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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제주’의 추락…중국에 발등찍힌 LG생건 ‘넥스트’ 안보인다

‘4분기 어닝쇼크’ 전망…10일째 주가 하락세
공시 규정 위반으로 ‘불성실공시법인’ 예고
매출 절반 화장품 부문, 이중 30%가 면세 매출
‘후’ 의존도 76%…중국 특수 빠지면서 위기론↑

 
 
서울 광화문에 있는 LG생활건강 사옥 전경. [중앙포토]
 
‘뷰티업계 1위’ LG생활건강의 자존심이 구겨지고 있다. 지난주 ‘100만 황제주’ 자리에서 밀려나더니 주가는 95만원대에서 소폭의 등락을 보이며 횡보하고 있다. 증권가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지난해 4분기 어닝쇼크 가능성을 전망하면서다. LG생활건강의 성장판이나 다름없는 중국 따이궁(보따리상) 매출이 줄어들면서 면세 매출 하락으로 이어진 게 뼈아팠다.  
 
전망도 밝지 않다. 높은 중국 의존도와 뷰티 브랜드 ‘후’를 이을 차세대 브랜드를 만들어 내지 못한 전략적 실패라는 분석이 나온다. 여기에 공정공시의무 위반 의혹으로 불성실공시법인 지정 예고까지 되며 악재가 겹친 상황이다.  
 

하루 만에 2조3000억원 증발…예견된 리스크

LG생활건강의 심상치 않은 분위기는 주가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시작점은 지난 10일 주식시장 개시 전이다. 국내 일부 증권사들은 이날 LG생활건강의 지난해 4분기 실적이 전망치를 밑돌았다며 일제히 목표 주가를 하향 조정했다. 주 원인으론 중국 내 화장품 소비 침체와 면세 매출 감소가 꼽혔다. 면세점 큰손 따이공들이 럭셔리 브랜드 후, 숨 등 주요 화장품에 대해 40% 가까운 할인을 요구했지만 브랜드 가치 훼손을 우려한 LG생활건강이 이를 반려한 것이 면세 매출 하락으로 이어졌다는 분석이다. 손실 매출액은 약 1000억원으로 추정된다. 
 
4분기 어닝쇼크 전망이 나오면서 LG생활건강의 주가는 13% 넘게 하락해 100만원 아래로 떨어졌다. 상장 후 최대 낙폭이자, 4년3개월 만에 두 자릿수 경험이다. 황제주로 꼽히던 LG생활건강 주가는 지난 2017년 10월12일(97만5000원) 이후 한번도 100만원을 밑돈 적이 없다.  
 
 
이날 하루 빠진 LG생활건강의 시가총액은 2조3000억원에 달했다. 95만6000원으로 내려간 주가는 다음날인 11일 94만8000원으로 -0.84% 하락했고, 13일엔 종가 기준 전일보다 2.74% 오른 97만5000원을 기록하면서 오름세를 보이나 싶더니 17일 다시 95만7000원으로 전 거래일 대비 -1.75% 하락 마감했다. 18일엔 전일보다 0.42% 하락한 95만3000원에 장 마감했고 19일엔 소폭 반등한 95만5000원에 거래를 마쳤다. 
 
이번 주 초반 하락세는 17일 제기된 공정공시 위반 의혹이 반영된 것으로 분석된다. LG생활건강이 주가에 영향을 미칠 4분기 실적 내용을 일부 증권사들에 미리 전달했다는 게 골자다. 공시규정에 따르면 상장사들은 매출액이나 영업손익 등에 대한 전망이나 예측 내용을 거래소에 먼저 신고해야 한다. 실적 발표 전 ‘결산실적 공시예고’ 등의 안내공시도 이뤄져야 한다. 하지만 이같은 신고나 관련 공시 없이 증권사들이 실적 내용을 바탕으로 일제히 목표가를 내리면서 LG생활건강이 유가증권시장 공시규정을 위반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LG생활건강 측은 해명공시를 내고 “4분기 전체 실적(매출·영업이익)에 대한 가이드 제공은 없었다”면서도 “면세점 채널에 한해 12월 면세점 매출이 일시적으로 거의 일어나지 않았다는 것을 애널리스트들에게 전달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중국 상하이 샹그릴라호텔에서 열린 ‘2019 후 궁중연향 in 상하이’ 행사에서 참석자들이 럭셔리 화장품 브랜드 ‘후’의 제품을 살펴보고 있다. [사진 LG생활건강]
 
이 같은 해명을 내놨지만 의혹은 더 커지는 분위기다. 한국거래소도 LG생활건강에 대해 불성실공시법인 지정을 예고했다. 면세 매출에 대한 정보 공개가 실질적인 정보를 제공한 것으로 볼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실제 LG생활건강의 전체 매출 50%는 화장품 부문에서 나오고 이 중 30%는 면세점 매출에서 발생하고 있다. 
 
증권가 전망치에서 나온 LG생활건강의 4분기 매출은 약 2조원. 이중 화장품 매출은 1조2000억원 안팎, 면세점 발생 매출은 4200억원 내외다. 비중에 빗대 볼 때 면세 매출 공개가 실적에 크게 영향을 미치는 구조이기 때문에 한국거래소도 LG생활건강의 행위를 공정공시 불이행으로 판단한 것으로 보여진다. 거래소는 다음달 쯤 LG생활건강에 대한 불성실공시법인 지정을 통보할 것으로 알려졌다. 
 
LG생활건강 측은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LG생활건강 관계자는 “IR팀과 애널리스트들은 수시로 커뮤니케이션을 하고 있고, 이번에도 실적시즌을 앞두고 문의가 있어 해명공시에 있는 내용을 얘기한 것 뿐”이라면서 “증권가이드라인을 참고해 대응했지만 거래소 결과를 지켜봐야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넥스트 없는 브랜드와 시장…위기감 고조  

화두가 된 면세 매출 하락은 ‘넥스트’가 없는 LG생활건강에 대한 위기감으로도 읽힌다. 시장과 브랜드에 대한 한계가 여실히 드러났다는 이유에서다. 따이궁 영업을 통한 면세 매출에 의존하는 구조와 럭셔리 화장품 브랜드 ‘후’ 브랜드로만 매출 드라이브를 걸면서 차기 브랜드와 시장을 키워내지 못했다는 지적이다. 
 
실제 지난해 1~3분기 화장품 평균 매출 1조99억원 중 해외에서 거두는 매출이 약 50%, 이 중 약 50% 매출이 중국 시장에서 나온다. 중국 시장 매출 2500억원 가운데 ‘후’ 브랜드 단일 매출은 1900억원으로 중국 내 매출 76%를 장악하고 있다. 후를 잇는 숨 매출은 19억원으로 후의 100분의1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
 
LG생활건강의 후 제품. [사진 LG생활건강]

업계에선 “터질 게 터졌다”는 분위기다. 최근 2~3년 사이에 면세점과 따이공 영업을 통해 급성장한 LG생활건강의 ‘뷰티 매직’이 그리 오래 가지 못 할 것이라는 예견은 이미 업계에 팽배했던 상황이다. 뷰티업계 관계자는 “예상보다 성장주기가 길어져 진짜 매직이 있는지 의아하긴 했다”면서도 “중국 특수 거품이 빠지면 추락할 수밖에 없는 구조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지금의 위기는) 자연스러운 수순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확실한 차선책 없이는 반전을 이루기 쉽지 않을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그동안 주요 유통 채널이 국내 면세에서 중국 현지로 이전됐는데 갈수록 현지 상황은 어려워지고 있다. 면세는 인당 구매액 하락 등 중국 규제 강화로 따이궁 영업이 위축되고 있고, 중국 현지에선 소비 시장 침체와 브랜드 경쟁 심화로 소비 자체가 주춤해지는 추세다. 
 
LG생활건강 관계자는 “후 매출 비중이 높긴 하지만 중국에서 북미로 시장을 확대하고 있고 차기 제품개발과 디지털 전환에 대한 노력도 하고 있다”면서 “중국시장 규제는 늘 있었고 그에 맞춰 대비해왔기 때문에 한분기 평가만으론 전망할 순 없다”고 말했다.
 
LG생활건강 다른 관계자도 “후가 장악하고 있는 중국 내 럭셔리 시장 소비자들은 아직까지도 외국 브랜드에 대한 선호도가 높다”면서 “4분기 매출 전망은 과도한 연말 프로모션을 요구해 브랜드 관리를 위해 포기한 매출이 반영된 것으로 일시적으로 보여진다”고 분석했다.

김설아 기자 kim.seolah@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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