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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환위기가 소환되는 이유 [최배근 이게 경제다]

현재 인플레는 팬데믹과 전쟁이 낳은 ‘생태계 충격형 인플레’
무역수지 적자 등 모든 원인은 바이든식 패권 추구에서 비롯
탈 중국 선언 등 미 패권주의 적극 동참이 한국 경제 리스크

 
 
지난 6월 29일 스페인 마드리드 이페마(IFEMA) 컨벤션센터에서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동맹국·파트너국 정상회의가 열리고 있다. [연합뉴스]
우리 국민에게 커다란 트라우마로 남아있는 외환위기가 소환되고 있다. 물가상승률이 외환위기 이후 최대! 무역수지 적자가 상반기 기준으로 외환위기 이후 최대! 외환위기의 표면적 원인이었던 외환보유액의 빠른 감소! 등이 그것이다.  
 
외환위기 가능성을 진단하기 전에 먼저 몇 가지 정리를 하자. 먼저 현재 경제 문제의 출발점인 인플레이션은 (지난 칼럼에서 70년대 인플레와 다르다는 얘기는 했고) 지금 비교되는 외환위기 당시의 인플레와는 다르다. 주지하듯이 현재의 인플레는 팬데믹에 이은 전쟁으로 인한 이른바 ‘생태계 충격형 인플레’이다. 반면, 외환위기 당시 인플레는 외환위기로 최고 두 배 넘게 치솟았던 환율 급등에 따른 결과였다. 당시 인플레는 한국과 동남아 일부 국가만의 현상이었다. 대만은 안정적 모습을 보였고, 심지어 싱가포르는 98년 하반기부터 1년 가까이 디플레를 보였다. 현재의 인플레는 정도 차이가 있을 뿐 세계적 현상이다.  
 
둘째, 무역수지 적자는 외환위기 이전 만성적 현상이었고 외환위기의 원인 중 하나였다. 외환위기 직전 무역수지 적자가 급증하며 경상수지 적자와 외환보유 감소를 주도하였고, 이를 해외에서 유입된 달러 등 외화로 메웠다. 그러다가 97년 여름 태국발 금융위기가 확산하며 국내 유입된 외화자금이 갑작스럽게 유출되며 달러 유동성 위기가 발발한 것이다. 그러나 최근 무역적자는 2008년 금융위기 때를 제외하고는 외환위기 이후 처음 겪는 일이고, 그 규모가 (상반기 기준으로) 역대 최대이다 보니 외환위기를 소환하고 있다.  
 
현재의 무역적자는 인플레 원인과 뿌리를 같이 하고 있다. 현재의 무역적자는 인플레(와 긴축)에 따른 경기 둔화 및 침체에 따른 수출 둔화와 석유 및 원자재 수입액의 증가, 그리고 중국에 대한 수출 둔화 및 러시아에 대한 무역적자 악화 등에서 비롯한다. 금융위기 이후 약 25%를 차지하였던 중국 수출이 최근 5~6월에는 22%로 줄어들었고, 무역수지도 최근 적자로 전환하였다. 그런데 전쟁 장기화로 세계 경제는 내년에 더 후퇴하고, 고유가도 지속하거나 지금보다 더 악화할 가능성도 있고, 최근 무역적자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대중-대러 무역적자의 구조화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전쟁 장기화로 세계 경제 후퇴 가능성 커져

사실 이 모든 요인이 (가치동맹에 기반한) 바이든식 패권 추구에 뿌리를 두고 있다. 그리고 윤석열 정부는 “어떤 국가든 국제 규범 위반하고 질서 존중 안 하면 규탄하고 연대해서 제재가 필요하다”며 미국의 패권주의 전략에 적극적으로 동참하고 있다. 한국의 나토 참석과 탈중국 선언이 외국인 투자자 등 국제사회의 눈에는 한국 경제의 리스크로 해석되는 배경이다.  
 
외환위기의 대표적 징후 중 하나가 외국인 자금 유출과 환율 변동성이다. 상반기 주식시장에서 약 19.9조원 이상이 유출되었고, 한국의 장기 시장금리가 미국보다 높음에도 불구하고 채권시장에서도 6월부터 자금이 순유출로 전환되었다. 자금 유출은 상반기에만 약 10%에 달하는 환율 상승으로 이어졌다. 상반기라 했지만, 러시아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상승률과 일치한다. 앞에서 언급한 생태계 충격형 인플레의 근본 원인인 패권 충돌의 산물이다.  
 
환율 상승률은 1년 기준으로 하면 약 15%에 달한다. 환율 변동성이 10% 이상일 경우 외환위기의 신호로 해석하는 기준에 따르면 한국에서 외환위기가 거론되는 것은 자연스럽다. 높은 환율 상승률은 수입물가 상승으로 이어져 다른 나라에 비해 인플레를 더 악화시킨다. 그리고 달러 강세와 더불어 환율 방어를 위한 외환시장 개입은 외환보유액 감소로 이어지고 있다.  
 
외환보유액 감소는 대외 투자자에 대한 상환 능력의 약화를 의미한다. 외환보유액 대비 외국인이 보유한 국고채 비중은 지난해 연말의 31%에서 상반기에 약 40%까지 빠르게 증가한 것으로 추정한다. 상환 능력의 약화는 자금 유출과 환율 상승의 악순환을 만들면서 내국인까지 달러 사재기로 번지고 있다. 4000억 달러대의 외환보유를 갖고 있음에도 환율 변동성이 큰 이유는 GDP 대비 비중으로 아직도 낮기 때문이다. 외환위기 당시 5% 안팎에 불과했던 비중을 끌어올렸지만 2010년대 이래 약 25%에 불과하다. 반면 국가채무 비율이 150%에 육박하지만 90년대 이래 국가신용등급이 트리플A(AAA)를 유지하는 싱가포르는 100% 안팎을 유지하고 있다.  
 
또 인플레로 인한 가계의 실질소득 감소는, 금리 상승과 대출이자 비용 증가로 가계의 가처분소득 감소 및 자산가격 하락 등과 더불어 가계, 특히 저소득층과 중산층을 생계 위기로 내몰고 있다. 외환위기 당시 많은 기업의 도산과 대규모 실직 사태 발생 후 생계 위기와 심지어 가정 해체 등에 내몰린 가계 상황에 비교될 정도가 아니라도 서민 가계의 위기가 시작되고 있고, 향후 물가의 고공행진 속 경기침체로 인해 가계 위기는 심화할 수밖에 없다. 수출 증가율 둔화와 무역수지 적자 등 대외환경이 나빠지는 가운데 내수 약화는 경기 침체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일부에서 3분기 마이너스(-) 성장률을 전망하는 이유이다.
 

경제주체 심리 반전 못시키는 정부가 더 문제

이처럼 국내외적으로 경제가 빠르게 나빠지는 상황에서 정부는 경제주체들의 심리를 반전시키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위기에 내몰리는 가계에 대한 지원보다는 대기업 및 부자 챙기기로 정부에 대한 신뢰를 상실하고 있다. 게다가 이 와중에 외환거래 사전신고 폐지를 추진하겠다는 것이다. 환율이 상승하고, 더 상승할 것으로 전망되는 상황에서 내국인 부자들에게 달러 유출을 지원하겠다는 것이 이 상황에서 나올 대책인가를 묻지 않을 수가 없다.  
 
외환위기 직전 김영삼 정부에서 외환제도의 선진화를 명분으로 내걸고 추진한 외환거래 자유화는 외환위기의 원인 중 하나였다. 불안한 국민에게 외환위기 트라우마를 끄집어내는 것은 정부인 것이다. 각자도생해야 하는 분열된 사회는 외국 투기자본의 좋은 먹잇감에 불과하다.  
 
블룸버그가 디폴트 가능성이 가장 큰 신흥국 50개국을 선정해 발표했는데 한국이 포함되었다. 선진국으로 분류되고 경제 규모 세계 10위, 무역 규모 7위(사실상 5위)인 한국이 어떻게 베트남, 카타르, 카자흐스탄, 심지어 나이지리아, 콜롬비아, 엘살바도르, 가나, 파키스탄 등 부채 리스크와 부채 위기가 현실화하는 국가군의 하나로 분류될 수 있는가?
 
* 필자는 건국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조지아대학교 대학원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은 경제 전문가다. 현재 건국대 경제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며, 경제사학회 회장을 지냈다. 유튜브 채널 ‘최배근TV’를 비롯해 TBS ‘김어준의 뉴스공장’, KBS ‘최경영의 경제쇼’ 등 다양한 방송에 출연 중이며, 한겨레21, 경향신문 등에 고정 칼럼을 연재했다. 주요 저서로 [누가 한국 경제를 파괴하는가] [대한민국 대전환 100년의 조건] [호모 엠파티쿠스가 온다] [이게 경제다] 등이 있다.

최배근 건국대 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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