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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웠던 필립스 곡선이 일어서다” [조원경의 알고 싶은 것들의 결말(35)]

글로벌 공급망 교란과 인플레이션 논쟁 시작
연준 제로 금리 인상 시점 앞당겨질까

 
 
코로나19에 따른 글로벌 공급망 차질과 연말 쇼핑 대목의 영향으로 미국 항만들이 심각한 물류 적체에 시달리고 있다. 사진은 미국 샌프란시스코 인근 오클랜드 항구에 컨테이너선이 들어오는 모습.[AFP=연합뉴스]
 
저물가 시대는 저물어가는 것일까. *필립스 곡선이 지개를 펴고 있다. 세계적으로 글로벌 공급망 교란으로 물가가 들썩이며 실업률과 물가가 반대방향으로 움직이는 모습이 나타나고 있다. 강한 경기 회복세를 보이는 미국에서는 인플레이션이 일시적인지 그렇지 않은지에 대한 논쟁이 한창이다.
 
세계적 인플레이션 우려 속에 10월 미국의 소비자물가지수(CPI)가 31년 만에 가장 큰 폭으로 올랐다. 5% 이상의 물가상승률이 6개월째 지속되면서 인플레이션을 일시적 현상으로 본 정책 당국의 부담도 커진 상황이다.
 
미국만이 아니다. 유로지역 소비자들은 1993년 이후 지금처럼 인플레이션에 대해 걱정해 본적이 없다고 한다. 크리스틴 라가르드 유럽중앙은행(ECB) 총재는 글로벌 공급망 병목현상이 장기화 되면 인플레이션 상승압력이 강화될 수밖에 없고 이는 2022년 1분기가지 해소되지 않을 것으로 본다. 여러 정황을 보면 2022년의 가장 큰 문제는 공급망 이슈를 푸는 것이다.  
 
시간을 돌려 보자. 2020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발발 이후 2020년 상반기 국제선 여객기 운항 중단 사태가 벌어졌다. 그해 하반기에는 글로벌 선박의 중국발 항로 쏠림 현상이 가중됐다. 2021년 상반기에는 수에즈 운하 통항 중단 사태가 벌어졌다.
 
물류대란의 충격은 그렇게 연이어 이어졌고 화물운임, 원자재와 유가, 석탄, LNG 같은 에너지가격은 급등했다. 글로벌 물류시장에서 촉발된 고운임, 화물공간(선복) 부족, 운송 스케줄 지연으로 수출기업들은 현재까지 수출 화물의 적기 운송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글로벌 해상운임은 코로나19 이후 급등세를 연출했으며 현재까지도 코로나19 이전 대비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코로나19 이후 나타나기 시작한 글로벌 물류 차질은 연말에 대규모 상품 소비 시즌이 몰려있는 것을 감안 할 때 더욱 심화될 양상을 보일 것으로 보인다.
 
이 같은 현상은 코로나19 종식 전까지는 지속적으로 반복될 것으로 전망된다. 미국의 블랙프라이데이가 11월 27일로 예정돼 있으며 크리스마스 특수도 있다. 올 11월 현재 미국 로스엔젤레스(LA) 항만 인근 해상 대기 선박 수는 약 150척 내외로 추정된다.  
 

왝플레이션과 국제적 두통거리

중국발 요소수 나비효과로 한국 경제 전반이 휘청이고 있다. 사진은 요소수를 사기 위해 순서를 기다리는 사람들의 모습.[연합뉴스]
 
코로나19 사태가 촉발한 작은 수요의 변화가 세계 공급망을 크게 흔드는 현상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것이 수요 초과와 가격 급등으로 이어지고 있다고 보는 것이 정확하다. 글로벌 기업들은 코로나19 확산 초기에 수요 붕괴를 예상하고 원자재 주문과 생산량을 줄였다가 빠르게 수요가 회복되면서 지금은 수급 균형을 맞추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는 상황이다.
 
중국의 요소 수출 제한이 대한민국 뉴스를 도배했다. 국내 화물운송 분담률을 보자. 철도(1.4%), 해상운송(6.0%), 도로운송(92.6%) 순이니 화물차 운행에 없어서는 안 될 요소수 문제가 심각하게 다가온 것은 당연하다 하겠다.
 
글로벌 공급망 교란에 의한 인플레이션에 대한 새로운 정의가 등장했다. 블룸버그통신은 기존 경제 용어로는 현재의 인플레이션 현상을 정확히 설명할 수 없다며 왝플레이션(whackflation)’이란 용어를 제안했다.
 
블룸버그는 왝플레이션을 호황과 불황 사이에서 벌어지는 물가 파동으로 규정한다. 팬데믹에 타격을 입은 복잡한 경제 시스템이 안정화되는 과정에서 벌어지는 불안정 상태라는 의미를 생각해 보니 고개가 끄덕여진다. 한쪽의 공급 부족 문제가 다른 분야의 공급 부족으로 이어지고 있다.
 
강펑치(Whack)로 한방 얻어맞은 느낌이 오래갈 수 있을 지도 모르겠다는 우려가 생긴다. 불안할 때는 채찍효과(bullwhip effect)가 우려된다. 채찍효과는 공급사슬관리에서 반복적으로 발생하는 문제이다. 제품에 대한 수요정보가 공급사슬상의 참여 주체를 하나씩 거쳐서 전달될 때마다 계속 왜곡되어 수요의 변동성이 커지는 현상이 발생한다.
 
채찍을 쥔 손을 조금만 움직여도 채찍 끝의 변화는 매우 커지는 현상이 전세계적으로 발생하고 있다. 1년에 물가가 수백% 오르는 극심한 인플레이션 현상을 뜻하는 초인플레이션은 지금의 상황을 감안할 때 과도한 표현이다.
 
경기 불황 속 물가 상승을 의미하는 스태그플레이션은 ‘경기 불황’에 대한 해석의 여지로 현 상황 설명에 부적절할 수 있다. 당연히 스태그플레이션 가능성을 무시할 수 없지만 미국 경제 상황만을 보면 이 용어는 적절하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악의 상황은 지나간 것 아닐까  

 
세계적 인플레이션 우려 속에 10월 미국의 소비자물가지수(CPI)가 31년 만에 가장 큰 폭으로 올랐다. 사진은 수퍼에서 고기를 사고 있는 미 소비자들.[AFP=연합뉴스]
물가가 갑작스레 치솟은 것처럼 갑작스런 가격 하락이 뒤따를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 10월 5일 톤당 269.5달러를 웃돌던 발전용 석탄 가격은 11월 11일 40% 하락한 152달러로 급락했다. 급등세를 보였던 철광석 가격도 5월 228달러에서 11월 11일 84.5달러로 급락했다.
 
물론 여전히 이전보다 높은 수준이다. 여전히 높은 원자재 가격과 공급망 교란을 생각해서 국제통화기금(IMF)는 내년도 성장전망을 하향 조정했다. 국제 유가·원자재가격 상승과 그에 따른 인플레이션이 국제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적지 않을 것이란 판단에 따른 것이다.
 
미국과 한국 주식 시장의 디커플링(비동조화)이 지속되고 있다. 죽을 쑤는 한국 주식시장은 중국 경제의 영향을 많이 받는 모습이다. 중국의 전력난과 기업의 채무 불이행 위기 등으로 경기 불확실성이 커진 게 한국 경제에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 한국은행이 금리를 인상할 것으로 전망하는 가운데 미 연방준비제도(연준)도 테이퍼링(양적 완화 축소)에 돌입한다고 발표했다.
 
코로나 사태 극복을 위해 시작한 ‘돈 풀기’가 끝나간다는 공식 선언으로 통화정책 정상화의 전초전 의미를 띤다. 이제 시장의 관심은 연준의 제로(0) 금리의 인상 시점으로 쏠리고 있다. 연준은 신중한 입장이나, 예상보다 금리 인상 시기가 앞당겨질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미국의 신규 실업수당 청구 건수(10월 31일∼11월 6일)는 코로나19 사태 이후 최저치 기록을 5주 연속 경신했다.
 
미 노동부에 따르면 이 기간 신규 실업수당 청구 건수는 26만7000건으로, 전주보다 4000건 줄어들어 미국의 고용시장이 회복세에 돌입했다는 신호로 받아들이고 있다. 어쩌면 한미간 주식시장은 이런 경제적 상황을 반영한 것이 아닐까. 파괴적 혁신을 강조하는 서학개미의 선봉장에 서 있는 아크인베스트(ARK invest)의 캐서린 우드는 역설적으로 인플레이션을 무시한다.  
 
기술 혁신이 계속해서 물가를 크게 낮출 것이며, 디플레이션 압박으로 인해 명목 국내총생산(GDP) 성장이 놀랄 정도로 낮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녀의 역설은 적어도 단기간에는 맞지 않을 것이다. 다만 장기적으로 그녀의 주장은 옳을 것 같다. 그녀는 디플레이션이 금융시장을 움직이는 동력이 될 것이란 예상한다.
 
인플레이션 압력이 커지면서 시장이 우려하는 국채금리 상승과 같은 일은 벌어지지 않을 것으로 전망한다. 10년 만기 미국 국채수익률(금리)은 장기적으로 3%를 밑돌 것이라며 이를 통해 미국 주식시장의 밸류에이션(가치)을 끌어 올릴 것이라는 그녀의 주장을 곰곰이 생각해 본다. 그녀에 의하면 채권시장은 거품이고 미국 주식시장의 테슬라 같은 종목은 거품이 아니게 된다.
 
그녀는 국제유가 상승도 두려워할 일이 아니라고 본다. 유가가 더 오르면 석유 수요가 시들해지고 더 많은 소비자가 전기차를 선택해 원유시장은 급격한 매도세에 휘말릴 것이라고 전망한다. 그래서일까? 미 연준의 제롬 파월 의장과 클래리다 부의장은 올해 물가상승률이 연준 목표치인 2%를 상회했다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대부분의 인플레이션은 일시적"이라고 언급한다.  
 
물론 연준 내 대표적인 매파(통화긴축 선호)로 손꼽히는 제임스 불러드 세인트루이스 연방준비은행 총재는 2022년 두 차례 금리인상을 예상한다. 2차 세계대전 이후 가장 뜨거운 노동시장과 글로벌 공급망 병목으로 높은 인플레이션이 내년 말까지 지속될 것이라고 전망하기 때문이다.
 
물론 이는 아직은 소수견해이다. 지난 9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위원들의 향후 금리 전망을 보여주는 지지표인 점도표(dot plot)를 보자. 18명의 위원 중 절반인 9명은 내년까지 금리인상은 없을 것이라는 입장이다. 그러난 상황은 언제든지 바뀔 수 있다. 중국발 요소수 품귀 현상이 발생하고 있는 가운데 원자재 가격 폭등으로 마그네슘 품귀 현상이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며 글로벌 자동차 업계가 긴장하고 있다.
 
전 세계 마그네슘을 공급하는 중국이 생산 속도를 높이지 않으면 글로벌 자동차 업체들이 마그네슘 부족 사태에 직면할 가능성이 높아진다니 이래저래 글로벌 공급망 교란이 하루빨리 해결되길 손꼽아 본다.
 
 
*용어설명 : 필립스곡선이란 영국의 경제학자 필립스가 찾아낸 실증 법칙으로, 실업률이 낮으면 임금상승률이 높고 실업률이 높으면 임금상승률이 낮다는 반비례 관계를 나타낸 곡선이다. 현재는 인플레이션율과 실업률 사이에 존재하는 역의 상관관계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이를 근거로 세계 각국은 실업률이 너무 높으면 세금 감면이나 소비 촉진 그리고 이자율 인하 같은 확장 정책을 구사하고, 인플레이션이 심각할 때는 세금을 인상하고 지출을 줄이며 이자율을 높이는 수요 줄이기 정책에 나서고 있다.  
 
 
필자는 국제경제 전문가로 현재 울산 경제부시장이다. 대한민국 OECD정책센터 조세본부장, 대외경제협력관, 국제금융심의관 등을 지냈다. 저서로 [넥스트 그린 레볼루션] [한 권으로 읽는 디지털 혁명 4.0] [식탁 위의 경제학자들] [명작의 경제] [법정에 선 경제학자들] [나를 사랑하는 시간들] 등이 있다.   
 

조원경 울산 경제부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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