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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공업 고도성장’ 대신 ‘물가 안정’…공권력으로 물가 잡은 전두환

[전두환 정부 경제통치 평가②] 물가정책
물가상승률 1981년 21%→1983년 3%
가격‧임금‧추곡수매가 인상 공권력으로 막아
물가 안정되자 수출기업 가격경쟁 향상
"기업은 경쟁력 확보, 근로자 삶은 정체" 비판도

 
 
전두환 당시 대통령(가운데)이 1981년 10월 19일 옥포조선소 준공식에 참석해 김우중 대우그룹 회장(왼쪽)과 크레인 가동스위치를 누르고 있다. [중앙포토]
 
대한민국 제11·12대 대통령을 지낸 전두환 전 대통령이 향년 90세로 23일 사망했다. 노태우 전 대통령과 함께 한국 현대사를 굴곡지게 만든 장본인이어서 각계 평가가 엇갈린다. 전두환 전 대통령이 한국 경제에 남긴 명암을 짚어봤다. [편집자] 

 
전두환 정부가 5·18 민주화운동 유혈진압, 군부독재, 노동운동 탄압 등으로 정권을 이어가는 동안 국내 경제는 3저(저금리·저유가·저환율) 호황을 바탕으로 성장세를 그렸다. 이 시기 국내 경제는 성장과 함께 물가안정이 이뤄졌다.
 
전두환 집권 초기였던 1980년대 초에는 박정희 정부의 중화학공업 육성 과정에 2차 국제석유파동(오일쇼크) 충격이 겹쳐 경제적 불안이 확대되던 시기였다. 1980년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1.6%로 역성장 했으며,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28.7%에 달했다. 실업률도 5.2%였다.
 
이에 전두환 정부가 박정희 정부에서 이어받아 추진한 정책이 ‘제5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이다. 이 계획은 무리한 고성장을 추구하는 대신 안정적이고 균형 잡힌 경제·사회기반을 만들어 경제도약의 기반을 구축한다는 취지였다. 고도성장을 대신해 물가안정을 추구한 것은 김재익 당시 청와대 경제수석이 경제정책의 기조전환을 추진한데 따른 것이다.
 
 
먼저 전두환 정권은 조세제도를 바꿔 기업·산업의 경쟁력을 위축시킬 수 있는 제도적 금융지원이나 세제혜택을 없앴다. 당시 국내에서는 박정희 정부가 수출 산업과 중화학공업을 집중 육성하기 위해 시행하던 주요 공산품 가격과 서비스 요금 통제, 수입 억제가 이어지고 있었다. 낮은 금리의 수출 지원 금융과 같은 정책자금과 관치 금융제도, 각종 보조금 지급 등 지원 제도도 남아 있었다.
 
이들 제도는 여러 가지 부작용을 불러왔다. 한 예로 저금리 특혜를 적용한 수출 자금을 부동산 투기자금으로 활용하며 사회 문제를 일으켰다. 농촌 주택 건설을 지속적으로 추진하자 시멘트 수급 사정이 악화했으며, 이렇게 지은 주택은 이촌향도 현상에 장기적으로 빈집이 되기도 했다. 전두환 정부는 성장 지원 대신 기업이 경쟁력을 갖춰 물가안정으로 이어지도록 하는 정책을 폈다.
 
1984년 11월 30일 당시 전두환 대통령이 부산 진구 전포동에 있는 대양고무공업사를 시찰, 여성근로자에게서 신발제품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다. [중앙포토]
 
이 밖에도 수입자유화 정책를 시행, 수입규제를 풀어 공급비용이 상승할 여지를 줄였다. 전두환 정권은 1984년 5월 약사법·마약법 등 특별법에 의해 수입이 금지된 344개 품목의 수입자유화 조치를 시작으로 1985년 7월에는 국제경쟁력을 보유한 품목, 국내 생산이 불가능한 비경쟁 품목 등 총 235개 품목을 수입자동승인 품목군에 포함했다. 이에 국내에서 수입산 농산물이 대중적으로 보급되기도 했으며, 1986년 기준 수입자율화율은 약 92%에 달했다.
 
이 밖에도 전두환 정부는 물가상승률을 낮추기 위해 세출 예산을 동결하고 공산품 가격 인상을 억제하는 한편, 추곡수매가를 인상하지 않았으며 근로자 임금도 동결하도록 하는 정책을 추진했다. 극심한 반대에도 전두환은 공권력을 활용해 이들 정책을 밀고 나갔다.
 
 
이 같은 조치에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1981년 21.4%, 1982년 7.2%, 1983년 3.4%로 안정화하는 흐름을 보였다. 물가가 안정되자 수출 기업의 가격경쟁력이 높아져 무역수지는 적자를 줄여 나갔고, 1986년 한국 역사상 처음으로 42억 달러 흑자를 기록했다. 흑자 규모는 1988년에 114억 달러까지 늘어났다.
 
강력한 물가안정책에 오일쇼크 뒤 3저 호황기에 들어서며 경제성장률(국내총생산 성장률)도 높아졌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한국 경제성장률은 1980년 -1.6%에서 1981년 7.2%, 1982년 8.3%, 1983년 13.4%로 올랐다. 전두환 집권기(1981~1987년)에 한국의 연 평균 경제성장률은 10.2%다. 
 
그러나 전두환 정부의 물가안정책을 두고 공권력을 동원한 노동 탄압으로 임금 상승을 억제, 물가를 관리했다는 점에서 비판이 거세다. 거시경제 안정화를 바탕으로 기업은 경쟁력을 확보했지만 근로자의 삶은 나아지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에 물가안정책이 일반 대중을 위한 것이 아니라 소수의 특권층을 위한 것이라는 평가도 나온다. 
 
☞ 전두환
향년 90세로 사망한 전두환 전 대통령은 1931년 경남 합천 출생으로 1955년 육군사관학교 졸업, 베트남전에 참전하는 등 육군대장까지 지냈다. 유가족으로는 배우자 이순자(82)씨를 비롯해 아들 재국·재용·재만씨와 딸 효선씨가 있다. 1961년 박정희 육군 소장의 5·16 군사구데타 때 육사생도 지지시위를 주도하고 국가혁명위원회에 가담했다. 1979년 합동수사본부장으로 10·26 사건을 조사하면서 12·12 군사반란을 일으켜 군부를 장악, 신군부 정권을 출범시켰다. 1980년 신군부 퇴진과 계엄령 철폐를 요구하던 전남도민들을 유혈진압했다. 간선제로 1980년 11대 대통령, 1981년 12대 대통령에 취임해 1988년 2월까지 집권하며 철권통치를 휘둘렀다. 대통령직 퇴임 후엔 노태우 전 대통령과 함께 군사반란·내란죄, 광주시민 학살, 비자금 조성 등의 죄목으로 전직 대통령 예우를 박탈당했다.  
 

강필수 기자 kang.pilso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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