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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소국 성공비결은 ‘네트워킹’

강소국 성공비결은 ‘네트워킹’

알란 하비 스트라스 클라이드 대 교수·파마링크스 대표
D.K. 어빙 에딘버러대학 교수
밥 스메일즈 에딘버러대학 러서치 앤드 이노베이션 대표
스카치 위스키, 백 파이프, 치마 입은 남자, 브레이브 하트, 고성(古城), 잉글랜드와의 수백년 전쟁…. 영국 브리튼섬 북부지역 스코틀랜드에 대한 이미지는 대충 이렇다. 수도 에딘버러도 오래된 성들과 수백년 역사를 자랑하는 건물들, 조용하고 목가적인 풍경은 깔끔한 소도시풍이다. 실제로 아직 많은 인구가 농업에 종사하고 관광이 으뜸산업 중 하나다. 하지만 최근 수년 사이 스코틀랜드는 급속하게 옷을 갈아입고 있다. IT·BT로 대변되는 ‘최첨단 기술국’이라는 이미지다. 직접 스코틀랜드의 IT·BT를 현장 취재했다. <편집자> - "새로운 도전에 직면해 있다는 점에서 스코틀랜드와 한국은 같은 상황이다. 스코틀랜드 역시 많은 공장이 동구권으로 이전하고 있다. 살길은 인적 자원을 바탕으로 한 정보통신기술(IT)과 생명공학기술(BT) 등 첨단기술 쪽으로의 산업 전환이며 현재 산업구조는 그 방향으로 재편 중이다.” 마이크 리마르크 스코틀랜드경제개발공사(SE:Socttish Enterprise) 마케팅 담당 이사의 말에는 최근 스코틀랜드가 처한 절박한 상황과 이를 극복하기 위한 전략·변화가 함축적으로 들어 있다.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2만5천 달러에 이르는 나라에서 선박이나 석탄 등 중후장대(重厚長大)형 산업이나 관광만으로는 먹고살기 어렵다는 의미다. 최정예 인재와 최첨단 기술만이 살길이고 최근 수년 사이 이같은 전략은 상당한 성과를 거뒀다. 물론 스코틀랜드의 최첨단 기술이 어느 날 갑자기 생겨나온 것은 아니다. 이들에게는 오래 전부터 전해 내려오는 기술대국의 전통이 있다. 지금은 거의 우리의 뇌리에서 사라지기는 했지만 산업혁명의 중심국이 스코틀랜드였다. 또 페니실린·잔탁·B형 간염백신·복제양 ‘돌리’가 모두 이곳 스코틀랜드에서 나왔다.

산업혁명 주도국 전통 살려 이같은 전통을 바탕으로 스코틀랜드는 다시 한 번 기술대국으로의 도약을 시작했다. 1997년 총선에서 스코틀랜드의 자치를 약속했던 노동당이 승리하자 스코틀랜드는 본격적인 경제살리기에 나섰고 ‘첨단 기술국’의 이미지는 그때부터 급속하게 자리를 잡게 된 것이다. 97년 말 세계 최고의 IT클러스터를 만들겠다는 야심찬 ‘알바 프로젝트’가 그 시발을 알렸다. 97년 이후 스코틀랜드가 IT나 BT 분야에서 상당한 성과를 거뒀다. 바이오산업은 99∼2002년 사이 연평균 28%씩 성장해 15%인 유럽 평균의 2배에 이른다. 현재 1백개 가까운 기업과 3백개 이상의 지원·공급조직에서 2만5천명이 일하고 있다. 대부분 원천기술과 관계된다는 점에서 ‘양’보다는 ‘질’에 무게가 실린다. IT 분야의 성적도 탁월하다. 유럽 반도체 생산량의 15%, 브랜드PC의 32%, ATM의 65%, 그리고 워크스테이션의 80%를 차지하고 있다. 스코틀랜드는 이로써 기존의 산업재편에 성공했다는 평을 듣는다. 80·90년대 선박이나 석탄 등 대규모 중공업과 제조업이 사라지는 대신 첨단기술 중심의 IT·BT 기업들이 그 자리를 메우고 있어서다. 이를 두고 사람들은 ‘에딘버러의 기적’이라 부른다. 그 짧은 기간 동안 산업을 재편하고 눈부신 성장을 이룬 것이 옛날 독일이나 일본, 또 동아시아 못지않다는 의미다. 남한만한 면적에 인구 5백만명의 ‘강소국’ 스코틀랜드가 어떻게 이런 ‘기적’을 이룰 수 있었을까. 한 단어로 축약할 수 있을 것이다. 바로 ‘네트워크’다. 기업과 대학·연구소가 삼위일체가 돼 신기술 개발에서 자금조달과 상업화에 이르기까지 모든 과정을 함께한다. 정부는 이를 유도하는 조율사 역할을 맡는다. SE의 리마르크 이사는 “작은 영토, 적은 인구의 스코틀랜드가 경쟁에서 이길 수 있는 방법은 하나, 바로 모든 부분의 역량을 네트워크로 연결시켜 시너지 효과를 극대화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네트워크로 시너지 극대화” 그러나 ‘네트워킹과 시너지 효과의 극대화’가 말처럼 쉬운 것은 아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이해하기조차 쉽지가 않다. 하지만 스코틀랜드의 각종 사례를 들여다보면서 그것을 배우게 된다. ‘네트워크’가 무엇인지, 어떻게 작동되는지, 어느 정도의 시너지 효과를 거둘 수 있는지…. 지난해 5월 출범한 ‘스코틀랜드 줄기세포 네트워크’(SSCN:Scottish Stem Cell Network)를 보자. 목적은 단순하다. 상업화가 가능한 기술을 찾아 개발하고 제품을 세계시장에 내놓겠다는 것이다. 이 점에서는 여느 기업과 다를 것이 없다. 자금만 있다면, 미국의 대형 제약사들처럼 대규모 자금을 투입해 시설과 인력을 끌어들이고 세계 지사에 제품을 내놓게 될 것이다. 하지만 인구 5백만의 스코틀랜드는 이 점에서 취약한 것이다. SSCN이 출범하게 된 이유는 여기에 있다. 대학·연구소·기업·정부기관이 각자가 잘 할 수 있는 분야에서 자기 몫을 하며 각자의 역할을 유기적으로 연결시키자는 취지다. 그럼으로써 개별적으로 대항할 때의 자금·인력·정보·아이디어의 열세를 만회할 수 있다는 것이다. SSCN의 공동운영자인 메릴린 무어 박사는 “우리의 목표는 과학자·펀딩조직·테스팅 기관·의료인들이 서로 협력할 장을 마련하고 거기서 나온 획기적인 연구 결과가 의학 분야에서 활용될 수 있도록 최대한 모든 잠재력을 찾아내는 것”이라고 밝혔다. 던디대학의 특수 기관인 리서치 앤 이노베이션 서비스(RIS)에도 눈길을 줄 만하다. 산학 연대의 핵을 담당하고 있는 이 기관은 대학교수들의 연구 성과물을 어느 저널에 실을 것인지에서 시작해 연구성과의 상업화에 이르기까지 연구·창업·펀딩 등 모든 부문을 돕고 있다 <그림 참조> . RIS의 활동은 성공적이어서 2002/2003 회계연도 중에만 기부금·협력연구 자금 등 5천만 파운드의 실적을 올렸다. 전체 대학이 확보한 기금 중 80%에 이르는 금액이다. 책임자인 제임스 휴스턴은 “스코틀랜드에서 처음 선보인 이 제도는 대학경영 혁신에 상당한 기여를 했다”고 평가했다.

“컨소시엄은 기본” 제약업체 파마링크스 역시 ‘네트워크’의 위력을 알려준다. 파마링크스는 일반 제약사와 같은 대규모 공장이나 사무실이 없다. 웹사이트를 기반으로 한 가상 회사다. 그럼에도 강력한 개발력을 무기로 수면장애·암·피부질환·알츠하이머 분야에서 세계적인 성과를 거뒀다. 지금도 굵직굵직한 프로젝트만 1백여건이 진행 중이며 최근에는 현대제약과 함께 항비만치료제를 개발, 국내에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회사가 갖고 있는 가장 강력한 무기는 최첨단 개발진이다. 스코틀랜드 글래스고에 있는 두 명문대학인 글래스고대학과 스트라스클라이드 대학의 생의학과 임상전문성을 통합시켜 1천5백여명의 연구원들을 거느리고 있다. 생명의학 분야의 세계적인 학자이기도 한 알렌 하비 대표는 “회사는 기본적으로 신약을 개발하면서 약품 개발 초기 단계에서 투자를 받고 공동개발을 하고 있다”며 “세계 어떤 기업과도 파트너가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결정적인 단점은 자금과 시장개척 능력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원천기술이 있다 해서 판매할 방법이 없다면 무용지물이다. 스코틀랜드의 네트워크가 최종적으로 해외로 갈 수밖에 없는 이유다. 스코틀랜드의 유명 제약사인 시클라셀의 최고경영자인 스피로 롬보티스 역시 “한시적으로 개발에 전념한 후 약품을 판매할 대형 제약회사를 물색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컨소시엄은 기본”이라는 켄 스노우든 SE BT팀장의 말도 같은 맥락이다. 이런 점에서 국내 제약사들이 관심을 갖는 것은 당연하다. 원천기술이 부족한 국내 제약사들이 개발비를 대고 기술을 공동으로 개발한 후 1차로는 국내시장을, 2차로는 세계시장을 찾는다는 전략을 세울 수 있는 것이다. 이상원 보건산업진흥원 연구원은 “96년부터 국내 제약협회가 중심이 돼서 관계자들이 수차례 스코틀랜드를 다녀왔다. 그만큼 관심이 있다는 증거”라고 진단했다. 올해 말이면 한국과 스코틀랜드 정부가 추진해 온 코리아바이오센터가 에딘버러 인근에 들어설 예정이다.

알바… IT 분야 네트워크의 백미 네트워크로 산업을 부흥시키려는 전략은 IT 분야라 해서 예외가 될 수 없다. 한정된 자원으로 기술을 세계적 수준까지 끌어올리려면 달리 방법이 없다. 생명과학 분야에 SSCN와 RIS·파머링크스를 대표적인 사례로 꼽는다면 IT 분야에서는 알바센터가 단연 돋보인다. 알바센터는 스코틀랜드 에딘버러 외곽 리빙스턴에 위치한 반도체·전자산업 관련 연구·설계 복합단지, 즉 클러스터다. 스코틀랜드의 자치권 획득에 확신이 들 무렵인 97년 12월 스코틀랜드 정부는 ‘알바’라는 이름의 비밀 프로젝트를 수행하며 이 클러스터를 선보였다. 당시 정부는 국내 대학·연구소·기업을 유기적으로 연결시켜 반도체·전자제품의 설계·기술 면에서 세계 중심이 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특히 알바센터는 반도체 중 SoC(반도체 온 칩)의 설계에 역점을 두고 있다. SoC란 각종 반도체를 하나의 칩에 집적해 놓은 초고밀도 집적회로로 1세대 프로세서, 2세대 메모리와 IC의 뒤를 이을 차세대 반도체로 각광받고 있다. 문제는 칩 설계에 상당한 수준의 인재가 필요하고 설계 단계에서의 비용 부담이 너무 크다는 점이다. 이 분야에서 세계적인 권위를 갖고 있는 스코틀랜드는 알바센터를 SoC 설계 중심으로 끌어가고 있다. 세계 최초의 SoC대학원인 시스템집적대학원 ISLI(Institute for System Level Integration)를 보면 네트워크의 위력을 알 수 있다. 지난 99년 1월 글래스고대학과 에딘버러대학 등 4개 대학이 참여해 설립한 ISLI는 세계 각국의 학생들이 모여 SoC 설계 과정을 밟고 있다. 석사과정은 1년, 박사과정은 3년이다. 학생 대부분이 전혀 또는 일부 학비를 내지 않는다는 점이 이 대학원의 특징 중 하나다. UK 학생들에 대해서는 UK 정부가 학비의 3분의 2를 보조하고 나머지 3분의 1은 기업이 맡는다. 외국 학생이라면 학비의 3분의 2만 내면 된다. 기업으로부터 학비 3분의 1을 보조받는 학생은 9개월 동안 과정을 이수한 후 3개월 동안 학비를 대준 회사에서 일한다. 학생은 이 기업에서 학비도 받고 실무 경력도 쌓아 좋고, 기업으로서는 학비를 대준다는 명분과 함께 우수 인재를 확보할 수 있다는 강점이 있다. 보다 중요한 것은 참여 기업이 국제적이라는 점이다. 현재 모토로라·히타치·버티오·엡손 등 세계적인 기업이 이 대학원의 학생들에게 학비를 주고 인력을 채용한다. 경우에 따라서는 학비를 대주는 기업이 본사 직원을 보내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현재로서는 한국인들에게는 ‘그림의 떡’이다. 아직 이 대학원에 참여하는 기업들이 없기 때문이다. 유학을 가려면 학비 전액을 부담할 각오가 돼 있어야 한다. 이곳 존 리키 알바센터 마케팅 담당 이사는 “그렇다고 실망할 필요는 없다. 한국 기업들도 관심이 있으며 설사 한국 기업이 참여하지 않는 상황이라 해도 학생 능력에 따라 기업의 후원을 받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세계 유일의 지적재산권 거래소VCX (Virtual Compoment Exchange) 역시 알바센터가 의욕적으로 내놓은 ‘알바 상품’이다. 알바센터가 만들어진 다음해인 98년 출범한 반도체 지적재산권 거래시장은 시스템 칩 개발에 필수인 요소들을 자유롭게 거래할 수 있도록 만든 공개시장이다. 현재 모토로라·지멘스·노키아·도시바·히타치 등 세계적인 기업 50여개사가 고객이다.

네트워킹은 이렇게···

1. 알란 하비 스트라스 클라이드 대 교수·파마링크스 대표 “네트워크로 연결된 교수·연구원들과 함께 다양하고 광범위한 연구가 진행 중이다. 연구 프로젝트 개발의 주체가 누구라도 상관 없으며 외국의 작은 기업이 특정한 신약을 개발해 달라고 주문할 때도 많다.”

2. D.K. 어빙 에딘버러대학 교수 “모래알 크기의 칩을 개발하는 연구가 상당히 진척됐다. 반도체·전자기술은 물론 일상생활의 패러다임을 바꿀 만한 연구를 혼자 수행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연구와 자금 면에서 국내는 물론 해외 네트워크가 필수다.”

3. 밥 스메일즈 에딘버러대학 러서치 앤드 이노베이션 대표 “대학이나 기업·연구소들의 경쟁이 협력의 장애가 될 수도 있다. 이를 잘 피해야 한다. 에딘버러 대학의 경쟁자인 던디 대학과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경우에 따라서는 연구 용역을 받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벌이지만 필요하면 공동연구자로 나서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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