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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의 충신 이용익의 '100만원 미스터리' [김준태 조선의 부자들⑲]

고종의 금고지기 이용익 33만원 예금(현재 수백억원 가치) 사라져
황실 내탕금 의혹…제일은행, 총독부, 전현직 관리 뒤엉켜 예금 가로채

 
 
[사진 위키백과]
1936년 〈삼천리〉라는 잡지에는 ‘이용익의 백만원이 사느냐 죽느냐’라는 기사가 실렸다. 조선중앙일보, 동아일보, 중외일보 등 신문들도 연일 관련 기사를 상세히 보도했다. 이른바 ‘이용익 백만 원 사건’으로, 경위는 다음과 같다. 대한제국 시기 내장원경을 지내며 재정을 총괄했던 이용익은 1907년 33만원, 지금으로 따지면 수백억 원에 이르는 예금을 남기고 눈을 감았다. 손자 이종호가 예금이 예치되어 있던 제일은행에 지급을 청구하자 은행 측은 차명계좌임이 의심된다며 차일피일 지불을 미뤘다. 이는 이 돈에 눈독을 들이고 있던 친일파 송병준이 압력을 행사했기 때문이다. 내부대신이었던 송병준은 33만원이 황실 내탕금이라며 이종호에게 반환을 요구했고, 이종호가 거부하자 감금하여 협박하기까지 했다. 고종이 그 돈은 황실 내탕금이 아니며 이용익의 개인 자산이라고 확인해주었지만 듣지 않았다. 송병준은 당시 조선 통감이었던 이토 히로부미에게 이용익의 유산이 항일운동 자금으로 쓰일 수 있다며 지급해선 안 된다고 주장했고, 더욱이 얼마 후, 이종호가 이토 히로부미 암살 사건 관련자로 수감 되면서 돈을 찾는 일은 요원해졌다.

 

'이용익의 백만원' 9년에 걸친 재판 끝에 사라져  

하지만 이종호는 포기하지 않았다. 중국 상해와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독립운동에 헌신했던 이종호는 1918년에 귀국하여 다시 제일은행에 예금 반환을 요구했다. 제일은행은 해당 예금을 조선은행에 이관했다며 거절했는데, 이체 기록도 없을뿐더러 예금주의 허락도 받지 않고 이관했다는 것은 말도 되지 않는 일이다. 은행 측이든 다른 누군가든 이용익의 예금을 가로챈 것이다. 이에 이종호는 1930년 도쿄재판소에 정식 소송을 건다. 제일은행을 상대로 그때까지의 이자를 포함하여 89만3,967원을 지급하라는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1930년대 경성에서 좋은 집 한 채 값이 1,000원 정도였다). 재판은 9년에 걸쳐 진행되었는데, 그 내용이 이번 연재 글의 주제는 아니니 자세한 내용은 생략하기로 한다. 다만, 이종호(1심 재판 도중 이종호가 사망하여 동생인 이종관이 이어 계속했다)가 패소하였고, 이용익의 예금은 영원히 사라지고 만다. 그 과정에서 거액의 돈을 차지하기 위해 제일은행, 총독부, 이왕직(조선이 망한 후, 조선 왕실의 업무를 담당하는 기관), 조선 전현직 관리, 일본 정계가 뒤얽힌 추잡한 난맥상이 드러났다는 점을 밝혀둔다. 이것이 ‘이용익 백만 원 사건’이다.
 
그런데 궁금한 점이 생긴다. 이용익이 어떤 인물이었기에 그처럼 많은 예금이 있었을까? 게다가 이용익이 고려대학교의 전신인 보성전문학교를 설립하고, 그의 유산을 상속한 손자 이종호가 안창호와 함께 평양에 대성중학교를 세웠으며, ‘서울에 10만 원을 내어 협성학교를 세웠다’라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볼 때, 그의 재산은 훨씬 더 많았으리라 생각된다. 설령 송병준의 주장처럼 재산 일부가 황실 내탕금이었다(고종이 친일파에게 황실 재산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 이용익에게 맡겨준 것일 수도 있다)고 하더라도 자기 재산 역시 상당했을 것이다. 어떻게 이용익은 그 많은 돈을 모았을까?
 
1854년, 함경북도 명천에서 태어난 이용익의 출신에 대해서는 이견이 있다. 그는 태조 이성계의 이복형 이원계의 후손으로 아버지가 고산현감 등을 지낸 이병호이며, 초병덕이라는 유학자에게서 글을 배웠다고 알려져 있다. 그러나 글을 거의 배운 적 없는 한미한 가문 출신이라거나 서민 출신이라는 이야기도 있다. 그가 어렸을 때부터 부보상(보부상)과 물장수에 나섰기 때문에 그런 견해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아무리 집안이 가난하더라도 명색이 현직 관리의 아들이 부보상일을 했다는 것이 이해가 가지 않기 때문이다.
 
아무튼 이용익은 어렸을 때부터 부보상에 뛰어들었는데, 부보상(보부상)은 초기 자본이 많이 들지 않는다. 고객의 집 앞까지 직접 찾아가며 구석구석을 누비기 때문에 각 지방의 사정을 누구보다 훤히 알 수 있다. 전국적으로 뻗어있는 부보상 네트워크도 큰 힘이 된다. 무엇보다 정보력에서 앞서는 것이다. 상품을 대량으로 다룰 수 없다는 한계가 있긴 하지만, 이 정보를 잘 활용하고 본인만 부지런히 움직인다면 얼마든지 수익을 거둘 수 있었다. 이 연재에서 소개했던 남강 이승훈 역시 부보상을 하면서 부의 토대를 일군 바 있다.
 

고종의 '금고지기', 황실 광산 개발 미 화폐개혁 단행

 이용익의 경우 부보상업 자체로 큰돈을 벌진 못했지만, 부보상을 하며 얻은 정보가 그의 발판이 되어주었다. 그는 평안도와 함경도에 산재해 있는 금광을 조사하고, 함경도 갑산금광에서 “주먹 만한 금괴 여러 개를 파내어 등에 짊어지고 천리 길을 멀다 하지 않고 서울에 올라와 고종에 바쳤다.”고 한다. 이 일을 계기로 이용익은 고종의 신임을 얻게 되었고, 명성황후가 임오군란이 일어나 장호원으로 피신해 있을 때 명성황후와 고종 간의 연락책을 담당하면서 신임은 더욱 두터워졌다.
 
이후 이용익은 탁월한 이재(理財)를 발휘하여 고종의 금고지기이자 자금줄 역할을 했다. 그가 지방관을 지낼 때 백성의 고혈을 짜내 민란을 촉발했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는데, 그가 탐욕스러운 관리여서가 아니다. 매천야록에 따르면 “이용익은 청렴하고 무슨 일에든 능력이 있었다. 식사할 때도 고기를 먹지 않았으며 헐은 도포와 모자를 쓰고 다녔고 노래와 여색을 좋아하지 않았으므로 고종이 그의 청백함과 검소함을 믿었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그는 개인적인 욕심으로 돈을 탐하는 일이 없었다.”라는 기록도 있다. 다만, “고종이 자금을 요청하면 어떻게든 돈을 가져다 바쳤다.”라는 증언으로 볼 때, 고종의 통치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백성에게 가혹하게 세금을 거뒀던 것으로 보인다.
 
물론, 이용익이 이렇게 일차원적으로만 돈을 마련한 것은 아니다. 국가 및 황실의 재정, 경제 책임자에 오른 그는 세계 경제의 흐름을 면밀하게 분석하고, 대한제국의 강점을 파악하여 우선순위를 결정했다. 황실 소유의 광산 개발을 확대하고, 백동화를 발행하여 화폐개혁을 단행했으며, 사기그릇 제조공장과 총포공장을 설립했다. 제지업, 금은세공업, 목공업, 직조업, 염직업 기술자 양성에 나섰고, 인삼의 전매권을 갖는 삼정사를 창립하였으며, 인쇄업, 금융업을 발전시키기 위해 노력했다. 대한제국의 경제진흥과 재정확충을 동시다발적으로 추진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 자연스레 그도 부를 축적한 것으로 보이는데, 개인의 사리사욕을 위해 사용하지 않았다. 조선 상인들의 경제활동을 지원하고 교육기관을 설립하는 등 부국과 인재양성을 위해 아낌없이 재산을 투입했다.
 
그런데 그가 고종을 보위하고 국가 경제를 지키는 과정에서 러시아에 경도된 측면이 있었다. 친러파의 거두로 불릴 정도다. 일본에 대항하기 위해 부득이한 일이었는지도 모르지만, 러시아에게 많은 이권을 넘겨주려 한 점은 부정적이다. 이러한 정치적 스탠스로 인해 그 자신도 고초를 겪었는데, 일본은 1904년 이용익을 납치한 바 있으며, 1905년에는 외무성 훈령으로 이용익의 제거를 지시하기도 했다. 그러다 1907년, 정적이 보낸 자객에게 피살당한다. 대한제국을 떠받쳤던 몇 안 되는 충신의 비극적인 죽음이었다.
 
※ 필자는 칼럼니스트이자 정치철학자다. 성균관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고 같은 대학의 한국철학인문문화연구소에서 한국의 전통철학과 정치사상을 연구하고 있다. 우리 역사 속 정치가들의 경세론과 리더십을 연구한 논문을 다수 썼다. 저서로는 [왕의 경영] [군주의 조건] [탁월한 조정자들] 등이 있다.
 

김준태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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