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新벤처캐피털시대

新벤처캐피털시대

갓 태어난 벤처기업에 돈을 대라’─. 종합기술금융·신기술사업금융회사와 더불어 대표적인 벤처캐피털로 꼽히는 창업투자회사가 ‘벤처 인큐베이터’로 제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이제서야 기술은 있지만 자본과 경영능력이 부족한 벤처기업의 등받이가 돼주는 정통 벤처캐피털이 가야 할 길로 들어선 셈이다. 투자전략의 변화는 곳곳에서 눈에 띈다. 메디슨·두인전자 등을 키워 짭짤한 재미를 본 한국기술투자는 창업 2년내의 기업에 대한 투자비중을 70%로 높였다. 무한기술투자의 경우 투자기업 44개 가운데 절반 가량이 업력 2년 미만. 장은창투도 올해 들어 택손바이오텍·선바이오 등 4개 회사에 설립 때부터 투자했다. LG창투는 ‘초기투자를 통한 가치증식’을 모토로 내세우고 있다. 86년 ‘중소기업 창업지원법’에 힘입어 첫선을 보인 뒤 그 동안 두드러진 활약이 없었던 창투사가 사업전략을 바꾼 이유는 크게 3가지로 요약된다. 먼저 95년 메디슨을 필두로 성공신화를 이룬 벤처기업이 하나둘씩 나오면서 자본이익으로 수익을 거둘 수 있게 됐다. 59개 창투사 가운데 한국기술투자·보광창투·장은창투 등이 ‘홈런’을 날린 것. 벤처열풍의 진원지인 메디슨은 95년 말 장외시장에 상장, 한국기술투자에 1백30억원이 넘는 거금을 안겨줬다. 이는 벤처기업 주식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바꾸는 계기가 됐고 이자 놀이에 정신을 팔던 다른 창투사들에 자극이 되기도 했다. 지난해 5월 CTI에 35억원을 투자했던 보광창투는 올 상반기까지 2백여억원을 벌었다. 장은창투도 94년 미래산업에 17억5천만원을 투자, 지난해까지 74억원을 챙겼다. 벤처붐이 이렇게 거세게 일면서 부작용도 나타났다. 벤처기업의 값어치가 폭등한 것. 반도체 칩을 만드는 C&S테크놀러지사의 주식은 코스닥시장에 오르지 않은 상태에서 주당 5천원짜리가 거의 5백만원에 팔렸다. 게다가 지난 6월까지 ‘정보통신’ 타이틀이 붙은 벤처기업의 주식은 대부분 5만원을 웃돌았다. 이는 일부 창투사들이 터무니 없는 가격에도 손을 내밀었기 때문. 단기투자로 한몫 챙기겠다는 과욕이 부른 결과였다. 또한 대우·LG·포스코·현대 등 재벌그룹까지 가세하면서 수급이 맞지 않아 거품을 더욱 부채질 했다. 그 결과 적정 가치보다 더 받으려던 벤처기업들은 요즘 들어 돈줄을 잡기 어렵게 됐다. 창투사도 벤처기업에 자금이 물린 꼴이 됐다.

“시세차익보다 새싹 노하우 쌓아야” 장은창투 조병식 부장은 “부동산 투기하듯 거품을 잔뜩 만들어 서로 손해를 본 셈”이라며 “벤처기업은 적절한 현재가치를 제시해야 하며 창투사는 시세차익을 노리기보다 인큐베이션에 대한 노하우를 쌓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벤처산업의 환경변화도 창투사의 변신을 부추기고 있다. 창투사들은 내년 모습을 보일 여신전문 금융기관에 대항할 무기로 인큐베이션에 대한 노하우를 택했다. 여신전문 금융기관이 막강한 자금과 인력으로 밀어붙여도 창업초기 업체에 대한 투자는 섣불리 못할 것이라는 판단에서다. 틈새시장으로 키운다는 얘기다. LG창투 김영준 사장은 “리스·카드사 등이 신기술금융업무에 욕심을 내고 있지만 투자경험이 부족해 적극적으로 덤벼 들지는 못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할부금융·카드·종금사가 없는 모기업들이 창투사를 만들어 여신전문 금융기관으로 넘어가려고 했다. 그러나 이제 그럴 필요도 별로 없어졌다. 그 동안 벤처업계의 최대 관심사였던 ‘벤처기업 육성에 관한 특별법’이 지난 8월 나와 창투사의 업무영역에 대한 족쇄가 많이 풀렸기 때문. 조세감면규제법, 금융실명거래 및 비밀보장에 관한 법률 등 관련 법규가 이에 맡게 다듬어지면 실질적인 힘을 발휘할 것으로 보인다. 또한 코스닥시장도 재정경제원·통상산업부 등이 협의, 올해 말까지 개편안을 내놓을 예정이어서 창투사들의 운신폭이 넓어질 것으로 보인다.

창투사 업무영역 족쇄풀려 창투사들의 투자방식도 주식이나 전환사채 인수 위주로 바뀌고 있다. 특히 95년 3천1백49억원이던 주식인수 잔액은 96년 3천8백12억원, 97년 7월말 현재 4천72억원으로 크게 늘었다. 7월말 현재 총투자잔액 1조4천8백84억원 가운데 주식인수잔액 비율은 27%. 이는 벤처신화가 하나둘 결실을 맺기 시작하면서 창투사들이 투자에 대한 자신감을 얻었고 정부 지원책도 분위기를 띄웠기 때문. 이에 따라 돈놀이 성격이 짙은 약정투자나 신용대출은 지난해에 비해 조금 늘거나 주춤거리고 있다. 투자대상도 정보통신 일변도에서 벗어나 영상·유통·제조업 등 다양해지고 있다. 80년대 말 기계부문에서 90년대 정보통신·소프트웨어, 앞으로는 영상·생명공학 분야로 옮아갈 전망이다. 영상부문 선두주자는 일신창투. 23억원을 투자한 ‘은행나무침대’와 17억원을 투자한 ‘접속’이 잇따라 성공을 거두면서 70억원이 넘는 수입을 올렸다. 동부창투는 기존 업종 가운데 유망한 분야를 찾아 성공한 케이스. 어려움을 겪던 닭고기 전문업체 하림에 10억원을 투자, 조금씩 재미를 보고 있다. 한미창투도 5년전 사료회사 도드람에 30억원을 투자, DHA돼지사료를 개발할 수 있게 했다. 업계 관계자들은 “개별기업 특성에 맞는 유연한 투자가 바람직하다”며 “궁극적으로는 미국처럼 분야별·업력별 전문 창투사가 나와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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