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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 만에 최저 ‘엔저’ 부작용으로 몸살 앓는 일본 경제

‘아베노믹스’로 엔화 약세 유도하니
미국 금리 인상에 자금 이탈 ‘부메랑’
원가 상승에 일본 기업 생산부담 커져
일본은행 “금융완화 지속할 것” 고집

 
 
일본 엔화와 미국 달러화. [사진 게티이미지뱅크]
일본 엔화의 가치가 달러화 대비로 20년 만에 최저치로 떨어지자 일본 경제가 엔화가치 하락의 직격탄을 맞고 있다.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지난 15일 오후 도쿄 외환시장에서 엔·달러 환율은 장중 한 때 126엔대를 기록했다. 엔·달러 환율은 지난 13일 오후 1달러당 126엔대까지 올랐는데 이마저도 2002년 5월 이후 약 20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해 엔저가 지속하는 모양새다. 이 같은 흐름은 올해 2월 하순 114~115엔 수준과 비교해 약 10% 오른 것이다.
 

엔화 약세 초저금리가 일본에서 자금 유출로 이어져

구로다 하루히코 일본은행 총재. [EPA=연합뉴스]
 
외환시장은 최근의 엔화 약세를 이례적인 현상으로 보고 있다. 통산 엔화는 금이나 미국 달러화와 함께 위기 상황일수록 가치가 올라가는 안전자산으로 여겨졌다. 
 
니혼게이자이신문에 따르면 2008년 세계금융위기 당시 엔화 가치는 4개월 만에 1달러당 110엔대에서 80엔대로 올랐다. 시장에서 안전자산에 대한 선호 심리가 커지자 엔화 가치가 상승한 것이다.
 
이 같은 인식이 바뀐 것은 일본의 통화정책이 주요 배경으로 지목된다. 앞서 구로다 하루히코(黑田東彦) 일본은행 총재는 2013년 3월 취임 직후부터 초저금리와 같은 대규모 금융완화 정책으로 엔저를 유도한 인물이다. 그는 아베 신조(安倍晋三) 전 총리의 경제정책인 ‘아베노믹스’를 실질적으로 주도한 인물이기도 하다.
 
아베 전 총리가 내세웠던 정책 가운데 하나가 ‘엔저’였다. 시장에 돈을 풀고 엔화 약세를 유도한 아베노믹스를 통해 ‘금융 완화→엔화 약세→수출 증가→기업이익 증가→주가 상승→투자 증가→임금 상승→소비 증가’의 선순환 구조를 기대한다.
 
이는 성공을 거두는 듯 했지만 초저금리가 장기간 이어지자 부작용이 발생했다. 
 
올해 들어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기준금리를 연달아 올리며 미국과 일본의 금리 차가 확대했고 이는 일본 시장에서 자금이 유출되는 결과로 이어졌다. 미국의 10년물 국채 금리는 2%대인데 일본의 10년물 국채 금리는 0%대에 머물렀다.
 

식품·의류·자동차…산업 전 분야로 퍼진 엔저 피해

일본 쇠고기덮밥(규동) 체인점 요시노야. [연합뉴스]
 
엔화 가치의 하락은 일본 산업계의 경쟁력 약화로 이어지고 있다. 
 
해외에서 들여오는 식자재·원자재·부품 등의 가격 상승이 원가 상승으로 연결되기 때문이다. 한 예로 식자재를 외국에서 수입하는 기업이 많은 외식업계는 엔저가 비용 증가로 이어져 수익성이 악화하고 있다.
 
아사히신문에 따르면 쇠고기덮밥(규동) 체인점인 요시노야의 가와무라 야스타카 사장은 이달 13일 기자회견을 통해 “전세계에서 식자재를 수입하고 있기 때문에 지나친 엔화 약세를 환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요시노야는 이미 지난해 10월 쇠고기덮밥 가격을 39엔(약 380원) 올린 바 있다.
 
의류 기업 유니클로의 야나이 타다시 패스트리테일링 회장도 엔화 가치 하락에 우려를 드러냈다. 야나이 회장은 이달 14일 올해 2월 반기 중간결산(2021년 9월~2022년 2월) 실적 발표회견 자리에서 “엔화 가격 하락의 메리트는 전혀 없다”며 “일본 전체로 보면 단점뿐”이라고 지적했다.
 
해외 매출 비중이 높은 유니클로는 엔저로 판매 실적을 높일 수 있지만, 원자재 가격이 2~3배 수준으로 상승하며 비용 부담이 커졌다는 것이다. 야나이 회장은 현재 가격 유지가 불가능하다며 제품 가격 인상을 시사하기도 했다. 
 
이에 가격이 오른 외국산 제품을 일본 국내산으로 대체하려는 시도가 이어지고 있다. 패밀리레스토랑 업체인 사이제리야는 수입 식자재 가격 상승에 대응해 햄버거 재료 일부를 일본산으로 대체하고 있으며, 생활용품 판매업체 다이소를 운영하는 다이소산업은 상품 구입처를 해외에서 국내로 바꾸는 것을 고려하고 있다. 
 
대표적인 수출산업인 자동차업계도 부품 등의 수입 가격이 올라 일본 국내에서 제조하는 비용 부담이 커졌다. 여기에 공장과 같은 생산 기반을 이미 외국으로 많이 이전해 수출 촉진 효과도 제한적이다. 일본 최대 자동차 생산업체인 토요타는 2020년 12월 말 기준 세계 28개국에 약 50개의 생산시설을 운영 중이다.
 

“여기가 끝이 아니다” 1달러당 150엔 전망도

일본 엔화. [사진 게티이미지뱅크]
 
이미 엔저에 따른 일본경제의 피해가 가시화한 가운데 시장에서는 엔화 가치가 더 떨어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미국 블룸버그 통신에 따르면 미쓰비시 UFJ 모건 스탠리 증권의 수석 통화 전략가인 우에노 다이사쿠는 “일본이 무역적자를 겪고 있고 통화완화 정책도 고수하고 있는 상황에서 엔화를 살 이유가 없다”며 “엔화 환율이 올해 달러당 130엔에 이를 수 있다”고 내다봤다.
 
파이브스타 에셋 매니지먼트의 애널리스트인 이와시게 다쓰히로는 130엔대 엔·달러환율은 정점으로 가는 과정일 뿐이라며 내년 3월까지 엔·달러 환율이 150엔에 도달할 수도 있다고 전망했다.
 
이 같은 상황에서도 일본 중앙은행인 일본은행은 엔저에서 벗어날 의지를 보이지 않고 있다. 
 
구로다 총재는 지난달 18일 금융정책결정회의 후 “엔저가 전체적으로 경제와 물가를 모두 밀어 올려 일본 경제에 플러스로 작용하는 기본 구조는 변함이 없다”고 언급했으며, 최근 은행 관계자들과 만난 자리에서도 “현재의 강력한 금융 완화를 끈질기게 지속할 것”이라고 밝혔다. 

강필수 기자 kang.pilso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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