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업 이어 채권업도 고사 위기
대부업 이어 채권업도 고사 위기
명동의 사채업자들은 요즘 개점휴업 상태다. 가장 큰 이유는 4월부터 국민주택채권이 등록발행제로 전환됐기 때문이다. ‘묻지마 채권’으로 통하는 주택채권의 등록발행제 시행은 명동이 채권거래의 익명성을 보장해 줄 수 없도록 만들었다.
지하자금의 대표적인 유통 경로 가운데 하나인 명동 사채시장은 새 정부가 출범할 때면 으레 한 번씩 홍역을 치렀다. 수십조 원에 달한다는 지하자금을 양지로 끌어내려는 정부의 의지 때문이다. 명동 사채시장이 음성적인 자금을 유통시키는 방법은 크게 세 가지로 나뉜다. 기업이나 개인에게 고리의 자금을 대여해주는 대부업과 기업이 어음을 발행해 급전을 융통하는 어음할인 시장 역할, 그리고 국민주택채권 중개업이다.
지금까지 정부의 지하자금 양성화 방안이 성공을 거둔 예는 거의 없다. 사채시장을 찾는 수요자들에게 대안을 제시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요즘 명동에서는 우려섞인 푸념이 곳곳에서 새어 나오고 있다. 명동의 3대 시장 가운데 사설 대부업이 존폐위기에 놓인 데 이어 국민주택채권 중개업자들이 벼랑 끝에 내몰렸기 때문이다. 채권업자 S씨는 “대부업법 시행 이후 사설 대부업자들이 거의 자취를 감췄는데, 이제 채권업자들 차례라는 위기감이 감돌고 있다”고 말했다.
국내 대부업 시장은 일본 대부업체들이 장악한 지 오래다. 최대 규모의 업체였던 대호가 부도를 냈고, 등록 취소 업체 수가 신규등록 업체 수를 넘는 등 빈사 상태에 내몰리고 있다. 명동에 있던 업체들도 위기를 맞았다. 대부업법 시행 이후 명동에서 대부업자를 찾아보기 힘들어졌다. 사설 대부업자들은 거의 지하로 숨어들었고, 금감원에 등록해 양지로 나온 업체들은 강남 등으로 무대를 옮겨갔다.
대부업법에 이어 명동을 긴장시키고 있는 또 다른 요인은 국민주택채권이다. 국민주택채권은 지난 1973년에 주택건설사업에 필요한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처음 발행됐다. 사업면허를 받거나 등기 ·등록을 원하는 개인과 법인이 의무적으로 구입해야 하는 ‘강제소화채권’의 하나다. 귀금속점이나 주류업자 ·카센터 등의 영업허가와 면허에서부터 부동산등기 ·건축허가 ·법인 설립 등에 이르기까지 구입의무자도 다양하다. 국민주택채권의 지난해 말 현재 발행잔액은 26조9,000억원에 이른다.
도입취지는 좋았지만 국민주택채권은 시간이 지나면서 본래 의도와는 다른 방향으로 이용됐다. 무기명인 탓에 상속 ·증여세 회피나 돈세탁 등에 악용될 수 있었던 것이다. 정부는 최종 소지자가 누구에게 얼마를 주고 샀건 만기가 되면 돈을 내줘야 한다. 한해 7조~8조원씩 발행된 이 채권은 전체 물량의 70% 가량이 명동에서 거래되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하지만 지난 4월 1일부터 국민주택채권이 등록발행방식으로 바뀜에 따라 신규로 발행되는 국민주택채권은 실물로 인쇄 ·교부되지 않고 국민은행 전산망을 통해서만 구입할 수 있게 됐다. 등록발행 방식은 채권을 교부하지 않는 대신 구입자의 성명과 매입금액 ·일련번호 등을 금융기관 계좌에 전산으로 등록하는 방식이다. 구입한 국민주택채권은 증권예탁원에 맡겨두고 거래는 계좌로만 이뤄지게 된다. 채권을 매도하는 것도 국민은행이나 대신 ·대우 ·삼성 ·LG ·동양 등 5개 증권사의 전산망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구입자 인적사항과 구입 내역이 금융기관에 전산으로 남게 되고, 유통도 증권회사 간 계좌이체로 이뤄지기 때문에 더이상 ‘묻지마 채권’의 역할을 할 수 없게 됐다. 다만 이미 실물로 발행된 국민주택채권 가운데 만기가 되지 않은 채권 등은 아직 사고팔 수 있다. 당장 사채시장이 문을 닫는 것은 아니지만 남은 물량들이 소화되는 수년 뒤에는 시장 자체가 사라질 수밖에 없는 운명이다. 일부 채권상은 “다른 업종으로 직업 전환을 심각하게 고려 중”이라고 털어놨다. 불과 2~3년 전만 해도 직장인을 상대로 ‘사채 아카데미’를 열 정도로 호황을 누리던 것과는 판이한 모습이다.
명동에서 채권을 파는 상인은 대략 2,000여 명으로 추산된다. 이들은 대부분 무기명채권을 다룬다. 채권상의 주수입원은 거래금액의 0.1∼0.2%에 달하는 수수료다. 하지만 대검의 대선자금 수사에서 기업들이 수백억 원의 정치자금을 주택채권으로 건넨 단서가 나온 뒤 채권상들이 검찰에 줄소환되면서 고객의 발길이 크게 줄었다.
채권상 A씨는 “명동에서 채권 장사만 20년인데, 요즘 같은 때는 없었다”고 말했다. 국민주택채권은 보통 명동에서 하루에 200억∼300억원어치가 거래되는데, A씨는 평균 30억∼40억원어치를 팔았다고 한다.
그러나 요즘은 하루 거래량이 절반 이하로 뚝 떨어졌다. A씨는 “대선자금 수사 과정에서 ‘무기명채권도 검찰이 추적하면 꼬리가 잡힌다’고 사람들이 알게 됐다”면서 “고객과의 ‘신뢰’가 깨졌기 때문에 명동이 외면당하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중고 자동차 매매업이나 부동산 거래 등 다른 업종으로 전환한 채권상들이 제법 있다”고 말했다.
하루 거래량이 3억∼4억원 정도로 비교적 소규모 채권상인 N씨는 “신규 물량이 나오지 않으면 작은 업체들의 타격이 클 것”이라고 말했다. 주변 상인으로부터 주택채권을 모아 명동 채권상들에게 파는 ‘대납업자’도 겸하고 있는 그는 “지난 98년부터 이 일을 해왔는데 이제 민원서류 대행 쪽으로 업종을 바꿀 생각”이라고 밝혔다.
최근 실시된 국세청의 세무조사는 얼어붙은 명동에 또 한 번 찬물을 끼얹은 격이었다. 명동의 채권 중개업자들은 매년 한 차례 관할 세무서에 채권 거래실적을 신고한다. 이를 근거로 국세청은 세금을 징수하고 거래 내역이 누락됐을 경우 세무조사를 한다. 하지만 명동 사채업자들은 “이번처럼 불시에 들이닥쳐 전주(錢主)들까지 찾아내는 조사는 이례적인 경우”라고 입을 모은다.
명동의 한 중견 채권중개 업체는 국세청으로부터 세무조사로 수십억 원대의 세금을 추징당한 뒤 자진해서 문을 닫았다. 특히 폐업한 업체가 세무조사를 받은 뒤 재산까지 가압류됐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여파가 어디까지 미칠지 모르기 때문이다.
기업어음 중개업체인 중앙인터빌 관계자는 “사설 대부업체 정비와 채권 등록발행제 등으로 명동 사채시장이 전성기에 비해 3분의 1 정도로 축소된 데다 계속 악재가 겹치고 있어 옛 명성이 조만간 사라질 운명”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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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자금의 대표적인 유통 경로 가운데 하나인 명동 사채시장은 새 정부가 출범할 때면 으레 한 번씩 홍역을 치렀다. 수십조 원에 달한다는 지하자금을 양지로 끌어내려는 정부의 의지 때문이다. 명동 사채시장이 음성적인 자금을 유통시키는 방법은 크게 세 가지로 나뉜다. 기업이나 개인에게 고리의 자금을 대여해주는 대부업과 기업이 어음을 발행해 급전을 융통하는 어음할인 시장 역할, 그리고 국민주택채권 중개업이다.
지금까지 정부의 지하자금 양성화 방안이 성공을 거둔 예는 거의 없다. 사채시장을 찾는 수요자들에게 대안을 제시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요즘 명동에서는 우려섞인 푸념이 곳곳에서 새어 나오고 있다. 명동의 3대 시장 가운데 사설 대부업이 존폐위기에 놓인 데 이어 국민주택채권 중개업자들이 벼랑 끝에 내몰렸기 때문이다. 채권업자 S씨는 “대부업법 시행 이후 사설 대부업자들이 거의 자취를 감췄는데, 이제 채권업자들 차례라는 위기감이 감돌고 있다”고 말했다.
국내 대부업 시장은 일본 대부업체들이 장악한 지 오래다. 최대 규모의 업체였던 대호가 부도를 냈고, 등록 취소 업체 수가 신규등록 업체 수를 넘는 등 빈사 상태에 내몰리고 있다. 명동에 있던 업체들도 위기를 맞았다. 대부업법 시행 이후 명동에서 대부업자를 찾아보기 힘들어졌다. 사설 대부업자들은 거의 지하로 숨어들었고, 금감원에 등록해 양지로 나온 업체들은 강남 등으로 무대를 옮겨갔다.
대부업법에 이어 명동을 긴장시키고 있는 또 다른 요인은 국민주택채권이다. 국민주택채권은 지난 1973년에 주택건설사업에 필요한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처음 발행됐다. 사업면허를 받거나 등기 ·등록을 원하는 개인과 법인이 의무적으로 구입해야 하는 ‘강제소화채권’의 하나다. 귀금속점이나 주류업자 ·카센터 등의 영업허가와 면허에서부터 부동산등기 ·건축허가 ·법인 설립 등에 이르기까지 구입의무자도 다양하다. 국민주택채권의 지난해 말 현재 발행잔액은 26조9,000억원에 이른다.
도입취지는 좋았지만 국민주택채권은 시간이 지나면서 본래 의도와는 다른 방향으로 이용됐다. 무기명인 탓에 상속 ·증여세 회피나 돈세탁 등에 악용될 수 있었던 것이다. 정부는 최종 소지자가 누구에게 얼마를 주고 샀건 만기가 되면 돈을 내줘야 한다. 한해 7조~8조원씩 발행된 이 채권은 전체 물량의 70% 가량이 명동에서 거래되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하지만 지난 4월 1일부터 국민주택채권이 등록발행방식으로 바뀜에 따라 신규로 발행되는 국민주택채권은 실물로 인쇄 ·교부되지 않고 국민은행 전산망을 통해서만 구입할 수 있게 됐다. 등록발행 방식은 채권을 교부하지 않는 대신 구입자의 성명과 매입금액 ·일련번호 등을 금융기관 계좌에 전산으로 등록하는 방식이다. 구입한 국민주택채권은 증권예탁원에 맡겨두고 거래는 계좌로만 이뤄지게 된다. 채권을 매도하는 것도 국민은행이나 대신 ·대우 ·삼성 ·LG ·동양 등 5개 증권사의 전산망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구입자 인적사항과 구입 내역이 금융기관에 전산으로 남게 되고, 유통도 증권회사 간 계좌이체로 이뤄지기 때문에 더이상 ‘묻지마 채권’의 역할을 할 수 없게 됐다. 다만 이미 실물로 발행된 국민주택채권 가운데 만기가 되지 않은 채권 등은 아직 사고팔 수 있다. 당장 사채시장이 문을 닫는 것은 아니지만 남은 물량들이 소화되는 수년 뒤에는 시장 자체가 사라질 수밖에 없는 운명이다. 일부 채권상은 “다른 업종으로 직업 전환을 심각하게 고려 중”이라고 털어놨다. 불과 2~3년 전만 해도 직장인을 상대로 ‘사채 아카데미’를 열 정도로 호황을 누리던 것과는 판이한 모습이다.
명동에서 채권을 파는 상인은 대략 2,000여 명으로 추산된다. 이들은 대부분 무기명채권을 다룬다. 채권상의 주수입원은 거래금액의 0.1∼0.2%에 달하는 수수료다. 하지만 대검의 대선자금 수사에서 기업들이 수백억 원의 정치자금을 주택채권으로 건넨 단서가 나온 뒤 채권상들이 검찰에 줄소환되면서 고객의 발길이 크게 줄었다.
채권상 A씨는 “명동에서 채권 장사만 20년인데, 요즘 같은 때는 없었다”고 말했다. 국민주택채권은 보통 명동에서 하루에 200억∼300억원어치가 거래되는데, A씨는 평균 30억∼40억원어치를 팔았다고 한다.
그러나 요즘은 하루 거래량이 절반 이하로 뚝 떨어졌다. A씨는 “대선자금 수사 과정에서 ‘무기명채권도 검찰이 추적하면 꼬리가 잡힌다’고 사람들이 알게 됐다”면서 “고객과의 ‘신뢰’가 깨졌기 때문에 명동이 외면당하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중고 자동차 매매업이나 부동산 거래 등 다른 업종으로 전환한 채권상들이 제법 있다”고 말했다.
하루 거래량이 3억∼4억원 정도로 비교적 소규모 채권상인 N씨는 “신규 물량이 나오지 않으면 작은 업체들의 타격이 클 것”이라고 말했다. 주변 상인으로부터 주택채권을 모아 명동 채권상들에게 파는 ‘대납업자’도 겸하고 있는 그는 “지난 98년부터 이 일을 해왔는데 이제 민원서류 대행 쪽으로 업종을 바꿀 생각”이라고 밝혔다.
최근 실시된 국세청의 세무조사는 얼어붙은 명동에 또 한 번 찬물을 끼얹은 격이었다. 명동의 채권 중개업자들은 매년 한 차례 관할 세무서에 채권 거래실적을 신고한다. 이를 근거로 국세청은 세금을 징수하고 거래 내역이 누락됐을 경우 세무조사를 한다. 하지만 명동 사채업자들은 “이번처럼 불시에 들이닥쳐 전주(錢主)들까지 찾아내는 조사는 이례적인 경우”라고 입을 모은다.
명동의 한 중견 채권중개 업체는 국세청으로부터 세무조사로 수십억 원대의 세금을 추징당한 뒤 자진해서 문을 닫았다. 특히 폐업한 업체가 세무조사를 받은 뒤 재산까지 가압류됐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여파가 어디까지 미칠지 모르기 때문이다.
기업어음 중개업체인 중앙인터빌 관계자는 “사설 대부업체 정비와 채권 등록발행제 등으로 명동 사채시장이 전성기에 비해 3분의 1 정도로 축소된 데다 계속 악재가 겹치고 있어 옛 명성이 조만간 사라질 운명”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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