,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에 참석한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입차주는 여객법상 인정이 안 되는 일종의 편법”이라며 “지입차주에 재난지원금을 주는 게 맞는지에 대한 고민이 많다”고 말한 바 있다. 
 
지난 2월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전세버스연대지부 노동자들이 4차 재난지원금 지급 촉구 메시지를 내걸고 여의대로를 달리는 모습. [사진 연합뉴스]
 
이외에도 고용유지지원금 제도가 있지만, 현장에서는 혜택을 체감하기 어렵다는 반응이다. 고용노동부는 지난해 3월 전세버스를 포함한 관광운송업을 특별고용지원 업종으로 지정하고 고용유지지원금 제도를 확대한 바 있다. 고용유지지원금은 경영이 일시적으로 어려워져 고용 위기를 겪고 있는 사업주가 휴업·휴직을 실시하고 휴업수당을 지급한 경우 근로자에게 지급한 인건비의 최대 90%까지 지원해주는 제도다.  
 
지난 4일 만난 전세버스 기사 A씨는 “고용유지지원금은 10일이든 10개월이든 휴직을 해야 신청할 수 있다”며 “통근 수요라도 붙잡으려고 나가는 상황에선 신청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 “상대적으로 규모가 큰 몇몇 업체만 (고용유지지원금을) 받았다”며 “정부가 금액 일부를 보조해도 나머지 인건비는 업체가 부담해야 해 결국 빚잔치로 내몰릴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영세업체 사장들이 지원금 신청을 꺼리는 이유다.  
 
고용유지지원금을 악용한 사례도 드러났다. 사업자가 정부로부터 받은 고용유지지원금을 근로자에게 적게 주거나 지원금 일부를 회사에 반납하도록 한 것이다. 실제로 일하고 있지만 휴직으로 속여 지원금을 받는 부정수급 사례도 있었다. 지난해 광주지방고용노동청은 고용유지지원금을 많이 받은 전세버스업체 8곳을 조사해 부정수급 사례 6곳을 적발했다. 이 업체들이 가짜 휴직으로 받은 지원금은 1억6000만원에 달했다.  
 
전세버스업체도 할 말은 있다. 서울에서 전세버스 30대를 등록하고 업체를 운영하는 B씨는 고용유지지원금 부정수급 사례를 묻자 머뭇거리며 “사실 얼마 전 ○○투어 사장이 경찰 조사로 불려간 뒤 회사 문을 닫았다”고 털어놨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투어 사장이 매달 1000만원 넘는 빚을 지며 적자 운영에 쫓기자 ‘회사가 살아 남아야 기사들도 코로나 사태가 끝날 때까지 버텨 기사회생할 수 있다’며 직원들에게 도움을 요청했다는 것이다. 그 사장이 택한 방법은 ‘페이백’이다. 기사 1명당 고용유지지원금으로 받은 150여만원 중에서 50만원 정도를 거둬갔다는 것이다.  
 

“보험료 20만원 환급 받으려고 차 번호판 뗀다” 

고사 위기에 처한 건 업체나 기사나 마찬가지다. 전세버스업체들은 할부금·유지금·임대료 등 고정비용을 조금이라도 줄이기 위해 고육지책을 꺼내 들고 있다. 
 
차량 번호판을 구청에 반납하고 휴차를 시키는 방법이 대표적이다. 이렇게 하면 버스 1대당 20만원 안팎의 보험료를 환급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전국전세버스운송사업조합연합회(전세버스연합회) 자료에 따르면 2020년 기준 전국 3만8597대의 차 중 2만5256대가 번호판을 뗐다. 10대 중 7대(65.4%)에 가까운 버스가 운행을 멈췄다는 뜻이다. 2019년 휴차 대수가 전국 3만9367대 중 643대(1.6%)에 불과했다는 점과 비교하면 지금 상황이 얼마나 심각한지 짐작할 수 있다.  
 
 
20만원이라도 아껴야 하는 이유는 거액의 고정비용에 있다. 전세버스연합회에 따르면 전세버스 사업자는 유동비(차량비·유류비)를 제외하고도 고정비(임차료·관리비)가 업체당 매달 약 1200만원가량 발생한다. 전세버스연합회가 2020년 기준 전국 전세버스업체 1658개사의 차량 3만8597대를 바탕으로 산출한 비용이다. 전세버스연합회 관계자는 “여기에 업체별로 인건비와 차량할부금이 추가돼 고정비용이 월 2000만원까지 증가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대부분의 업체가 고정비용을 충당하기 위해 장기 대출로 연명하고 있다”고 이야기했다.  
 

“택시처럼 전세버스에도 개별사업권 달라” 요구

이런 상황에서 전세버스업체들이 받은 지원금은 올해 1차 추경으로 통과된 4차 재난지원금 중 버팀목자금플러스 200만원이 전부다. 해당 지원금은 소상공인 가운데 지난해 매출이 전년보다 20% 이상 줄어들었을 때 받는 지원책이다.  
 
업계는 전세버스 사업자에 대해 추가 지원이 시급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전세버스연합회 관계자는 [이코노미스트]와 통화에서 “회사가 있어야 근로자도 있을 수 있다”며 “현재 운전자는 정부 지원을 받고 있지만 운송사업자에 대한 지원은 전무하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전세버스업체는 5인 이상 집합금지로 인해 사적 모임인 경우 5인 이상 태우지 못했다”며 “정부의 방역지침 강화 조치로 직접적인 피해를 입었지만 경영위기업종으로 분류됐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지금이라도 직접피해업종으로 분류해 하루빨리 지원 대책을 마련해달라”고 호소했다.  
 
전세버스연합회 측은 구체적인 지원 방안으로 “차량 1대당 1000만원 지급과 기존 할부금 및 부채비율 등에 관계없이 업체당 3억원 이내의 특례보증 지원” 등을 우선적으로 꼽았다. ‘중·저신용 소상공인 특례보증’은 코로나19로 매출과 신용이 하락한 소상공인들이 낮은 금리에 대출을 받을 수 있도록 중소벤처기업부가 도입한 제도다. 대출금 연체 사실과 횟수에 따라 보증이 제한되는 경우가 있어, 빚으로 업체를 유지하고 있는 전세버스 업체에 특례보증 혜택을 확대해야 한다는 것이 전세버스 업체들의 요구다.  
 
하지만 아직까진 정부의 추가 지원 움직임은 없어 보인다. 국토교통부(국토부) 관계자는 [이코노미스트]와 통화에서 “현재로선 5차 재난지원금 외에 전세버스 업계에 대한 추가적인 지원책이나 협의 계획은 없는 상황”이라며 “기사들에게 5차 재난지원금 중 소득안정자금 80만원을, 업체에는 희망회복자금을 지원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국토부가 발표한 5차 재난지원금 세부 계획을 살펴보면, 매출이 20%~40% 가량 감소한 전세버스업체는 경영위기업종으로 분류돼 지난해 매출액에 따라 100만~250만원을 지급할 예정이다. 당초 정부 지원의 걸림돌이 됐던 불법 지입제도 문제는 미뤄두고, 일단 모든 기사와 업체에 5차 재난지원금 지급을 이어간다는 방침이다.  
 
이홍로 전 한국교통안전공단 연구교육원장은 “불법에 얽혀 있는 전세버스 업계가 코로나 국면에서 사각지대에 더욱 내몰린 측면이 있다”며 “전세버스 지입차주에게 개별사업권을 주는 방향으로 해결책 논의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개인택시처럼 개인전세버스가 가능하도록 개별적으로 면허를 부여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일각에선 대형 버스 사고 등 교통 안전 관리 문제를 염려하는 의견도 있다. 이에 이홍로 전 교육원장은 “현재보다 각종 규제를 강화한다면 해소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지원 인턴기자 jung.jeewon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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