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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에너지 대란에 웃는 러시아...글로벌 에너지 지정학 향방은 [채인택의 글로벌 인사이트]

석탄값, 1년 만에 6배 상승…천연가스·석유도 연일 최고치 경신
유럽 '탈탄소' 정책, 가스 의존도 높이며 러시아 입지 강화로 이어져

 
 
주유 대란을 겪은 영국의 한 주유소에 기름이 떨어졌다는 안내문이 붙어 있다. [AFP=연합뉴스]
 
글로벌 에너지 위기가 가시화하고 있다. 최근 들어 전 세계적으로 에너지 수요가 급증하면서 석유‧가스는 물론 석탄까지 가격이 급등하고 있다. 2019년 12월 31일 시작된 코로나19로 인한 팬데믹이 어느 정도 진정되고 위드 코로나와 경기 회복이 본격화하면서다.  
 
국제 석탄 가격은 13년만의 최고치다. 국제 교역정보 사이트인 트레이딩이코노믹스에 따르면 국제 석탄 가격은 지난해 9월 1일 t당 40.25달러로 바닥을 친 이래 꾸준히 상승해 지난 5월 17일 t당 100.4달러로 100달러 선을 넘었다. 그 뒤에도 지속해서 가파른 상승을 계속해 9월 20일 200.5달러로 200달러 선을 넘었으며, 10월 13일 243.35달러를 기록했다. 석탄의 t당 가격이 13개월여 만에 40.25달러에서 243.35달러로 뛰었으니 6배 이상으로 뛴 셈이다. 산업계, 특히 석탄 화력발전업계가 버티기에 석탄값의 상승 속도가 지나치게 빠르다는 평가다.  
 
천연가스도 최고 기록을 연일 경신하고 있다. 트레이딩이코노믹스에 따르면 천연가스 가격은 10월 7일엔 6.294달러로 최고점에 이른 뒤 조정기에 접어들어 10월 13일 현재 5.659달러를 유지하고 있다. 천연가스 가격은 지난해 4월 최저점과 올해 최고점을 비교하면 6.12배가 뛰었으며, 10월 13일 가격을 기준으로 보면 5.5배가 올랐다.  
 
석유도 만만치 않다. 지난해는 물론 심지어 올해 초까지도 국제유가 하락을 진정시키기 위해 석유수출국기구(OPEC)와 러시아를 비롯한 비OPEC 산유국의 확대 카르텔인 OPEC+(OPEC 플러스)가 감산 유지 합의를 연장하면서 심한 진통을 겪었다. 하지만 이제는 사정이 반전하고 있다. 국제유가는 10월 13일 기준 WTI가 배럴당 80.71달러, 북해산 브렌트유는 83.49달러, 두바이유는 80.58달러를 기록하고 있다. 모두 80달러를 넘고 있다. 국제 유가가 배럴당 80달러를 넘은 것은 2018년 10월 2일 80.65달러를 기록한 이래 3년 만이다. 트레이딩 이코노믹스에 따르면 국제유가는 2014년 10월 27일 이후 7년 만에 최고치다.  
 

에너지값 인상발(發) '연쇄 경기침체' 오나  

하얼빈의 석탄 발전소 [로이터=연합뉴스]
 
에너지 가격 인상이 심상치 않은 이유는 에너지값 인상발(發) 연쇄 경기침체를 부를 수 있기 때문이다. 상식적으로 봐도 에너지 가격의 상승은 에너지를 많이 쓰는 전기나 식료품 등 각종 상품 가격에 고스란히 반영돼 물가를 높일 우려가 크다. 이에 따라 소비와 생산이 동반 허락하면서 경기가 다시 침체하는 스태그플레이션의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얼어붙었던 경기가 백신 접종 등으로 각국이 순차적으로 위드 코로나 정책을 시작하면서 가까스로 회복 국면에 접어들었는데, 에너지발 스태그플레이션이 다시 발목을 잡을 수 있는 셈이다. 게다가 유럽의 경우 겨울이 다가오면서 난방용 가스값 인상은 민심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어 각국 정치 지도자들이 전전긍긍할 수밖에 없다.  
 
정작 문제는 경제 대국 중국에서 터졌다. 중국에선 석탄의 공급 부족과 가격 인상으로 화력발전소가 제대로 가동을 못 해 전국적으로 정전, 또는 제한 송전 사태를 맞고 있다. 특히 피해가 심한 곳은 중공업 시설이 몰린 동북부 랴오닝(遼寧) 성이다. 중국 당국은 랴오닝 성에 ‘일정 기간 공급 차질이 불가피하니 전력소비가 많은 기업은 보름 이상 전기 사용을 중단하라’고 지시했다.  
 

중국 31개 1급 행정구 중 20곳이 제한 송전

10월 초 현재 중국의 31개 1급 행정구(성·직할시·자치구 등 광역행정구) 중 20곳에서 산업 시설을 포함해 제한 송전이 이뤄지고 있을 정도다. 놀라운 것은 이 1급 행정구 20개가 국내총생산(GDP)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66%나 된다는 사실이다.  
 
중국의 전력난은 최대 석탄 산지인 산시(山西) 성에서 폭우와 홍수를 비롯한 자연재해로 60개 이상의 탄광이 가동을 중단하면서 빚어졌다. 중국의 전력난은 지난해 중국 전체 수요의 27%인 10억6000만t을 공급한 산시 성의 석탄 공급 감소와 함께 중국이 정치적인 이유로 호주산 석탄 수입을 중단한 데서 찾을 수 있다.  
 
여기에 더해 미국과의 경쟁을 의식한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이 지구온난화를 막기 위한 그린 경제에 박차를 가하면서 석탄 생산을 위한 투자를 줄인 것도 원인의 하나라는 주장이 제기된다. 내년 2월의 베이징 겨울 올림픽을 앞두고 중국의 대기 오염 수준을 낮추기 위해 석탄을 비롯한 화석연료의 공급을 줄였다는 지적도 있다.  
 
이런 상황에서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다음 달 중순 북부 지역부터 중앙난방이 시작된다. 석탄 수요가 더욱 늘 수밖에 없다. 결국 중국 당국은 전기요금 인상이라는 극약 처방 카드를 꺼내 들었다. 주민용은 10%, 농업용은 15%, 에너지 다소비 업종용은 최대 20%까지 각각 올리기로 했다. 당장은 그린 정책보다 에너지 공급이 우선인 상황이 된 셈이다.  
 
중국의 전력난은 올해 성장 전망치에도 영향을 주고 있다. 골드만삭스는 올해 중국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8.2%에서 7.8%로 낮췄고, 노무라증권도 8.2%에서 7.7%로 하향 조정했다. 0.4~0.5% 하향은 적지 않은 수치다. 문제는 중국이 러시아를 비롯한 다양한 나라를 대상으로 석탄 물량을 추가 확보하기 위해 뛰고 있지만, 이런 상황이 내년까지 계속될 가능성이 상당히 크다는 사실이다.  
 
중국의 전력 생산에서 화력 발전이 차지하는 비율이 2020년 기준 56%에 이른다. 대부분 상대적으로 비용이 저렴한 석탄을 사용한다. 16.8%를 차지하는 수력발전이나 2.3%의 원전을 아무리 추가 가동해도 이를 메울 수 없다. 중국은 지난해 연말 기준 48기의 원전을 가동 중이며 현재 17기를 추가 건설하고 있지만, 당분간은 화력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그런 상황에서 중국은 2060년까지 탄소 중립을 이루겠다고 선언했다. 탄소 중립을 이루기 위해서도, 고질적인 대기오염을 줄이기 위해서도, 그리고 에너지 자립과 안보 차원에서도 원전 건설은 중국에 중요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현실은 당분간 석탄을 이용하는 화력발전에 경제성장을 위한 전력의 상당수를 유지할 수밖에 없다.    
 

유럽의 ‘脫탄소’→가스 의존→러시아 입지강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AP=연합뉴스]
 
유럽에서 가장 먼저 위기의 징조를 보인 곳이 영국이다. 영국은 유럽에서 에너지발 가시적인 위기가 가장 먼저 드러난 국가다. 영국은 9월 말 주유소에 기름이 떨어지는 주요 대란을 겪으면서 전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표면적으로는 코로나 팬데믹과 브렉시트로 인한 인력난으로 유류 트럭을 운전할 기사를 구하기 힘들어진 게 원인이다. 최대 정유사인 BP가 운영하는 1200개의 주유소 가운데 3분의 1에서 석유가 동나 일부는 아예 영업을 중단하고 주유소를 폐쇄하는 일이 벌어졌다.  
 
하지만 이는 단순한 트럭 기사 구인난을 넘어서는 유럽발 에너지 위기의 시작일 뿐이었다. 그나마 영국은 시스템과 글로벌 유통망을 주도하는 국가라 주유소 사태 정도로 끝났다.  
 
유럽은 초조하다. 전 세계에서 가장 선도적으로 기후변화를 막기 위한 탄소 제로 활동에 들어간 유럽은 풍력‧태양열 등 신재생에너지를 활용한 발전소를 많이 지었다. 문제는 풍력이나 태양열 등 자연에 의존하는 신재생 에너지 발전소는 바람이 불지 않거나 일조량이 적을 경우 충분한 발전을 할 수 없다는 데 있다. 이에 대비해 통상 같은 용량의 액화천연가스(LNG) 발전소를 백업용으로 건설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정전 사태를 맞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전 세계에서 석탄‧석유‧가스 가격이 들썩이는 상황에서 유럽에는 바람이 충분히 불지 않았다. 이 때문에 백업으로 설치한 예비 LNG 발전소가 가동을 할 수밖에 없었다. 가스값이 폭등하면서 각국은 비용 부담에 난처해질 수밖에 없다. 결국 원자력 발전이 전체 전력의 75% 수준인 프랑스에서 유럽 전력망을 통해 전기를 빌려 쓸 수밖에 없다.
 
사실 유럽에선 LNG 발전과 함께 프랑스의 원전 전기가 신재생 발전소를 뒷받침하는 백업 시설인 셈이다. 독일 정부가 탈원전을 추진하는 데 가장 힘이 된 것도 원자력 강국인 이웃 프랑스의 원전 전기인 셈이다. 유럽 전체가 자신 있게 신재생 에너지로의 전환에 나선 뒷배이기도 하다.  
 
이러한 상황은 유럽의 가스 의존도를 높여 최대 가스 공급국가인 러시아의 정치적인 발언권을 높이는 의외의 문제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러시아의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한때 ‘에너지 차르’로 불리면서 날씨만 추워지면 유럽을 상대로 정치적인 압박을 가해왔다. 그러다 2014년 우크라이나령 크림 반도를 합병하면서 유럽의 경제 제재를 받고 있다.
 
여기에 글로벌 에너지 가격이 하락하면서 경제적으로 타격을 입었다. 국내총생산(GDP)이 한국에도 밀려 세계 11위로 떨어졌다. 결국 유럽의 높은 가스 의존도와 글로벌 에너지 가격 폭등은 러시아와 푸틴의 입지를 강화해주는 묘한 상황으로 이어지고 있다. 유럽이 도덕적인 의도로 추진해온 탈 탄소 그린 정책이 높은 가스 의존으로 이어지고 이것이 비도덕적인 국가로 비난하며 경제제재까지 했던 러시아의 목소리를 높여주는 아이러니로 이어지고 있는 셈이다.  
 
이런 상황에서 내년 4월의 대선을 6개월 앞둔 프랑스의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은 지난 12일 SMR(소형모듈화원자로) 개발에 30억 유로를 투입하는 정책을 발표했다. 저탄소 비행기를 비롯한 첨단기술 개발과 스타트업 지원에 앞으로 5년간 300억 유로를 투입하는 경기 부흥책을 발표하면서 SMR 개발을 앞세웠다.  
 
SMR은 한국의 두산중공업이 제조 기술을 확보하고 있다. 두산은 대형 원전에 들어가는 한국형 원자로인 APR-1400을 개발해 미국의 인증을 받았으며 안전 기술 등이 훨씬 진보한 APR+도 개발한 세계적인 원전기술 기업이다. 미국 외의 나라에서 개발한 원자로가 미국 원자력위원회의 인증을 받은 것은 APR-1400이 세계 최초다. 그런 두산중공업도 국내에서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으로 일감이 줄자 소형인 SMR에 투자해 관련 기술도 비축했다.  
 
미국 뉴스케일 소형모듈원전(SMR) 플랜트 가상 조감도. [사진 두산중공업]
 
SMR은 국토가 넓어 송전 설비 설치에 비용이 많이 드는 사우디아라비아나 중앙아시아 국가를 비롯한 국토가 넓고 인구가 희박하거나 몇몇 도시에 몰려 있고 중간에 거리가 있는 국가에서 효율이 높다. 예로 국토가 좁은 아랍에미리트(UAE)가 APR-1400을 4기 가동할 예정인데, 국토가 넓은 사우디에는 SMR이 더욱 비용편익상 유리할 수 있다. 탈석유 시대에 대비해 사우디에 미래 산업 시대를 열려는 무함마드 빈살만(MBS) 왕세자로선 군침이 당기지 않을 수 없다.  
 
최근 미국이 호주에 원자력 잠수함 기술을 제공하기로 하면서 이미 수주했던 재래식 잠수함의 대호주 수출이 무산된 프랑스의 마크롱은 한국 등과 손잡고 SMR을 개발해 중동 등에 진출할 구상을 했을 가능성이 크다. 마크롱은 내년 4월의 프랑스 대통령 선거에서 극우 세력의 도전을 받고 있다. 그런 마크롱으로선 원자력 기술 개발을 앞세워 글로벌 전략을 펴는 강한 지도자의 모습을 보여줘 할 개연성이 충분하다. 이는 일자리 마련에도 크게 기여할 수밖에 없다. 이는 한국에 큰 기회가 될 수 있다.  
 
이처럼 글로벌 에너지 위기는 한국에 거대한 기회로 다가오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의 원자력 기술은 경제를 키우고 일자리를 양산하는 소중한 도구로 자리 잡고 있다. 한국은 에너지의 지정학과 지경학이라는 도전 앞에 놓였다.  
 
채인택 중앙일보 국제전문기자 ciimccp@joongnag.co.kr 

채인택 중앙일보 국제전문기자 ciimccp@joongna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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