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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롬 김 사무총장 “정부가 백신 ’선구매 모델‘ 도입하면 국내 기업에 도움 줄 것“[기로에 선 K바이오③]

[인터뷰] 제롬 김 국제백신연구소(IVI) 사무총장
변이 바이러스 대응할 백신 필요…기존 백신은 입원·사망 낮춰
글로벌 제약·바이오기업 ‘다가 백신’ 개발 경쟁 중
국내 백신 자급률 30%에 그쳐…백신 투자에 대한 정부 노력 절실

 
 
제롬 김 국제백신연구소(IVI) 사무총장이 7월 20일 서울 관악구 국제백신연구소 본부에서 이코노미스트와 만나 ″오미크론 하위변이인 BA.5에 대응할 수 있는 백신이 충분히 생산되려면 수개월이 걸릴 것″이라며 ″2020년 말과 유사한 상황이 재현될 수 있다″고 했다. 신인섭 기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 시장은 해외 기업의 독무대다. 화이자는 코로나19 확산 이후 1년 만에 백신을 개발했고, 모더나는 미국 정부로부터 대규모 자금을 지원받아 메신저리보핵산(mRNA) 백신 개발사의 대표주자가 됐다. 정부가 최근 적용 대상을 확대한 4차 접종에서도 화이자, 모더나, 아스트라제네카 등 해외 기업이 개발한 백신만 선택할 수 있다. 
 
국내 첫 코로나19 백신인 SK바이오사이언스의 스카이코비원은 국내 접종에 쓰이기 어렵다는 관측이 나온다. 스카이코비원은 백신을 맞지 않은 기본접종 대상자를 위한 백신인데, 질병관리청에 따르면 국내 접종률은 7월 말 기준 1·2차 접종률이 87%에 이른다. 스카이코비원을 국내에 기본접종 대상 백신으로 결정하기에는 사업성이 극히 낮다는 문제가 있다. 또한 기본접종 대상 백신은 추가 접종(부스터 샷) 백신으로 사용하기 어렵다는 것도 스카이코비원을 국내 접종에 사용하기 어려운 이유다.
 
일부에서 오미크론과 켄타우로스 등 새로운 코로나19 변이 바이러스에 대응하는 백신을 기다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기존 백신은 코로나19 확산 초기 유행한 바이러스를 예방하기 위해 만들어져서 변이 바이러스의 감염을 막기 어려워서다. 
 
“백신을 꼭 맞아야 할까”라는 질문은 현재 코로나19 백신을 개발 중인 국내 바이오 기업에도 향한다. 국내 바이오 기업들은 대부분 초기 코로나19 바이러스에 대응하는 백신을 개발하고 있다. 이 기업들이 코로나19 백신을 개발하더라도 후발주자로서 성과를 낼 수 있겠냐는 우려를 내비치고 있다.
 
본지는 제롬 김 국제백신연구소(IVI) 사무총장을 7월 20일 서울 관악구 본부에서 만나 이 질문을 던졌다. 김 사무총장은 “오미크론의 하위변이인 BA.5나 켄타우로스로 불리는 BA.2.75가 마지막 변종은 아닐 것이라고 확신한다”고 했다. 코로나19 변이 바이러스의 추이를 예측할 수 없기 때문에 백신 개발, 특히 다양한 형태의 변이 바이러스에 대응하는 백신을 개발해야 한다는 의미다. 또한, 기존 백신이 코로나19 변이 바이러스의 감염을 모두 막을 수는 없지만, 바이러스에 대응할 수 있는 면역을 키워준다고 강조했다. 김 총장 또한 최근 4차 접종을 마쳤다.
 
국내 기업이 코로나19 백신을 계속 개발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코로나19 바이러스가 변하고 있어서다. 2020년에 유행했던 원형 바이러스(prototype virus)를 예방할 목적이라면 기존 백신을 접종하고, 추가 접종도 하면 된다. 그러나 기존 백신은 새로운 변이 바이러스에 대한 감염 자체를 차단하지는 못한다. 델타 변이는 물론 오미크론 변이에 감염됐더라도 그 하위변이인 BA.5에 다시 감염될 수 있다. 기존 백신을 접종했든, 코로나19에 확진돼 자연스럽게 면역이 생겼든, 모두 변이 바이러스에 감염될 수 있다는 거다.
 
4차 접종은 기존 백신을 사용한다. 4차 접종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의미인가
아니다. 기존 백신은 변이 바이러스에도 어느 정도 효과를 나타내고 있다. 특히 코로나19로 인한 입원이나 사망을 통제하는 데 확실한 역할을 한다. 우리 몸에 면역 시스템이 갖춰졌으니, 이후 질병과 더 잘 싸울 수 있게 된 것이다. 한국인의 백신 접종률은 매우 높지만, 최근까지도 매일 3만~4만명의 신규 감염자가 나오고 있다. 아직은 코로나19에 감염될 가능성이 크다는 뜻이고, 추가 접종은 코로나19 바이러스에 감염된 사람의 몸 상태가 악화하는 것을 막는 백신의 능력을 향상시킬 수 있다.
 

접종 한 번으로 변이 바이러스까지?…‘범용 백신’ 개발 경쟁 시작

코로나19 백신 개발의 화두는 ‘다가 백신’으로 넘어갔다. 다가 백신은 여러 종류의 코로나19 바이러스에 대응할 수 있도록 2개 이상의 항원을 넣은 백신이다. 화이자, 모더나 등 mRNA 백신 개발사는 변이 바이러스에도 효과가 있는 백신을 다가 백신 형태로 개발하고 있다. 
 
국내에서 가장 먼저 다가 백신을 공급할 것으로 점쳐지는 기업은 모더나다. 식품의약품안전처(식약처)는 최근 이 회사의 새로운 코로나19 백신 모더나스파이크박스2주의 비임상·임상시험 결과 자료를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이 백신은 초기 코로나19 바이러스와 오미크론 변이인 BA.1을 표적으로 하는 mRNA 방식의 다가 백신이다.
 
다만 이 백신은 최근 유행 중인 오미크론 하위변이를 표적으로 하지 않는다. 우세종이 된 오미크론 변이 BA.5와 켄타우로스라는 별명이 붙은 BA.2.75가 대표적이다. 새로운 변이 바이러스가 빠르게 확산한다면 확진자도 폭증할 가능성이 크다. 올해 3월 오미크론 변이인 BA.1과 스텔스 오미크론인 BA2가 유행하면서 코로나19 확진자 수는 하루 최대 60만명으로 늘었다. 특히 켄타우로스 변이는 기존 코로나19 변이 바이러스보다 면역 회피율과 전파력이 높다고 알려졌다. 정부도 신규 확진자 수가 하루 30만명까지 늘어날 것으로 보고, 코로나19 재유행에 대응하기 위한 조치를 마련 중이다.  
 
오미크론의 하위변이가 유행 중이다. 이에 대응하는 백신은 언제 나올까
BA.5 변이에 대응하는 백신으로는 mRNA 백신과 불활화 백신 등이 올해 말 나올 수 있다. 시기적으로는 5개월가량이 소요될 것으로 보인다. 최근 미국 식품의약국(FDA)이 원형 바이러스와 BA.1 변이에 대응하는 mRNA 2가 백신의 시험 결과를 발표한 이후 BA.5 변이 바이러스에 대한 백신도 필요하다고 밝혔다. 다만 충분한 양을 생산하려면 수개월이 필요하다. 여러모로 2020년 말과 비슷한 상황이 재현될 가능성도 크다.
 
범용 백신은 앞으로 나타날 변이 바이러스도 예방할 수 있다는데. 이런 백신을 정말 개발할 수 있는 것인가
코로나19 범용 백신은 새로운 개념이며, 아직은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기존 백신이 오미크론 변이에도 작동한다는 점을 고려했을 때, 이론적으로 개발할 수 있다. 실제로 전 세계 많은 기업들이 범용 백신을 개발하기 위해 경쟁하고 있다. 문제는 코로나 바이러스가 어떻게 변이할지 누구도 모른다는 점이다. 범용 백신으로 개발 중인 물질들이 실제 범용 백신으로 사용될지는 코로나19 바이러스의 변이 추이에 달렸다. (만약 범용 백신이 나온다면) 임상 시험을 진행하고, 규제 당국으로부터 승인을 얻을 수 있을까도 생각해봐야 할 문제다. 전 세계 사람들이 백신을 접종했거나, 이미 감염돼 면역을 가지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SK바이오사이언스도 최근 개발한 코로나19 백신 스카이코비원이오미크론 하위변이에 효과가 있을지를 검토할 예정이다. 모든 코로나19 변이 바이러스에 대응할 수 있는 범용 백신을 개발하는 것도 과제다. 다만 국내 바이오 기업인 유바이오로직스, 셀리드 등은 초기 코로나19 바이러스를 표적으로 하는 백신 개발도 마치지 못했다. 진원생명과학과 아이진 등은 백신 접종자에게 추가 접종할 수 있는 코로나19 백신을 개발 중이다.
 
국내 기업의 백신 개발 속도가 늦다. 어떻게 하면 해외 기업의 백신 개발 속도를 따라잡을까
연구개발부터 사용승인까지 2년이라면 이미 빠르게 백신을 개발한 것이다. 문제는 화이자, 바이오엔테크처럼 공격적인 투자를 감행했거나, 아스트라제네카나 모더나와 얀센처럼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을 받은 선두주자들이 10개월 만에 백신을 개발하는 동안 ‘패스트 팔로워’가 없다는 점이다. 실제 코로나19 백신 개발에 성공한 기업은 위험을 감수하고 혁신하려는 의지가 있던 기업이다. 이런 의지는 막대한 투자가 받쳐줘야 한다. 선두주자들은 사전 구매 등 정부 지원을 받아 코로나19 백신 개발에 실패할 위험을 줄였다. mRNA 연구는 대부분 미국 정부의 연구였고, 비용은 감염병유행대비혁신연합(CEPI), 워프 스피드 작전(OWS) 등으로부터 지원받았다. 한국에도 이런 모델을 도입해야 하고, 최근 보건복지부(복지부)가 한국의 백신 개발 산업에 대한 연구개발 지원금을 늘리는 추세다.
 
국내 바이오 기업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나
한국 기업은 같은 것을 더 효율적으로 만드는 재능이 있다. 품질은 높지만, 더 적은 비용을 사용한다. 한국 정부가 지원을 예고한 만큼, 선두주자를 빠르게 따라잡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혁신에는 성과와 위기가 공존한다. 한국의 바이오 기업들의 다음 과제도 이제껏 나오지 않은, 새로운 백신을 개발하는 일이 될 거다. 코로나19 범용 백신이나, 독감 범용 백신, 아직 개발되지 않은 호흡기 세포융합 바이러스(RSV) 백신, 노로바이러스 백신 등에도 도전할 수 있다. 다만 새로운 백신과 플랫폼을 개발하지 못한다는 점이나, FDA, 유럽의약품청(EMA), 영국 의약품규제당국(MHRA) 등에 준하는 규제기관이 있다는 건 어려움이다.
 
제롬 김 국제백신연구소(IVI) 사무총장이 20일 서울 관악구 국제백신연구소 본부에서 이코노미스트와 만나 ″오미크론 하위변이인 BA.5에 대응할 수 있는 백신이 충분히 생산되려면 수개월이 걸릴 것″이라며 ″2020년 말과 유사한 상황이 재현될 수 있다″고 했다. 신인섭 기자

적은 비용 대비 효율성 높은 K바이오 장점 살려야

감염병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백신을 자급화해야 한다는 목소리는 10여 년 전 신종 인플루엔자(H1N1)가 유행하면서 나왔다. 정부는 신종 인플루엔자 감염병 사태 이후 국내에서 제조되는 백신의 자급률을 2020년까지 80%로 끌어올릴 것이라는 계획도 발표했다. 그러나 2021년 상반기 기준 우리나라의 백신 자급률은 30%에도 미치지 못한다. 전문가들은 백신 투자에 대한 범정부적 노력이 부족했다는 데 입을 모은다. 김 사무총장은 정부가 구매 지원을 통해 기업이 백신 개발을 지속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한다. 대표적인 방식은 ‘선구매’다.
 
백신 하나를 개발하려면 10년이 필요하다. 국내 바이오 기업이 오랜 기간 안정적으로 백신 개발에 전념하려면 어떤 지원이 뒷받침돼야 하나
정부가 인적 자원과 인프라 개발에 투자하고, 기업들이 정부 지원을 활용하고 연구 기술을 개발할 수 있도록 보장받는 것이 중요하다. 기업이 백신 개발에 실패했을 때 입을 피해를 줄이기 위해 정부가 백신을 ‘선구매’ 하는 모델도 도입할 수 있다. 백신을 공동 구매하기 위한 지역 리볼빙 펀드(region revolving fund)를 지원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중간 소득 국가가 더 많은 백신을 낮은 비용으로 구매할 수 있게 해서, 장기적인 백신 공급 계약을 맺을 수 있다. 이미 한국 정부는 생명공학기업, 빌앤멜린다게이츠재단과 글로벌헬스기술연구기금(RIGHT Fund)에 공동 출자하고 있다. 코로나19가 확산하자 신종 인플루엔자 대유행 이후 10여 년 만에 20억 달러 규모의 비용을 백신 산업에 투자했다. 백신실용화기술개발사업단도 2020년 출범했다. 한국 정부는 백신 자급률을 80%까지 높이는 게 목표이기도 하다.
 
김 사무총장은 국내 바이오 기업이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 규제 당국의 승인을 받는 데도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주문했다. 국내 시장보다 더 큰 시장을 목표로 삼으라는 의미다. SK바이오사이언스가 국내 첫 코로나19 백신을 개발한 데 대해서도 “코로나19 백신을 가장 빠르게 개발하는 방법은 전 세계 최고의 기술과 아이디어를 통합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한국 기업은 이미 전 세계 단일클론항체를 최대 50% 생산하고 있다”며 “백신이나 다른 분야에서도 같은 성과를 낼 수 있다고 기대한다”고 했다.

선모은 기자 suns@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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