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멜레온’의 變身을 배워라!
‘카멜레온’의 變身을 배워라!
현실안주 않고 끊임없이 변화 제일모직은 지난 1954년 삼성그룹의 모태기업으로 출발, 우리나라 산업발전의 역사와 함께 성장해온 기업이다. 제일모직의 주력사업이 이를 잘 말해준다. 제일모직은 설립 후 70년대에는 모직물, 80년대에는 패션(의류), 다시 90년대에는 화학·정보통신 소재 분야에서 큰돈을 벌었다. 21세기에 들어서는 반도체 재료분야 같은 첨단사업으로 진출, 돈 버는 영역을 계속 넓혀 나가고 있다. 물론 사업다각화가 제일모직의 전유물은 아니다. 그러나 제일모직이 돋보이는 대목은 끊임없이 변화하면서도 기존의 사업기반을 흔들리지 않고 더욱 다지고 있다는 점. 주력부문인 모직물의 경우 ‘골든텍스’란 브랜드로 세계 최대, 국내 시장의 52%를 차지하고 있으며 해외 수출 증가에 따라 미국 및 일본 고급 복지 시장의 10% 이상을 점유하고 있다. 또 최근에는 제품 한 벌당 가치가 1천5백만원에 달하는 최고급 복지인 ‘란스미어’를 개발, 고급 브랜드의 성가를 높이기도 했다. 이처럼 탄탄한 시장기반을 갖고 있지만 제일모직은 이에 안주할 생각은 처음부터 없었다. 이 회사는 이미 모직·의류사업이 한계에 달하던 10여년 전부터 당시 차세대 사업분야였던 화학 사업에 진출, 고부가가치 사업영역으로의 변신을 꾸준히 시도해왔다. 지난 89년 화학수지 사업에 진출한 게 대표적인 사례다. 제일모직은 현재 ABS(Acrylonitile Butadiene Styrene), PS(Polystyrene) 등 연간 40만톤 이상의 엔지니어링 플라스틱을 생산하고 있다. 특히 난연 ABS(모니터 외장재료), 난연 HIPS 등은 뛰어난 기술력을 바탕으로 세계 시장점유율 1위를 차지하는 등 대표적인 화학업체로 성장했다. ABS는 컴퓨터 모니터·프린터 같은 각종 OA기기와 냉장고·세탁기·전화기 같은 가정용 전자제품, 자동차·오토바이 등의 산업용으로 가장 많이 쓰이는 합성수지. 아는 사람은 드물지만, 국내 휴대폰의 경우 케이스 중 절반 이상이 제일모직의 난연 제품을 사용하고 있다. 이처럼 기업변신을 거듭해오던 제일모직은 지난 94년에는 반도체용 화학소재인 EMC(반도체 보호용 케이스) 공장을 준공, 정보통신소재 사업에까지 진출하는 일대 전환기를 맞았다. 첨단 화학 사업을 통해 쌓인 기반기술과 삼성그룹의 전자·정보통신 등 관계사들과의 기술공조 및 안정적인 수요를 감안한 결정이었다. 최근에는 반도체(EMC)·휴대폰(전자파차폐제, 2차전지 전해액)·노트북·TFT-LCD 등으로 정보통신소재 사업분야를 계속 확대하고 있다. 2000년 기준으로 화학·정보통신소재부문 매출은 전체의 절반 수준(45. 1%)까지 근접했다. 2001년 들어 이같은 추세는 더욱 확실해졌다. 2001년 3·4분기까지 이 분야의 매출이익은 전체의 50%를 넘어섰다. 제일모직은 한 발 더 나아가 2002년 4월에는 첨단 반도체 집적화에 필수적인 ‘CMP 슬러리(웨이퍼 연마제)’ 양산까지 계획하고 있다. 2000년에 제일모직의 증권거래소 업종 분류가 ’섬유‘에서 ’화학‘으로 변경된 것도 이같은 사업구조 변화를 반영한 것이다. 섬유·패션사업과 더불어 첨단 정보통신소재 사업을 기업의 주력사업으로 육성하겠다는 의지가 경영에 반영되면서 2년 연속 화학 부문의 매출이 전체매출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게 이를 방증한다. 사내외서 사명변경 제기 그러나 이렇게 신규사업 분야가 커가면서 제일모직은 고민거리가 한 가지 생겼다. 이미 주력부문이 변화하는 상황에서 제일모직이란 고풍스런 이름이 어울리지 않는다는 여론이 사내외에서 제기됐던 것이다. 화학·정보통신소재 분야를 강화하면서 회사명도 그에 걸맞은 명칭으로 변경돼야 한다는 것. 실제로 제일모직은 2000년에 사명변경에 따른 새로운 CI(Corporation Identity) 작업을 검토했었다. 당시 제일모직은 회사명에 ’삼성‘을 넣고, 화학과 정보통신소재를 상징할 수 있는 단어를 삽입해 ’삼성제일00‘ 등으로 변경하는 방안을 고려했던 것. 하지만 1년여가 지난 지금 제일모직은 사명변경에 대해서는 ’없었던 일‘에 불과하다고 밝히고 있다. 지난 47년간 제일모직이라는 이름으로 소비자에게 각인돼 온 기업이미지는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막대한 ’브랜드 가치‘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라는 게 회사측 설명이다. 회사 관계자는 “국내 10대기업의 연대별 변천사를 조사한 결과, 대기업의 평균 수명이 30년을 넘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며 “제일모직이 지난 40년간의 부침 속에서도 경쟁력을 잃지 않았던 것은 전통을 중시하면서 경영환경 변화에 따른 고부가가치 사업위주의 변신을 거듭해왔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사업환경이 계속 변화하는데 언제까지 전통을 고수할 수 있겠느냐는 의견도 만만치 않다. 아직 패션과 화학·정보통신으로 이원적인 사업구조를 갖고 있는 상황에서는 사명의 ’고수‘가 가능하다. 하지만 앞으로 화학·정보통신 부문의 비중이 더 커지면 사명변경은 어쩔 수 없는 선택이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아무튼 제일모직의 행보는 끝없는 성장과 변신을 꿈꾸고 있는 수많은 국내 기업들에게 벤치마킹의 대상이다. 백화점식으로 사업을 벌이며 계속 변신하는 미국의 GE의 행보를 감안해서, 제일모직을 한국의 GE라고 부르는 이들도 있다. 아무튼 전통산업과 최첨단 산업을 모두 한 손에 거머쥐고 있는 제일모직의 행보에 재계의 관심이 쏠리는 건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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