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int

취임 8개월만에 정치 위기에 몰린 바이든 [채인택 글로벌 인사이트]

아프간 미군 철군 미숙한 대처…미국 신뢰도 추락 위기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26일(현지시간) 워싱턴DC 백악관 이스트룸에서 아프가니스탄 카불 공항 폭탄테러 관련 대국민 연설을 하고 있다. [워싱턴 UPI=연합뉴스]
 
미군의 아프가니스탄 철군 시한을 앞둔 30일 심야(현지시간) 카불의 하미드 카르자이 국제공항에서 미 육군 제18공수군단 제82공수사단장인 크리스 도나휴 소장이 단독군장 차림으로 C-17 수송기에 올랐다. M-16 자동소총의 총신을 짧게 개량한 M-4 카빈을 오른손에 들고 소송기에 오른 도나휴 장군은 아프간에서 철수한 마지막 미군이 됐다.  
 
그는 1992년 웨스트포인트를 마치고 임관해 주한미군 제2사단 소총소대장으로 군 생활을 시작했다. 미군 특수부대인 델타포스와 레인저에서 근무했으며 이라크전과 중동 극단주의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 퇴치전투에 참전한 무골이다. 도나휴 장군이 82공수사단 부대원들과 함께 빽빽하게 탑승한 C-17 수송기가 카불 공항을 이륙하면서 20년 가까이 진행된 아프가니스탄 전쟁은 끝이 났다. 아프간은 20년 만에 탈레반이 통치하게 됐다.  
 
아프간이 탈레반에 넘어가면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난 1월 취임 뒤 최대의 정치적인 위기에 처하게 됐다. 사실 아프간의 미군 철군은 여러모로 불가피했다는 평가다. 미군이 영원히 아프간에 주둔할 수는 없다는 바이든의 말에도 수긍할 수밖에 없다. 문제는 방식이다. 그중에서도 무질서하고 허술하며, 수많은 사람을 뒤에 남긴 불완전한 철수가 비난을 불렀다. 미국의 이미지에 흠집을 안긴 것은 물론, 전 세계에 미국에 대한 신뢰를 땅에 떨어뜨렸다.  
 

바이든, 별장서 회의하고 아프간인 비난도

8월 15일 카불이 신속하게 탈레반에 함락되고 카불 공항에 탈출하려는 사람이 몰리면서 대혼란이 벌어지던 때 바이든은 주말을 맞아 메릴랜드주 캠프데이비드 대통령 별장에서 쉬고 있었다. 사태가 급박해지자 그는 캠프 데이비드에 있는 회의실에서 백악관 안보팀과 화상회의를 열었다. 지쳐 보이는 바이든이 회의실의 넓은 탁자에 홀로 앉아 거대한 멀티모니터를 보며 회의하는 모습은 전 세계에 ‘준비하지 못한 미국’ ‘대처하지 못한 대통령’의 이미지를 각인했다.  
 
바이든은 하루 뒤 워싱턴에 나와 연설을 했다. 그러면서 철군의 당위성만 역설하고 자신의 철군 결정을 옹호했다. 함께 피를 흘렸던 아프간인을 향해 “자기 나라를 지키지 못했다”고 대놓고 비난했다. 아프간 정부군은 미군과 함께 작전하며 5만여명의 탈레반과 수천 명의 테러조직원을 사살했는데 이 과정에서 6만~7만명의 아프간 정부군의 목숨을 잃었다. 미국의 전사자는 2420명이었다. 단순한 숫자로 말할 수 없는, 함께 피를 흘린 사이인데도 말이다.  
 
게다가 정작 문제는 철군이 아니라 비계획적이고, 혼란스러우며, 위태로우며, 어설픈 철수 작전이었는데도 말이다. 그에 대한 비판의 핵심은 미숙한 철수작전인데도 바이든은 이에 대해 어떤 사과도 없이 철군 당위성만 강조하면서 동문서답을 한 셈이다.  
 
바이든은 첫 연설에서 자기 합리화와 아프간인 비난으로 일관하는 바람에 비난이 일자 다시 연설을 자청했다. 그는 여기서 다시 위험한 발언을 이어갔다. 바이든은 모든 미국인과 조력자를 대피시키겠다고 말했다.  
 
미 중부사령부의 케네스 매켄지 사령관은 언론 브리핑에서 “미군 역사상 최대의 민간인 대피 작전”이라고 자평하면서도 “탈출을 원하는 모든 사람을 이송하지는 못했다”고 말했다. 앞 부분의 발언은 대통령에 기분을 맞추기 위한 보고일 뿐이고 발언의 무게는 뒷부분에 실릴 수밖에 없다.  
 
현실은 이보다 훨씬 비극적이다. 아프간을 떠나지 못하고 남은 미국 국적자는 100~200명으로 추정된다. 로이터통신은 전시동맹협회(AWA) 자료를 인용해 지난달 25일 기준 미국 특별이민비자(SIV) 신청자와 그 가족 6만5000명이 아프간을 떠나지 못했다고 전했다. 제2 우선순위(P-2) 자격자와 그 가족 19만8000명 이상도 현지에 남았다. P-2 자격은 미 언론사나 비정부기구(NGO) 등에서 일한 사람에게 주어진다. 미국을 위해 일한 조력자다. 이들은 서방의 일원은 될 수 있지만, 탈레반과 함께 살기 힘들 수밖에 없다.  
 
미국 국제개발처(USAID) 지원으로 설립된 카불 아메리칸대학의 학생과 가족 등 6만 명도 서류를 얻지 못해 잔류했다. 추정에 따라 100만 명이 넘는 사람이 자신이 원하는 대로 떠나지 못하고 아프간에 남게 됐다.
 
이는 개인에게 슬픔이요 비극이지만 바이든에게는 정치적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이들에게 다가올 운명은 충분히 예상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워싱턴포스트(WP)는 미군이 이렇게 많은 사람을 남기고 철수한 것은 “도덕적 재앙”이라고 비판했다. 미국의 정치 전문 매체 더 힐도 “’모든 미국인을 대피시키겠다’고 약속했던 바이든 대통령이 비난에 직면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런 바이든에 대해 미국 내에선 공화당은 물론 민주당에서도 비판이 고조되고 있다. 아직 무르익은 단계는 아니지만, 탄핵 이야기도 거론된다. 지난 1월 취임한 바이든으로선 정치적으로 위기일 수밖에 없다.  
 

해외 각국, 바이든 대처에 거센 비난 쏟아내

해외에선 말할 것도 없다. 독일·영국 등 동맹국의 실망도 커지고 있다. 트럼프 때는 동맹과 외교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는 인물이라는 생각에 체념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상원 외교 위원장을 지냈다며 외교를 최대 경쟁력으로 내세워 대통령에 당선한 바이든을 보는 서구 동맹의 눈은 착잡할 수밖에 없다. 뒤늦게 국무부 등이 나서 한국과 대만, 유럽 등과 관련해 “다르다”며 진화에 나섰지만, 바이든이 보여준 무사안일, 정보실패, 그리고 과거 함께 싸웠던 아프간인에 대한 비난은 돌이킬 수 없는 신뢰 추락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1991년 소련이 무너지고 사실상 글로벌 일극 세계를 이끌어왔던 미국의 신뢰가 21세기에 도마 위에 오른 것이다.  
 
러시아와 중국의 비아냥 공세도 거세지고 있다. 러시아의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9월 1일 새 학기 첫날인 ’지식의 날‘을 맞아 극동 블라디보스토크의 공립 청소년 수련센터인 ‘오케안(대양)’에서 수련생들을 만난 자리에서 “미국의 20년에 걸친 아프가니스탄 주둔은 아무런 성과도 내지 못했다”고 비난했다. 타스통신을 비롯한 러시아 관영 매체에 따르면 푸틴은 이날 작심한 듯 미국을 비난했다.  
 
푸틴은 “미군은 지난 20년간 아프간에 머물면서 현지 주민들을 문명화시키고 정치 체제를 비롯해 자신들의 규범과 표준을 옮기려고 시도했지만, 결과는 미국과 아프간 주민 모두에게 비극과 손실만 가져왔을 뿐”이라고 강조했다. 소련은 1979~89년 10년간 아프간에 주둔하면서 막대한 인적·물적 손실을 봤으며 이로 인한 충격으로 1991년 공산체제가 무너지고 러시아를 비롯한 여러 나라로 분열됐다. 미국이 소련의 사례에서 제대로 교훈을 얻지 못하고 아프간을 침공해 서구의 민주주의 체제를 이식하려다 막대한 손실만 보고 물러난 것을 비난한 것이다.  
 
푸틴은 7월 20일 모스크바에서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를 만나 고별 회담을 한 뒤 기자회견을 하면서도 “외부에서 제삼자의 가치를 강요하려는 무책임한 정책과 낯선 잣대에 기준을 둔 민주주의를 다른 나라들에 건설하려는 시도를 중단해야 한다”고 말했다. 미국이 러시아나 중국 등을 상대로 인권·민주주의·언론자유 등을 내세우거나 요구하는 것에 대한 불만을 내놓고 말한 것이다. 1일 블라디보스토크 발언도 아프간에서 봤듯이 미국이 아무리 강하다고 해도 힘으로 다른 나라에 자국의 가치를 강요할 수 없으니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받아들이고 간섭하지 말라는 주문을 아프간에 빗대서 한 셈이다.  
 
바이든은 국내외의 위기 상황에서 미국의 국격 추락에 대한 대책부터 고민해야 할 처지다. 앞으로 국제사회에서 미국의 발언이나 요청·요구가 힘이 빠질 가능성이 우려될 수밖에 없다. 바이든은 8월 말로 잡은 철군 시한에만 집착하는 바람에 수많은 아프간인 조력자는 물론 미국 국적자까지 모두 데려오지 못하는 ‘잔류 참사’를 빚었다. 윌리엄 번스 중앙정보국(CIA) 국장이 8월 23일 카불로 날아가 카타르에서 귀국한 탈레반 최고지도자 압둘 가니 바르다르와 만나서 회담했지만, 탈레반에 시한을 연장하도록 설득하지 못했다.  
 
탈레반의 축포로 끝난 아프간 전쟁을 되새김질해보면 바이든이 느끼는 정치적 부담을 상상할 수 있다. 2001년 9·11테러를 계기로 그해 10월 7일 시작된 아프간 전쟁은 스웨덴 웁살라대 분쟁 데이터 프로그램(UCDP)에 따르면 21만2191명의 인명 손실을 내고 끝났다. 브라운대 왓슨 연구소에 따르면 민간인 희생자가 5만1613명에 이른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부인 질 여사, 로이드 오스틴 국방장관이 29일(현지시간) 델라웨어주 도버 미 공군기지에서 아프가니스탄 테러 전사자들의 관을 해병대원들이 옮기는 모습을 가슴에 손을 얹고 지켜보고 있다. [도버 EPA=연합뉴스]
 
전투원 희생자도 아프간 군경 7만668~6만7558명, 전쟁 초기 북부 동맹 200여명에 미국 2420명, 영국 456명, 캐나다 159명, 프랑스 89명, 독일 62명, 이탈리아 53명, 한국 1명 등 모두 3576명에 이른다. 부상자도 미국 1만9950명, 영국 2188명, 캐나다 635명 등 2만2773명에 달한다.  
 
여기에 미국 노동부 등의 조사에 따르면 민간군사기업(PMC)에 소속된 요원(사실상 용병)도 3939명이 숨지고 최소 1만5000명이 부상한 것으로 추정된다. 여기에는 최소한 미국 69명, 네팔 19명, 영국 17명에 캐나다·필리핀·러시아·우크라이나 국적이 각각 13명이다. 한국 국적자도 2명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웟슨연구소에 따르면 탈레반은 5만1191명이 사망했으며, 미 국방부는 알카에다 테러리스트가 200명 정도 숨진 것으로 본다. 미국의 소리(VOA)는 아프간 당국자를 인용해 중동 극단주의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의 아프간 지부 격인 ‘이슬람국가 호라산(IS-K)’ 무장대원도 2400명 정도 숨졌다고 보도했다.  
 
미국의 아프간 전쟁 비용은 현재 화폐가치로 전체 2조2610억 달러가 들었다는 것이 웟슨연구소의 추산이다. 영국 국제전략문제연구소(IISS)에 따르면 미군의 2020년 군사비 지출이 나토 기준으로 7850억달러였으니 지난 20년간 2.88년치, 거의 3년치 미국 국방예산을 아프간에 쏟은 셈이 된다. 일본(2조3626억 달러)이나 독일(2조382억 달러)의 2020년 한해 정부 지출과 비슷하다. 한국의 2020년 정부지출(4144억 달러)의 5.5배에 가깝다.  
 

미국 아프간 전쟁 비용, 2조2610억 달러 추산

이런 희생과 비용을 치렀음에도 탈레반은 소탕되지 않았다. 여전히 4만~6만의 병력을 유지했다. 끝이 보이지 않는 전쟁을 끝내야 한다는 공감대는 미국은 물론 서방 세계 전체에서 힘을 얻었다. 철수는 쉽지 않았다. 버락 오바마 행정부 시절인 2011년 미국은 2014년까지 미군을 아프간에서 철수한다는 계획을 발표했지만 9800명의 미군이 계속 남아 나토의 안정화 지원 임무를 맡았다. 미군과 다른 나토 회원국 군대를 합쳐 1만3000명이 군사 고문과 안정화 작업, 그리고 대테러 임무를 위해 계속 주둔했다.  
 
결국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때인 2020년 미국은 아프간 정부를 배제하고 탈레반과 직접 협상했으며 그 결과 2020년 2월 29일 카타르 수도 도하에서 미국의 아프간 특사 잘마이 칼릴자드와 탈레반 대표 압둘 가니 바르다르가 ‘도하 합의(아프가니스탄에 평화를 가져오기 위한 합의)’에 서명했다. 탈레반은 알카에다 퇴치에 협조하기로 했으며, 미국과 나토 동맹국은 탈레반이 합의 조건을 지키면 14개월 안에 모두 철군한다는 내용이었다.  
 
2021년 1월 취임한 조 바이든은 4월 미군의 철수를 발표했다. 그러자 5월부터 탈레반의 공세가 시작됐다. 1996~2001년 아프간을 지배할 당시에도 차지하지 못한 북부 지역을 시작으로 공세에 나서 주요 도시를 하나하나 점령했다. 아프간은 서울 지하철 2호선처럼 전국을 고리 모양으로 도는 순환도로가 있다. 아프간에는 이 고리를 장악하는 세력이 나라를 차지한다는 말이 있었는데, 1979~89년 이 나라를 침공했던 소련도 완전 장악은 하지 못했다. 하지만 탈레반은 이 고리 도로를 거의 장악한 데 이어 8월 초에는 수도 카불을 포위했다. 카불 남부의 가즈니와 동부의 잘랄라바드를 점령해 탈출구를 막았다. 8월 15일 아슈라프 가니 아프간 대통령이 카불을 빠져나가면서 미국이 세우다시피 한 ‘아프가니스탄 이슬람 공화국’은 무너졌다. 2001년 이전 ‘아프가니스탄 이슬람 에미리트’가 나라를 다시 차지했다.  
 
서구 세력은 이슬람주의 극단세력인 탈레반을 막지 못했다. 탈레반의 승리로 아프간 이슬람 공화국과 미국의 20년 공든 탑만 무너진 게 아니다. 이번 카불 사태로 바이든이 그동안 누려왔던 유능한 ‘국제외교통’ 이미지도 여지없이 무너졌다. 상원 외교위원장 출신으로 문외한인 도널드 트럼프를 압박하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어졌다. 대신 고집불통에 현장의 목소리를 무시하는 기성정치인의 이미지가 굳어지면서 정치적인 위기가 더욱 증폭되고 있다.  
 
이 때문에 바이든은 1977~81년 재임하면서 이란의 이슬람 혁명을 겪은 데 이어 테헤란 주재 미국대사관 인질사건을 겪으면서 인기가 폭락해 결국 재선에 실패했던 지미 카터에 비교되는 분위기다. 더 큰 문제는 바이든이 자신의 위기를 돌파하려고 무리하게 동맹들과의 관계를 재설정하거나 대중국 압박이나 러시아 회유에서 무리수를 둘 수 있다는 점이다. 바이든이 만회 외교에 지나치게 신경을 쓸 경우 대북이나 대한반도 정책에도 영향을 줄 가능성이 커진다. 미국민에 최악의 국가로 인식되는 북한과 관련해서 어떠한 돌파구를 열든지, 아니면 반대로 꼼짝 못 하게 옭아맬 수 있다. 문제는 그 과정에서 예상치 못한 부작용을 빚든지 반발에 직면할 수 있다는 점이다. 국제 관계는 과일을 키우듯이 무르익을 때를 기다려야 하는데 당장의 정치적 위기 만회나 인기 회복, 치적 쌓기를 노리든지 지도자의 고집을 받쳐주기 위한 정책을 펼 경우 걷잡을 수 없는 소용돌이에 휘말릴 수 있다. 카불 사태로 정치적 위기에 빠진 바이든을 바라보는 미국과 국제사회의 눈이 동시에 초조해지는 이유다. 
 
※ 필자는 현재 중앙일보 국제전문기자다. 논설위원·국제부장 등을 역임했다.

채인택 중앙일보 국제전문기자 ciimccp@joongnag.co.kr

ⓒ이코노미스트(https://economist.co.kr) '내일을 위한 경제뉴스 이코노미스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많이 본 뉴스

1G20 일부 회원국 “억만장자 3000명에 부유세 걷어 불평등 해소하자”

2이재명-조국 “수시로 대화하자…공동법안·정책 추진”

3 미국 1분기 GDP 경제성장률 1.6%…예상치 하회

4연세대·고려대 의대 교수들, 5월 말까지 주 1회 휴진한다

5경찰, ‘이선균 수사정보 유출’ 관련 인천지검 압수수색

6독일 Z세대 3명 중 1명 “유대인에 역사적 책임 동의 못한다”

7미국, 마이크론에 반도체 보조금 8.4조원…삼성전자와 규모 비슷

8이재명, 조국에 “정국상황 교감할 게 있어” 러브콜…오늘 비공개 만찬

9크라우드웍스, AI 언어 모델 사업 ‘본격화’…웍스원 개발

실시간 뉴스

1G20 일부 회원국 “억만장자 3000명에 부유세 걷어 불평등 해소하자”

2이재명-조국 “수시로 대화하자…공동법안·정책 추진”

3 미국 1분기 GDP 경제성장률 1.6%…예상치 하회

4연세대·고려대 의대 교수들, 5월 말까지 주 1회 휴진한다

5경찰, ‘이선균 수사정보 유출’ 관련 인천지검 압수수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