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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대면시대 역행? “오히려 좋아”…저녁까지 여는 KB국민은행을 가다 [르포]

지난달 14일부터 국민은행 9 To 6 뱅크 전국 72곳 확대
고객 긍정 반응 많아…“방문시간 제약 줄어 창구 가기 편해”
직원 반응도 호평…“자녀 등원·운동 등 오전 시간 활용 만족”





KB국민은행 남대문종합금융센터 전경. 출입문 앞에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영업한다는 안내문이 적혀있다. 윤형준 기자
“무슨 업무를 도와드릴까요?”
 
지난 8일 오후 4시 30분, ‘은행’에서 들을 수 없는 말이 들렸다. 평소라면 이 시간에는 현금 자동 입출금기(ATM) 돌아가는 소리만 퍼지고, 창구는 철문으로 굳게 닫혀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KB국민은행 남대문종합금융센터는 달랐다. ‘저희 지점은 저녁 6시까지 영업합니다’라는 문구가 손님들을 반기고 있었다. 올해 들어 KB국민은행 일부 영업점이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여는 ‘9 To 6 뱅크’를 시작했기 때문이다. 지난달 14일에는 대상 영업점을 전국 72곳으로 확대했다. 남대문종합금융센터도 그 중 하나다.
 
8일 오후 4시 30분경 KB국민은행 남대문종합금융센터 영업장 전경. 일반적인 은행 영업 시간이 지났지만 창구 업무가 계속 진행되고 있다. 윤형준 기자
기자가 방문한 시간 한 중년 남성이 객장을 찾아 왔다. 서울에서 직장을 다니는 정의현(54)씨는 지난달부터 오후 4시가 넘어서도 영업을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자주 찾아온다고 답했다. ATM이 있는데도 창구 방문을 하는 이유를 물었더니 정씨는 “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ISA) 관련 업무는 상담할 내용이 많아 (ATM으로는)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젊은 사람들은 기계(ATM)가 쉽겠지만 우리 세대는 창구가 훨씬 익숙하다”며 “갈수록 점포가 없어지는 시대에 9 To 6 뱅크를 이용하니까 만족스럽다”고 밝혔다.
 
8일 오후 4시 30분경 KB국민은행 남대문종합금융센터 창구. 윤형준 기자
남대문 시장 상인인 길민자(64)씨는 입출금 업무를 보러 왔다고 했다. 4시 넘어서도 영업을 하는지 알았냐는 질문에 길씨는 “몰랐다”고 대답했다. 그는 “시장에서 일을 보다가 급전이 필요해 ATM을 이용하려 했는데 마침 (창구가) 열려 있어서 들어 왔다”고 설명했다.
 
또 길씨는 “나도 ATM을 이용할 줄은 알지만, 기계는 뭘 물어보면 대답을 안 해준다”며 웃음을 터뜨렸다. 이어 “정말 고객 입장에서 괜찮은 제도라 생각한다”며 “앞으로도 계속 진행하면 좋겠다”고 말했다.
 

직원들은 불만?…“오히려 ‘워라밸’ 지킬 수 있어”

KB국민은행 남대문종합금융센터 창구. 윤형준 기자
고객 인터뷰가 끝나고 의문이 들었다. 고객 입장에서는 늦게까지 은행이 영업하는 게 손해 볼 것 없는 서비스다. 하지만 이를 응대해야 하는 직원들의 업무는 과중해지는 것 아닐까. 애초에 은행이 오후 4시까지 영업하던 것은 문을 닫고도 처리해야 할 일이 많았기 때문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KB국민은행은 9 To 6 뱅크를 확대하기 전 직원들을 오전반과 오후반으로 나눠서 운영하는 방법을 꾀했다. 오전반은 오전 9시까지 출근해 오후 4시까지 업무를 보고, 오후반은 오전 11시까지 출근해 오후 6시까지 일한다.
 
KB국민은행은 사전에 해당 지점 대상으로 오후반 근무를 원하는 직원들을 지원을 받았다. 일정 기간 근무를 하면 향후 인사 때 원하는 지점에 우선 배치해주는 등의 인센티브도 걸었다. 그렇게 ‘오후반’을 모아 72개 지점까지 확대한 것이다.
 
KB국민은행 남대문종합금융센터에서 오후반으로 근무 중인 김은정 대리. 윤형준 기자
실제로 남대문종합금융센터에서 오후반으로 근무하고 있는 김은정 대리는 9 To 6 뱅크 제도에 대해 ‘매우 만족한다’고 답했다.
 
김 대리는 “원래는 출근을 먼저 하고 아이들이 학교에 가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제는 아침 식사도 같이하고 등교하는 모습까지 볼 수 있어 안심이 된다”고 말했다. 그는 “학부모가 아니더라도 오전 시간을 운동이나 외국어 공부 등 자기계발에 활용하는 직원들도 많다”며 “오히려 ‘워라밸’적인 측면에선 나아진 점이 많다”고 설명했다.
 
이어 “대출 등 규모가 있는 거래를 하는 고객들은 일부러 오후 4시 넘어 방문하는 경우가 많다”며 “입출금 외 다양한 거래를 원하는 고객들을 확보할 수 있어 은행 입장에서도 득이 되는 듯하다”고 덧붙였다.
 
그와 이야기를 마치고 보니 어느덧 시간은 오후 5시 10분을 넘어가고 있었다. 영업 종료까지 채 20분이 남지 않았다. 현재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때문에 30분 단축영업을 하고 있어 오후 5시 30분까지 운영해서다.
 
은행 문이 닫힐 때까지 들어가는 사람들을 살펴봤다. 대다수 고객은 ATM을 이용하러 왔지만, 열에 한둘은 창구로 향했다. 영업 마감과 함께 마지막 창구 고객이 객장을 나왔다. 이제 시행한 지 한 달밖에 되지 않았지만, 대면 은행 영업에 대한 고객들의 수요를 확실히 느낄 수 있는 순간이었다.
 
KB국민은행 관계자는 “비대면 은행 업무가 점차 확대되고 있지만 대출이나 투자상품 상담 등의 경우에는 창구에서 상담받고자 하는 고객들이 여전히 많다”며 “이런 고객들에게 9 To 6 뱅크가 보다 만족스러운 금융 경험을 제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직원들도 본인에게 맞는 근무시간을 선택할 수 있어 자기계발 및 워라밸 실현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전했다.

윤형준 기자 yoon.hyeongj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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