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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성능 PC 필요한데 비용이…” 고민 해결한 작은 단말기

[Interview] 송영길 엔컴퓨팅 대표
세계 140여개국, 누적 판매량 550만대… 팬데믹 이후 수요 폭발
마케도니아 정부 씬클라이어트 공공에 도입…제3세계 중심으로 성장세 빨라
글로벌 사회는 디지털 워크스페이스 구축 중, VDI 솔루션 전망 밝아

 
 
송영길 엔컴퓨팅 대표는 “엔컴퓨팅의 VDI 솔루션은 디지털 워크 스페이스를 손쉽게 구성하기에 제격”이라고 설명했다.[이원근 객원기자]
PC 시장은 혁신이 멈춘 시장으로 평가받는다. 출하량이 보급량을 앞서기 시작하면서 시장이 성숙기로 진입한 지 오래됐다. CPU, 디스플레이, 그래픽카드 등으로 하드웨어 형태가 굳어졌고 이를 넘어서는 혁신기술은 스마트폰으로 대체됐다. 스마트폰의 신제품은 연일 스포트라이트를 받지만, 새 PC를 두곤 미디어가 조명하는 일이 적다. PC는 혁신제품이 아닌 일상재(Commodity)로 변했다는 걸 잘 보여준다.
 
이제 와 PC 시장을 거들떠보는 혁신가는 많지 않지만, 송영길 엔컴퓨팅 대표의 행보는 달랐다. 송 대표는 한계에 부딪힌 PC 시장에서도 “혁신을 할 자신이 있다”고 말하는 기업가다.  
 
송 대표의 이력을 보면 고개가 끄덕여진다. 경력 대부분을 PC 만드는 일에 힘을 썼다. 대한민국 벤처 1호 기업 삼보컴퓨터에서 기술연구소 및 상품기획, 해외 마케팅을 거쳐 미국지사에서 기획 PC를 판매했다. 1998년엔 초저가 PC 메이커인 이머신즈(eMachines)를 공동 창업했다. 당시 대당 1000~2000달러 수준이던 PC 시장에 이머신즈는 500달러 미만의 저가 PC를 내놓으면서 승승장구했다. 이머신즈는 창업 2년 뒤 나스닥에 상장했다.
 
2003년 미국에서 지금의 엔컴퓨팅을 창업했다. 가상데스크톱인프라(VDI) 솔루션을 독자 개발했고, 미국·영국·독일·싱가포르 등 6개국에 지사를 두고 있다. 100여 명의 직원과 140개국에 판매 채널을 보유한 글로벌 회사로 성장하고 있다. 
 
다만 매출 대부분이 해외에서 발생하다 보니 국내에선 실력만큼 이름은 덜 알려졌다. [이코노미스트]가 모처럼 한국을 방문한 송영길 대표를 엔컴퓨팅 한국 사무소에서 만났다. 송 대표는 작고 얇은 씬클라이언트(Thin-Client) 단말기를 만지작거렸다. 엔컴퓨팅의 핵심 제품으로, 이 단말기를 PC에 연결하면 네트워크를 통해 가상의 PC와 OS를 구동할 수 있다.
 
엔컴퓨팅의 씬클라이언트는 모니터 뒷면에 간단히 부착해 쓸 수 있다.[사진 엔컴퓨팅]
손에 들고 있는 그 제품이 엔컴퓨팅의 씬클라이언트인가.  
맞다. CPU, 메모리 같은 필수 하드웨어만 탑재해 크기가 작다. 모니터 뒷면에 간단히 부탁할 수 있다. 그런데도 프리미엄급 PC의 성능을 발휘한다. 이 단말기만 있으면 업무용 PC를 기기나 장소에 상관없이 마음껏 쓸 수 있다.  
 
전년 대비 올해 판매실적이 수배로 올랐다고 들었다. 팬데믹 효과인가.
팬데믹이 가상데스크톱인프라(VDI) 확산의 촉매제가 되긴 했다. 그렇다고 원인으로 집고 싶진 않은 게, 팬데믹이 극심했던 지난해엔 실적이 나빴다. 다만 올해는 대박이 날 조짐이다. 재고가 남아나질 않을 만큼 주문이 폭주하고 있다. 개인적으로 엔컴퓨팅의 성장엔 두 가지 변수가 크게 작용했다고 본다.
 
어떤 변수였나.
첫째는 PC 시장의 수급 변화다. 언제나 수요보다 공급이 많던 시장이었는데, PC 제조업계가 반도체 수급 불균형 이슈에 빠졌다. 산업과 교육 현장에서 제때 PC를 교체하지 못했다. 주문해도 즉각 받을 수 없다. 아무리 스마트폰 시대라지만 업무·교육 현장에선 PC가 스마트폰을 기능적으로 압도한다. 세계 각국의 산업과 교육 현장에서 대안으로 우릴 찾기 시작했다. 우리 제품은 낡은 PC로도 새 PC 같은 성능을 낼 수 있었기 때문이다.  
 
두 번째 변수는 뭐였나.
‘가상화’, ‘원격’, ‘비대면’ 같은 VDI 관련 키워드에 대중이 익숙해졌다. 마이크로소프트도 자사 OS 윈도를 클라우드에 올려놓는 시대다. 엔컴퓨팅을 창업했던 2003년만 해도 가상화 개념을 이해시키는 게 힘들었다. 지금은 대충 설명해도 금세 고개를 끄덕인다. 예전엔 보안이나 안정성을 겁내는 사람이 많았는데, 클라우드 기술이 대중화하면서 그런 시선도 현격히 줄었다.  
 
신제품을 내놓는 등 엔컴퓨팅의 변신 타이밍도 적절했다는데.
USB 타입의 신상품 ‘리프 OS(Leaf OS)’를 출시했다. 어떤 PC든 USB만 꽂으면 업무를 볼 수 있다. 씬클라이언트마저 번거로운 고객에겐 반응이 좋다. 셧다운으로 재택근무가 불가피했던 미국의 한 콜센터가 이 리프 OS를 직원에게 배포해 시의적절하게 대응했다. 지난해 말엔 MS와 협력해 윈도 전용 제품을 내놨는데, 이 역시 수요가 상당하다.
 
창업 18년 만에 전성기를 맞은 셈이다. 이 길이 맞나 싶은 위기가 있었을 텐데.  
속된 말로 ‘존버’의 시간이었다. 물론 돈도 못 벌고 버텼단 얘긴 아니다. 최근의 성장세가 눈에 띌 뿐이지, 꾸준히 점유율을 높여왔다. 우리의 강점은 확실했다. 가격 경쟁력이다. 한국에서만 낯설 뿐, 글로벌 VDI 시장 규모는 크다. VM웨어·시트릭스 등 유명 글로벌 기업이 이 시장을 장악하고 있다. 그런데 이들의 서비스는 비용도 적잖이 들고, 큰 기업이나 공공기관이 주요 타깃이다. 우린 이들보다 저렴한 가격에 서비스를 제공한다. 작은 기업도 우린 ‘OK’다.
 
이전에 창업한 이머신즈도 ‘저렴한 PC’를 강점으로 내세웠다.  
PC를 정말 좋아한다. “더 많은 사람이 PC를 수월하게 썼으면 좋겠다”는 걸 인생의 과업처럼 여긴다. 이머신즈를 경영할 때도 극한의 가격 경쟁을 벌였다. 성능이 나쁘지 않으면서도 저렴한 부품을 온갖 곳에서 모아 조립했다. 시장가격보다 절반 가까이 떨어뜨렸을 땐 내 꿈이 이뤄지나 했다. 그런데도 한계가 뚜렷하더라.  
 
어떤 한계에 부딪혔나.
제작비용은 그런대로 낮출 수 있었다. 그런데 물류비를 낮추는 건 불가능했다. 데스크톱의 부피 때문이었다. VDI의 대중화를 꾀하는 엔컴퓨팅은 내 꿈을 이루는 회사였다. 씬클라이언트는 라면박스에 30개도 넣을 수 있다. USB는 수백개 단위일 거다.  
 
송영길 엔컴퓨팅 대표는 “VDI가 확산하면 세계 곳곳에서 더 많은 혁신이 일어날 수 있다”고 말했다.[이원근 객원기자]
이머신즈·엔컴퓨팅을 창업한 2000년대 초반은 PC가 대중화에 성공했던 때다. 왜 가격을 내리는 일에 집착했나.
당시 한국만 해도 가정용 PC가 제법 보급됐지만, 눈을 조금만 돌려도 상황은 딴판이었다. 라틴 아메리카나 인도, 아프리카 같은 지역의 소비자는 유명 회사가 내놓는 데스크톱 값을 감당할 수 없다. 저렴한 PC 시장을 공략하는 건 항상 기회가 될 거라고 낙관했던 이유다.
 
그래서 세계 여러 국가에 고객을 두고 있나.  
세계 지도를 펼쳐놓고 우리 제품을 쓰는 고객들을 점찍어봤다. 참 다채롭더라. 뿌듯했다. 마케도니아에선 정부 차원에서 우리 씬클라이언트를 공공에 도입했다. 엔컴퓨팅의 솔루션은 비용을 절감하면서도 효율적으로 PC를 활용할 수 있는 최고의 수단이다. 단말기나 USB를 구입해 아이디와 패스워드만 써넣으면 간단히 구동된다.  
 
한국 매출 비중은 5% 안팎이라고 들었다. 한국에 사무소도 두고 있는데, 아쉽지 않나.
몇몇 은행과 병원에서 협약을 맺고 우리 제품을 쓰고 있고, 고객 숫자도 늘어나는 추세다. 한국의 산업과 교육 현장도 효율적인 디지털 워크스페이스를 둘러싼 깊은 고민에 휩싸였다. 이미 유명 빅테크의 솔루션이 널려있지만, 비용 측면에선 우리 제품을 고려해보는 것도 대안이 될 수 있다.
 
엔컴퓨팅의 향후 목표와 각오를 설명해 달라.
우리 제품의 누적 판매량이 550만대다. 비용 때문에 PC 설치를 망설이는 수많은 기업과 기관의 고민을 해결해온 셈이다. 국내뿐만 아니라 세계 시장에서 VDI 확산에 기여하고 싶다. 비용을 적게 들이고도 PC를 쓸 수 있으면, 각종 불균형을 해소할 수 있다. 개인적으론 ‘PC를 위해 인생을 바친 사람’이란 평가를 받고 싶다.

김다린 기자 kim.dar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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