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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자자에게 얼마가 필요하다고 당당히 말하라 [김형중 분산금융 톺아보기]

투자자에게 필요한 자금과 이익회수 구체적으로 설명하라
투자 방식의 진화, ICO로 이뤄질 수도 있었다

 
 
 
[게티이미지]
스타트업의 성패는 결국 자금모집에 달려있다. 엔지니어들은 자금모집이 가장 어렵다고 한다. 한편, 투자자들은 될만한 기업 찾는 게 가장 힘들다고 말한다.
 
얼마 전 한국핀테크학회에서 스타트업 창업자를 위한 스킬업 교육이 있었다. 학회는 5일간 매일 4시간씩 총 20시간의 집중적인 교육을 제공했다. 창업자들에게 가장 도움이 된 건 프리젠테이션과 스피치 교육이었다고 한다.
 
필자에게 가장 피부에 와 닿았던 것 역시 투자자에게 프리젠테이션하는 방법에 대한 교육이었다. 그날 강사는 힐스톤 파트너스의 황라열 대표였다. 요지는 아주 간단했다. 투자자에게 돈이 얼마 필요하고 그걸로 무엇을 해서 언제까지 이익을 얼마 돌려 주겠다고 발표하라는 거였다.
 
그런데 한국의 창업자들은 자기 사업이 유망하다는 것, 그리고 자신이 가장 잘 할 수 있다는 것을 장황하게 설명하곤 정작 당장 어느 정도의 자금이 필요하다는 말을 하지 않고 돌아간다는 것이다. 동방예의지국의 시민이니 천하게 돈 이야기를 할 수 없다는 인식이 박혀 있는 것 같다고 했다.
 
창업자들은 자기가 가장 잘 할 수 있으면서 또한 유망한 아이템을 들고 투자자를 찾아 다닐 것이다. 그러니 그건 됐고 투자자 입장에서는 자금을 안전하게 그리고 이익을 남기고 회수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 그런데 투자자들은 별로 관심이 없는 것에 대해서만 창업자가 어렵게 설명하면서 투자자의 주목을 끌지 못한다는 것이다.
 
미국의 창업자들은 얼마가 필요하다고 투자자에게 당당하게 말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사전에 자기 회사의 미래가치를 산정해 두어야 한다. 그런데 한국의 창업자들은 대부분 자산가치를 산정해 보지도 않고 투자자를 찾는다고 했다.
 
투자자가 10억원에 지분 10%를 주면 좋겠다고 제안했더니 창업자가 수락했는데 바로 15%로 올려 달라고 떠보자 그러겠다는 답하는 경우를 종종 본다고 한다. 투자자 입장에서는 그런 경우 창업자가 회사의 자산가치도 모르고 회사의 미래에 대한 확신도 없다고 생각해 투자하지 않는다는 팁도 공개했다.
 

기업공개 대 코인공개

전통적으로 투자는 주로 초기의 지분투자가 대세였다. 온라인에서 크라우드펀딩이 확산되었지만 그래도 역시 지분투자 후 기업공개(IPO) 또는 인수합병(M&A)이 이루어지면서 투자자들이 엑시트하는 게 전형적인 루틴이다. 지금도 대부분의 투자자들은 그렇게 투자한다.
 
2013년에 윌렛이란 미국인이 기업공개 대신 코인공개(ICO)라는 방식으로 자금을 모았다. 자신이 마스터코인이란 것을 만들어 줄 테니 비트코인을 보내달라고 공지했다. 그 해에 설립된 비트에인절스라는 벤처투자기업을 비롯해서 많은 사람들이 4740개의 비트코인을 그에게 보냈다.
 
이렇게 인류 역사상 최초의 코인공개를 통한 자금모집 방식이 출현했다. 당시 투자자들이 그에게 1 비트코인을 보내면 100 마스터코인을 받았다. 투자 초기에는 여러 이유로 투자자들이 큰 이익을 보았다. 그때는 거래소에서 사고 팔 코인이 10 종류를 넘지 않을 때였으니 희소성도 있었고, 메이드세이프라는 코인공개에 마스터코인으로 참여할 수 있어서 가수요로 가격이 폭등하기도 했다.
 
그 미국인은 이 비트코인을 가지고 자칭 제2의 비트코인이라 명명한 마스터코인 개발에 착수했다. 혁신적인 생각이 담긴 코인을 만들어 그는 약속을 지켰고 이더리움 출현에 많은 영향을 미치기도 했다.  
 
재무적으로도 그는 투자자로부터 받은 비트코인을 투명하게 사용했다. 비트코인 블록체인에 코인을 거래한 기록이 다 남으니 감시가 쉬웠다. 그럼에도 윌렛은 자산을 소중하게 잘 다루었다. 중요한 건 그가 ‘먹튀’하지 않았다는 거다.
 
그래서 코인공개가 인기를 끌면서 이것이 기업공개를 대체할 수 있는 자금모집 방법으로 자리를 잡을 뻔했다. 그런데 호사다마라고 했던가? 너도나도 코인을 발행한다며 시정잡배들까지 나서 자금모집 질서를 어지럽혔다. 도덕적 해이가 난무했고 코인 관리는 투명하지 않았으며 수많은 투자자들이 피눈물을 삼켜야 했다.
 
규제당국이 칼을 들고 나서자 2017년을 정점으로 코인공개가 사실상 시장에서 사라졌다. 미국 증권거래위원회는 이런 방식으로 판매되는 코인을 증권으로 보고 처벌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그래서 업자들이 움츠러든 게 코인공개가 사그러지게 된 주요 원인 가운데 하나다.
 
코인공개는 프로젝트 리더가 코인을 만들어 주겠다고 약속하고 비트코인을 받으면서 시작되었다. 신종 코인을 만들려면 메인넷을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자금과 개발자들이 필요했다.  
 
그런데 이더리움 위에서 작동하는 ERC-20이라는 스마트계약이 출현하면서 자금모집 방법에 일대 혁신이 왔다. 초등학생조차 ERC-20 스마트계약으로 토큰을 만들 수 있을 정도로 신종 돈을 찍어내는 게 쉬운 일이다 보니 너도나도 일확천금을 노리고 코인시장에서 뛰어들었다.  
 
그래서 ‘코인이 만들어지기 전에 팔겠다’는 게 아니라 ‘코인이 만들어졌으니 팔겠다’는 판매방식으로 바뀌어 최초의 코인공개는 빛을 잃고 말았다. 만들어지기 전에 팔면 증권이고, 만들어서 팔면 상품이니 금융당국의 처벌을 피할 수 있다는 생각이 코인공개를 기피하게 만든 요인이 되기도 했다.  
 
어쨌든 현재 코인과 토큰은 시장에서 여전히 팔리고 있다. 그러므로 코인공개가 건전하게 잘 활용되었더라면 기업공개를 대체할 새로운 자금모집 방법으로 굳건하게 자리를 잡았을 것이다. 어떤 방식이든 창업자들이 자금을 잘 모아 건전하게 활용하여 투자자에게 크게 보답하면 좋겠다.

김형중 고려대 정보보호대학원 특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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