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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권거래세 대신 ‘주식양도세 폐지’ 내건 尹…재벌 감세 노리나

주식시장 큰손 이탈 방지 통해 개미투자자 보호 명분
정작 양도소득액 상위 10%가 전체 양도세 90% 이상 납부
상속세·승계자금 필요한 대기업 총수 일가 수혜 입어
‘여소야대’ 국회 된다 해도 개정안 통과 가능성 작아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가 지난달 25일 제20대 대통령선거 후보자 2차 정치분야 방송토론회에서 토론 준비를 하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삼성 이재용 일가 위한 감세법 아닌가.”(심상정 정의당 대선후보) 
“개미들을 위한 것이다.”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
 
증권거래세 폐지에서 주식 양도소득세(주식양도세) 폐지로 선회한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의 공약을 놓고 지적이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다. 앞서 윤 후보는 지난 1월 자신의 SNS를 통해 ‘주식양도세 폐지’를 공약으로 발표했다. 지난해 12월 증권거래세 폐지를 공약으로 내세운 지 한 달 만에 공약을 뒤집은 셈이다.  
 
윤 후보의 공약 선회는 최근 주가 하락 우려가 커지면서 신음하는 개미투자자들의 표심을 겨냥한 것으로 풀이된다. 하지만 10억원 이상 대주주가 보유한 주식도 과세를 폐지한다고 밝히면서 주식 부자를 넘어 대기업 총수 일가가 막대한 감세 혜택을 받을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2번의 대선 토론회에서 못 박은 ‘주식양도세 폐지’  

1000만 개미투자자를 의식해서인지 ‘주식양도세 폐지’는 지난 2월 진행된 대선후보 토론회에서 두 번이나 언급됐다. 지난달 3일 열린 방송 3사 합동 대선 토론에서 윤 후보는 “우리나라 증권시장이 좋지 않아서 당분간 주식양도세를 폐지하고 증권거래세는 현행으로 돌리겠다”고 말했다. ‘공약을 뒤집은 것이냐’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의 질문에도 윤 후보는 “뒤집은 거다”라고 말했다. 공약을 번복한 이유에 대해서는 “개미들이 원해서다. 주식시장에 큰손이 들어와야 한다”고 답했다.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가 지난 1월 27일 주식 양도소득세 폐지를 공약했다. [페이스북 캡처]
 
‘주식양도세 폐지’는 지난달 21일 열린 대선후보 토론회에서도 등장했다. 당시 심상정 정의당 대선후보는 “지금 양도세를 폐지하려는 이유가 뭔지 저의가 의심된다”고 지적하자 윤 후보는 “지금은 증시가 어려워 일반투자자를 보호하기 위한 부득이한 조치”라고 답했다.
 
윤 후보 측은 주가 하락장에서 개미투자자들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조치라는 설명이다. 원희룡 국민의힘 선대본부 정책본부장은 “양도세를 물림으로써 투자자들이 외국시장으로 빠져나갈 때 오히려 그 피해는 한국 증시 주가의 추락을 가속화하고 개미투자자들이 모든 막판 덤터기를 쓰게 된다”라고도 강조했다.  
 
그러면서 “개미투자자들을 보호하기 위해서 대주주 지분율, 보유 금액 관계없이 양도세를 전면 폐지한다는 게 윤 후보의 입장”이라고 말했다. 양도세 폐지를 통해 주식시장 큰손들의 이탈을 방지하는 것이 개미투자자들을 위한 보호 조치라는 얘기다.  
 

‘주식부자’ 상위 10%, 주식양도세 90% 이상 차지  

현행 주식 양도세는 현재 보유 지분율이 코스피 종목 1%(코스닥은 2%) 이상이거나 종목별 보유 총액이 10억원 이상 대주주에게만 20~30% 세율로 부과되고 있다. 그러나 내년부터는 소액주주도 양도세 과세 대상에 포함된다. 정부는 지난 2020년 세법을 개정해 2023년부터 주식은 물론 채권·펀드·파생 상품 등 모든 금융 투자 상품에서 발생한 소득을 ‘금융 투자 소득’으로 합쳐서 세금을 매기기로 한 데 따라서다. 정부는 연간 5000만원 이상의 수익을 낼 경우 20%, 연간 3억원 초과의 수익을 낼 경우 25%의 양도세를 2023년부터 부과할 계획이다.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왼쪽)와 심상정 정의당 대선후보가 지난달 21일 제20대 대통령선거 후보 초청 1차 토론회 시작에 앞서 인사하고 있다. [공동취재]
 
양도세가 폐지되면 당장 내년부터 과세 대상에 포함될 소액 투자자들의 부담은 덜어진다. 문제는 현재 세금을 내는 대주주도 혜택을 본다는 것이다. 특히 전체 주식양도세의 90% 이상을 이른바 주식 부자인 상위 10%가 납부한다는 점에서 소수에게 더 큰 이익을 가져다준다는 비판이다.  
 
장혜영 정의당 의원실이 국세청에서 받은 2017~2020년 주식양도소득세 100분위 자료(상위 0.1%는 1000분위)를 분석한 결과 해당 기간 연평균 주식 양도소득 금액은 17조2214억원, 납부한 주식 양도세는 3조4706억원이었다. 실효세율은 19.8% 수준이었다. 이 가운데 양도소득액 상위 10%가 벌어들인 주식 양도소득액은 16조623억원이었다. 전체 주식양도소득의 93.2% 수준이다.  
 
양도소득액 상위 0.1%의 경우, 거래 1건당 평균 615억원의 양도소득이 발생했다. 이에 대해 126억원(실효세율 20.6%)을 납부했다. 이들이 납부하는 양도소득세는 전체의 37.6%였다. 상위 1%로 넓히면 이들의 건당 양도소득금액은 117억 5583만원, 그에 따른 양도소득세는 24억 1265만원(실효세율 20.5%)이었다. 전체 양도소득세의 70.8%가량을 납부했다. 사실상 양도소득세 폐지는 개미투자자가 아닌 큰손들을 위한 조치로 볼 수 있다.  
 

‘주식 시장 활성화’ 명분 속 혜택은 재벌들만  

더구나 상당수 대주주가 대기업 총수 일가라는 점에서 ‘재벌 감세’라는 비판도 제기된다. 최근 들어 대기업 일가들의 주식 매각이 부쩍 늘고 있기 때문이다.  
 
홍라희 전 리움미술관장 등 삼성 일가는 지난해 10월, 오는 2026년까지 납부해야 하는 12조원대의 상속세 마련을 위해 먼저 2조원 규모의 주식을 팔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주식양도세가 폐지된다면 수백억원에서 수천억원대의 세금을 아낄 수 있는 것이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지난달 24일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회계 부정·부당 합병' 관련 1심 속행 공판에 출석하기 위해 법정으로 향하고 있다. [공동취재]
 
사실 주식양도세는 삼성 일가로부터 비롯됐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1995년 고 이건희 회장에게 60억원을 증여받고 증여세 16억원을 납부한 뒤 남은 44억원으로 당시 비상장 계열사였던 삼성에스원과 삼성엔지니어링 등의 주식을 사들였다. 3년 뒤 해당 주식이 상장되며 이 부회장은 527억원의 막대한 시세차익을 남겼다. 당시 세법이 상장주식 양도차익에 대해 과세하지 않아 이 부회장이 내는 세금은 없었다. 이에 당국이 1999년부터 상장주식이라도 대주주의 대량매매에는 세금을 부과하도록 법을 개정하면 주식양도세가 부과됐다. 삼성 일가로 인해 탄생한 주식양도세가 폐지되면 삼성 일가가 혜택을 보게 되는 상황이 펼쳐질 수도 있다.  
 

세법 개정안 추진해도 국회 문턱 넘기 어려워  

승계자금이 필요한 현대차·CJ 등의 대기업도 수혜를 입을 수 있다. 현대차그룹의 지주사 격인 현대모비스 지분 확대가 절실한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은 현재 현대엔지니어링 상장 후 매각을 통해 4000억원대의 실탄을 확보하려 하고 있다. 이선호 CJ제일제당 상무 역시 CJ올리브영을 상장시킨 후 보유 지분을 처분한 자금을 토대로 CJ지주 지분을 확대할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하다.
 
지난 1월,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이 미국 네바다주 라스베이거스 만달레이베이 호텔에서 열린 프레스 컨퍼런스를 마친 뒤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정치권에서는 실현 가능성이 떨어진다는 지적도 나온다. ‘주식양도세’ 폐지 시나리오를 예상해보면 오는 5월 새 정부 출범 이후 내년도 세법 개정안(정부안)에 해당 내용을 담는 것이 가능하다. 이후 국회 입법이 뒷받침돼야 한다.  
 
만약 윤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된다면 ‘여소야대’ 국회 상황이 펼쳐진다. 여야의 합의가 있어야 국회 문턱을 넘을 수 있다는 얘기다. 하지만 172석의 민주당은 물론 정의당 등 범진보 계열 정당의 협조를 구하기는 쉽지 않을 전망이다. 윤 후보의 주장처럼 개미투자자들의 표를 겨냥해 공약(公約)을 뒤집었지만 결국 공약(空約)이 될 가능성이 작지 않은 셈이다.  

허인회 기자 heo.inho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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