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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구조조정… 경력직에 돌파구 있다

또 구조조정… 경력직에 돌파구 있다

또다시 감원 바람이 불어오고 있다. 지난해부터 시작된 국내 경기 침체에 지난달 시작된 이라크전으로 세계경제까지 위축되면서 기업들이 대대적으로 몸집 줄이기에 나서고 있다. 특히 외환위기를 거치면서 ‘불황기에 신속한 구조조정을 해야 회사가 살아난다’는 것을 경험한 기업들이 불황의 골이 깊어지기에 앞서 감원 등으로 대응책을 세우고 있다. 이를 반영이라도 하듯 이미 20대의 실업율은 최고 수준으로 올라가고 있다. 지난해 말 5%대였던 ‘청년 실업율’이 올해 2월에는 8.5%로 껑충 뛰었다. 이는 2% 후반대에서 안정돼 있는 30대의 실업율은 물론이고, 3.7%를 기록하고 있는 전체 실업률과 비교해도 월등이 높은 수치다. 특히 문제가 되는 것은 최근 다섯달 동안 실업률이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런 추세대로라면 당분간 20대의 실업이 연령대별로 가장 높은 수준을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 통계가 아니더라도 재계는 이미 긴축경영과 고강도 구조조정에 들어갔다. 기업들은 올 들어 신규인력 채용을 억제하고 기존 인력에 대해서는 희망퇴직 신청을 받는 등 대대적인 인력구조조정 작업에 나서고 있다. 포스코의 경우 지난해 89명을 감원한 데 이어 올해도 과장급 이상 간부 사원을 대상으로 희망퇴직을 접수해 1백여명을 감원하기로 했다. 외환위기 직후에도 감원하지 않았던 점을 비추어 보면 포스코의 인력 감축은 이례적인 일이다. 대한항공은 24개월치 급여지급 등 파격적인 명예퇴직 조건을 제시하고 인원감축에 나섰다. 주식거래량 감소와 부실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증권사와 신용카드사 등 금융부분에서 인력구조조정이 시작되면 대규모 실업자가 생길 것이라는 전망이다. 채용정보업체 인크루트의 조사결과 50개 금융기관 중 5개사만 채용계획이 있다고 답했다. 문제는 이런 구조조정기에는 신입사원 채용이 대폭 줄어든다는 점이다. 불똥이 사회 초년생들에게 튀는 것. 최근 어려움을 겪고 있는 SK그룹의 경우 올 상반기에 신입사원 공채를 하지 않기로 했다. SK관계자는 “지난해 상반기에는 2백명, 하반기에는 5백명 규모로 신입 사원을 채용했으나 올해는 불투명한 국제정세와 경기침체, 최근의 SK사태 등을 감안해 상반기 공채를 하지 않기로 결정했다”고 말했다. LG전자는 올해 신입과 경력 등 신규채용 인력을 지난해 보다 4백여명 적은 1천8백여명으로 결정했다. 지난해 사상 최대 순익(4천5백억원)을 기록했던 점을 감안하면 이례적인 일이다. 삼성전자는 지난해와 같은 수준인 2천7백여명을 채용한다는 계획이지만 최근 경기를 감안해 채용시기를 연말로 늦추기로 했다. 현대차 역시 이라크전이 끝나는 시점 이후로 채용 시기를 늦추기로 했다. 하지만 신규 채용의 문이 좁아지는 것을 단순히 경기 탓으로만 볼 수는 없다. 헤드헌팅 업체인 유앤파트너스의 유순신 대표는 “앞으로는 경력직 등 시장에서 검증된 인력들에 대한 선호가 높아질 것”이라고 진단했다. 이런 현상은 통계적으로도 증명된다. 한국직업능력개발원이 지난 1월 근로자 3백인 이상 사업장 1천76곳의 자료를 분석한 결과 외환위기를 거치며 청년층(15∼29세) 일자리 3곳 가운데 1곳이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또 97년에는 채용자 가운데 신규채용이 63.1%였으나 2001년에는 22.1%로 줄었다. 대졸자 신규채용비율도 97년 70.1%에서 2001년 31.5%로 급감했다. 이는 기업들이 이제 신입사원보다 경력직 사원이나 숙련된 인재를 원한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특히 지난 수년간 지속적인 정보기술(IT) 발전과 제조공정의 시스템화는 채용시장의 인적자원 수요에 큰 변화를 가져왔다. 그 결과 대부분의 기업이 오퍼레이터보다는 마케터 중심으로, 신입직보다는 경력직 중심으로 채용문화가 바뀌었다. 예전에 사람 손으로 하던 일이 대부분 컴퓨터나 기계가 대신하게 되면서 노동중심의 ‘인력시장’은 사라지고 지식중심의 ‘인재시장’이 형성되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외환위기를 기점으로 구조조정기를 거치면서 노동시장에서 공급이 수요를 앞지른 것도 중요 요인으로 지적된다. 이전에는 겪지 못한 현상이다. 기업이 확장되면서 항상 부족했던 인재가 IMF를 기점으로 대기업이 망하면서 인재들이 대거 시장으로 흘러나온 것이다. 최근의 청년실업률 증가를 단순히 경기 침체 탓으로 돌리기 어려운 것도 이때문이다. 지난 9일 삼성경제연구소는 ‘청년실업 증가원인과 대응방안’이라는 보고서를 통해 청년실업의 증가원인을 경제성장의 둔화 ▶기업 구조조정으로 인한 신규채용 감소 ▶산업구조의 고도화로 고용인력 감소 ▶기업체의 경력직 선호 등 경기적 요인보다 구조적 요인을 꼽고 있다. 경기가 좋아져도 신규채용 인력의 경우 파트타임이나 계약직 등 불안정하고 단순한 고용만 늘어날 가능성이 많다는 것이다. 때문에 앞으로는 예전처럼 대규모 공채를 통해 기업의 고위직에 오르거나 연봉이 높은 직종으로 이동하기는 점점 힘들어질 것이라고 인사관계자들은 한결같이 진단하고 있다. 오히려 자기 전문분야를 갖고 꾸준히 경력을 쌓을 경우 더 좋은 기회가 온다는 것. 배용태 ㈜한화 인사부장은 “지금은 평생 직장이라는 개념보다 평생 직업이라는 개념이 더 어울리는 시대”라며 “취업자들도 직장의 명성보다는 자신의 전문분야를 잘 발전시키면 결국 좋은 직장으로 오게 돼 있다”고 강조했다. 직장인들도 이 같은 현실에 눈을 떠 점점 전직(轉職) 활동에 적극성을 보이고 있다. 채용정보업체인 잡링크가 지난 3일 직장인 3천8백24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66%의 직장인이 전직을 위한 활동을 한 것으로 조사됐다. 또 전직 활동을 한 직장인 2천5백여명 중 실제 전직에 성공한 사람은 21%정도인 5백18명으로 조사됐다. 직장인 3명 중 2명이 전직활동을 할 정도로 전직은 직장인들에게 더 이상 ‘최후의 선택’이 아니라 일상적으로 생각하는 ‘대안 중의 하나’로 자리잡고 있다. 실제로 대기업에서도 경력직 채용 비율이 급격히 높아지고 있다. 삼성전자의 경우 외환위기 이전에는 전체 채용 직원 중 경력직은 10명 이내였다. 하지만 지난 3년간은 매년 6백명정도 경력직을 채용하고 있다. 평균 채용인원 2천5백여명 중 24%정도에 해당한다. LG전자의 경우 외환위기 이전 전체의 2∼3%에 불과했던 경력직 사원들이 최근에는 20%대로 높아지고 있다. 복합기술과 최신 기술이 요구되는 SK텔레콤의 경우 외환위기 이전에도 신규채용시 신입 대 경력의 비율이 4대6으로 높았지만 최근에는 3대7로 경력직 비율이 더 늘어나고 있다. 다른 대기업도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비슷한 경향을 보이고 있다. 이처럼 기업이 경력직 채용을 늘린 것은 크게 두가지 요인이 있다. 우선 검증된 인력이라는 점이다. LG전자의 김영욱 인사담당 부장은 “아무래도 여러 회사를 통해 검증된 인력이기 때문에 선발후 신입사원보다 업무적응력이나 성취도가 높다”고 했다. 회사가 직접 수년에 걸쳐 키우기보다는 시장에 나와있는 검증된 ‘상품’을 사는 것이 더 효율적이라고 판단한 것. 다른 하나는 급변하는 사업환경 변화에 맞추기 위해서는 신입사원만으론 역부족이기 때문이다. 특히 전자나 신기술이 사업의 성패를 좌우할 경우 내부 인력을 교육해서 현장에 투입하는 것은 사실상 힘들다. 이 말을 뒤집에 보면 한 분야에 전문가가 되고 특히 앞으로 성장가능성이 있는 업무영역에서 활동할 경우 언제든 자신을 필요로하는 회사가 생긴다는 뜻. 시간을 가지고 차근차근 준비하면 언제든 기회는 온다. 요즘처럼 구조조정, 불경기로 청년실업이 증가하고 고용안정성이 감소할수록 경력직을 통한 위기 극복이 좋은 대안이 될 수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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