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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 모유, 엄마의 마음으로 엄마의 가슴을 재현한다? [한세희 테크&라이프]

바이오밀크·터틀트리 등 엄마 젖 인공적으로 만들려는 시도 이어져
인공 모유 상용화, 모유 수유 어려움 겪는 여성에게 도움 될 것

모유 수유의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인공 모유 기술이 연구되고 있다. [중앙포토]
엄마가 아기에게 젖을 먹이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모유 수유에 대한 사회적 인식은 들쭉날쭉 바뀌곤 했다.
 
故 박완서 작가의 초기 에세이를 보면, 아기에게 젖을 먹였던 자신의 경험과 분유가 더 ‘과학적’이라고 생각하는 당시 젊은 엄마들을 비교하는 이야기가 나온다. 그러면서 과거 모유로 기른 이들은 ‘비위생적으로’ 대충 아기 키운 사람들이라 여기는 젊은 엄마들의 생각을 개탄한다.
 

모유 수유의 모습, 시대와 환경에 따라 변화

미국도 분유를 먹는 아기가 많은 나라 중 하나다. 1930년대에는 대부분의 아이가 젖을 먹었지만, 1970년대에는 모유 수유 비중이 22%로 내려앉았다. 분유가 더 과학적이고 위생적이며, 모유보다 균형 잡힌 영양을 제공한다는 분유 업계의 마케팅도 이런 흐름에 일조했다.
 
하지만 이후 여러 과학 연구를 통해 모유의 장점이 확인되면서 모유 수유도 다시 늘어나 2010년대 초에 이르면 신생아의 80% 가까이 엄마 젖을 먹었다. 다만 세계보건기구(WHO)의 권고대로 생후 2년을 채워 젖을 먹는 아기는 거의 없다. 여러 사정으로 젖을 일찍 떼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유럽에서는 오래 동안 유모를 두는 것이 성행했다. 유모를 필요한 가정과 연결해주고, 유모의 보건을 관리하는 정부 기관이 따로 있을 정도였다. 유모 역시 처음에는 여러 이유로 젖을 먹이기 어려운 엄마를 위한 선택이었지만, 후에는 사회적 지위가 있는 집안에서는 직접 수유를 하지 않고 으레 유모를 두곤 했다.
 
유모는 18세기 들어서 사라지기 시작했다. 과학의 발달로 식품 위생에 대한 지식이 쌓임에 따라 우유에서 수분을 덜고 농축한 연유가 등장하고, 안전하고 편리한 우유병들이 나오면서 모유를 대체할 분유가 판매되기 시작했다. 1940년대를 거치면서 분유는 모유의 안전한 대체품으로 사람들의 인식 속에 자리잡았다. 모유 대체품이 모유를 생산하는 사람을 대체한 셈이다.
 
최근 미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분유 대란의 원인 중에는 코로나19로 모유 수유를 하는 산모가 줄고 분유 수요가 늘었다는 점도 있다는 분석도 있다. 젖을 먹이는 것은 아이에게나 산모에게나 쉬운 일이 아니다. 처음에 젖이 돌고 아이가 젖을 빠는데 익숙해지려면 적잖게 고통스러운 시간이 필요하다. 그런데 코로나19로 인해 이런 과정을 도와줄 가족이나 전문가의 방문이 제약을 받고, 감염 우려로 엄마와 아이가 떨어져 지내는 시간이 늘어남에 따라 모유 수유를 하지 못하는 경우가 늘었다는 것이 월스트리트저널의 분석이다.
 
자연의 섭리처럼 보이는 모유 수유도 이처럼 사회와 문화의 인식, 기술의 발전 속도와 그에 대한 사회적 수용 여부에 따라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난다.
 
그리고 어쩌면 모유 수유, 엄마와 아이의 관계, 모성에 대한 또 한 번의 큰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기술이 지금 한참 연구되고 있다. 바로 인공 모유다.
 

실험실에서 엄마 젖을 만들다

다른 동물의 젖을 바탕으로 아이에게 필요한 성분을 넣고 가공한 분유를 실제 모유에 더 가깝게 개선하려는 시도가 아니다. 엄마 젖을 인공적으로 만들려는 시도다. 실험실에서 인간 유방 조직 세포를 인공 배양해 모유를 생산하게 하는 기술이다.
 
동물 줄기세포를 배양해 근육세포로 분화시켜 단백질 조직을 얻는 배양육과 비슷한 접근법이다. 현재 대체육 시장은 콩 등 식물성 원료를 써서 실제 고기와 최대한 비슷한 맛과 식감을 내는 방식이 대세인 가운데, 고기 조직을 배양해 직접 고기를 ‘기르는’ 배양육 연구가 조금씩 진전을 보이고 있다.
 
분유는 식물성 원료로 만든 대체육, 인공 모유는 배양육에 비유할 수 있다. 인공 모유를 만드는 스타트업 바이오밀크(Biomilq) 창업자인 라일라 스트릭랜드는 2013년 대체육 연구자인 마크 포스트 마스트리히대학 교수가 배양육 햄버거를 TV 생중계로 소개하는 모습을 보고 인공 모유의 아이디어를 얻었다. 생물학 전공자이자 아이를 낳은 후 모유 수유에 어려움을 겪은 그의 경험이 창업으로 이어진 것이다.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가 설립한 브레이크스루에너지벤처스도 이 회사에 대한 350만 달러 규모의 벤처 투자에 동참했다. 이 회사는 3년 후에는 시장에 인공 모유를 내놓는다는 목표다.
 
싱가포르의 터틀트리 역시 배양 기술을 바탕으로 인공 우유와 인공 모유를 개발하고 있다. 최근3000만 달러의 투자를 유치하고 미국 캘리포니아 지역에 R&D센터도 열었다. 발효 방식으로 모유 주요 구성 성분을 생산하는 기술을 가진 미국 스타트업 헬레이나는 역시 최근 2000만 달러의 투자를 받았다.
 
퍼펙트데이, 윌크, 108랩스 등은 인공 우유 생산에 나섰다. 뉴컬쳐라는 회사는 인공 우유로 모짜렐라 치즈를 만드는 기술을 개발 중이다.
 
스타트업 바이오밀크가 설명하는 인공 모유의 기술. [바이오밀크 사이트 캡쳐]

당신은 인공 모유를 받아들일 수 있습니까?

인공 모유가 상용화되면 건강 문제로 모유 수유에 어려움을 겪는 사람도 최대한 엄마 젖에 가까운 대안을 아기에게 줄 수 있다. 직장에 복귀해야 하는 엄마들, 직장에 안심하고 모유를 짜 보관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되지 않은 여성에게도 선택지가 될 수 있다.
 
또 대체육과 마찬가지로 인공 모유 역시 탄소 중립에 기여할 수 있다. 세계 전체 탄소 배출량의 4%를 차지하는 목축업에 대한 의존을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게이츠가 이 회사에 투자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브레이크스루에너지벤처스는 기후 위기를 막고 탄소중립에 기여할 기술을 가진 회사에 주로 투자한다.
 
물론 이들 스타트업도 인공 모유가 모유를 완전 대체할 수 있다고는 주장하지 않는다. 모유는 단지 모유 성분의 총합은 아니다. 모유의 주요 기능 중 하나는 아기의 면역력을 높이는 것인데, 항체는 엄마 몸에서 만들어져 모유를 통해 아기에게 전달된다. 아기의 뇌 발달과 행동에 영향을 주는 호르몬은 엄마의 내분비계에서, 아기 몸 안에 유익한 장내미생물 활성화를 돕는 박테리아는 엄마의 장내미생물에서 나와 모유를 통해 아기에게 전달된다. 게다가 모유의 주요 성분은 아이 상태에 맞춰 수시로 바뀐다.
 
기업들은 모유의 성분과 기능에 더 가까운 인공 모유를 만들기 위해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하지만 기술 발전뿐 아니라 사회적 수용 여부가 인공 모유의 성패에 큰 영향을 미칠 것이다. 인공 모유는 아직 많은 사람에게 불편한 감정을 일으키는 것이 사실이지만, 모유 수유와 모성에 대한 사람들의 생각은 역사를 통해 끊임없이 변해 왔다.
 
※ 필자는 전자신문 기자와 동아사이언스 데일리뉴스팀장을 지냈다. 기술과 사람이 서로 영향을 미치며 변해가는 모습을 항상 흥미진진하게 지켜보고 있다. [어린이를 위한 디지털과학 용어 사전]을 지었고, [네트워크전쟁]을 옮겼다
  

한세희 IT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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