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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 거물급 인사’ 스카우트 경쟁하는 재계…그 속내는?

미국 정계·의회, 정부·기관 대상 대관 업무 필요성 증대
워싱턴 정계 잔뼈 굵은 인사 통해 현지 대응력 높여

 
 
백악관 앞에서 연설하고 있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AP=연합뉴스]
 
국내 주요 기업들의 미국 정·관계 인사 영입이 가속화되고 있다. 영입된 인사들의 면면은 우리나라에도 잘 알려져 있을 정도로 미국 행정부와 백악관에 잔뼈가 굵은 인물들이다.  
 
국내 기업들의 ‘워싱턴 인맥’ 잡기에 적극적인 이유는 미국 정부의 정책 변화에 기민하게 대응하기 위해서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시절부터 시작한 무역분쟁에 이어 조 바이든 행정부에서도 ‘경제 안보’를 중시하자 저마다 불확실성을 최소화하기 위한 조치인 것이다.  
 

LG는 전 백악관 부비서실장, 삼성은 전 주한 미 대사 영입

최근 재계에 따르면 LG는 조만간 워싱턴사무소를 개소할 예정이다. 4대 그룹 가운데 유일하게 워싱턴에 사무소를 두지 않았던 LG가 미국 정부와 의회 등을 상대로 대관 업무를 강화하는 셈이다. LG는 개소하는 워싱턴사무소 공동소장에 조 헤이긴 전 백악관 부비서실장을 낙점했다. 조 헤이긴은 한국에서 파견된 임병대 전무와 함께 워싱턴사무소를 이끌 예정이다. 
 
LG그룹 워싱턴사무소 공동소장에 부임하는 조 헤이긴 전 백악관 부비서실장. [로이터=연합뉴스]
 
40년 넘게 백악관 안팎에서 일한 조 헤이긴은 워싱턴 인맥이 폭넓다. 그는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 등 4명의 공화당 출신 대통령 및 부통령을 백악관에서 보좌했다. 특히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첫 부비서실장으로 지내며 2018년 6월 싱가포르에서 열린 북·미 정상회담 준비과정을 총괄하는 막중한 임무를 맡기도 했다.  
 
‘공화당 맨’이지만 민주당에서의 관계도 좋다는 평가를 받는 조 헤이긴은 미국 정계와 의회, 정부와 기관 등을 대상으로 대외협력 관련 업무를 수행할 예정이다.
 
삼성전자도 최근 ‘워싱턴 거물’을 영입했다. 마크 리퍼트 전 주한 미국대사를 북미법인 대외협력팀장 겸 본사 부사장에 임명한 것이다. 리퍼트 전 대사는 미국 민주당과의 관계가 긴밀하다. 2005년 당시 버락 오바마 상원의원의 외교보좌관을 지냈고, 오바마 행정부가 들어서자 국방부 아태 담당 차관보, 국방장관 비서실장을 역임했다. 2014년부터 2017년 1월까지는 주한 미국대사를 지냈다.
 
삼성·LG에 앞서 포스코는 이미 지난해 9월 스티븐 비건 전 국무부 부장관 겸 대북특별대표를 포스코아메리카 고문으로 선임했다. 비건 전 부장관과 트럼프 행정부에서 손발을 맞췄던 알렉스 웡 전 대북협상특별부대표(동아시아태평양 담당 부차관보)는 지난해 8월부터 쿠팡 워싱턴사무소 총괄 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삼성전자 북미법인 대외협력팀장 겸 본사 부사장에 임명된 마크 리퍼트 전 주한 미국대사. [중앙포토]
 
국내 주요 기업들이 미국 전직 고위 관료 모시기 전쟁에 나선 이유는 미국에서의 사업 규모가 점차 커지고 있고, 미국 정부가 자국 중심으로 빠르게 정책 기조(America First)를 바꾸고 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조 헤이긴을 영입한 LG는 미국 완성차업체 제너럴모터스(GM)와 손잡고 미국 오하이오주에 제1공장(35GWh 이상), 테네시주에 제2공장(35GWh 이상)을 건설 중이다. 지난달에는 미시간주에 제3합작공장 설립 계획을 발표했고 제4공장 증설 가능성도 높은 상황이다.  
 
삼성전자는 2024년 완공을 목표로 미 텍사스주 테일러시에170억 달러(약 20조원)를 들여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제2공장을 짓기로 했다.  
 
포스코그룹은 최근 2차전지소재 사업 확장에 따라 미국을 포함한 다수의 글로벌 신규 투자를 검토하고 있다. 포스코케미칼은 미국과 유럽 등에 양극재 공급망을 갖춰 생산량을 2030년까지 40만 톤(t)으로 늘릴 계획이다.  
 

워싱턴사무소 낸 한국기업 10곳 넘어  

미국이 한국 기업의 적극적인 대미 투자를 요구하고 있는 가운데 다양한 사업을 진행하기 위해서는 미국 행정부와의 조율은 필수적이다. 특히 보조금과 세금 감면 등 혜택을 받기 위해서도 원활한 소통이 필요한 상황이다. 과거보다 적극적으로 워싱턴 정계 및 관가와의 접촉을 늘릴 필요성이 높아진 것이다.  
 
실제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지난해 11월 미국 출장 당시 워싱턴DC를 찾아 백악관 고위 관계자 및 미 의회 핵심 의원들을 잇달아 만나 연방정부 차원의 반도체 기업 대상 인센티브 부여 등의 지원책을 논의하기도 했다.  
 
그 결과 삼성전자는 지난 7일 통과한 ‘미국경쟁법안’의 혜택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미국경쟁법안은 미국에 본사를 두고 있지 않은 글로벌 반도체 기업도 미국 내에 제조 시설을 가동하고 있다면 약 62조원 규모의 연방정부 보조금을 지원받을 수 있는 내용이 골자다. 
 
지난해 11월, 미국 텍사스 주지사 관저에서 존 코닌 상원의원(왼쪽부터), 그랙 애벗 텍사스 주지사, 김기남 삼성전자 부회장이 기자회견을 열고 삼성전자의 미국 내 신규 파운드리 반도체 생산라인 건설 부지로 텍사스주 테일러시를 최종 선정했다고 밝히고 있다. [사진 삼성전자]
 
트럼프 정부에서 시작한 미·중 무역 갈등이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라는 점에서도 인맥이 탄탄한 전직 고위 관료들을 활용한 정보 수집 등의 대관 업무 필요성도 더욱 커지고 있다.  
 
국내 기업이 주력하고 있는 반도체·배터리 등 핵심 소재와 관련해 미국이 중국을 공급망에서 배제하는 등 각종 입법·규제·제재와 수출통제가 이뤄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미 행정부의 정책 변화에 발 빠르게 대응하기 위해서는 미국 정계에 정통한 인사들의 활약이 절실한 셈이다.  
 
한편 미국 워싱턴에 사무소를 낸 우리나라 대기업 수는 10곳을 넘었다. 삼성전자·현대자동차·기아·SK그룹·SK하이닉스·포스코·한화디펜스·LIG넥스원·한국항공우주산업(KAI) 등에 이어 LG그룹과 현대제철이 조만간 사무실을 개소한다. CJ그룹은 워싱턴DC 사무소를 설립해 뉴저지법인이 맡아 오던 대관 업무를 이관했다.  
 

허인회 기자 heo.inho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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