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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유류세 인하 큰소리 친 정부 “농협주유소 통제 못해”

ex알뜰주유소 154원 내렸는데 농협 101원
정부 “농협은 미리 조처 못한 측면 있어”
개인 사업자만 정부 눈치 보며 가격 내려
‘즉시 인하’ 정부 개입이 혼란 야기 지적도

 
 
서울시내 한 알뜰주유소를 찾은 고객이 자동차에 주유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 충남 당진에 사는 회사원 A씨는 지난 주말 농협 주유소에서 자동차에 기름을 넣으려다 차를 돌렸다. 정부가 유류세 인하 정책을 발표한 뒤 휘발유 가격이 리터(L)당 160원가량 떨어졌을 것으로 예상했는데, 이전보다 100원만 떨어졌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다. A씨는 160원 가격을 내려 파는 일반 알뜰주유소를 찾아 자동차에 기름을 가득 채웠다.

 
정부가 지난 12일부터 유류세를 20% 인하하며 1998개 알뜰주유소가 즉시 가격 반영에 동참한다고 밝혔지만, 농협이 운영하는 알뜰주유소 중 일부는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일반 알뜰주유소가 L당 평균 150원 이상 휘발윳값을 내린 데 반해 농협 알뜰주유소(농협주유소)는 평균 101원 내린 것으로 집계됐다. 정부는 기름값을 내리는 것은 개별 주유소의 판단에 따른 것이라며 손쓸 도리가 없다는 입장이다.
 
이억원 기획재정부 1차관은 지난 12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정책점검회의를 열고 “전국 765개 정유사 직영주유소는 12일부터 휘발유 기준 164원의 유류세 인하분을 즉시 반영하고, 1233개 알뜰주유소도 유류세 인하 즉시 반영에 동참한다”고 밝혔다.
 
주유소가 유류세 인하분을 소비자가격에 그대로 반영한다고 가정하면 L당 휘발유는 164원, 경유는 116원 내리는 효과가 예상됐다. 정부는 알뜰주유소 등을 시작으로 값싼 휘발유를 판매하면 다른 주유소들도 더 빨리 가격 인하에 동참할 것이라고 기대했다.
 
그러나 [이코노미스트]가 유류 정보 사이트 오피넷의 기름값 변동을 조사한 결과 정부의 기대와는 달리 농협주유소는 유류세 인하 즉시 반영에 소극적이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정부가 유류세 인하 정책을 시행하기 전날인 11월 11일과 지난 일요일(14일) 기름값을 비교해보면 전국 1250여 곳의 알뜰주유소의 휘발유 가격 인하분은 L당 평균 127원, 경윳값은 92원 수준이었다.
 
이 가운데 NH-OIL 상표를 달고 있는 농협주유소는 휘발유 가격을 L당 평균 101원, 경윳값은 73원 내리는 데 그쳤다. 일반 사업자가 운영하는 일반 알뜰주유소에서 휘발유 가격을 L당 159원 내리고, 도로공사에서 운영하는 ex알뜰주유소가 154원 인하해 판매하는 것과 비교하면 인하 폭이 작은 수준이다.
 
농협 관계자는 “농협주유소는 인근에 경쟁사 주유소가 거의 없는 시골지역에 많은데, 주변에서 (기름값을) 내린 데가 없으면 농협만 내리기 어렵다”며 “현장에서 주저주저하는 상황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또 “농협 주유소는 지역 농‧축협 법인에서 개별로 운영해 중앙회 차원에서 가격 인하 정책을 강제할 수도 없다”고 했다. 
 
정부는 직영‧알뜰주유소를 중심으로 유류세 인하 선반영 효과를 기대하며 홍보하고 있지만, 현장에선 따르지 않는 곳도 많은 셈이다.
 
이런 차이는 정부가 얼마나 주유소 운영을 통제하고 있느냐에 따라서 달라진다. 일반 알뜰주유소는 매년 석유공사에서 운영 평가를 받는데, 정부 정책에 적극적으로 동참하지 않으면 다음 평가에서 불이익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
 
경기도에서 알뜰주유소를 운영하는 B씨는 “가격을 내려 판다고 해서 주유소에 크게 혜택이 돌아오는 것은 없다”며 “오히려 비싸게 사놓은 기름을 저렴하게 먼저 팔아야 하는데, 나중에 이 손해를 어떻게 메울 수 있을지 걱정스러운 면도 있다”고 했다.
 
반면 농협주유소의 경우 이런 통제를 받지 않는다. 이 때문에 상황에 맞게 재고를 소진하거나 때에 따라 가격 할인을 하는 등 자유롭게 운영하는 게 한결 수월하다. 
 
박기영(앞줄 가운데) 산업통상자원부 제2차관이 유류세 인하 시행일인 12일 김동섭 석유공사 사장, 박현규 석유공사 비축본부장과 함께 서울시 금천구 소재한 알뜰 주유소방문했다.[사진 산업통상자원부]

세금 인하 생색내고 손 놓은 정부 “기름값은 주유소가 결정”

정부는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며 손을 놓고 있다. 세금을 내리긴 했지만, 이를 반영해 소비자 가격을 낮추는 것은 개별 주유소의 선택이라는 입장이다. 비싸게 사놓은 기름을 싸게 팔지 않는다고 문제 삼을 일은 아니라는 것이다. 

 
정부 관계자는 “일반 알뜰주유소에 대해선 미리 기름값을 내릴 수 있게 조처했지만, 농협에 대해선 (조처가) 미흡했던 게 사실”이라며 “가격 인하를 강제할 수 없다”고 밝혔다. 
 
일각에선 정부가 기름값을 낮추기 위해 노력했다는 것을 부풀리면서 소비자만 혼란스러워졌다고 지적하고 있다. 실제 지난 12일 이억원 차관은 “전국 주유소의 17.5%를 차지하는 직영주유소와 알뜰주유소가 유류세 인하분을 즉시 판매 가격에 반영하면 주변 주유소에 영향을 미쳐 유류세 인하가 2주 뒤에 나타났던 2018년에 비해 이번에는 더 신속히 나타날 것으로 기대된다”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농협 주유소 646곳 가운데 휘발유 가격을 일반 알뜰주유소 평균 인하액(154원)만큼 내린 곳은 220곳으로 3분의 1 수준이었다.
 
정유 업계 관계자는 “정부가 가격 인하를 미리 약속받은 곳이나 가격 통제가 가능한 곳에 대해서만 유류세 인하 즉시 반영 정책이 시행된다고 명확히 알렸어야 한다, 그게 아니라면 3년 전처럼 자연스럽게 주유소가 재고를 소진한 뒤 가격을 내리길 기다리는 게 나았다”며 “앞으로 주유소가 재고를 털고 가격 경쟁을 하기까지 1~2주는 혼란이 이어질 수 있다”고 전했다. 
 
오피넷에 따르면 지난 14일 기준 한국석유공사의 알뜰주유소는 180곳, 한국도로공사 알뜰주유소는 426곳, 농협경제지주 알뜰주유소는 646곳으로 전국 주유소 1만1093곳의 약 11%를 차지한다. 

이병희 기자 yi.byeongh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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