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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전세 늘자 갭투자자 비명 늘고…월세는 고공 행진 [한파 불어닥친 부동산 시장②]

금리인상 여파에 역전세난…보증금 미반환 문제 ↑
전세의 월세화 가속…서민 주거비 부담 우려

 
 
서울 시내 한 부동산 중개업소에 붙어 있는 시세표 모습. [연합뉴스]
 
#. 세입자 김 모씨는 2년 전 계약갱신청구권을 사용하면서 올해 10월 전세 만기가 돌아오는 상황이었다. 계약갱신청구권을 사용할 당시, 집 주인은 2년 후에는 4년치(2+2년) 전세보증금을 확실히 올려 집을 내놓겠다고 공언한 상태였다. 하지만 2년 후 상황이 역전됐다. 금리 인상 여파에 ‘역(逆)전세난’이 심화되자 집주인은 오히려 김 모씨에게 보증금을 다시 5%만 올릴테니 재계약을 하는 것이 어떠냐고 제안했다.    
 
금리 인상, 부동산 경기 침체 우려가 심화되는 가운데, 갭투자자를 비롯한 집주인들이 좌불안석이다. 임대차 2법(계약갱신청구권제·전월세상한제) 시행 2년을 맞는 지난 8월 시장에서는 ‘전세대란’을 우려했지만 오히려 역전세난이 벌어지면서다. 역전세난은 세입자가 전셋집을 찾지 못해 어려움을 겪는 ‘전세난’과 상반된 개념이다.
 
집주인들은 그야말로 ‘세입자 모시기’에 혈안이다. 세입자를 찾지 못한 집주인들이 급기야 명품백까지 거는 진풍경도 벌어졌다. 부동산 커뮤니티 등에 따르면 최근 충남 천안시 서북구 불당동 소재 ‘천안불당지웰푸르지오’의 한 집주인은 본인의 전용면적 84㎡ 아파트 세입자를 모집하면서 전세 계약시 정품 샤넬백을 주겠다는 글을 올렸다. 전세 보증금은 4억5000만원, 입주는 12월 말 가능하다는 조건이다.
 
역전세난에 ‘갭투자’(전세보증금을 끼고 집을 매입하는 것) 집주인들은 더욱 속이 탄다. 집값이 급등하던 1~2년 전 시기에 전세가격이 더 오를 것으로 기대하고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아 대출) 갭투자에 나섰지만 올해 들어 세입자를 구하기가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전세가격도 하락하면서 세입자에게 보증금을 돌려주지 못해 ‘깡통전세’(임차인이 전세금을 돌려받지 못하는 집) 문제가 최근 사회적 이슈로 떠오르기도 했다. 집주인들은 금리 인상으로 인한 거래 절벽에 집값마저 내려가면서 집을 팔지도 못하는 상황이다. 전셋값이 내리면서 세입자에게 오히려 보증금의 일부를 돌려줘야 하는 경우도 생겨나고 있다.  
 
전세 수요가 줄고 주택시장의 거래절벽 현상이 심화하자, 집주인들이 집 팔기를 포기하고 전세로 돌리는 경우가 늘어나면서 전세 매물이 급증하는 모습이다. 부동산 빅데이터 업체 아실에 따르면 지난달 29일 기준으로 서울의 아파트 전세 매물수는 4만12건을 기록했다. 서울 아파트 전세 매물수가 4만건을 넘어선 것은 임대차2법 시행 전인 2020년 7월25일(4만324건) 이후 약 2년2개월 만에 처음이다.  
 
이미 전세시장은 매수자 우위로 돌아섰다. 9월 서울 아파트 전세수급지수는 93.3으로 8월(108.9)보다 15.7p(포인트) 떨어졌다. 서울 전세수급지수가 100아래로 떨어진 것은 2019년 2월 이후 처음이다. 전세수급지수는 기준선(100)보다 낮을수록 집을 구하려는 세입자보다 세를 놓으려는 집주인이 많다는 것을 의미한다.
 

고금리 부담·깡통 전세 우려에 월세 선호 높아져  

전세 물건이 증가하면서 가격 하락세도 지속되고 있다. 한국부동산원 집계 결과 9월 넷째주(26일 기준) 서울 아파트 전세가격은 0.18% 떨어져 지난주(-0.16%)에 비해 하락폭이 확대됐다.
 
금리 인상으로 전세자금대출 이자 부담이 커지면서 ‘전세의 월세화’는 가속화하고 있다. 최근 몇 년 새 너무 오른 전세가격에 고금리 부담까지 더해지자 세입자들이 자발적으로 월세로 돌리는 사례가 늘었다. 또한 집주인들이 보유세에 대한 부담이 늘면서 이를 세입자에게 세금을 전가하는 차원에서 월세로 전환하는 경우도 많았다.  
 
법원 등기정보광장에 따르면 지난달 확정일자를 받은 전국 월세 건수는 9월 둘째 주 기준 11만9536건, 전세는 10만6553건으로 집계됐다. 전체 임대차 거래 가운데 52.87%가 월세로 절반 이상을 차지했다.
 
주택 임대차 시장에서 월세가 전세를 넘어선 것은 올해 4월 이후 5개월 연속 이어지고 있다. 올해 1월에 월세가 전체 임대차시장에서 45.96%를 차지했고, 이후 3월(49.58%)까지 비중은 올랐다. 4월부터는 월세 비중이 절반을 넘어선 이후 ▶5월 57.78% ▶6월 50.27% ▶7월 50.40%를 기록했다.
 
전세 수요가 월세수요로 전환하면서 월세 가격은 계속 오름세를 보이고 있다. 지난달 서울 주택(아파트·연립·단독주택) 월세통합 가격지수는 101.8을 기록, 전월대비 0.09% 상승했다. 월세통합 가격지수는 2021년 6월(100)을 기준으로 지수화한 것으로 ▶순수 월세(보증금이 월세의 12개월 치 이하) ▶준월세(12~240개월 치) ▶준전세(240개월 치 초과)를 모두 합친 결과다. 이 지수는 2019년 8월 이후 36개월 연속 상승세다.
 
깡통전세에 대한 불안도 전세의 월세화를 부추기는 요인으로 꼽힌다. 유경준 국민의힘 의원실에 따르면 주택도시보증공사(HUG)의 전세금반환보증에 가입한 주택 가운데 전세 보증금과 담보 대출금을 더한 수치가 집값의 90%에 달하는 비중이 26.1%에 달했다. 보증보험에 가입한 전세 10곳 중 3곳은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할 위험에 노출돼 있다는 의미다.
 
이처럼 월세나 반전세(보증부 월세)를 선호하는 등 전세의 월세화 현상이 심화하면서 서민 주거비 부담이 더 커질 것이란 우려가 제기된다.  
 
임병철 부동산114 수석연구원은 “금리가 오르면서 어쩔 수 없이 월세로 돌리는 세입자도 늘고 있고, 또 집주인이 세금 전가 차원에서 월세를 돌리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며 “이 같은 상황이 반복되면 세입자 부담이 더 늘어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승훈 기자 wavelee@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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