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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뢰 자본 구축한 한순계의 성공법 [김준태 조선의 부자들⑤]

율곡 이이와 우계 성혼의 벗, 한순계
정직하고 상생하는 태도로 신뢰 얻고 부까지 축적

 
 
[사진 게티이미지뱅크]
 
율곡 이이와 우계 성혼이 직접 찾아와 해가 기울어 날이 저물 때까지 담론을 나눈 사람이 있다. 소재 노수신이 극찬했고, 화담 서경덕이 함께 공부하자고 권유했던 이가 있다. 당대 대학자들로부터 시장에 사는 은자(隱者), ‘시은(市隱) 선생’이라 불리며 존경받았던 인물, 조선 중기의 유기(鍮器) 상인 한순계(韓舜繼, 1530~1588) 이야기다.
 
무반(武班) 가문에서 태어난 한순계는 어렸을 때 아버지를 여의고 궁핍하게 살았다. 당장 오늘의 끼니도 이어가기 어려울 정도였다. 그가 개성으로 이사를 와서 유기를 만드는 장인(匠人)이자 상인이 된 것은 생계를 꾸리고 어머니를 봉양하기 위해서였다. 아무리 한미하더라도 양반이 천한 직업으로 여겨졌던 공상(工商)의 길을 선택했으니 보통 결심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런데 한순계는 오래 지나지 않아 큰 성공을 일궜다. 개성에서 손꼽는 부자가 된 것이다. 도대체 그 비결은 무엇이었을까? 성혼이 남긴 기록에 따르면 “그는 근검하고 나태하지 않았으며, 그가 만든 그릇은 모두 흠잡을 데 없이 훌륭하였고 값을 높였다 낮췄다 하지 않았다”고 한다. 제품을 생산하고 판매할 때 유념해야 할 기본 원칙은 ‘양질’의 제품을 ‘합리적인 가격’에 판매하는 것이다. 한순계는 ‘흠잡을 데 없이 훌륭한’ 경쟁우위의 상품을 생산했으면서도 폭리를 취하지 않았다. 항상 적정한 수준에서 일정하게 공급함으로써 소비자의 호응을 얻었다. 상품 한 개에서 얻는 이익을 줄인 대신, 제품에 대한 수요 자체를 확대해, 전체 이익을 증대시킨 것이다.
 

독과점 피하고 상생 꾀해, 제품 질 유지  

더욱이 한순계는 정직했다. 한번은 구리[銅] 광석을 제련하여 유기를 주조하다가 금이 가득 섞여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모른 척했다면 큰 이득을 남겼겠지만, 그는 주저하지 않고 광석을 판매한 원래 주인에게 모두 돌려주었다. 그러면서 구리가 너무 조잡해서 못쓰겠다는 이유를 댔는데, 이는 구리 판매자가 부담을 느낄까 봐 배려한 것이다.
 
이처럼 좋은 제품을 가지고 정직하게 사업하니, 자연히 소비자들이 몰려들 수밖에 없었다. 유기를 사려는 자들이 그에게 다투어 와서 공급이 부족할 정도였다. 한데 한순계는 “내 어찌 이익을 독점하겠는가?”라며 고객을 다른 유기장과 유기 상인들에게 연계해주었다. 수요를 억지로 감당하느라 제품의 질이 낮아지는 것을 막겠다는 이유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독과점을 부정적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독과점이 되면 경쟁이 사라져 제품의 품질이 하락하기 쉽다. 가격을 제멋대로 정하고 싶은 욕망도 강해진다. 이는 소비자뿐 아니라 종국엔 생산자 자신에게도 피해를 준다. 한순계는 경쟁자가 건강하고 강해지는 것이 자신에게도 도움이 된다는 생각에, 공존을 택한 것이다.
 
이 밖에도 한순계는 주위 가난한 사람에게 자금을 빌려주고 갚으라고 독촉하지 않았다. 덕분에 그 사람의 생활이 피게 되면 아예 돈을 되돌려 받지 않으면서 “너의 가업이 이루어졌으니 내가 매우 기쁘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또 그는 자기 자신에게 매우 엄격했으며, 집안사람이 잘못을 저질렀을 때는 그가 스스로 두려워하고 깨닫게 하여 마음으로 변화하게 하였다. 비록 공인이자 상인의 길을 걷고 있지만 학문도 손에서 놓지 않았는데, 그는 밤이면 용광로 옆에 등불을 켜놓고 옛 성인들의 글을 읽었다고 한다. 그가 틈틈이 지은 시들도 매우 뛰어난 수준이라고 평가받는다. (‘푸른 물은 산을 싫어하지 않고/푸른 산은 물과 스스로 어울리네/넓고 큰 산과 물속에/오가는 한가한 한 사람’이라는 [산수가(山水歌)]는 지금까지 유명한 시다)
 
바로 이러한 그의 인품과 학식이 알려져 앞서 소개한 것처럼 당대 지식인들과 교류하고 그들로부터 깊은 존중을 받게 됐을 것이다. 다음과 같은 신비한 일화가 전해오는 것도 그에 대한 세평의 연장선상이라 할 수 있다. 한번은 그의 어머니가 병이 들어 위독했던 적이 있었다. 의원은 “검은 집비둘기가 아니면 효험이 없을 것이다”라고 처방했다. 하지만 아무리 수소문해도 검은 집비둘기를 구할 수가 없었다. 한밤중까지 이곳 저것을 헤매던 한순계가 절망에 빠져 길 위에서 슬피 울고 있을 때, 누군가 다가왔다. 그는 “방금 꿈에 한 노인이 나타나서 나에게 말하길, 여기로 오면 그대가 있을 테니 이것을 주라고 하였소”라며 검은 집비둘기를 전해주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것으로 끝이 아니다. 한순계는 공동체 구성원의 의무도 중시했다. 개성 유수가 그의 훌륭한 행실을 표창하겠다며 정역(征役, 조세와 부역)을 면제해주려고 하자 한순계는 “그럴 수 없습니다”라며 단호하게 거절했다고 한다.  
 
그는 “호(戶)가 있으면 세금을 내고 몸이 있으면 역(役)을 부담하는 것이 백성의 본분입니다. 세를 물지 않고 부역을 하지 않는 사람을 어찌 백성이라 할 수 있겠습니까?”라고 되물었다. 그는 충분히 힘을 쓸 수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세 아들을 군 복무 시켰고, 이 역시 “백성의 본분에 마땅한 것이다”라고 강조했다. 공공의 의무를 준수하고 사회 지도층으로 솔선수범을 보인 것이다. 덕분에 한순계는 사후에도 칭송을 받았는데, 숙종 때 그의 선행을 기리는 정려문(旌閭門)이 세워졌고, 영조 때는 사헌부 지평에 추증되기도 했다.
 

특권 혜택 거부하고 공인으로 신뢰 얻어  

이상 한순계의 생애는 성실과 정직, 이익 공유와 나눔을 통한 공존, 원칙의 준수와 책임 의식으로 요약할 수 있다. 그는 경쟁우위를 가진 우수한 품질의 제품을 생산했으면서도 소비자에게 일관되게 ‘착한 가격’으로 공급했다. 독과점 위치에 오를 수 있는, 그래서 막대한 이윤을 창출할 수 있는 충분한 역량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동종 업계와 이익을 공유함으로써, 건강한 경쟁과 상생이 이루어지도록 했다. 또한 정직하게 경영 활동을 벌임으로써 소비자와 동료 생산자, 원료 공급자 등 그와 관계를 맺는 경제 주체들이 모두 그를 믿고 따르도록 만들었다.  
 
특권이나 혜택을 거부하고 공인으로서, 공동체 구성원으로서 의무와 책임을 다한 점도 중요하다. 이러한 그의 노력과 태도가 그의 신뢰 자본을 강화했고, 그의 명예를 높이고 궁극적으로 더 큰 이익을 가져다주는 원동력이 된 것이다. 신뢰 자본이 성공의 열쇠가 된다는 것을 보여주는 생생한 사례로, 이익을 위해서라면 부정과 탈법을 주저 없이 자행하고, 공존이나 상생을 도외시하는 오늘날의 일부 기업들에도 좋은 교훈이 될 것이다. 
 
※ 필자는 칼럼니스트이자 정치철학자다. 성균관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고 같은 대학의 한국철학인문문화연구소에서 한국의 전통철학과 정치사상을 연구하고 있다. 우리 역사 속 정치가들의 경세론과 리더십을 연구한 논문을 다수 썼다. 저서로는 [왕의 경영] [군주의 조건] [탁월한 조정자들] 등이 있다.  
 

김준태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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