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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 중앙차로에 자전거 다니면 교통난·환경문제 동시 해결”

[인터뷰] 이상호 미래사업연구원 원장
자전거 역사부터 예술과 패션 등을 망라한 책 [자전거] 펴내
자전거 토털 서비스 제공하는 ‘바이크 하우스’ 건설 꿈

 
 
이상호 미래사업연구원 원장이 이코노미스트와 인터뷰에서 한국의 자전거 문화에 대해 다양한 조언을 했다. 지미연 객원기자
 
“버스 중앙차로를 자전거가 이용하면 서울 교통난뿐만 아니라 환경문제까지 한꺼번에 해결할 수 있다”, “자전거 동호회에도 문제가 많다, 자전거 문화를 만들어야 한다”, “자전거 타는 교육을 해야 한다” 등 그의 입에서는 한국에서 자전거로 할 수 있는 일, 혹은 해야만 하는 과격할 수도 있는 주장이 술술 나온다. 자전거가 가지고 있는 장점부터 잘못 정착된 자전거 문화까지 직접적으로 거론했다.
 
이런 주장을 그가 할 수 있는 이유를 그의 사무실에서 발견했다. 사무실 한 켠에 놓여 있는 ‘4대강 종주 인증서’, ‘그랜드슬램 인증서’는 자전거로 전국을 일주했다는 증표다. 온갖 자전거를 축소해 놓은 수십 개에 달하는 모형이 전시되어 있다. 지난달에는 자전거의 역사부터 패션, 문화, 그리고 자전거의 부품까지 자전거의 A to Z를 다룬 [자전거]라는 책까지 펴냈다. 400페이지가 넘는 분량에는 자전거와 관련된 백과사전 같은 다양한 정보와 읽을거리가 담겨 있다. 특히 이 책에는 대북 사업으로 추진됐던 통일자전거에 대한 뒷 이야기까지 실려 있어 눈길을 끈다.
 

80년대 자전거 수출 효자 상품으로 각광

한국에서 자전거에 대한 애정과 지식, 그리고 현장 경험을 그만큼 가지고 있는 이는 드물다. 한국을 대표하는 자전거기업 삼천리자전거에서 25년, 그리고 삼천리자전거 계열사인 참좋은여행사 대표로 14년을 역임한 삼천리자전거의 모든 것을 꿰뚫고 있는 대표적인 인사다. 퇴직 이후 스타트업 창업가를 돕기 위해 몇몇 동료와 힘을 합해 미래사업연구원이라는 조직을 만들기도 했다. 이상호 원장이 주인공이다.
 
이 원장은 지난 5월 [자전거](엔북)라는 책을 낸 이유에 대해 “1984년 입사 1년 후 별다른 정보도 없던 때 제주도를 자전거로 일주를 하면서 자전거에 인생을 걸기로 했다”면서 “평생 한 직장에 다닌 것도 그 때문이었고, 언젠가는 자전거에 관련된 책을 쓰기로 마음먹은 것을 퇴직한 후에 마무리하게 됐다”고 말했다. “이제야 숙제를 끝낸 것 같다”며 웃었다. 이 원장에게 자전거는 인생의 전부인 것이다. 이야기를 좀 더 들어봤다.
 
1980년대 초반 경영학을 전공했으면 취업도 문제없을 것 같은데, 왜 삼천리자전거를 택했나.
단대 경영학 78학번인데, 당시 입사는 별 문제가 없었다. 근데 대학 4년 동안 취직보다 변리사 자격증을 따는 데 올인했다. 왜 변리사였는지는 잘 모르겠다. 당시 변리사라는 자격증이 잘 알려지지도 않았고. 1차는 합격을 하는데, 2차에서 잘 안됐다. 집에서는 대학원을 가라고 했는데, 자격증을 따지 못해서 힘들었는지 서울을 떠나고 싶었다. 우연히 삼천리자전거에서 서울 본사를 경남 양산으로 옮긴다는 것을 보고 도망치듯이 양산으로 갔다. 당시 양산하면 떠오르는 게 고리원자력발전소랑 통도사 두 개 밖에 없던 곳이다. 1983년에 입사했는데, 당시 평생 한 곳만 다닌다고 결심했지만, 이렇게 오래 일할지는 몰랐다.(웃음) 양산 본사에 갔더니 당시 서울에서 대학 나온 유일한 신입직원이기 때문에 회사에서 주목을 받았다. 사원 시절부터 과장급 이상이 참석하는 간부회의에 들어갔을 정도다. 샐러리맨으로 입사해서 대표까지 지냈으니까 운이 좋은 것 같다. 좋은 오너와 좋은 상관을 만나 직장운이 좋았다.
 
입사 1년 후 제주도 자전거 일주여행을 다녀왔던데, 원래부터 자전거를 좋아했나?
처음 기획팀으로 입사했는데, 군대에서 말하는 차트병이었다. 당시 PPT가 있었나 뭐가 있었나. 손으로 직접 차트에다가 그림이랑 글씨를 써서 보고를 하던 시절이다. 자전거 산업을 잘 몰랐는데, 입사를 하고 보니까 자전거가 수출 산업일 정도로 잘 나갔던 때다. 1988년 미국 전시회에 단독 부스를 차릴 정도로 삼천리자전거도 잘 나갈 정도였고. 규모는 작았지만, 업계에서 1위를 하는 기업에서 일하는 게 상당히 매력적이었다. 기업과 함께 성장하는 즐거움을 많이 느꼈다. 그러다 보니 자전거에 대한 애착이 높아졌다.
 
자전거는 우리 주위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탈거리다. 아파트 단지 구석진 곳에 먼지를 뒤집어쓴 채로 놓여있는 자전거는 아파트마다 처치 곤란할 지경이다. 바퀴 두 개에 페달, 손잡이만 있으면 만들 수 있을 것 같이 간단해 보이지만, 자전거가 혁신과 여성해방의 상징이라는 것을 아는 이는 드물다. 이 원장은 책에서 “단순해 보이지만 정밀한 기계 공업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것이 자전거다”라고 강조했다. 자전거는 간단한 구조 때문에 오래된 역사를 갖고 있으리라 생각하지만, 자전거의 역사는 200여 년 정도밖에 안된다. 증기기관차와 비슷한 시기에 발명됐다고 전해진다. 현재의 자전거 모습은 100여 년 전부터 시작됐다고 한다.
 
이 원장이 생각하는 자전거의 매력이 뭔가?  
책에서도 말했지만, 자전거는 혁신과 여성해방의 상징이다. 특히 자전거로 인해 여성들이 바지를입을 수 있게 한 것은 여성해방의 한 상징이다. 자전거가 겉으로 보기에는 간단하지만, 현재의 자전거 모습은 100여 년 전부터 시작됐다. 그동안 여러 가지 혁신이 더해져서 현재의 자전거가 탄생한 것이다. 자전거는 교통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친환경적인 이동 수단이고, 대중적인 이동수단으로 이동의 평등을 제공한다. 자전거는 알면 알수록 대단한 이동 수단이다. 내가 좋아하는 글 중 하나가 ‘열심히 달리고 있는데 힘들지 않다면 내리막에 있는 것이다’라는 것이다. 자전거만큼 정직하고 성실한 이동 수단이 없는 것 같다. 처음 책을 구상할 때 김훈 선생의 [자전거여행]처럼 수필을 생각했는데, 써야 할 게 너무 많았다. 이번 책에 자전거의 모든 것을 넣고 싶었다.
 
자전거가 대북 사업의 일환으로 진행됐다는 게 놀라웠다.
실제로 있었던 일이다. 북에는 직접 가보지 못했지만, 중국에서 북측 담당자랑 만나서 대북 사업으로 진행을 했다. 아쉽게도 총풍 사건이 일어나서 구체적인 사업으로 진행되지 못했다. 대북 사업은 변수가 많다는 것을 느꼈다. 당시 북측에서 삼천리자전거 부품을 사용한다는 잘못된 정보도 나오는 등 다양한 일이 있었다. 진척되지 못한 게 아쉽지만, 대북 사업은 여러모로 어려운 일인 것 같다. 지금 당장 통일이 된다면 북측에 보낼 것은 자동차가 아니라 자전거가 될 것이다. 자동차는 도로나 주유시스템 등을 마련해야 하기 때문에 시간이 걸린다. 이에 반해 자전거는 주민들에게 직접 도움이 되니까 훨씬 유용하다.
 

레저에서 이동수단으로…자전거의 역할 재정립 필요

참좋은여행사 대표 시절에도 자전거 여행 상품을 내놓은 것으로 알고 있다.
맞다. 여행업계 최초의 일이었다. 일본의 몇 개 도시에서 자전거를 탈 수 있는 상품이었다. 아이디어는 좋았는데, 몇 가지 어려움이 있었다. 가장 큰 문제는 보험이 안된다는 것, 그리고 여행객마다 자전거를 타는 실력이 다르기 때문에 단체 자전거 여행이 어려웠다. 아쉽지만 몇 번 시도하고 중단했다.
 
한국의 자전거 기업이 삼천리자전거와 알톤스포츠 밖에 없는 것으로 안다.  
맞다. 한때는 선경 등을 포함해서 많은 기업이 있었는데, 지금은 두 기업밖에 없다. 아시다시피 조립은 모두 중국에 맡기면서 디자인과 R&D 분야만 한국에 남아 있다. 가장 중요한 분야는 여전히 한국에서 맡고 있어서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한국은 도심이나 4대강을 중심으로 하는 자전거도로가 잘 갖춰져 있지만, 자전거 문화에 대한 불만의 목소리가 높다.  
한강과 4대강 자전거도로는 세계적으로 손색이 없다. 일본에서도 자전거 동호인들이 몰려올 정도다. 다만 자전거를 레저로만 보는 인식 때문인지 한강에서 광화문시내까지 들어올 자전거도로는 미흡하다. 자전거 도로를 이용해서 출퇴근을 하는 것은 무척 어렵다. 자전거는 유용한 미래의 교통수단이다. 마포대교에서 광화문, 잠수교에서 광화문, 성산대교에서 광화문, 잠수교에서 광화문 구간에 자전거 도로를 만들어야 할 것이다. 지금 도심을 지나는 차량의 평균속도가 30km 정도로 알고 있다. 웬만한 자전거 속도가 20km를 넘는다. 버스중앙차로를 자전거가 이용할 수 있다면 교통문제와 환경문제를 동시에 해결할 수 있다.
 
자전거가 여러 효율성이 높다지만 자전거를 이용하는 사람들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도 높다.
동의한다. 자전거 문화가 부족하다는 것을 느낀다. 자전거를 탈 때 에티켓이 필요한 것 같다. 속도를 내려고 자전거를 타거나 타인을 위협하는 것은 올바른 자세가 아니다. 자전거를 이용할 때 지켜야 할 것들을 교육했으면 한다. 자전거 교육을 유치원이나 초등학교 때부터 안전에 관한 과목에 넣어야 할 것이다. 자전거를 레저의 수단이 아닌 교통수단으로 인정해야만 다양한 해결책이 나올 것이다.
 
꿈이 ‘바이크 하우스’ 만드는 것이라고 하던데. 그게 뭔가?
경기도 양평 같은 곳에 자전거와 이용자를 위한 시설물을 만들고 싶다. 자전거 박물관이랑 교육 센터 그리고 자전거 동호회 사람들을 위한 쉼터를 제공하고 싶다. 자전거의 보관 및 수리까지 지원해주는 토털 서비스 시스템을 구상하고 있다. 삼천리자전거에 입사한 후 자전거는 내 인생이 됐다. 자전거 이용자를 위해 도움을 주고 싶다.
 
현재 일하고 있는 미래사업연구원은 어떤 곳인가?
“내가 경험한 것을 후배 창업가들에게 도움을 주는 곳이다. 경영을 해본 사람과 경영학 박사 등 나 포함해서 4명이 참여하고 있다. 창업가를 위한 컨설팅 기관이라고 보면 된다. 현재는 어떤 식으로 일을 할지를 준비하고 있는 단계다.” 
 
이상호 미래사업연구원 원장이 얼마 전 펴낸 [자전거]라는 책의 의미를 설명하고 있다. 지미연 객원기자

최영진 기자 choi.young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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