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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쿠쿠 직원 자살 뒤 드러난 운영 실체…‘대리 결재’ 빈번

2017년 쿠쿠전자·홈시스·홀딩스로 인적·물적분할
타 소속 직원과 한 팀 소속되는 등 뒤죽박죽 인사
숨진 직원은 ‘전자’ 소속이지만 ‘홈시스’에서 일해
쿠쿠 측 “상품별로 팀을 운영하는 기업 특성”

 
 
경상남도 양산에 위치한 쿠쿠 공장. [사진 쿠쿠]
 
가전업체 쿠쿠의 직장 내 괴롭힘 의혹 관련 자살 사건이 발생한 이후, 쿠쿠의 내부 운영체계가 뒤죽박죽이었던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지난 5일 경기도 시흥시 쿠쿠 사택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은 직원의 소속은 ‘쿠쿠전자’였지만 그는 최근까지 ‘쿠쿠홈시스’의 팀에서 근무해 왔다. 이번 직장 내 괴롭힘 의혹 사건에서 조사를 받는 직원과 같은 팀이다. 이 과정에서 대리 결재 등 비상식적인 업무가 진행됐다는 것이 제보자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분할로 나눠진 3개사…임직원 업무분리 안 돼  

쿠쿠는 지난 2017년 인적, 물적분할로 회사를 3개로 나눴다. 렌털사업을 중심으로 하는 ‘쿠쿠홈시스’, 가전 제조를 중심으로 하는 ‘쿠쿠전자’, 지주사인 ‘쿠쿠홀딩스’다. 하지만 당시 쿠쿠 임직원들의 업무 분리는 엉성하게 진행됐고, 소속 법인이 다른 두 회사 직원들이 한 팀에 섞여서 근무하는 일들이 비일비재했다는 전언이다.
 
이러한 방식의 업무형태는 업무 지시나 결재 등에서 또 다른 문제를 야기했다. 팀장과 팀원의 소속이 다르기 때문에 팀장이 업무 관련 결재를 하려면 팀원 원소속의 임직원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공유 받아 진행해야 했다. 이번 사건의 고인은 쿠쿠전자 소속으로 조직도상으로는 경상남도 양산에 근무하는 쿠쿠전자 소속 팀장에게 결재를 받아야 맞지만, 지난 2021년 1월부로 시흥에 위치한 쿠쿠홈시스 팀에서 근무하면서 쿠쿠홈시스 팀장의 대리 결재를 받아온 것으로 확인됐다. 표면상으로는 쿠쿠전자 상사로부터 결재받은 것으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쿠쿠홈시스 상사가 쿠쿠전자 상사의 아이디로 접속해 결재한 것이다.   

 
이는 소속 직원이 다른 회사에서 근무할 수 있게끔 하는 파견 조치 등이 없었기 때문에 발생했다. 근무는 다른 회사에서 하지만 업무결재 및 조직도 변동은 전혀 없었기 때문에 대리 결재가 이뤄진 것이다. 
 

직원들끼리 인트라넷 아이디·비번 공유…대리 결재로

쿠쿠는 2017년 전자, 홈시스, 홀딩스 등 세 개의 회사로 분할했다. [사진 쿠쿠]
 
[이코노미스트]와 연락한 쿠쿠 임직원 제보자 A씨에 따르면 이같이 혼재된 임직원 운영체제로 직원들끼리 사내 인트라넷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공유하는 것이 당연시됐다. A씨는 “1년에 한 번 업무 관련 만족도 또는 개인신상문제 등을 적을 수 있는 자기신고서 제도가 있는데 타인이 자신의 아이디로 들어와서 언제든 열람하고 결재하는 상황에서 고인은 직장 내 괴롭힘, 어려움 등을 제대로 작성할 수 없어 괴로워했다”며 “회사가 분할은 했지만, 조직은 분할 전으로 운영됐기 때문에 실제 결재권, 인사권은 타 소속인 팀장이 지니고 있었다”고 털어놓았다. 이 같은 사내 인트라넷 아이디 공유는 급여 정보 등 개인의 민감한 신상 정보 등이 모두 공유된다는 문제도 있다.
 
또 다른 제보자 B씨는 “고인은 쿠쿠전자 소속으로 원래는 양산에서 근무했다”며 “쿠쿠홈시스 팀으로 발령이 나면서 경기도 시흥으로 올라왔는데 고인 가족 모두 양산 근처에 거주하고 있기 때문에 혼자 사택에서 지냈다”고 말했다. 또 “고인은 어려움을 겪었지만 이를 일하는 시흥에서도, 실제 소속인 양산에도 털어놓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고 강조했다.  
 
전문가들은 ‘잘못된 운영체계’라고 입을 모은다. 김대종 세종대학교 교수(경영학)는 “두 회사는 서로 다른 기업”이라며 “분할 진행시 직원들의 승계 및 소속 구분은 당연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 “소속이 달라 대리 결재를 하는 등의 사안은 불법"이라며 "정도경영, 즉 법과 질서에 맞게 제대로 운영됐다면 이 같은 안타까운 죽음을 막을 수도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소속과 업무환경 등이 얽혀있는 상황 속에서 직원들 간 소통이 힘든 건 당연한 일이라는 설명이다.  
 

쿠쿠 측 “기업 특성상 타 소속 직원 혼재”  

쿠쿠 측은 ‘기업 특성상 어쩔 수 없이 소속 직원이 섞여 있다’고 답했다. 쿠쿠 관계자는 “양산과 시흥에 쿠쿠전자, 쿠쿠홈시스 직원들이 모두 근무한다”며 “팀 안에서도 밥솥, 정수기 등 상품별로 나뉘어 있어 쿠쿠전자, 쿠쿠홈시스 직원들이 모두 필요하기 때문”이라고 해명했다.
 
고인 관련 결재사항을 타 소속인 상사가 대신 한 것에 대해서 쿠쿠 관계자는 “고인 업무와 관련된 결재는 양산에서 일하고 있는 쿠쿠전자 소속 팀장이 한 것으로 확인된다”면서도 “고인이 실질적으로 쿠쿠홈시스 일을 하면서 쿠쿠홈시스 소속 팀장의 업무지시를 받는 등 타 소속 팀장의 관여를 받은 것은 사실이다”고 말했다. 또 “진상조사위원회가 철저하게 관련 사안을 조사하고 있다”며 “내부적으로 이번 사건을 엄중하게 여기고 있다”고 설명했다.  
 
한편 현재 직장 내 괴롭힘 조사를 받는 쿠쿠홈시스 소속 임직원은 지난 8일부터 직무정지 조치 중이다.  
 
 
하지만 [이코노미스트]가 고인과 같은 팀이었던 임직원을 취재한 결과, 같은 팀 직원들은 9일 기준으로 사건과 관련해 조사를 받은 적이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제보자 C씨는 "진상조사위원회가 마련됐다는 공고가 떴고 할 말이 있는 직원이 있으면 자원해서 말해 달라는 공지가 올라 왔을뿐, 정작 해당 사건의 팀 직원 대상으로는 조사가 이뤄지고 있지 않다"며 "정확한 조사가 이뤄지고 있는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쿠쿠 측은 "8일 진상조사위원회 관련 공지를 올렸고 현재까지는 지원자와 추천자를 대상으로 조사를 진행하고 있다"며 "차후 해당 팀 직원들도 당연히 조사할 것이고 고인의 억울함을 확실하게 풀고자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주변에 이런 어려움을 겪는 가족·지인이 있을 경우 자살 예방 핫라인 1577-0199, 희망의 전화 129, 생명의 전화 1588-9191, 청소년 전화 1388 등에서 24시간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라예진 기자 raye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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