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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성장의 그늘에 가려진 정신질환자들

경제성장의 그늘에 가려진 정신질환자들


Finding Peace of Mind

허베이(河北)성의 영세농 상즈쥔(尙志軍·22)은 낯선 사람들이 집으로 찾아오면 아주 얌전하게 군다. 목소리가 너무 크고 담배를 지나치게 자주 청해서 약간 뻔뻔스러워 보일 뿐이다. 그의 양모 자오수란(趙書蘭)은 “상은 자신에게 정신질환이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다. 남편이나 내가 돈을 안 준다고 하면 갑자기 불같이 화를 낸다. 그를 우리에 가둘 수밖에 없었던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고 말했다.

집 밖에 내놓은 4평방m 크기의 철재 우리는 지금은 옥수수 알갱이들로 가득 차 있었다. 지난 8월 상이 발작을 일으켜 난동을 부리자 양부모와 이웃들은 그를 땅에 쓰러뜨린 후 우리에 가뒀다. 상은 한달만에 우리에서 풀려났고 가족들은 정신분열증 치료를 위해 그를 베이징으로 데려갔다. 그러나 상의 양부모는 그를 입원시킬 형편이 못 됐기 때문에 금세 집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약을 먹고 있어 상태가 좀 나아졌다”고 양모는 말했다. 그러나 양모는 상의 정신분열 증상이 머지않아 재발하리라는 것을 알고 있다. 남아 있는 약이 2주치 분량도 안 되기 때문이다.

정신분열증·우울증·불안장애. 10년 전만 해도 상과 같은 가족을 둔 대다수 가정들은 이런 병명들을 들어본 적조차 없었다. 그러나 현재 중국에서는 정신과 진료에 대한 수요가 급증하고 있다. 중국 최대의 정신병원인 베이징 회룡관(回龍觀) 병원의 경우 외래환자 수가 지난 2년 동안 2배로 증가했다. 전체 인구 대비 자살(15~34세 중국인 사망원인 1위) 비율은 미국의 2배에 달하고 있다. 회룡관 병원 의사인 캐나다인 마이클 필립스는 “매년 2백만명의 중국인들이 자살을 시도하지만 미수에 그친 사람들 중 정신과 치료를 받는 사람은 거의 없다”고 말했다.

이런 문제가 중국 사회의 급변과 관련이 있음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전문가들은 업무 스트레스, 가족 생활의 단절, 사회 안전망 약화 등 사회적 부담감의 증가로 정신과 상담 필요성이 늘고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많은 이들이 적절한 치료를 받을 수 없다는 것도 문제다. 7백50여개의 국영 정신보건시설로는 급증하는 정신과 치료에 대한 수요를 감당하기에 역부족이다. 게다가 상당수 환자들은 보험이 없어서 국영 시설의 이용을 부담스러워 한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좀 더 저렴한 웹사이트나 학교 상담사를 활용하고 있고, 그나마 형편이 나은 사람들은 중국 전역에 1천2백군데 정도 있는 사설 정신병원을 이용한다. “이런 병원들 중 일부는 규모도 작고 환경도 열악한 편이지만 아무 것도 안 하는 것보다는 낫다”고 회룡관 병원의 부원장 쩌우이좡(鄒義狀)은 말했다.
이런 사설 정신병원들 중 하나가 베이징의 차오양(朝陽)구 요양소다. “우리는 기본적으로 사설 정신요양소다. 환자의 가족들은 다른 곳에 갈 형편이 못 될 때 이곳을 찾는다”고 요양소 관리자 양윈(楊雲)은 말했다. 환자들은 적게는 한달에 84달러를 입원 비용으로 내고 있다. 이는 국영 시설 비용의 반도 안 되는 수준이다.

차오양 직원들은 자원의 열악함을 환자들에 대한 애정으로 대신하려고 노력한다. 비록 병동들은 낡았지만 언제나 수다와 농담이 즐겁게 오간다. 환자들도 영화 속 정신병원 장면에서 으레 등장하는 줄무늬 환자복 대신 평상복을 입는다. 외국인과 중국인들로 구성된 자원봉사자들은 치료요법의 하나로 환자들에게 원예와 영어를 가르친다. 그러나 양은 매달 적자를 면하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11월 중순, 양과 요양소 식구들은 요양소 자리에 자동차 전시장을 세우고 싶어하는 개발업자 때문에 마을 반대쪽으로 이사해야 했다. 환자 1백60명, 직원 10명, 개 14마리, 고양이 2마리, 침상, 의약품, 의료장비 등을 옮기다 보니 아수라장이 따로 없었다. 양은 새 요양소에 “환자들이 채소류 판매나 복사 같은 단순한 일을 할 수 있도록” 무언가를 지었으면 하는 꿈을 갖고 있다.

차오양 요양소 같은 시설들은 오갈 데 없는 환자들이 마지막으로 보내지는 곳이기도 하다. 왕란룽(王蘭榮)이 이곳으로 처음 보내졌을 때 그녀는 이미 다른 시설들에서 30년을 보낸 상태였다. 정신분열증 환자인 왕에게는 심각한 위장병도 있었다. 지난 10월 어느 날 왕이 심장마비를 일으켰다. 직원들이 심폐소생술(CPR)을 실시하는 가운데 양과 왕의 친지들은 서둘러 환자를 의료장비가 더 좋은 국영 병원으로 이송했다. “이틀 후 왕의 오빠가 그녀를 들것에 싣고 돌아왔을 때 깜짝 놀랐다”고 양은 말했다. 병원비를 낼 형편이 못 됐던 것이다. 너무 놀란 양은 병원을 수소문하느라 사방에 전화를 걸었고 그 사이 왕은 차가운 요양소 층계 위에서 숨을 거뒀다.

정부와 국민들은 중국이 직면한 정신건강 위기를 깨닫기 시작했다. 회룡관의 부원장 쩌우는 “사스 여파로 사람들은 스트레스 대처에 관심을 더 갖게 됐다”며 스트레스가 사스 감염에 취약한 상태를 만드는 요인으로 알려져 있다고 말했다. 외국인 의사들과 전문가들도 정신건강에 대한 인식을 높이기 위해 애쓴다. 자살을 “심각성이 제대로 인식되지 않고 있는 보건 문제”로 보고 있는 필립스는 지난 8월 중국 최초로 자살예방 무료상담 전화를 개통했다.

그는 “이에 대한 수요는 상상을 초월한다”고 말했다. 9월에는 상담전화가 1천통에 이른 날도 있었다. 그러나 자살로 목숨을 잃은 중국인들의 90% 이상이 정신과 치료를 받은 경험이 없었다는 점을 고려할 때 더 많은 예방교육이 필요하다는 것은 자명하다. 필립스를 비롯한 정신과 전문가들은 국가 차원의 자살 예방 계획의 필요성을 강조하기 위해 11월 하순 베이징에서 세미나를 가졌다.

마오쩌둥(毛澤東)은 정신의학을 부르주아 학문이라고 폄하한 바 있지만 중국 정부는 정신과 치료에 대한 수급 불균형을 해소하기 위해 투자를 늘려야 할 것이다. 정신질환은 중국 전체 보건비용의 5분의 1을 차지하고 있지만 여기에 할당되는 보조금은 전체 보건 예산의 2%뿐이다. 중국 정부는 오랫동안 기다려오던 국민정신보건법을 아직 공표하지 않고 있다(이 법이 발효되면 정부는 정신과 진료비의 일부를 부담하게 된다).

게다가 중국의 정신과 전문의 수는 1만4천명 정도밖에 안 된다. “이는 프랑스와 같은 수치이지만 중국 인구는 13억명인데 비해 프랑스 인구는 6천만명에 지나지 않는다. 수요와 공급 사이에 엄청난 격차가 존재한다”고 쩌우는 말했다. 정부가 이 불균형을 해소하기 전까지 수많은 중국인들은 마음의 평화를 얻지 못해 고통받게 될 것이다.

With JEN LIN-LIU in Shangh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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