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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패권에 당했다” 현대重‧대우조선 합병 무산 진짜 이유

 

 
유럽연합(EU)이 액화천연가스(LNG) 운반선 시장 독점을 이유로 현대중공업그룹의 조선 지주사인 한국조선해양과 대우조선해양의 인수·합병을 무산시킨 가운데 14일 오전 울산시 동구 시가지 너머로 현대중공업 조선소 모습이 보이고 있다.[연합뉴스]
국내 조선업 대표 기업이면서 세계적 회사인 현대중공업과 대우조선해양의 기업결합 무산 배경에 유럽의 해운 패권주의가 작용한 것으로 볼 수 있다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양사가 합병하면 액하천연가스(LNG) 운반선 시장을 독점할 수 있다’는 게 유럽연합(EU) 경쟁당국이 합병을 반대하며 내세운 표면적인 이유다. 하지만, 조선과 해운‧철강‧금융 등 조선업과 연계한 다양한 산업의 주도권을 내주지 않겠다는 뜻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2020~2021년 대한조선학회 회장을 역임했던 김현수 인하공전 교수(조선해양)가 최근 EU가 현대중공업과 대우조선해양의 합병을 승인하지 않은 것에 대해 “조선‧해운 등 관련 산업의 주도권을 (한국에) 내주지 않기 위해 이런 판단을 내렸을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유럽 선사들은 세계 해운 시장을 장악하고 국내 조선사들의 경쟁을 이용해 저가 수주 등 이익을 극대화했는데, 양사가 합병하면 이런 전략을 시행하기 어려워지는 점을 고려했을 수 있다는 것이다. 합병 후 우리 조선사들이 협상력을 높이고 유럽이 아닌 다른 나라에 선박을 먼저 공급하면 해운 지배력까지 약화할 수 있다는 우려가 작용했을 가능성도 점쳐진다. 
 
김현수 전 대한조선학회 회장 [사진 대한조선학회]

“LNG선 독점 우려? 조선업 전체 시장 점유율 따져야”

지난 13일 EU는 현대중공업그룹의 조선 지주사인 한국조선해양(전 현대중공업)과 대우조선해양의 기업 결합을 불허했다. 액화천연가스(LNG) 운반선 시장을 합병 기업이 독점할 수 있다는 게 이유였다.  
 
당초 현대중공업그룹은 대우조선해양을 인수하기 위한 조건으로 EU·중국·싱가포르·카자흐스탄·일본·한국 6개국에 기업결합심사를 신청했다. 이 가운데 중국과 싱가포르, 카자흐스탄으로부턴 조건 없는 승인을 받았다. 그런데 EU가 승인을 거부한 것이다.  

 
해당국 승인이 없어도 그 국가로부터 수주를 받지 못할 뿐 원칙적으로 합병은 가능하다. 그러나 당초 계약 조건을 이행하지 못했고 또 조선사가 유럽에서 영업 활동을 하지 못하면 수주가 어려워지는 것을 고려하면 사실상 합병이 무산된 셈이다.  
 
세계 조선 시장에서 우리 기업의 LNG 운반선 분야 지배력은 압도적이다. 지난해 세계 LNG 운반선 발주 물량 가운데 한국조선해양·대우조선해양·삼성중공업이 수주한 물량은 90%에 육박했다. 합병을 진행 중이던 한국조선해양과 대우조선해양 두 회사가 수주한 물량은 57%로 집계됐다. 압도적인 기술과 품질, 가격 경쟁력을 보유한 한국으로 글로벌 선사들이 몰린 것이다. EU가 문제 삼은 것도 이런 부분이었다.  
 
현대중공업그룹도 “조선업은 입찰 승패에 따라 점유율이 크게 변동하는 산업”이라며 “점유율만으로 섣불리 독과점을 판단해선 안 된다고 EU에 의견을 제시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밝혔다.

 
김현수 교수는 이에 대해 “조선 시장 전체의 점유율이 아니라 일부분에 대한 점유율을 트집 잡은 것은 문제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세계 조선 시장에서 한국 기업의 수주량은 37%로 중국(41%)에 이어 2위 수준이었다. 김 교수는 “유럽 컨테이너 선사도 세계 해운 시장의 절반 이상을 장악하면서 운임 등을 결정하는데 같은 논리라면 이 역시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는 “우리 조선사들끼리 경쟁하며 피해를 감수하기보다 합병을 통한 메가 조선사를 만드는 게 조선뿐 아니라 해운‧철강‧금융 등 다양한 분야로 파급효과를 낼 수 있는 방법”이라고 강조했다. 선박을 건조하는 과정에서 철강 등 기자재 분야 산업이 활성화하고, 초기에 막대한 자금을 빌려주는 은행도 수익을 올릴 수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 “해운사에 선박을 빠르게 공급하는 방식으로 해운 물량까지 확보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질 좋은 일자리도 따라서 늘어나게 된다.  

 
김 교수는 “현재 LNG 운반선을 제외한 벌크선 등 분야에서 중국이 저가 수주를 통해 지배력을 확보하고 있지만, 언제까지 계속되지는 않을 것”이라며 “그때를 대비해 조선사뿐 아니라 해운‧금융‧철강 등 다양한 산업이 유기적으로 이어질 수 있는 플랫폼을 만들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유럽연합(EU)이 액화천연가스(LNG) 운반선 시장 독점을 이유로 현대중공업그룹의 조선 지주사인 한국조선해양과 대우조선해양의 인수·합병을 무산시킨 가운데 14일 오전 울산시 동구 시가지 너머로 현대중공업 조선소 모습이 보이고 있다.[연합뉴스]

13조 세금 들어간 대우조선, 정부 “민영화 필요”  

이번 합병 무산으로 메가 조선사 탄생이 미뤄진 만큼 한국 조선산업은 다시 내부 경쟁을 피할 수 없게 됐다. 13조원에 달하는 세금이 투입된 대우조선해양도 다시 채권단 관리체제로 돌아간다. 현재 대우조선해양의 최대주주는 산업은행(산은)으로 55.7%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당초 산은은 현대중공업그룹과의 본계약에 따라 합병이 성사되면 대우조선 지분 전량을 조선지주사인 한국조선해양에 넘기고, 유상증자에 따른 신주를 받기로 돼 있었다. 합병이 완료되면 18%의 지분을 받아 2대 주주로 남는다는 계획이었다. 하지만 합병 무산으로 대우조선해양은 새 주인을 찾아야 하는 상황이다.  
 
기획재정부와 외교부‧산업통상자원부‧금융위원회는 보도자료를 통해 “대우조선의 근본적 정상화를 위해 ‘민간 주인 찾기’가 필요하다는 것이 정부의 일관입장”이라며 “대주주인 산업은행 중심으로 대우조선 경쟁력 강화방안도 조속한 시일 내에 마련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병희 기자 yi.byeongh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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