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규직도 기업의 중추 파워”
“비정규직도 기업의 중추 파워”
‘종신 고용’의 종언(終焉) ‘핵심인력 외엔 전부 아웃소싱하라’는 것이 경영전문가들의 한결같은 조언이기도 하다. ‘구조조정 혁명가’ ‘경영의 마술사’라고 불리는 미국 GE의 잭 웰치 전 회장도 이에 대해 유명한 말을 하기도 했다. “당신의 뒤뜰을 누군가의 앞뜰로 만들어라.” 만약 한 기업 내에서 일을 해도 별로 빛이 나지 않아 서로 기피하는 분야가 있다면 이를 굳이 그 기업의 식구를 등떠밀어 그 자리로 내몰 게 아니라, 외부 인력에게 맡기자는 것이다. 예를 들어 건물 경비나 안내 데스크 등 내부 직원들이 맡기 싫어하는 분야는 이것만을 전담해 사업을 하고 있는 업체에 맡기는 것이다. 그들에게는 이 업무 자체가 ‘앞뜰’, 다시 말해 사업의 ‘최전선’이기에 혼신을 다해 일을 한다는 것이다. 이처럼 아웃소싱이 시대의 화두(話頭)로 떠오르면서 비정규직 사원들의 증가도 자연스런 시대 흐름이 됐다. 비정규직과 정규직 사원의 비율을 어떻게 맞춰가느냐, 그리고 어떤 분야에서 비정규직을 활용할 것이냐가 기업들에게 가장 큰 당면과제로 떠오르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에게 비정규직이란 말은 ‘전문성’이나 ‘자유’보다는 애절한 아픔 섞인 단어로 들려오는 것은 왜일까? 정규직에 비해 저임금, 열악한 복지 조건에 시달리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또한 취업문이 좁아진 가운데 어쩔 수 없이 비정규직을 택하는 구직자들도 많기 때문이기도 하다. 우리의 비정규직 증가는 다소 왜곡된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 한마디로 말해 정규직 사원 고용에 수반되는 복잡한 노무관계 등 ‘부작용’ 탓이다. 우리나라의 사회 안전망은 취약하기 이를 데 없다. 97년 말 IMF 경제위기 이후 퇴직자·실업자가 급증하자 정부가 서둘러 실업자 보호장치를 마련하고 있지만, 실제 작동 여부는 미지수다. 따라서 직장인이면 누구나 퇴직 후 생활에 대해 불안을 느낄 수밖에 없고, 그 결과 ‘고용 보호’ 장치가 강화됐다. 노동법상 종업원을 함부로 해고할 수 없게 규정해 둔 것이다. 근로기준법 31조에 따르면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 △고용주의 해고회피 노력 △합리적, 공정한 해고 기준 △해고 60일 전 노조에 사전통보 및 성실한 협의를 거친 다음에야 해고가 가능하다. 우리의 고용보호 수준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국가들 중 3번째로 높으며, 전통적으로 사회주의 성향이 강한 유럽국가들 중에서도 최고 수준에 버금가는 고용보호장치를 갖고 있다. 한 대기업 임원은 “기업이 망하기 직전에야 해고할 수 있는 수준”이라며 “이는 곧 노동생산성 저하로 연결된다”고 말했다. 이같은 상황에서 기업들은 골치아픈 정규직보다는 손쉽게 대체가능한 비정규직을 선호할 수밖에 없는 왜곡된 구조가 발생하는 것이다. 결국 취약한 사회 안전망은 고용보호를 강화하는 것으로 보완되고, 이는 오히려 정규직 고용을 줄이게 만드는 아이러니를 낳은 것이다. ‘기형적’인 한국형 비정규직 IMF에서도 이같은 ‘악순환’의 고리를 깨기 위해 우리 정부에 권고한 바가 많다. 그 주된 정책은 기업들의 고용보호 장치를 완화하면서, 동시에 사회안전망을 강화하라는 것이다. 그래야 노동시장의 경직성이 완화되고 정규직 고용을 늘릴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비정규직들의 근로조건·노동 형태가 한마디로 ‘기형적’이기 때문에 더욱 그러하다. 비정규직 근로자들의 처우는 갈수록 나빠지고 있다. 우선 임금부터가 그렇다. 민노총에 따르면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정규직과 같은 일을 하고도 정규직 평균 임금의 53.7%(여성은 42.4%)만을 받고 있다. 일의 성격이나 근무 강도가 다르다면 임금이 차이가 나는 것이 당연하지만, 똑같은 일을 똑같은 시간 동안 하고서도 비정규직이라고 해서 임금을 적게 받는 것은 문제가 된다. ‘동일 노동, 동일 임금 원칙’에 위배되기 때문이다. 통계청 조사에 따르면 정규직으로 분류되는 상용 근로자의 임금이 월 평균 1백67만원인데 비해 임시직은 91만원·일용직은 상용직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68만여원을 받고있다. 더욱이 이들의 83%가 사업주와 근로계약도 맺지 않은 채 불안정한 상황에서 근무하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일용직의 사회보험(국민연금·건강보험·고용보험)가입률은 2.4∼2.9%에 불과했고 퇴직금이나 상여금·시간외수당 등 근로복지수혜율도 1∼2%에 그쳐 열악한 근무조건에 시달리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임시직의 사회보험가입률도 18.4∼22.2%, 복지수혜율이 7.4∼11.6%에 그치고 있는 형편. 90% 이상이 사회보험에 가입하고 복지혜택을 받고 있는 상용근로자와 큰 대조를 이룬다. 또한 파견 근로자의 경우 정부는 2년 이상의 고용을 금하고 있지만, 기업들은 이 조항을 오히려 악용하고 있다. 2년이 지나면 해당 파견직 근로자를 해고하고 다시 다른 근로자를 고용하는 식으로 법망을 피해가고 있다. 정규직 임금 ‘절반’받는 비정규직 비정규직 사원들의 복지문제·근로조건문제 등이 사회 문제화되고 있는 것이 우리 현실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문제를 노동자 입장에서만 생각할 수도 없다.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주장하는 노조들의 요구를 기업들이 다 수용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우리나라에서 비정규직 노동자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오른 것은 97년 말 IMF 경제위기 직후 부터다. ‘파견근로자법’이란 관련 법규가 만들어진 것도 98년이 처음이다. 이 법에 따르면 파견근로자를 쓸 수 있는 직종은 26개 직종으로 제한되어 있다. 정부는 근로자들의 복지·처우 문제를 위해 이 법을 만들어 기업들의 고용 형태를 규제하고 있지만 사실 정규직을 쓸지, 비정규직을 쓸지는 기업들이 자유롭게 결정할 문제다. 정부가 나서 굳이 관여할 문제가 아닌 것이다. 이에 불구하고 정부가 파견근로제를 ‘허가’사항으로 묶어둔 것은 노동자들의 근로조건 악화를 막기 위해서다. 하지만 기업들은 이 법을 악용해 기형적인 파견근로를 운영하고 있는 실태다 보니 법의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많다. 차제에 법적·제도적 보완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이와 동시에 기업들이 머리를 싸매고 연구해야 할 것이 있다. 정규직에 비해 조직 충성도가 약하고, 업무 효율도 떨어지기 쉬운 비정규직 노동인력들을 어떻게 핵심 전력화할 것인가 하는 것이다. 이는 21세기형 세계 경쟁구도에서 기업들의 생존을 좌우하는 중대 문제이기 때문이다. |
ⓒ이코노미스트(https://economist.co.kr) '내일을 위한 경제뉴스 이코노미스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많이 본 뉴스
1심판대 오른 종투사 제도…기존 종투사들 향방은
2국내 경제전문가 30인이 예상한 '2025 한국경제'
3급등도 급락도 아니었다...'횡보' 비트코인 '10만 달러' 고지 넘을까
4LG화학, 나주공장 알코올 생산 설비 가동 중단..."비용 절감"
5여야의정협의체, 20일 만 와해...의료계 "정부·여당 해결 의지 없어"
6일주일에 네 번 나오라던 포스코...팀장급 주5일제 전환
7득남 '정우성', 이정재와 공동매입 '청담동 건물' 170억 올랐다
8 대한의학회·의대협회 "여야의정협의체 참여 중단"
9한국은행 "내년 근원물가 상승률 2% 밑돌며 안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