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계부채, 걱정만 할 일인가.
| 김정호 자유기업원 부원장 | 가계부채가 늘어서 걱정들이다. 2002년 9월 현재 자영업자에 대한 대출을 포함한 가계대출은 4백30조원으로 지난해보다 1백8조원이 늘어난 것이다. 신용불량자가 250만명을 넘었다고 하니 그 급격한 증가속도만으로 보면 놀랄 만도 하다. 그러나 경제학의 기본 원리에 비추면 그렇게 이상한 일은 아니다. 사람들은 소득 중 일부는 소비하고 나머지는 저축한다. 그 저축은 주식의 형태로 기업에 투자되기도 하고, 예금으로 은행에 예치되기도 한다. 은행은 그것을 누군가에게 대출해 준다. 대출받은 사람은 이자를 지급하고 은행은 그 돈으로 예금자에게 이자를 보장해 준다. 지금 문제가 되고 있는 부분은 후자, 즉 은행의 대출자 구성이다. IMF 외환위기 전에 은행의 주된 대출 고객은 대기업들이었다. 즉 국민소득 중 은행에 저축된 부분을 주로 대기업들이 대출해서 썼던 것이다. 그러나 이제 대기업들은 은행돈을 적게 쓴다. 과거 400%를 넘던 대기업들의 부채비율이 150% 미만으로 떨어졌다. 예금 때문에 은행 금고에 돈은 쌓이는데, 대기업들은 대출을 해가지 않으니 남는 돈이 갈 곳은 당연히 소기업이나 가계뿐이다. 가계대출이 늘어난 것은 당연하지 않은가? 과거에는 가계의 저축된 돈으로 대기업들이 투자했지만 이제는 다른 가계에 의해서 투자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가계대출 규제는 소비의 조장과 연결된다. 가계대출이 줄면 은행의 수익률은 낮아질 것이고 예금자들에게 줄 수 있는 이자도 작아진다. 그 결과 저축은 줄고 소비는 늘게 된다. 가계대출에 대한 인위적 제한은 결국 소비의 증가를 가져온다. 한편으로 과소비를 걱정하면서, 또 한편으로는 은행의 대출을 규제하는 것은 모순이다. 물론 현재의 가계부채 상황을 이상적이라고 부를 수는 없을 것이다. 특히 선진국 은행들과 비교해 보면, 우리 은행들의 신용 심사 능력이 충분한지에 대해서는 의문의 여지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첫술에 배부를 수도 없지 않은가. 은행이 스스로의 권한과 책임으로 대출을 시작한지 이제 3년도 지나지 않았다. 완벽한 수준은 아니지만, 그래도 현재의 심사 능력이 몇 년 전보다 좋아진 것은 사실이고, 또 그 부족한 심사 능력을 스스로 인식해서 부동산 담보대출을 선호하는 것 아닌가. 4백30조원이라는 가계부채 총액은 개별적 대출이 모여서 이뤄진 것이고, 각각의 대출들에 대해서 은행들이 나름대로의 기준에 따라 최선의 심사를 했다면 정부나 제3자가 특별히 걱정할 일은 아니다. 걱정한다고 해서 당사자인 은행보다 더 잘할 수도 없을 것이다. 담보로 잡은 부동산의 가격이 떨어져서 은행이 망하면 어떻게 하냐는 걱정들도 한다. 하지만 그 걱정은 당사자인 은행이 더 하고 있지 않겠는가. 이 시점에서 정부가 해야 할 일이 있다면 개별 은행들의 책임을 강화하는 일이고 구체적으로는 은행이 도산하더라도 정부가 공적자금을 투입하는 등 개입하지 않겠다고 선언하는 것이다. 그런 원칙이 분명해지면 은행 자신들의 심사기준이 더욱 엄격해짐은 물론, 고객인 예금자들의 행동도 달라지게 된다. 위험한 은행에 돈을 맡기고 싶어하는 예금자는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예금자의 그 같은 태도 변화는 다시 은행 경영자들의 주의 수준을 더욱 높인다. 물론 한 은행의 부실이 다른 은행으로 전염되는 현상이 있을 수 있고, 그런 위험은 개별 은행에만 맡겨서는 해결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그러나 현대 경제사의 경험은 책임이 분명해질 경우 은행들 스스로 타 은행으로부터의 부실 전염을 막기 위해서 방벽을 쌓는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불행히도 정부가 택하는 것은 또 다시 개입이다. 부채비율 250% 이상인 가계에 대한 대출 규제, 연체율 15% 초과 카드회사에 대한 영업 정지 등 개입이 어디까지 갈지 알 수 없다. 그런 것은 개별 은행이나 금융회사들이 결정할 사항들이다. 금융감독이라는 것으로 이름만 바꾼 채 관치금융이 되살아나는 것은 아닌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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