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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림의 미학 담긴
동양화 같은 작품 구상 중”

“느림의 미학 담긴
동양화 같은 작품 구상 중”

30대 후반 이상의 사람들이라면 <로보트 태권 브이> 를 기억할 것이다. <마징가 z> · <그랜다이저> 같은 일본 만화영화가 판을 치던 어린 시절 <로보트 태권 브이> 는 신선한 충격이었다. 로봇이 동영상으로 움직인다는 점만으로도 가슴이 벅찼지만, ‘우리 것’에 대한 막연한 자부심을 심어주기도 했던 그 영화는 숨죽이면서 볼 만큼 신나는 것이었다. 28년 전 <로보트 태권 브이> 를 만든 김청기 감독이 얼마 전 한국 창작 애니메이션의 발전에 기여한 공로로 서울국제만화애니메이션 페스티벌(SICAF)에서 상을 받았다. 문화산업 측면에서 새롭게 주목을 받고 있는 우리 애니메이션의 현황과 김 감독의 새로운 작품 구상을 알아보기 위해 부천에 있는 그의 작업실을 찾았다.
반갑게 맞아주는 김 감독에게 SICAF 공로상 수상을 축하 드리면서 SICAF의 현황에 관한 얘기부터 꺼내 보았다.
“출품작 수도 늘었고, 작품 수준도 많이 향상됐습니다. 대중들의 관심도 많이 커졌고요. 행사의 진행은 젊은 사람들이 구체적인 실무를 맡고 있고, 저는 명예위원으로 있습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그런 기회를 통해서 작가들이 서로 만나고 대화를 나누는 시간을 많이 갖게 된다는 점이지요. 또 행사를 관람하면서 대중이나 기업들과 창작자들 간 연결고리를 만들 수 있습니다.”

SICAF는 서울시가 1995년에 처음 개최한 후 매년 또는 격년으로 진행돼 왔다. 대중문화의 가치를 새롭게 인식시키고 문화산업으로의 가능성을 확산시킨다는 취지에서 마련되었는데, 명칭에서 보듯 평면만화와 애니메이션이 주를 이루고, 그것과 관련된 완구나 게임산업과 연계시킨다는 의도도 있다.
국내 애니메이션의 출발점에서부터 달려온 김 감독에게는 이 행사에 대한 감회가 남다를 것 같아 보였다. 그는 76년 당시 500만 명 이상의 관객을 동원했던 <로보트 태권 브이> 를 만들던 기억을 하나 둘 꺼내놓기 시작했다.

“전부터 인쇄매체를 통한 만화작업을 하고 있었습니다. CF 작업도 했었고요. 그때 디즈니 영화를 보면서 환상적인 비주얼 이미지들이 펼쳐나가는 것에 매료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나도 언젠가는 저런 것을 해보고 싶다고 생각했지요. 특히 그 당시 일본 애니메이션 <마징가 z> 를 우리 어린이들이 우리 것인 줄 알고 열광하는 것을 보면서 안타깝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내용도 선과 악이라는 이분법적인 방식으로 전개되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고요. 또 지방에 판권을 판매하는 방식이 생겨나서 보급의 여건들도 성숙해졌습니다. 사회 전반적으로는 산업화로 인한 자신감이 퍼져 있었습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태권이라는 이름을 넣고 국민적 캐릭터 성격을 갖는 <로보트 태권 브이> 를 만들 생각을 했습니다. 우리 아이들에게 우리 것에 대한 의식을 심어 주자는 생각과, 우리도 해낼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주고 싶었습니다.”

그때의 인기는 대단했다. 관객 500만이라는 수에만 그친 것이 아니었다. “달려라 달려 로보트야~”라는 노래가 동네 골목마다 메아리쳤고, 전국의 태권도장이 성황을 이루었을 정도였으니까. 이렇게 많은 사랑을 받았지만, 정작 김 감독 자신은 빚도 다 갚지 못했다고 한다. “그때는 은행에서 대출을 받을 수가 없어서 사채를 주로 썼어요. 집도 담보로 잡혔고요. 그리고 지금은 필름을 몇백 벌을 만들어서 전국에 배포하는 시스템이 있지만, 당시에는 필름 6, 7벌을 만들어서 서울의 개봉관부터 시작해 전국을 돌면서 돌리는 식이었어요. 그래서 나중에는 필름이 마치 걸레처럼 되어 버리곤 했습니다. 그렇지만 그때 제 나이가 서른 여섯이었는데, 돈보다는 한 번 제대로 해보자는 의욕이 넘쳤고, 무엇보다 국민적 캐릭터를 만들어 보자는 생각으로 머리가 가득했었습니다.”

김청기 감독은 1941년 서울생으로 중앙대 전신인 서라벌예대 서양화과를 졸업했다. 순수미술하는 사람들의 배고픔을 보면서 대학 재학 때부터 만화를 그렸다고 한다. 당시 스승이었던 서양화가 장이석 선생에게 만화를 그려 번 돈으로 약주를 대접하면, 선생님께서 “만화도 돈이 되는구나”하시면서 껄껄 웃으셨다 한다. 대학 졸업 후인 60년대에는 CF도 만들었고, 동양방송(TBC)에서 방영된 <황금박쥐> 등과 <손오공> ?보물섬> 같은 애니메이션도 창작했다. 당시는 전반적으로 애니메이션의 침체기였고, 70년대 중반으로 넘어오며 여건이 성숙하면서 그의 역작인 <로보트 태권 브이> 를 만들어 애니메이션계에서 새로운 입지를 구축했다.

“우리 아이들에게 우리 만화영화를 보여주고 싶었다”

외국 애니메이션들의 수입 급증, 컬러 TV의 보급 등으로 또 한 번의 침체기에 접어들면서 국내업계들이 외국 애니메이션의 하청 일에 매달릴 때도 그는 오직 창작 애니메이션에만 몰두했다. 잇따른 흥행실패와 사업의 부도에도 굴하지 않고, <우뢰매> · <똘이장군> 같이 우리에게 익숙한 캐릭터들을 만들어 내면서 항상 우리 곁에 있었고 오늘에 이르고 있다.

창작 애니메이션을 고집해오는 동안 갈등과 고통이 끊이지 않았을 것이라는 점은 미루어 짐작이 가능하다.
“ <로보트 태권 브이> 성공 이후 회사를 설립했습니다. 그런데 회사가 돌아가기 위해서는 1년에 적어도 두 편 이상을 만들어야 합니다. 지금 생각하면 그때 질이 떨어지는 작품들도 많이 만들었던 것 같습니다. 상황이 그랬지만 조금 후회가 되기도 합니다. 또 그렇게 만들어서 돌려도 이 창작 애니메이션은 돈이 남지가 않습니다. 주변에 있는 친구들은 그래도 저는 나은 편이라고 합니다. 65% 정도의 성공을 거두었으니 부럽다고들 말하기도 했지요.”

평생을 걸어온 길에 대한 후회는 없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정말 어려웠던 시간들이 있었지 않았을까.
“80년도로 기억이 됩니다. 또다시 우리 것을 만들어 흥행에 성공해보자는 생각에서 <꼬마어사 똘이> 를 만들었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개봉하는 날 눈이 엄청나게 내려서 관객 동원에 실패를 했습니다. 대개 만화영화는 어린이들의 방학 기간에 맞추어 개봉을 하는데 그때 공교롭게 폭설이 쏟아진 것입니다. 어린이들은 기후 조건에 무척 민감하거든요. 또 당시에 컬러 TV가 등장하면서 극장영화의 매력이 사라지기도 했습니다. 이런저런 이유로 흥행에서 실패를 한 후 무척 참담한 기분이었습니다.”

애니메이션 제작이란 모험의 연속인 것 같아 듣고 있는 나 자신이 아슬아슬해진다. 본인은 물론 가족들의 고충도 컸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가족들 중에 이 길을 걷고 있는 자제들이 있는지 물어보았다.
“2남1녀인데 큰 애하고 둘째인 딸은 음악을 했고, 막내는 컴퓨터 공학을 전공했습니다. 아버지가 하는 일에 매력을 못 느낀 것 같아요. 그렇지만 아내는 제가 하는 일을 이해해주고 도와주는 편이었지요.”
김 감독의 연속된 모험 이후 30여 년이 흐른 지금은 2D?D 등 애니메이션 제작기법에 있어서 많은 발전을 이루었다. 국가에서도 많은 지원과 관심을 보이고 있고, 대학에서도 이 분야를 전공하고 싶어하는 학생들이 많이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 문제는 어떤 내용을 담아내느냐는 것이다.

“맞습니다. 기법이나 기술은 이제 세계 수준에 와 있습니다. 문제는 어떤 이야기를 담을 것이냐는 점입니다. 요즘에 만들어지는 애니메이션을 보면 비주얼은 경이적입니다. 그렇지만 재미나 울림이 없어 공감을 주지 못하는 것들이 많이 있습니다. 메시지가 있고, 감정을 담은 이야기들로 채워져야 하는데 그것을 하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단순한 비주얼만으로는 감동을 줄 수 없다는 생각을 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많은 생각과 아이디어를 짜내야 한다고 봅니다. 인생의 경험에 대한 축적도 중요하고요.”
박진감 있는 화면 전개를 위한 연출력도 필요할 것이다. 단순한 기계적 기술만이 아니라 자신의 감각을 담아 관객들과 호흡을 같이해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 점도 매우 중요합니다. 어떤 애니메이션들은 하나의 장면을 만들기 위해서 너무 많은 낭비를 해요. 장면들 간 전개가 박진감이 있고, 압축력이 있어야 하는데 말입니다. 어린 아이들은 박진감 없는 장면이 2분 정도 지속되면 금방 지루함을 느낍니다. 이렇게 되면 다음 장면을 이끌어 가기가 힘들지요. 기승전결이 있어야 하고, 시작과 끝의 마무리를 보다 깊게 생각해야 한다고 봅니다. 그게 바로 연출력입니다.”

“작품 좋아도 발표 장소 부족해서 걱정”

실제로 <로보트 태권 브이> 가 처음 나왔을 때와 비교해보면 기술, 관객들의 취향과 수준 그리고 마케팅 분야에서 엄청난 변화가 있었다. 이런 점에서 김 감독은 <로보트 태권 브이> 가 나온 지 30년째가 되는 2006년에 <새 로보트 태권 브이> 를 선보일 계획이라고 한다.
“국민캐릭터란 점은 그대로 유지할 것입니다. 내용의 변화는 있어야겠지요. 요즘 아이들이나 청소년들의 취향뿐 아니라 올드팬들의 정서도 감안해서 새롭게 선보일 예정입니다. 간혹 올드팬들은 너무 많이 바꾸지 말라고 주문을 하기도 합니다. (웃음을 띠면서) 그래서 지금 여러 각도에서 다양한 층들로부터 아이디어를 수집하고 있습니다."이번에는 상업적인 측면에서도 새로운 접근방식을 구사하고 있는지 물어보았다.

“작품과 연계해서 캐릭터산업이나 완구산업에 적용해볼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우선 중요한 것은 작품 자체라고 생각합니다. 요즘 애니메이션들이 실패하는 가장 큰 이유들 가운데 하나가 작품성보다 사업을 앞세우고 출발하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작품이 먼저 성공을 하고 자연스럽게 관련사업으로 연계가 돼야 하는데, 너무 사업적인 측면만을 강조하다 보니 실패를 하는 것이지요.”
애니메이션이 하나의 종합예술이라는 그의 의지와 생각이 묻어나는 말이다. 그런 점에서 그는 우리의 전통적인 이야기를 동양화적 기법을 활용해서 만든 작품을 자신의 은퇴작으로 만들고 싶다고 말한다. 그만이 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지만, ‘동양화적 기법’이란 말은 좀 의아스러웠다.

“우리의 이야기를 소재로 하고 우리의 형식을 바탕으로 해보자는 생각을 오래전부터 해왔습니다. 특히 동양화의 여백이 주는 의미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했지요. 지금은 영상을 너무 욕심을 부려 꽉꽉 채우고 있는데,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완벽해지고 충실해지는 것은 아닙니다. 조금 여유를 가지고 어느 정도는 비워둠으로써 사람들의 생각으로 채워 넣게 만드는 것을 생각했습니다. 부드러운 수묵화의 향기와 정신도 담아냄으로써 잔잔하게 감동을 주는 그 어떤 새로운 애니메이션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입니다. 요즘 느림의 미학이라는 말들을 많이 하지 않습니까.”

국제화, 문화경쟁의 시대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발달된 기술만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이런 전통적인 내용과 형식의 조화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해본다. 물론 작가들의 노력을 뒷받침해주는 여건도 필요할 것이라는 생각에서 문화계나 정부에 대한 그의 바람은 어떤 것인지 물어보았다.

“좋은 작품이 있어도 발표 장소가 없으면 소용이 없습니다. 그런 점에서 우리 창작 애니메이션의 발표 장소가 더욱 많아졌으면 합니다. 우선 극장 쪽 배급회사들이 만화영화에는 무척 소극적인데, 흥행이라는 관점에서만 보지 말고 우리 애니메이션에 대한 애정과 커 나가는 우리 아이들의 정서적 영향에도 관심을 가져주었으면 합니다. 또 TV 애니메이션이 주로 외국 작품 위주로 방영되고 있는데, 우리 창작 애니메이션의 방영 비중이 좀더 커졌으면 합니다. 그런 관심을 기울여야 창작 기반도 튼튼해지고 우리 창작애니메이션도 발전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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