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가 받는 연봉 내가 결정한다”
“희망 연봉이 실제 연봉” “적어도 올해는 3,000만원은 받아야겠습니다.” “그럽시다. 서명하세요.” 팽팽한 긴장감이 오가기 마련인 연봉협상이 이렇게 싱거운 회사가 있다. 인터넷에서 문서서식을 제공하는 벤처기업 ‘인비닷컴’(www.inbee.com)은 연봉 문제를 당사자에게 일임한다. 인비닷컴이 올해부터 시행하고 있는 ‘연봉콜제도’가 그것인데, 이 회사 이기용 사장은 연봉협상 테이블에 앉은 직원이 부르는(call) 대로 사인을 해준다. 희망연봉이 곧 실제 연봉이 되는 것이다. 가령 이 회사의 A대리가 “지난해 회사가 영업 목표치에 도달했고, 올해 나는 이만큼 할 것이니 최소한 4,000만원을 달라”고 하면 군말 없이 들어준다. 지난해 1,800만원을 받았던 직원이 3,000만원 가까이 요구하는 경우도 있었다. “사정이 빠듯한 창업자들의 고민은 비슷합니다. 봉급을 되도록 적게 주고 싶은 거지요. 그러나 직원들 생각은 반대입니다. 똑같은 줄다리기를 몇년째 하다가 올해는 ‘거꾸로’ 해보기로 했습니다. 무리다 싶은 요구도 100% 수용해 줬지요.”(이기용 사장) 이사장은 “임금 총액이 지난해에 비해 40% 가까이 더 나간다”고 말했다. 이 회사의 전체 직원은 30명. 이 가운데 이사장 등 창업자 5명의 월급이 50만원에서 60만원으로 오른 것을 빼면 전체 직원의 연봉이 50% 가까이 인상된 셈이다. 원하는 연봉을 받는 대신 맡은 기본 업무에서는 책임을 엄하게 묻도록 했다. ‘업무일지를 쓰지 않았다’ ‘인터넷 링크가 깨졌다’ ‘프로젝트 기간을 어겼다’ 같은 항목들이다. 이 조항을 위반하면 해당 사원은 시말서를 써야 한다. 시말서를 세번 내면 ‘삼진아웃’이다. 삼진아웃을 당하면 이번에는 회사가 정한 연봉을 받아야 한다. 개인이 3,000만원을, 회사는 1,500만원을 책정했다면 그날부터 월급이 절반으로 줄어드는 것이다. 미국에 본사를 둔 다국적 기업 W.L. 고어. ‘고어텍스’ 섬유소재로 유명한 회사다. 이 회사에 근무하는 6,600여명 직원들은 3월 말 회계연도가 끝나는 대로 미국 본사로부터 이메일을 받는다. 같은 업무를 맡은 동료들을 평가하는 ‘다면평가서’다. 예를 들어 아시아태평양지역 영업부에 근무하는 직원이라고 하면 같은 아태지역 내 영업부 직원들의 성적을 매긴다. 지원부서는 지원부서대로, 마케팅팀은 마케팅팀대로 1위부터 최하위까지 순위를 매긴다. 아태지역 내에 근무하는 직원은 같은 업무당 대략 20∼30여명이다. 김광수 고어코리아 섬유사업본부장은 “서로 실적을 공유하고 있고, 대개 이메일이나 국제회의 등을 통해 교류하고 있는 사이여서 객관적인 평가가 가능하다”고 말한다. 동료들에 의한 다면평가서는 미국 본사로 취합되고, 평가 결과는 5월 중순께 각 지사의 본부장급들이 참여하는 보상위원회에 통보된다. 보상위원회에서는 재평가 과정을 거쳐 직원들의 봉급이 결정된다. 아태지역 보상위원회 이사인 김본부장은 “보통 한 부서 20여명을 평가하는 데 하루 8시간이 걸린다”며 “지사별·부서별·개인별 고과가 충분히 감안된다”고 말했다. 이 과정에서 동료평가가 ‘인기투표’가 된 것은 아닌지, 개인의 성과가 운에 의한 것은 아닌지 등의 문제가 걸러진다. 다면평가에는 직위·경력·성별 차별이 없다. 연차가 높다고 해서 높은 임금을 받지도, 지원부서에 있다고 해서 불리한 처우를 받지도 않는다. 김광수 본부장은 “오로지 잣대는 회사 공헌도와 영향력(impact)”이라고 말했다. ‘과대포장’ ‘인기투표’는 없을까? 인비닷컴의 연봉 책정 방식이 조금 과장해 ‘내 마음대로’라면, W.L. 고어에서는 ‘동료 마음대로’인 셈이다. 효과는 어떨까? “처음엔 온정주의 때문에 걱정을 많이 했지요. 아무래도 내 옆에 있는 사람한테 더 높은 점수를 주니까요. 인기투표로 가지 않을까 염려했던 거지요. 그러나 직원들은 훨씬 냉정합니다. 사사로운 감정 때문에 평점을 낮게 주는 일은 없습니다. 게다가 상사의 ‘감정’이 개입하기 어렵다 보니 더 합리적이라고 할 수 있지요.”(김광수 본부장) 자칫 ‘인기투표’가 될 수 있을 것 같다는 우려에 대해 김본부장은 “직원들은 훨씬 냉정하고 객관적이다”고 대답했다. 그는 이어 “인기투표적인 요소는 사실 상사가 부하직원을 일방적으로 평가하는 수직적인 조직에서 더 많다”고 말했다. 한번 상사 눈밖에 나면 사실상 승진이 어려운 수직 조직에서 불만이 더 많지 않느냐는 것이다. “원하는 만큼 주니까 처음에는 회사 살림살이가 빠듯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알고 보면 그다지 큰 차이가 없습니다. 사실 아주 ‘무리한 요구’를 하는 직원들이 거의 없습니다. 장기적으로 서로에게 책임을 묻는 시스템이 정착되겠지요.”(이기용 사장) ‘내가 과연 월급만큼의 몫을 하고 있는가’ 하고 반문한다는 얘기다. 이사장은 “처음에는 직원들 사이에서 성과가 나지 않으면 ‘자르려고 하는 것 아니냐’며 불만도 많았다. 그러나 지금은 최소한 회사로부터 이용당하는 존재라는 인식이 없어진 것 같다”고 말했다. 인사 전문가인 김정일 한국왓슨와이어트 상무는 “급여를 단순히 회사에서 수동적으로 받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근로 대가에 따라 적극적으로 받는다는 개념을 분명히 한 것은 평가할 만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김상무는 “연봉콜제의 경우 개인에 대한 엄격한 고과평가가 가능한 소규모 조직에서나 활용해 볼만한 사례”라고 말했다. |
ⓒ이코노미스트(https://economist.co.kr) '내일을 위한 경제뉴스 이코노미스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당신이 좋아할 만한 기사
브랜드 미디어
브랜드 미디어
'李유죄' 선거법 조항 폐지법, 법사위 통과…국힘 "李 면소법"(상보)
세상을 올바르게,세상을 따뜻하게이데일리
이데일리
이데일리
박수홍, 가족사진 공개..'37㎏↑'♥김다예 눈길
대한민국 스포츠·연예의 살아있는 역사 일간스포츠일간스포츠
일간스포츠
일간스포츠
부동산 고사 직전, 양도세 확 낮추자
세상을 올바르게,세상을 따뜻하게이데일리
이데일리
이데일리
[마켓인]'5년 조기상환'의 함정…자본성증권의 '역습'
성공 투자의 동반자마켓인
마켓인
마켓인
[단독]삼천당 주가 띄운 S-PASS 원천기술, 5년 전 이미 “진보성 없다” 결론
바이오 성공 투자, 1%를 위한 길라잡이팜이데일리
팜이데일리
팜이데일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