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환기를 맞고 있는 ‘음 지의 군대’ 일본 자위대
전환기를 맞고 있는 ‘음 지의 군대’ 일본 자위대
Japan's Unknown Soldiers
일본 에타지마(江田島)의 해상자위대 간부후보생학교는 규율이 엄격하다. 아침 6시에 기상나팔이 울리면 사관생도들은 부리나케 군복을 걸쳐 입고 운동장으로 뛰쳐나가 정열한 후 ‘훈육 장교’들의 사열을 받는다. 사실 사관생도들은 어디를 가든 구보로 이동한다. “생도들의 시간을 빼앗는 것”, 다시 말해 기민함이 기본 교육의 하나라고 한 훈육 장교는 말한다.
생도들은 사회과학과 영어뿐 아니라 항해술, 심지어 각개전투 훈련까지 배운다. 장교로 임관되기 전에 생도들은 에타지마만의 바다에서 12km 이상을 수영해야 한다(평영으로 대오를 이뤄야 한다). 그같은 혹독한 훈련은 아홉시간 동안 지속되는데 휴식시간은 점심식사 때뿐이다. 점심에는 보트 한대가 물 속의 생도들 사이를 돌아다니며 주먹밥을 배식한다. 에타지마의 부교장인 다마이 다이세이(玉井泰生) 대령은 “장기적으로는 해양 전사의 정신을 가진 미래의 지도자를 양성하는 게 목적”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1년간의 훈련을 마친 후 5개월 일정의 순양 훈련을 떠날 때도 에타지마의 남녀 생도들(1백90명의 생도 중 13명이 여성)이 진정한 해군이 되는 것은 아니다. 다마이 대령은 “우리 조직을 해군이라고 불러서는 안 된다”며 이렇게 덧붙인다. “올바른 명칭은 해상자위대다. 일본에서 ‘해군’은 통상 제국 해군을 가리키며 전쟁 후 이를 ‘구 해군’이라고 부르기도 했지만 우리를 ‘신 해군’이라고 부를 수는 없다. 헌법상 중대한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1947년 발효된 일본의 ‘평화헌법’에는 일본이 군대를 가질 수 없도록 명문화돼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상자위대는 (1950년대 창설된 육상자위대 및 항공자위대와 마찬가지로) 상당한 군사력을 갖추고 있다. 50척의 구축함과 16척의 잠수함을 가진 해상자위대는 미국·영국·러시아 해군에 이어 세계 4위의 해군력을 자랑한다. 전체적으로 일본은 국방비 지출면에서 상위 3~4위 국가에 속한다.
여러해 동안 일본은 이같은 명백한 모순에 대해 적어도 공개적인 논의를 피했다. 일본 자위대는 사람들 눈에 띄지 않게 음지에서 활동했다. 이들은 지진이나 비행기 추락 후 구조활동을 전개하며 주로 자연재해 및 사고에 동원됐다. 그러다가 일본은 1990년대 초부터 캄보디아나 모잠비크 같은 해외의 평화유지 업무에 자위대를 파견하기 시작했다. 1993년 북한이 동해로 노동1호 미사일(사정거리 1천~1천3백km)을 시험발사하자 일본은 북한 정부를 심각한 위협으로 간주하게 됐고 전통적으로 반군사적이던 일본 여론이 역전되기 시작했다. 일본의 공산당조차 지난 1월의 당대회에서 자위대에 대한 반대입장을 철회했다.
북한의 위협(미국에 대한 9·11 테러 공격, 중국의 군사력 증강과 함께)을 계기로 일본인들은 그동안 뜨거운 감자로 여겨 왔던 군사력 문제를 본격적으로 검토하기 시작했다. 9·11 이후 일본은 해상자위대의 보급선들이 전함의 호위 아래 인도양으로 이동해 연합군 함선에 연료를 공급할 수 있도록 했다. 한편 일본 정부는 현재 자위대의 역할을 확대하며 좀더 정규군에 가깝게 만드는 개편안을 검토하고 있다.
2003년 3월 미국이 이라크를 공격한 후에는 소극적인 역할이지만 미군 주도의 연합군에도 가세했다. 지난해에는 이른바 비전투 지역에 국한된 것이지만 자위대가 이라크에서 인도적인 사업을 수행할 수 있도록 하는 안이 일본 의회에서 통과됐다. 그리고 지난 1월에는 이라크 남부의 아스 사마와에 5백50명의 자위대 병력을 파견했다. 그에 대한 일본 여론은 엇갈린다. 지난 2월에 실시된 한 여론조사 결과 자위대 파병 찬성이 48.3%였던 반면 반대는 45.1%로 나타났다. 사상자가 발생하면 병력을 철수해야 하느냐는 질문에는 54%가 ‘그렇다’고 답했다.
올해 3월 일본은 3백명 규모의 ‘특수작전단’을 창설했다. 미군 델타 포스와 영국 SAS 특공대들이 사용하는 특공무술 실력을 갖춘 대테러 부대다. 지난주 일본 방위청은 새로운 위협에 대처하기 위해 자위대를 더 ‘기능적인 군대’로 개편해야 한다고 촉구하는 백서를 발표했다. 이 백서는 ‘기동성과 신축성’의 향상을 강조하고 북한이 미사일의 사정거리를 확대할 가능성이 높다고 경고했다. 어쩌면 장기적으로 더 중대한 문제는 중국의 군사력 증강과 기술 현대화라고 이 백서는 지적했다. 또 이라크 민주체제 수립을 돕기 위한 파병은 일본의 자주국방에 유익한 일이었다고도 주장했다. 일본 원유의 90%가 중동에서 공급되기 때문이다.
일본 최대 일간지인 요미우리 신문은 사설에서 “자위대는 ‘전환점’을 맞고 있다”며 방위청의 백서를 “올바른 방향으로의 첫걸음”이라고 묘사했다. 그렇지만 일본인들은 어느 선까지 나아가야 할지 확신하지 못하고 있다.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총리는 자위대의 기능을 향상·개편하기로 결심한 듯하다. 그러나 한때 여론조사에서 80%를 웃돌았던 그의 인기는 최근 몇주 사이 40.7%로 떨어졌다. 야당은 지난 6월의 선진 8개국 정상회담에서 조지 W. 부시 대통령에게 지나치게 굽신거렸다고 그를 맹렬하게 비난했다. 그는 의회의 의견을 묻지도 않고 6월 30일 이후에도 이라크에 파병한 일본군을 다국적군과 함께 계속 남겨두기로 합의했다. 반대파들은 고이즈미가 일본 헌법의 한계를 시험하고 있다고 비난한다.
실제로 일본의 군사적 역할을 인정하도록 헌법을 개정해야 한다는 논의가 심각하게 제기되기 시작했다. 여론조사에 따르면 일본 국민의 절반 가량이 헌법개정을 원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렇지만 군대 보유를 금지하는 원래의 9조를 살려둬야 한다는 의견도 절반이 넘었다(60%). 저명한 정치평론가 다치바나 다카시(立花隆)는 이렇게 말했다. “진짜 문제는 많은 일본인들이 자위대에 특정한 지위를 부여해 국제적 공헌을 하면 좋겠다고 생각하더라도 전후 오랫동안 평화를 누려 왔기 때문에 실제로 헌법이 개정될 경우 나라에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르거나 진지하게 생각해본 적이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변화에 구체적으로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도 모른다.”
많은 일본인들이 군대에 대해 느끼는 이중성과 긴장감은 지난 6월 중순 뉴스위크가 인터뷰한 해상자위대의 젊은 생도 여섯명의 얼굴에도 그대로 쓰여 있었다. 생도들은 모두 똑똑했으며(40대 1의 경쟁률을 뚫고 입학했으며 일본 일류대 졸업자들도 적지 않다) 사려깊고 논리정연했다. 그러나 ‘해양 전사’로서 자신들의 역할에 대해서는 의견이 엇갈렸으며 약간 불확실한 태도를 보였다.
에타지마 입학 첫주 각 생도는 두 시간 동안 학교 박물관을 관람해야 한다. 이 박물관은 1936년 일본 제국해군 관계자들의 글이나 유품을 기증받아 세워진 거대한 그리스풍의 사원으로 전몰 장병들을 위한 사당 역할을 한다. 이 박물관에 들어서면 1869년 학교 설립 후 2차대전 종전까지의 사이에 전장에서 숨진 4천31명(졸업자 세명 중 한명꼴)의 명부가 눈에 띈다. 이어 러-일 전쟁에서 77명의 자살특공대에 선발되기 위해 자원한 해병 2천명의 이야기를 접하게 된다. 그리고 1910년 침몰한 잠수함에 갇힌 젊은 대위가 마지막으로 남긴 감동적인 업무일지가 눈에 들어온다. 1942년 미드웨이 해전에서 야마구치 다몬(山口多聞) 중장이 바닷속으로 가라앉는 배와 운명을 같이 하기 전 한 해병에게 기념품으로 건네준 모자도 전시돼 있다. 이어 정말로 가슴뭉클한 드라마가 펼쳐진다.
‘가미카제’(神風) 부대원들을 기리기 위해 마련된 두줄의 긴 갤러리다. 벽에는 가미카제 파일럿(평균연령 19.8세)들의 사진 수십장과 그들이 쓴 가슴 저린 내용의 족자들이 걸려 있다. 종종 흠잡을 데 없는 서체로, 일부는 혈서로 또는 일장기 위에, 부모보다 먼저 세상을 떠나는 자식의 죄스런 마음을 의식을 치르듯 표현했다.
생도들이 박물관에 들어갔다 나오면 “표정이 놀랄 정도로 달라진다”고 다마이 대령은 말한다. 뉴스위크가 인터뷰한 학생들은 처음 박물관 관람을 한 후 3개월이 지난 지금도 경외감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다.
“전에는 그런 사명감이 없었다. 이제 그것을 본 이후로 나도 그런 전통에 속하며 그것을 계승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사토 고스케(佐藤耕輔·22)는 말했다. 히다카 다이스케(日高大輔·22)는 “제독들의 족자 등을 보며 영적인 기운을 느꼈다”며 이렇게 말을 이었다. “나는 이제 사명감으로 충만하며 이같은 전통을 잇게 돼서 자랑스럽다.” 그러나 정확하게 어떤 사명, 어떤 전통이란 말인가. 생도 요네시타 가즈히로(米下和宏·27)는 무사도(武士道)에서는 죽음을 ‘미화’하는 경우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 시절 정부 지도자들은 애국심과 무사도를 내세워 젊은이들을 희생시켰다. 그런 일이 이 나라에서 결코 되풀이돼서는 안 될 것이다.”
자신들이 앞으로 진짜 해군이나 자위대에서 장교로 활동하게 될 것으로 보느냐고 묻자 생도들은 대답하기 거북한 듯 자세를 고쳐앉았다. 앞으로 전투에 참여할 가능성이 있을까. 한명이 “예”라고 답했다. “북한과의 전투다.”(북한은 과거 일본 국민 납치 등 일본에 대한 공격 행위를 했으며 일본의 가장 명백하고 시급한 위협이다). 나머지는 좀더 신중했다. 히다카는 “외부에서는 해상자위대를 보고 일본 해군이라고 부른다는 것을 알고 있다”며 이렇게 덧붙였다. “그러나 나는 우리가 해군이 아니라는 것을 잊지 않으려 애쓴다. 우리는 해상자위대다. 나는 이것을 항상 가슴 속에 새겨둔다. 나는 나라를 지키겠지만 침략전쟁에는 결코 가담하지 않을 것이다.”
이들 그룹 중 가장 신중한 듯한 요네시타 생도는 “우리는 두가지 상충되는 이념 속에 갇혀 있는 셈이다. 이곳에서 우리는 구 해군의 영광과 전통을 배우는 한편 일본 헌법과 법률상의 제약에 관해서도 배운다”고 말했다. 한 중간급 장교에 따르면 해상자위대 스스로도 진정한 해군을 만들어야 한다는 매파와, 헌법을 준수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의 의견이 팽팽하게 엇갈리고 있다.
일본은 오래전부터 서방의 것을 모방해 향상시키는 재능을 과시했다. 에타지마는 19세기 영국 해군 사관학교를 본뜬 것이다. 한 공식 브리핑에 따르면 생도들은 ‘신사도’에 관한 교육을 받는다. 박물관에는 호레이쇼 넬슨 제독의 머릿다발이 전시돼 있으며 일부 생도들은 아직도 럭비 경기를 즐긴다. 영국 조지 왕조 건축양식의 본관 건물은 잉글랜드에서 수입된 벽돌로 지어졌다. 그러나 그 정신은 분명 일본의 것이다.
생도들은 톰 크루즈 주연의 ‘라스트 사무라이’(생도 여섯명 중 다섯명이 이 영화를 봤다)에 비친 사무라이의 날조된 격투기 정신에 코웃음을 친다. 그보다 그들은 더 미묘한 자기수련의 정신을 높이 산다. 매일 밤 소등 전 그들은 아직도 고대 일본어로 낭송되는 ‘고세이’(五省)를 암송해야 한다. “지성(至誠)에 모자람은 없었는가. 언행에 부끄러움은 없었는가. 기력에 부족함은 없었는가. 노력에 후회는 없었는가. 나태에 빠지지는 않았는가.” 사람을 겸허하게 만드는 질문들인 동시에, 어떤 임무에도 유익한 훈련이다.
ⓒ이코노미스트(https://economist.co.kr) '내일을 위한 경제뉴스 이코노미스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일본 에타지마(江田島)의 해상자위대 간부후보생학교는 규율이 엄격하다. 아침 6시에 기상나팔이 울리면 사관생도들은 부리나케 군복을 걸쳐 입고 운동장으로 뛰쳐나가 정열한 후 ‘훈육 장교’들의 사열을 받는다. 사실 사관생도들은 어디를 가든 구보로 이동한다. “생도들의 시간을 빼앗는 것”, 다시 말해 기민함이 기본 교육의 하나라고 한 훈육 장교는 말한다.
생도들은 사회과학과 영어뿐 아니라 항해술, 심지어 각개전투 훈련까지 배운다. 장교로 임관되기 전에 생도들은 에타지마만의 바다에서 12km 이상을 수영해야 한다(평영으로 대오를 이뤄야 한다). 그같은 혹독한 훈련은 아홉시간 동안 지속되는데 휴식시간은 점심식사 때뿐이다. 점심에는 보트 한대가 물 속의 생도들 사이를 돌아다니며 주먹밥을 배식한다. 에타지마의 부교장인 다마이 다이세이(玉井泰生) 대령은 “장기적으로는 해양 전사의 정신을 가진 미래의 지도자를 양성하는 게 목적”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1년간의 훈련을 마친 후 5개월 일정의 순양 훈련을 떠날 때도 에타지마의 남녀 생도들(1백90명의 생도 중 13명이 여성)이 진정한 해군이 되는 것은 아니다. 다마이 대령은 “우리 조직을 해군이라고 불러서는 안 된다”며 이렇게 덧붙인다. “올바른 명칭은 해상자위대다. 일본에서 ‘해군’은 통상 제국 해군을 가리키며 전쟁 후 이를 ‘구 해군’이라고 부르기도 했지만 우리를 ‘신 해군’이라고 부를 수는 없다. 헌법상 중대한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1947년 발효된 일본의 ‘평화헌법’에는 일본이 군대를 가질 수 없도록 명문화돼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상자위대는 (1950년대 창설된 육상자위대 및 항공자위대와 마찬가지로) 상당한 군사력을 갖추고 있다. 50척의 구축함과 16척의 잠수함을 가진 해상자위대는 미국·영국·러시아 해군에 이어 세계 4위의 해군력을 자랑한다. 전체적으로 일본은 국방비 지출면에서 상위 3~4위 국가에 속한다.
여러해 동안 일본은 이같은 명백한 모순에 대해 적어도 공개적인 논의를 피했다. 일본 자위대는 사람들 눈에 띄지 않게 음지에서 활동했다. 이들은 지진이나 비행기 추락 후 구조활동을 전개하며 주로 자연재해 및 사고에 동원됐다. 그러다가 일본은 1990년대 초부터 캄보디아나 모잠비크 같은 해외의 평화유지 업무에 자위대를 파견하기 시작했다. 1993년 북한이 동해로 노동1호 미사일(사정거리 1천~1천3백km)을 시험발사하자 일본은 북한 정부를 심각한 위협으로 간주하게 됐고 전통적으로 반군사적이던 일본 여론이 역전되기 시작했다. 일본의 공산당조차 지난 1월의 당대회에서 자위대에 대한 반대입장을 철회했다.
북한의 위협(미국에 대한 9·11 테러 공격, 중국의 군사력 증강과 함께)을 계기로 일본인들은 그동안 뜨거운 감자로 여겨 왔던 군사력 문제를 본격적으로 검토하기 시작했다. 9·11 이후 일본은 해상자위대의 보급선들이 전함의 호위 아래 인도양으로 이동해 연합군 함선에 연료를 공급할 수 있도록 했다. 한편 일본 정부는 현재 자위대의 역할을 확대하며 좀더 정규군에 가깝게 만드는 개편안을 검토하고 있다.
2003년 3월 미국이 이라크를 공격한 후에는 소극적인 역할이지만 미군 주도의 연합군에도 가세했다. 지난해에는 이른바 비전투 지역에 국한된 것이지만 자위대가 이라크에서 인도적인 사업을 수행할 수 있도록 하는 안이 일본 의회에서 통과됐다. 그리고 지난 1월에는 이라크 남부의 아스 사마와에 5백50명의 자위대 병력을 파견했다. 그에 대한 일본 여론은 엇갈린다. 지난 2월에 실시된 한 여론조사 결과 자위대 파병 찬성이 48.3%였던 반면 반대는 45.1%로 나타났다. 사상자가 발생하면 병력을 철수해야 하느냐는 질문에는 54%가 ‘그렇다’고 답했다.
올해 3월 일본은 3백명 규모의 ‘특수작전단’을 창설했다. 미군 델타 포스와 영국 SAS 특공대들이 사용하는 특공무술 실력을 갖춘 대테러 부대다. 지난주 일본 방위청은 새로운 위협에 대처하기 위해 자위대를 더 ‘기능적인 군대’로 개편해야 한다고 촉구하는 백서를 발표했다. 이 백서는 ‘기동성과 신축성’의 향상을 강조하고 북한이 미사일의 사정거리를 확대할 가능성이 높다고 경고했다. 어쩌면 장기적으로 더 중대한 문제는 중국의 군사력 증강과 기술 현대화라고 이 백서는 지적했다. 또 이라크 민주체제 수립을 돕기 위한 파병은 일본의 자주국방에 유익한 일이었다고도 주장했다. 일본 원유의 90%가 중동에서 공급되기 때문이다.
일본 최대 일간지인 요미우리 신문은 사설에서 “자위대는 ‘전환점’을 맞고 있다”며 방위청의 백서를 “올바른 방향으로의 첫걸음”이라고 묘사했다. 그렇지만 일본인들은 어느 선까지 나아가야 할지 확신하지 못하고 있다.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총리는 자위대의 기능을 향상·개편하기로 결심한 듯하다. 그러나 한때 여론조사에서 80%를 웃돌았던 그의 인기는 최근 몇주 사이 40.7%로 떨어졌다. 야당은 지난 6월의 선진 8개국 정상회담에서 조지 W. 부시 대통령에게 지나치게 굽신거렸다고 그를 맹렬하게 비난했다. 그는 의회의 의견을 묻지도 않고 6월 30일 이후에도 이라크에 파병한 일본군을 다국적군과 함께 계속 남겨두기로 합의했다. 반대파들은 고이즈미가 일본 헌법의 한계를 시험하고 있다고 비난한다.
실제로 일본의 군사적 역할을 인정하도록 헌법을 개정해야 한다는 논의가 심각하게 제기되기 시작했다. 여론조사에 따르면 일본 국민의 절반 가량이 헌법개정을 원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렇지만 군대 보유를 금지하는 원래의 9조를 살려둬야 한다는 의견도 절반이 넘었다(60%). 저명한 정치평론가 다치바나 다카시(立花隆)는 이렇게 말했다. “진짜 문제는 많은 일본인들이 자위대에 특정한 지위를 부여해 국제적 공헌을 하면 좋겠다고 생각하더라도 전후 오랫동안 평화를 누려 왔기 때문에 실제로 헌법이 개정될 경우 나라에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르거나 진지하게 생각해본 적이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변화에 구체적으로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도 모른다.”
많은 일본인들이 군대에 대해 느끼는 이중성과 긴장감은 지난 6월 중순 뉴스위크가 인터뷰한 해상자위대의 젊은 생도 여섯명의 얼굴에도 그대로 쓰여 있었다. 생도들은 모두 똑똑했으며(40대 1의 경쟁률을 뚫고 입학했으며 일본 일류대 졸업자들도 적지 않다) 사려깊고 논리정연했다. 그러나 ‘해양 전사’로서 자신들의 역할에 대해서는 의견이 엇갈렸으며 약간 불확실한 태도를 보였다.
에타지마 입학 첫주 각 생도는 두 시간 동안 학교 박물관을 관람해야 한다. 이 박물관은 1936년 일본 제국해군 관계자들의 글이나 유품을 기증받아 세워진 거대한 그리스풍의 사원으로 전몰 장병들을 위한 사당 역할을 한다. 이 박물관에 들어서면 1869년 학교 설립 후 2차대전 종전까지의 사이에 전장에서 숨진 4천31명(졸업자 세명 중 한명꼴)의 명부가 눈에 띈다. 이어 러-일 전쟁에서 77명의 자살특공대에 선발되기 위해 자원한 해병 2천명의 이야기를 접하게 된다. 그리고 1910년 침몰한 잠수함에 갇힌 젊은 대위가 마지막으로 남긴 감동적인 업무일지가 눈에 들어온다. 1942년 미드웨이 해전에서 야마구치 다몬(山口多聞) 중장이 바닷속으로 가라앉는 배와 운명을 같이 하기 전 한 해병에게 기념품으로 건네준 모자도 전시돼 있다. 이어 정말로 가슴뭉클한 드라마가 펼쳐진다.
‘가미카제’(神風) 부대원들을 기리기 위해 마련된 두줄의 긴 갤러리다. 벽에는 가미카제 파일럿(평균연령 19.8세)들의 사진 수십장과 그들이 쓴 가슴 저린 내용의 족자들이 걸려 있다. 종종 흠잡을 데 없는 서체로, 일부는 혈서로 또는 일장기 위에, 부모보다 먼저 세상을 떠나는 자식의 죄스런 마음을 의식을 치르듯 표현했다.
생도들이 박물관에 들어갔다 나오면 “표정이 놀랄 정도로 달라진다”고 다마이 대령은 말한다. 뉴스위크가 인터뷰한 학생들은 처음 박물관 관람을 한 후 3개월이 지난 지금도 경외감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다.
“전에는 그런 사명감이 없었다. 이제 그것을 본 이후로 나도 그런 전통에 속하며 그것을 계승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사토 고스케(佐藤耕輔·22)는 말했다. 히다카 다이스케(日高大輔·22)는 “제독들의 족자 등을 보며 영적인 기운을 느꼈다”며 이렇게 말을 이었다. “나는 이제 사명감으로 충만하며 이같은 전통을 잇게 돼서 자랑스럽다.” 그러나 정확하게 어떤 사명, 어떤 전통이란 말인가. 생도 요네시타 가즈히로(米下和宏·27)는 무사도(武士道)에서는 죽음을 ‘미화’하는 경우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 시절 정부 지도자들은 애국심과 무사도를 내세워 젊은이들을 희생시켰다. 그런 일이 이 나라에서 결코 되풀이돼서는 안 될 것이다.”
자신들이 앞으로 진짜 해군이나 자위대에서 장교로 활동하게 될 것으로 보느냐고 묻자 생도들은 대답하기 거북한 듯 자세를 고쳐앉았다. 앞으로 전투에 참여할 가능성이 있을까. 한명이 “예”라고 답했다. “북한과의 전투다.”(북한은 과거 일본 국민 납치 등 일본에 대한 공격 행위를 했으며 일본의 가장 명백하고 시급한 위협이다). 나머지는 좀더 신중했다. 히다카는 “외부에서는 해상자위대를 보고 일본 해군이라고 부른다는 것을 알고 있다”며 이렇게 덧붙였다. “그러나 나는 우리가 해군이 아니라는 것을 잊지 않으려 애쓴다. 우리는 해상자위대다. 나는 이것을 항상 가슴 속에 새겨둔다. 나는 나라를 지키겠지만 침략전쟁에는 결코 가담하지 않을 것이다.”
이들 그룹 중 가장 신중한 듯한 요네시타 생도는 “우리는 두가지 상충되는 이념 속에 갇혀 있는 셈이다. 이곳에서 우리는 구 해군의 영광과 전통을 배우는 한편 일본 헌법과 법률상의 제약에 관해서도 배운다”고 말했다. 한 중간급 장교에 따르면 해상자위대 스스로도 진정한 해군을 만들어야 한다는 매파와, 헌법을 준수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의 의견이 팽팽하게 엇갈리고 있다.
일본은 오래전부터 서방의 것을 모방해 향상시키는 재능을 과시했다. 에타지마는 19세기 영국 해군 사관학교를 본뜬 것이다. 한 공식 브리핑에 따르면 생도들은 ‘신사도’에 관한 교육을 받는다. 박물관에는 호레이쇼 넬슨 제독의 머릿다발이 전시돼 있으며 일부 생도들은 아직도 럭비 경기를 즐긴다. 영국 조지 왕조 건축양식의 본관 건물은 잉글랜드에서 수입된 벽돌로 지어졌다. 그러나 그 정신은 분명 일본의 것이다.
생도들은 톰 크루즈 주연의 ‘라스트 사무라이’(생도 여섯명 중 다섯명이 이 영화를 봤다)에 비친 사무라이의 날조된 격투기 정신에 코웃음을 친다. 그보다 그들은 더 미묘한 자기수련의 정신을 높이 산다. 매일 밤 소등 전 그들은 아직도 고대 일본어로 낭송되는 ‘고세이’(五省)를 암송해야 한다. “지성(至誠)에 모자람은 없었는가. 언행에 부끄러움은 없었는가. 기력에 부족함은 없었는가. 노력에 후회는 없었는가. 나태에 빠지지는 않았는가.” 사람을 겸허하게 만드는 질문들인 동시에, 어떤 임무에도 유익한 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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