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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째 공회전 현대重‧대우조선 인수합병 EU에 발목 잡히나?

무산 땐 조선산업 재편 표류 예상…현대重 타격은 미미할 듯

 
 
현대중공업 울산조선소 도크. [사진 현대중공업그룹]
 
3년째 공회전 중인 현대중공업과 대우조선해양 인수합병이 유럽연합(EU)의 기업결합 심사 문턱을 넘기 어려울 것이란 우려가 커지고 있다. 양사 인수합병이 무산되면 국내 조선산업 재편도 사실상 표류할 것이란 지적이다.  
 
다만 조선업계에선 “현대중공업은 대우조선과의 인수합병이 실패로 끝나더라도 타격을 입지 않을 것”이란 분석이 많다. 현대중공업이 인수합병 전에 이미 조선‧해양 부문 중간 지주사인 한국조선해양을 설립해 지배구조 개편을 완료한 데다, 올해부터 이어진 조선업 호황 흐름이 내년에도 이어질 것으로 전망되기 때문이다. 일부에선 “현대중공업이 대우조선 인수를 위해 조 단위 자금을 투입해야 하고, 양사 인수합병으로 빚어질 노동조합 반발 등을 감안하면, 경쟁 당국 반대로 자연스럽게 인수합병이 무산되는 것이 오히려 이득”이란 주장까지 나온다.  
 
20일 조선업계 등에 따르면 EU 경쟁 당국은 내년 1월 20일에 현대중공업과 대우조선의 기업결합 심사 결과를 내놓을 것으로 예상되는데, 내부적으로 승인 거부 기류가 강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로이터 등은 양사 인수합병에 정통한 관계자들의 말을 인용해 “EU가 양사 인수합병과 관련해 독과점 거부권을 행사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현대중공업 측이 LNG(액화천연가스) 운반선 독과점 우려를 해소하기 위한 충분한 방안을 내놓지 않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이에 대해 현대중공업 측은 “조선 시장은 단순 점유율로만 지배력을 평가하기가 불가하고 특정업체의 독점이 어려운 구조”라며 “앞서 조건 없는 승인으로 최종 결정을 내렸던 3개국(카자흐스탄, 싱가포르, 중국)과 마찬가지로 유럽연합 경쟁 당국도 조건 없는 승인으로 결정을 내리는 것이 타당하다고 판단되고 이를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란 입장이다. 현대중공업이 조건부 승인을 위한 방안을 내놓지 않고 있다는 EU 측에 맞서 조건 없는 승인이 타당하다고 반박한 것이다.  
 
이에 따라 양사 인수합병이 EU 경쟁 당국의 심사를 통과하지 못하고 무산될 것이란 우려가 확산되고 있다. 동종업계의 기업 간 인수합병의 경우, 독과점 문제 등이 불거질 수 있는 각국 당국의 기업 결합 승인을 받아야 한다. 특정 국가로부터 기업 결합 승인을 받지 못하면, 이 국가 내 시장에서 사업을 영위할 수 없다. EU의 승인이 없으면 유럽 시장은 포기해야 한다는 것이다. EU가 기업 결합을 승인하지 않으면 양사 인수합병도 무산될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얘기다.  
 
현대중공업과 대우조선의 인수합병이 실패하면 국내 조선산업 재편은 사실상 물 건너갈 것이란 지적이 많다. 이동걸 KDB산업은행 회장은 지난 2019년 초에 현대중공업으로의 대우조선 매각을 밝히면서 “‘빅3’ 체제 하의 과당 경쟁, 중복 투자 등의 비효율을 제거하고 ‘빅2’ 체제로의 조선산업 재편 추진 병행이 필요했다”고 언급한 바 있다. 양사 합병에 대한 특혜 시비가 우려되는 상황에서, 조선산업 재편이라는 명분을 내세운 것이다. 당시 조선업계에서도 “조선업 불황으로 조선 3사(현대중공업, 대우조선, 삼성중공업)의 출혈 경쟁이 심화되고 있어 조선산업 재편이 불가피하다”는 의견이 많았다.  
 
대우조선해양 LNG(액화천연가스) 운반선. [사진 대우조선해양]

현대重, 잃을 것 없다는데...

조선업계에선 현대중공업과 대우조선의 인수합병이 무산돼도 현대중공업이 받는 타격은 미미할 것이란 의견이 많다. 조선업계 관계자는 “현대중공업 입장에선 양사 인수합병을 이유로 조선 지주사인 한국조선해양을 설립했고, 올해 임원 인사에서 정기선 사장이 한국조선해양 사장에 선임되는 등 지배구조 개편 및 승계 작업 등을 거의 마무리한 상황”이라며 “지배구조 개편뿐아니라 올해 현대중공업 상장으로 조 단위 자금 조달에도 성공한 상태라 양사 인수합병 무산으로 입을 수 있는 피해는 미미할 것”이라고 말했다.  
 
오히려 조선업계 일부에선 지배구조 개편, 현대중공업 상장 등을 완료한 현대중공업 입장에선 현 시점에서 1조원 이상의 자금을 투입해 대우조선을 인수하는 것이 부담일 수 있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현대중공업이 올해와 마찬가지로 내년에도 대규모 수주를 이어갈 것으로 예상되지만, 수주 산업 특성상 이들 수주가 실제 수익으로 반영되려면 최소 1년반 정도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바꿔 말하면 내년에도 그간 이어진 불황의 여파를 버텨야 한다는 얘기다. 여기에 탄소 감축 요구 등으로 조선업계도 친환경 기술 개발을 위한 대규모 투자를 피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인수합병으로 촉발될 수 있는 노사 갈등 등에 대한 문제도 있다.  
 
반면 대우조선은 이번 인수합병이 무산되면 벼랑 끝 위기에 내몰릴 가능성이 높다는 지적이 많다. 연결기준으로 올해 3분기까지 영업손실이 1조원을 넘어선 대우조선의 경우, 현대중공업과의 인수합병을 통한 대규모 자금 수혈이 절실한 상황이었다. 지난 3분기말 기준 대우조선의 단기차입금(1년 이내에 갚아야 하는 채무)만 1조319억원에 달한다. 조선업계 관계자는 “현대중공업 상장, 삼성중공업 1조원 규모 유상증자 등 조선업계는 불황에 버틸 수 있는 체력과 친환경 기술 개발을 위한 투자 등을 위해 대규모 자금 확보에 나서고 있다”며 “이들 회사와 대우조선의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에, 인수합병 무산 땐 공적 자금 수혈이 불가피하지 않을까 싶다”고 내다봤다. 

이창훈 기자 lee.changh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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