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 길 오가다 한가위 정취에 취한다
고향 길 오가다 한가위 정취에 취한다
산천은 들꽃 향이 가득하다. 길가엔 산부추꽃이 무더기로 피어 있고, 자주꽃 방망이, 참취, 들판을 노랗게 물들인 마타리…. 곡식들은 저마다 야무지게 살을 찌운다. 가을이다. 아울러 들녘만큼이나 여유로운 민족의 명절 한가위가 성큼 다가왔다. 이번 한가위는 연휴가 넉넉한 만큼 성묘를 끝내고 가족과 함께 나들이를 계획해보면 어떨까. 고향길 오가다가 들러볼 만한 여행지 4곳을 꼽아봤다.
천상의 구름밭 단양
‘산은 단풍잎 붉고 물은 옥같이 맑은데, 석양의 도담삼봉엔 저녁놀 드리웠네’. 일찍이 퇴계 이황 선생이 단양의 도담삼봉 절경을 보고 읊은 시다. 유유히 흐르는 남한강의 푸른 물 한가운데 선 세개의 섬, 바로 도담삼봉이다. 아들을 얻기 위해 첩을 둔 남편을 미워하여 돌아앉은 본처의 모습을 하고 있다는 전설이 웃음을 자아낸다. 특히 가운데 오똑한 장군봉은 야간에 환하게 불을 밝혀 경이로운 야경을 감상할 수 있다.
도담삼봉 전망대에 올라 두루 굽어보고, 나지막한 능선을 넘어서면 왼쪽에 무지개 모양의 석주가 나타난다. 하늘나라에서 물 길러 내려왔다가 비녀를 잃어버린 ‘마고 할미’가 비녀를 찾으려고 흙을 손으로 판 것이 99마지기 논이 되었다는 ‘선인 옥답’전설과 함께 마고 할미바위가 있다. 조금 올라가면 ‘자라바위’도 만나게 된다.
정자 아래쪽에 위치한 분수광장에 들어서면 1백석 규모의 계단식 좌석이 눈길을 끈다. 노래방 시설이 되어 있고 흥에 겨운 여행객들이 노래할 때마다 분수는 코러스나 백댄서가 된 것처럼 춤을 춘다.
이어 단양이 자랑하는 비경 장희나루로 가보자. 장희나루에서 유람선을 타고, 배가 나루를 떠난 지 5분도 지나지 않아 모습을 드러내는 기암절벽들.
거북을 닮았다는 구담봉과 제비봉·금수산, 그리고 멀리 월악산이 감싸고 있다. 또 희고 푸른 바위들이 대나무 순 모양으로 1천여척이나 힘차게 솟아 선비의 모습을 이룬 옥순봉은 ‘소금강’이라는 별칭이 아깝지 않다. 주변에는 강선대와 이조대가 마주보고 있다. 되돌아 나와 59번 국도 문경 방향으로 가다보면 상, 중, 하선암, 사선암 이정표가 나온다.
하지만 해발 5백고지 사평리의 두산마을의 아름다움에 비견할 바는 아니다. 10여호 남짓 되는 마을인데, 여장을 풀자 어스름이 내렸다. 내리던 빗줄기가 가늘어지더니 어느새 반딧불이가 유성처럼 선을 그으며 날아다닌다. 봄이면 40여만평의 밭에 감자꽃이 흐드러지고, 이즈막엔 콩·배추가 푸른 천국을 이루고, 겨울이면 하얀 눈밭이 된다. 그러나 비 그친 밤에는 남한강을 끼고 도는 광산까지도 구름밭으로 변한다. 과연 저 구름밭은 몇평이나 될까. 좀더 부지런을 떨어 아침 일찍 눈을 뜨면 운해를 볼 수 있다.
여기에서 우리나라 혈중 한곳으로 알려진 보발리 용소를 들러봐도 좋다. 마을 입구까지 내려와 59번 도로를 따라가다 595번 지방도에서 우회전, 보발2리(용소) 이정표에서 좌회전하여 마을회관 앞 빨래터 근처에 있다. 이 빨래터는 겨울에는 따뜻하고 여름에는 손이 시릴 정도로 차갑다고 한다. 도랑을 따라 3백m쯤 올라가면 바위절벽 아래 녹색 가리개가 쳐 있는데 그 문을 열고 들어가면 매번 물빛이 바뀐다는 용소가 얼굴을 들이민다. 보발천의 발원지다.
이와 함께 595번 지방도 주변에 두 마을이 닮아 쌍둥이 마을로 불리는 성금마을과 말금마을도 둘러볼 만하다. 예전에 금이 섬으로 나오던 곳이라 붙은 이름이라고 한다. 성금마을 입구에는 이 마을 효자 김기선씨가 홀어머니가 돌아가시자 2년8개월간 머리 한번, 수염 한번 깎지 않고 시묘살이했다는 시묘막이 있고, 말금마을에는 수백년 된 두그루의 소나무가 눈길을 끈다. 또 말금마을 맞은편 산을 바라보면 8부 능선에 마술처럼 작은 피알기마을이 있다. 피활기교를 건너 산비알에 김경호(85)·정길녀(74) 부부가 살고 있다. 피알기는 한국전쟁 때 피란온 사람들이 모여 살았던 마을이라 붙은 이름.
정할머니 또한 억센 평안도 사투리를 쓰고 계셨다. 자식들은 모두 대처로 나가 사는데, 명절이 되면 고향 작은 집에 돌아와 웃음꽃을 피운다고 한다. 올 한가위에도 이북에서 즐겨 만들어 먹었던 옥수수묵을 만들어 놓고 자식들을 기다릴 거라고 한다. 억세게 일만 하며 10남매를 키웠고, 이젠 귀가 잘 안들릴 정도로 나이가 들었지만 할아버지의 맑은 눈동자는 눈물이 핑 돌 정도로 오랫동안 기억에 남았다. 마을 어귀에 자주색 익모초꽃이 소담스럽게 피어 있고, 노부부의 기다림처럼 돌담 사이로 구기자가 빨갛게 익어가고 있었다.
먹거리로는 단양 별공리 고수교 입구 ‘장다리식당’(043-423-6660)의 마늘솥밥이 유명하다. 주인 이옥자(42)씨는 충북 향토음식 기능보유자로 독특한 손끝맛을 자랑한다. 마늘솥밥 1인분 1만~1만5천원. 잠자리로는 ‘구름 위의 산책’(011-260-9708·www. skyhills. co. kr)을 권하고 싶다. 단양 읍내에서 고수교를 건너 59번 도로 구인사 방향으로 좌회전, 고숲재를 넘어 두산감자 표지판을 따라 우회전하면 두산감자 저장고가 나오고, 왼쪽 이장 집을 따라 좌회전하여 길 끝까지 가면 된다. 숙박료는 아침식사 포함, 2인 기준 8만~10만원.
▶가는 길:중앙고속도로 북단양 나들목으로 나와 단양쪽으로 직진하면 남한강 도담삼봉이 나오고, 59번 국도로 가다보면 가곡면 비경들이 연출된다.
‘세금 내는 소나무’가 있는 경북 예천
선비의 고장 경북 예천군 감천면 천향리마을엔 세계 유례없이 매년 1만원 정도의 세금을 낸다는 부자 소나무, 석송령(石松靈·천연기념물 제294호)이 있다. 땅 4천5백58평방m를 소유하고 나무 높이가 10m, 그늘만 3백평이 넘는 6백년생이다. 이 마을에서 자식없이 살던 이수목(李秀睦)이라는 사람이 자신의 소유 토지를 이 나무 명의로 기증하고 세상을 뜨자 마을 주민이 ‘석송령’이라 명명하여 등기를 하였다고 한다.
또 한곳 꼭 놓치지 말아야 할 곳이 나일성 천문관이다. 석송령에서 되돌아 나와 덕률삼거리에서 천문관이 보인다. 이 곳은 어린이 우주과학관을 운영하는데, 전시실로 들어서면 40억년 전의 기비언운석을 비롯하여 각종 우주의 신비를 체험할 수 있다. 특히 요즘은 화성관측을 하므로 어린이를 동반한 여행이라면 특별한 추억을 만들 수 있다. 아울러 매주 토요일은 예약제로 천문교실을 연다. 개관시간은 오전 10시~오후 6시. 지구가 속해 있는 우리 은하가 1천억개 이상의 은하 중 하나라는 걸 알고 나면 아이들 마음 속에 어느덧 별 하나가 오롯이 커져 있지 않을까.
이와 함께 용궁면 대은리에 위치하여 의성포라고도 하는 회룡포(回龍浦)도 둘러볼 만하다. 제1전망대인 회룡대에 오르면 내성천과 호떡처럼 둥그스름한 형상이 절경이다. 한삽만 뜨면 섬이 되어버릴 것같이 아슬아슬한 물돌이동이 이채롭다. 가는 길에 선비의 고장인 만큼 예천 향교에서 옛 선비들의 체취를 느껴봐도 좋다.
가족들과 하룻밤 묵으려면 산에 미친 예천 총각과 강릉 처녀가 15년 전 해발 7백30m 고갯마루에 터를 다졌다는 ‘두메산장’(054-653-0500·www. dumae. co. kr)을 찾아보자. 소백산 관광목장과 저수령을 지나 내리막길에 있으며 차와 식사를 즐길 수 있는 카페가 있다. 숙박요금 4만~15만원.
▶가는 길: 중앙고속도로 단양 IC를 빠져나와 단양 방향 5번 국도로 우회전, 2~3분 달리다 예천 방향 927번 지방도로를 따라 10분 정도 가면 덕률삼거리가 나온다. 이 곳에서 석송령 이정표를 따라가면 된다.
청정 오지마을 봉화 베르미
전국에서 땅값이 가장 싸다는 첩첩산중 경북 봉화. 그 속에 아직도 전깃불없이 단 세가구가 문명을 등지고 사는 베르미마을이 있다. 집을 비우면 장대에 옷을 걸어 빈 집이 아님을 표시하고, 포근한 인정이 살아 있는 두메산골이다. 지난 겨울 이 마을을 찾았을 땐 하얀 눈이 소복이 쌓여 있고, 마을 앞산에는 은사시나무가 하얀 나신을 드러내고 있었다. 마을로 가려면 20도 가까운 경사길을 올라가야 한다.
자식들과 소식을 주고받는 유일한 통신기구인 휴대폰을 충전하기 위해 명호면까지 허겁지겁 내려가야 하고, 여름이면 얼음을 사기 위해 하루 두번씩 큰 동네까지 달려간다. 그래도 여든이 넘은 이웃 안노미 할머니를 돌보며 박준극(59)씨 부부가 엮어내는 녹록한 삶은 넘쳐나는 물질 만능시대에 다시금 자신을 되돌아보게 한다. 무엇보다 베르미마을에 꼭 전기가 들어가길 간절히 기원한다면 욕심일까. 근교 35번 국도를 드라이브하며 이나리·비나리 강변의 아름다운 물빛에 취해봐도 좋다. 도산서원이 30분 거리에 있고, 도산온천도 있어 따뜻한 물에 여독을 풀기에도 좋다.
918번 지방도 근처에 봉성 숯불 돼지고기로 유명한 맛집 ‘오시오 숯불식육식당’ (054-672-9102)이 있다. 숯불에 구워 향긋한 당귀무침과 함께 먹는데 그 고소한 맛이 일품이다. 된장과 청국장을 섞어서 끓여주는 된장찌개도 환상적. 여정은 여행광 김춘일(40)·황영애(39)씨 부부가 가을이면 날마다 국화 향을 피워 올리는 ‘들꽃 피는 언덕’(054-843-2480)에서 풀면 어떨까. 이나리 강변에서 7~8분 가량 안동쪽으로 가다보면 왼쪽에 아담한 카페와 숙소가 보인다.
▶가는 길: 중앙고속도로 풍기·북영주 나들목을 나선다. 5번 국도 영주 방향으로 가다보면 36번 국도와 마주쳐 봉화 방면이 나오고, 36번 국도에서 918번 지방도를 만나 우회전, 청량산 표지판을 보고 직진한다. 35번 국도를 만나면 우회전, 청량산 푯말을 보고 1.5km 지점 도천교를 지나 우회전, 조금 더 들어가면 단 한집만 남아 있는 보릿골이 나온다.
꿀맛 송이맛 ‘가마솥마을’ 부연동
가마솥 마을로도 불리는 강원도 강릉시 연곡면 삼산리 부연동 가는 길. 전후재를 넘는 레미콘 차량이 억센 뒷바퀴로 토해내는 흙먼지를 뒤집어 쓰며 따라가는데도 기분이 나쁘지 않는 건 그야말로 주변이 오염되지 않은 원시림이기 때문일 것이다.
전후재를 넘으면 문명세계와 두절된 느낌을 받는다. 15가구가 외로이 들어앉은 고즈넉한 마을 풍경도 그렇거니와 우선 짙은 약초 냄새가 코를 찌르기 때문이다. 자연의 생명력과 힘찬 기운이 느껴진다고나 할까. 요즘 산속에는 당귀의 발그레한 자줏빛 꽃과 하얀 천궁꽃이 활짝 피었다.
아울러 곰취며 참취밭도 소복하다. 이 곳 명물은 송이와 능이버섯. 추석 무렵이면 찾는 사람들이 많아 모처럼 마을에 활기가 생긴다. 특히 이 곳 토종꿀은 질이 전국 제일로 알려진다. 겨울이면 눈이 많고 기온이 뚝 떨어져 마을이 고립되기 일쑤. 그래서 흥미롭게도 꿀벌들이 동사할 것을 우려하여 경상도 하동땅으로 벌들을 이주시킨다. 봄이 오면 다시 데려온다고 한다. 전국 제일의 명성이 거저 얻어진 것은 아닌 듯 싶다. 지금 벌들은 하얀 피나무꽃에 매달려 열심히 단물을 빨고 있다.
보약보다 좋은 약수 한대접으로 상쾌한 아침을 시작할 수 있는 ‘부연 약수터 민박’(033-661-4133)이 약수터 인근에 있다. 부연 약수는 위장병에 탁월한 효험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된장찌개를 곁들인 담박한 시골 밥상도(1인분 5천원)도 맛볼 수 있다.
▶가는 길: 영동고속도로 진부나들목으로 나와 6번 국도 월정사 방향으로 가다 59번 국도 이정표를 따라간다. 좁은 시멘트 포장도로와 비포장이 뒤섞인 산길을따라 9㎞ 정도 가야 한다. 산길 절벽 바로 아래가 부연동 계곡이다.
(여행가·for NWK)
ⓒ이코노미스트(https://economist.co.kr) '내일을 위한 경제뉴스 이코노미스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천상의 구름밭 단양
‘산은 단풍잎 붉고 물은 옥같이 맑은데, 석양의 도담삼봉엔 저녁놀 드리웠네’. 일찍이 퇴계 이황 선생이 단양의 도담삼봉 절경을 보고 읊은 시다. 유유히 흐르는 남한강의 푸른 물 한가운데 선 세개의 섬, 바로 도담삼봉이다. 아들을 얻기 위해 첩을 둔 남편을 미워하여 돌아앉은 본처의 모습을 하고 있다는 전설이 웃음을 자아낸다. 특히 가운데 오똑한 장군봉은 야간에 환하게 불을 밝혀 경이로운 야경을 감상할 수 있다.
도담삼봉 전망대에 올라 두루 굽어보고, 나지막한 능선을 넘어서면 왼쪽에 무지개 모양의 석주가 나타난다. 하늘나라에서 물 길러 내려왔다가 비녀를 잃어버린 ‘마고 할미’가 비녀를 찾으려고 흙을 손으로 판 것이 99마지기 논이 되었다는 ‘선인 옥답’전설과 함께 마고 할미바위가 있다. 조금 올라가면 ‘자라바위’도 만나게 된다.
정자 아래쪽에 위치한 분수광장에 들어서면 1백석 규모의 계단식 좌석이 눈길을 끈다. 노래방 시설이 되어 있고 흥에 겨운 여행객들이 노래할 때마다 분수는 코러스나 백댄서가 된 것처럼 춤을 춘다.
이어 단양이 자랑하는 비경 장희나루로 가보자. 장희나루에서 유람선을 타고, 배가 나루를 떠난 지 5분도 지나지 않아 모습을 드러내는 기암절벽들.
거북을 닮았다는 구담봉과 제비봉·금수산, 그리고 멀리 월악산이 감싸고 있다. 또 희고 푸른 바위들이 대나무 순 모양으로 1천여척이나 힘차게 솟아 선비의 모습을 이룬 옥순봉은 ‘소금강’이라는 별칭이 아깝지 않다. 주변에는 강선대와 이조대가 마주보고 있다. 되돌아 나와 59번 국도 문경 방향으로 가다보면 상, 중, 하선암, 사선암 이정표가 나온다.
하지만 해발 5백고지 사평리의 두산마을의 아름다움에 비견할 바는 아니다. 10여호 남짓 되는 마을인데, 여장을 풀자 어스름이 내렸다. 내리던 빗줄기가 가늘어지더니 어느새 반딧불이가 유성처럼 선을 그으며 날아다닌다. 봄이면 40여만평의 밭에 감자꽃이 흐드러지고, 이즈막엔 콩·배추가 푸른 천국을 이루고, 겨울이면 하얀 눈밭이 된다. 그러나 비 그친 밤에는 남한강을 끼고 도는 광산까지도 구름밭으로 변한다. 과연 저 구름밭은 몇평이나 될까. 좀더 부지런을 떨어 아침 일찍 눈을 뜨면 운해를 볼 수 있다.
여기에서 우리나라 혈중 한곳으로 알려진 보발리 용소를 들러봐도 좋다. 마을 입구까지 내려와 59번 도로를 따라가다 595번 지방도에서 우회전, 보발2리(용소) 이정표에서 좌회전하여 마을회관 앞 빨래터 근처에 있다. 이 빨래터는 겨울에는 따뜻하고 여름에는 손이 시릴 정도로 차갑다고 한다. 도랑을 따라 3백m쯤 올라가면 바위절벽 아래 녹색 가리개가 쳐 있는데 그 문을 열고 들어가면 매번 물빛이 바뀐다는 용소가 얼굴을 들이민다. 보발천의 발원지다.
이와 함께 595번 지방도 주변에 두 마을이 닮아 쌍둥이 마을로 불리는 성금마을과 말금마을도 둘러볼 만하다. 예전에 금이 섬으로 나오던 곳이라 붙은 이름이라고 한다. 성금마을 입구에는 이 마을 효자 김기선씨가 홀어머니가 돌아가시자 2년8개월간 머리 한번, 수염 한번 깎지 않고 시묘살이했다는 시묘막이 있고, 말금마을에는 수백년 된 두그루의 소나무가 눈길을 끈다. 또 말금마을 맞은편 산을 바라보면 8부 능선에 마술처럼 작은 피알기마을이 있다. 피활기교를 건너 산비알에 김경호(85)·정길녀(74) 부부가 살고 있다. 피알기는 한국전쟁 때 피란온 사람들이 모여 살았던 마을이라 붙은 이름.
정할머니 또한 억센 평안도 사투리를 쓰고 계셨다. 자식들은 모두 대처로 나가 사는데, 명절이 되면 고향 작은 집에 돌아와 웃음꽃을 피운다고 한다. 올 한가위에도 이북에서 즐겨 만들어 먹었던 옥수수묵을 만들어 놓고 자식들을 기다릴 거라고 한다. 억세게 일만 하며 10남매를 키웠고, 이젠 귀가 잘 안들릴 정도로 나이가 들었지만 할아버지의 맑은 눈동자는 눈물이 핑 돌 정도로 오랫동안 기억에 남았다. 마을 어귀에 자주색 익모초꽃이 소담스럽게 피어 있고, 노부부의 기다림처럼 돌담 사이로 구기자가 빨갛게 익어가고 있었다.
먹거리로는 단양 별공리 고수교 입구 ‘장다리식당’(043-423-6660)의 마늘솥밥이 유명하다. 주인 이옥자(42)씨는 충북 향토음식 기능보유자로 독특한 손끝맛을 자랑한다. 마늘솥밥 1인분 1만~1만5천원. 잠자리로는 ‘구름 위의 산책’(011-260-9708·www. skyhills. co. kr)을 권하고 싶다. 단양 읍내에서 고수교를 건너 59번 도로 구인사 방향으로 좌회전, 고숲재를 넘어 두산감자 표지판을 따라 우회전하면 두산감자 저장고가 나오고, 왼쪽 이장 집을 따라 좌회전하여 길 끝까지 가면 된다. 숙박료는 아침식사 포함, 2인 기준 8만~10만원.
▶가는 길:중앙고속도로 북단양 나들목으로 나와 단양쪽으로 직진하면 남한강 도담삼봉이 나오고, 59번 국도로 가다보면 가곡면 비경들이 연출된다.
‘세금 내는 소나무’가 있는 경북 예천
선비의 고장 경북 예천군 감천면 천향리마을엔 세계 유례없이 매년 1만원 정도의 세금을 낸다는 부자 소나무, 석송령(石松靈·천연기념물 제294호)이 있다. 땅 4천5백58평방m를 소유하고 나무 높이가 10m, 그늘만 3백평이 넘는 6백년생이다. 이 마을에서 자식없이 살던 이수목(李秀睦)이라는 사람이 자신의 소유 토지를 이 나무 명의로 기증하고 세상을 뜨자 마을 주민이 ‘석송령’이라 명명하여 등기를 하였다고 한다.
또 한곳 꼭 놓치지 말아야 할 곳이 나일성 천문관이다. 석송령에서 되돌아 나와 덕률삼거리에서 천문관이 보인다. 이 곳은 어린이 우주과학관을 운영하는데, 전시실로 들어서면 40억년 전의 기비언운석을 비롯하여 각종 우주의 신비를 체험할 수 있다. 특히 요즘은 화성관측을 하므로 어린이를 동반한 여행이라면 특별한 추억을 만들 수 있다. 아울러 매주 토요일은 예약제로 천문교실을 연다. 개관시간은 오전 10시~오후 6시. 지구가 속해 있는 우리 은하가 1천억개 이상의 은하 중 하나라는 걸 알고 나면 아이들 마음 속에 어느덧 별 하나가 오롯이 커져 있지 않을까.
이와 함께 용궁면 대은리에 위치하여 의성포라고도 하는 회룡포(回龍浦)도 둘러볼 만하다. 제1전망대인 회룡대에 오르면 내성천과 호떡처럼 둥그스름한 형상이 절경이다. 한삽만 뜨면 섬이 되어버릴 것같이 아슬아슬한 물돌이동이 이채롭다. 가는 길에 선비의 고장인 만큼 예천 향교에서 옛 선비들의 체취를 느껴봐도 좋다.
가족들과 하룻밤 묵으려면 산에 미친 예천 총각과 강릉 처녀가 15년 전 해발 7백30m 고갯마루에 터를 다졌다는 ‘두메산장’(054-653-0500·www. dumae. co. kr)을 찾아보자. 소백산 관광목장과 저수령을 지나 내리막길에 있으며 차와 식사를 즐길 수 있는 카페가 있다. 숙박요금 4만~15만원.
▶가는 길: 중앙고속도로 단양 IC를 빠져나와 단양 방향 5번 국도로 우회전, 2~3분 달리다 예천 방향 927번 지방도로를 따라 10분 정도 가면 덕률삼거리가 나온다. 이 곳에서 석송령 이정표를 따라가면 된다.
청정 오지마을 봉화 베르미
전국에서 땅값이 가장 싸다는 첩첩산중 경북 봉화. 그 속에 아직도 전깃불없이 단 세가구가 문명을 등지고 사는 베르미마을이 있다. 집을 비우면 장대에 옷을 걸어 빈 집이 아님을 표시하고, 포근한 인정이 살아 있는 두메산골이다. 지난 겨울 이 마을을 찾았을 땐 하얀 눈이 소복이 쌓여 있고, 마을 앞산에는 은사시나무가 하얀 나신을 드러내고 있었다. 마을로 가려면 20도 가까운 경사길을 올라가야 한다.
자식들과 소식을 주고받는 유일한 통신기구인 휴대폰을 충전하기 위해 명호면까지 허겁지겁 내려가야 하고, 여름이면 얼음을 사기 위해 하루 두번씩 큰 동네까지 달려간다. 그래도 여든이 넘은 이웃 안노미 할머니를 돌보며 박준극(59)씨 부부가 엮어내는 녹록한 삶은 넘쳐나는 물질 만능시대에 다시금 자신을 되돌아보게 한다. 무엇보다 베르미마을에 꼭 전기가 들어가길 간절히 기원한다면 욕심일까. 근교 35번 국도를 드라이브하며 이나리·비나리 강변의 아름다운 물빛에 취해봐도 좋다. 도산서원이 30분 거리에 있고, 도산온천도 있어 따뜻한 물에 여독을 풀기에도 좋다.
918번 지방도 근처에 봉성 숯불 돼지고기로 유명한 맛집 ‘오시오 숯불식육식당’ (054-672-9102)이 있다. 숯불에 구워 향긋한 당귀무침과 함께 먹는데 그 고소한 맛이 일품이다. 된장과 청국장을 섞어서 끓여주는 된장찌개도 환상적. 여정은 여행광 김춘일(40)·황영애(39)씨 부부가 가을이면 날마다 국화 향을 피워 올리는 ‘들꽃 피는 언덕’(054-843-2480)에서 풀면 어떨까. 이나리 강변에서 7~8분 가량 안동쪽으로 가다보면 왼쪽에 아담한 카페와 숙소가 보인다.
▶가는 길: 중앙고속도로 풍기·북영주 나들목을 나선다. 5번 국도 영주 방향으로 가다보면 36번 국도와 마주쳐 봉화 방면이 나오고, 36번 국도에서 918번 지방도를 만나 우회전, 청량산 표지판을 보고 직진한다. 35번 국도를 만나면 우회전, 청량산 푯말을 보고 1.5km 지점 도천교를 지나 우회전, 조금 더 들어가면 단 한집만 남아 있는 보릿골이 나온다.
꿀맛 송이맛 ‘가마솥마을’ 부연동
가마솥 마을로도 불리는 강원도 강릉시 연곡면 삼산리 부연동 가는 길. 전후재를 넘는 레미콘 차량이 억센 뒷바퀴로 토해내는 흙먼지를 뒤집어 쓰며 따라가는데도 기분이 나쁘지 않는 건 그야말로 주변이 오염되지 않은 원시림이기 때문일 것이다.
전후재를 넘으면 문명세계와 두절된 느낌을 받는다. 15가구가 외로이 들어앉은 고즈넉한 마을 풍경도 그렇거니와 우선 짙은 약초 냄새가 코를 찌르기 때문이다. 자연의 생명력과 힘찬 기운이 느껴진다고나 할까. 요즘 산속에는 당귀의 발그레한 자줏빛 꽃과 하얀 천궁꽃이 활짝 피었다.
아울러 곰취며 참취밭도 소복하다. 이 곳 명물은 송이와 능이버섯. 추석 무렵이면 찾는 사람들이 많아 모처럼 마을에 활기가 생긴다. 특히 이 곳 토종꿀은 질이 전국 제일로 알려진다. 겨울이면 눈이 많고 기온이 뚝 떨어져 마을이 고립되기 일쑤. 그래서 흥미롭게도 꿀벌들이 동사할 것을 우려하여 경상도 하동땅으로 벌들을 이주시킨다. 봄이 오면 다시 데려온다고 한다. 전국 제일의 명성이 거저 얻어진 것은 아닌 듯 싶다. 지금 벌들은 하얀 피나무꽃에 매달려 열심히 단물을 빨고 있다.
보약보다 좋은 약수 한대접으로 상쾌한 아침을 시작할 수 있는 ‘부연 약수터 민박’(033-661-4133)이 약수터 인근에 있다. 부연 약수는 위장병에 탁월한 효험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된장찌개를 곁들인 담박한 시골 밥상도(1인분 5천원)도 맛볼 수 있다.
▶가는 길: 영동고속도로 진부나들목으로 나와 6번 국도 월정사 방향으로 가다 59번 국도 이정표를 따라간다. 좁은 시멘트 포장도로와 비포장이 뒤섞인 산길을따라 9㎞ 정도 가야 한다. 산길 절벽 바로 아래가 부연동 계곡이다.
(여행가·for NWK)
ⓒ이코노미스트(https://economist.co.kr) '내일을 위한 경제뉴스 이코노미스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많이 본 뉴스
1“재산 절반 옆에 있는 여자에게...” 조영남 유서 깜작 공개
2한동훈 “민주, 李방탄 예산 감액…호남도 버렸다”
3고점 또 돌파한 리플 코인…한달 만에 264% 상승
4서학 개미에게 희소식…하루 23시간 거래 가능한 미 증권거래소 내년 개장
5 오세훈 시장 "동덕여대 폭력·기물파손, 법적으로 손괴죄…원인제공 한 분들이 책임져야”
6미·중 갈등 고조되나…대만에 F-16 부품 판매 승인한 미국의 속내는
7"나도 피해자” 호소…유흥업소 실장, 이선균 협박으로 檢 징역 7년 구형
8배우 김사희 품절녀 된다...두살 연상 사업가와 결혼
9정기선 HD현대 부회장의 바이오 진출 이어진다…신약개발 자회사 ‘에이엠시사이언스’ 설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