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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덕준 레인콤 사장 … “귀와 눈을 함께 사로잡았다”

양덕준 레인콤 사장 … “귀와 눈을 함께 사로잡았다”

nansa@joongang.co.kr
지난해 말 많은 사람들은 아이리버를 걱정했다. 2003년 말 코스닥 등록 뒤 비관론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이제 팔릴 만큼 팔렸어” “대기업이 어디 가만히 있겠어?” MP3플레이어 시장이 급성장하면서 경쟁이 치열해지고, 아이리버의 시장점유율이나 성장세도 꺾일 것이라는 예상이었다. 양덕준(53) 레인콤 사장은 이런 질문에 대답하느라 바쁜 나날을 보냈다. 그러나 아이리버는 그런 예상을 깨고 올 한해도 승승장구하고 있다. 시장점유율도 국내 50%, 세계 19%대를 유지하며 삼성(국내)과 소니(해외)를 멀찌감치 따돌리고 있다. 매출액도 지난해의 두 배가량으로 성장한 4,500억원에 달한다. 한때 반짝할 것으로 예상했던 것과 달리 아이리버가 여전히 상승세를 지속하는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우선 시장의 확대다. MP3플레이어가 등장한 지 4~5년 되면서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도 MP3플레이어에 대한 저변이 확대되고 있다. 여기에 온라인 음악 사이트가 늘어난 것도 한 요인이다. 동원증권은 보고서에서 아이리버의 상승세를 “세계 MP3플레이어 시장이 고성장하고 있고, 아이리버의 브랜드 인지도가 상승하고 있다”는 점에서 찾았다.여기에 올해 ‘크래프트 모델’로 불리는 기존 주력상품 ‘iFP-700/800/900시리즈’ 외에 액세서리 개념을 강화한 ‘N10’과 휴대용 동영상 재생기 ‘PMP-100’ 등이 출시되면서 제품 구성이 다양해진 것도 매출 증가의 요인으로 꼽힌다. 특히 목걸이형 제품인 ‘N10’의 경우 소비자들로부터 ‘가장 갖고 싶은 MP3플레이어’로 꼽힐 정도로 폭발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MP3플레이어 시장이 일정 부분 포화됐다는 판단 아래 주 소비층을 젊은 남성에서 여성으로 확대시키는 기폭제 역할을 한 제품이다.

소비층을 넓혀라 특히 지난 7월부터 주력 제품의 판매가격을 인하하면서 공격적인 마케팅을 한 것도 효과를 보고 있다. 지난 7월 플래시메모리 타입의 MP3플레이어 가격을 최고 31%까지 내려 고가 제품의 판매를 늘린 것도 올해 매출 상승의 주요 요인이 됐다. 원재료인 플래시메모리 가격이 급락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아이리버 입장에서는 운도 좋았던 셈이다. 여기에 코엑스를 비롯, 대학로·김포공항·부산 등 전국 8개 지역에 아이리버존을 연 것도 브랜드가치 제고와 아이리버 문화 확산에 크게 기여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전국 아이리버 사용자들이 무료로 마음껏 이용할 수 있는 장소를 마련해 아이리버를 단순한 전자제품이 아닌 하나의 문화로 자리잡게 한 것이다. 단순히 상품을 파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문화로 자리잡아야 롱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아이리버는 판매한 지 4년이 지난 지금도 꾸준히 성장하고 있지만 오늘날의 아이리버가 순탄한 길만 걸어 온 것은 아니다. ‘3년 뒤에 서서히 망하느니 지금 사라지는 게 더 낫다.’ 1999년 3월 레인콤을 세운 양덕준 사장은 이제까지 이 말을 몇번이나 되뇌었는지 모른다. 2000년 12월 아이리버(iriver)의 브랜드도, 처음 MP3플레이어를 내놨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뒤늦게 뛰어든 MP3플레이어 시장에서 자체 브랜드로 도전하는 것이 쉬울 리 없었다. 디자인에 투자하는 것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그는 투자에 주저하지 않았다. 그렇게 되면 결국 죽는 건 시간 문제이기 때문이다. 아이리버의 강점은 디자인과 브랜드다. 양사장은 아이리버의 성공 요인에 대해 “귀는 물론 눈까지 사로잡았기 때문”이라고 했다. 디자인·브랜드가 중요한 건 두말할 필요도 없다. 문제는 디자인과 브랜드를 위해 어떤 위험을 각오할 것인가, 진짜 거기에 올인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중요한 건 아는 게 아니라 행동이다. 브랜드나 디자인에 대한 투자는 설비투자와 달리 망하면 건질 게 거의 없기 때문이다. 말 그대로 벤처정신으로 투자했다. 이렇게 회사는 벤처정신으로 움직였지만 제품은 그렇지 않았다. 삼성전자에서 수련을 받은 그는 대기업의 답답함은 거부했지만 치밀함은 더 극한으로 몰고 갔다. 아이리버가 MP3플레이어 중 후발주자임에도 불구하고 소비자들에게 폭넓은 사랑을 받는 것은 바로 제품의 완성도 덕분이다.“2001년 제품을 처음 출시할 때만 해도 시중에 나온 MP3플레이어를 보면 기업에서 만든 것이라기보다는 연구소에서 만들었다는 느낌이 강했어요.” 당시 MP3플레이어 사용자들은 중간 중간에 버그(bug)가 나는 것에 익숙했다. 음악을 듣다가 끊기기도 하고, 갑자기 작동이 멈추기도 했다. 사용자들도 신개념 제품에 대해 상대적으로 너그러운 편이었다. 그러나 양사장은 달랐다. 그는 제품 완성도에 최선을 다했다. 출시 전 품질테스트에서 이상이 있으면 출시를 미뤘다. 동시에 제품의 외연은 넓혀 갔다. 지금은 보편화된 보이스 레코드 기능과 FM 라디오 수신 기능은 아이리버가 처음 적용한 기술이다. 펌웨어 업그레이드나 컬러 LCD 등의 기술도 마찬가지다. CJ홈쇼핑 IT제품 상품기획자(MD)인 한은미 과장은 “많은 기업들이 상품이 히트하기 시작하면 가격 경쟁으로 시장을 무너뜨리는 경우가 많은데 아이리버는 지속적으로 고가전략을 쓰면서 더 많은 부가기능을 넣어 시장을 이끌고 파이를 키운 점이 특이하다”고 설명했다. 덕분에 2, 3위 업체들도 아이리버의 기능과 사양을 따라갈 수밖에 없었다. 한국 최고의 대기업인 삼성전자도 아이리버의 표준에 따라가는 형국이다.

결국은 덩치싸움 아이리버의 또 다른 성공 요인은 처음부터 ‘게임의 법칙’을 알았다는 점이다. “저는 이 사업을 시작하면서 두 가지를 염두에 뒀습니다. 우선 자기 브랜드를 꼭 가져가자. 또 하나는 이 사업은 벤처가 아니라 규모의 게임이라고 생각했죠.” 하드웨어를 만드는 사업은 대부분 규모의 경쟁력이 중요하다. 아무리 좋은 제품을 많들어도 시장을 지배하지 못하면 잊혀지기 때문이다. 양사장이 처음부터 중국 심천에 공장을 확보한 것은 이 때문이다. 2000년 처음 공장을 만들 때는 종업원이 200명에 불과했다. 이 정도 규모의 공장은 한국에서도 얼마든지 가능한 수준. 그러나 그는 중국을 고집했다. 현재 중국 공장의 인원은 1,500명. 공장이 이처럼 쉽게 확장되지 않았다면 올해 늘어난 물량을 감당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 아이리버는 지난 2000년 12월 세계시장에 등장했다. MP3 파일로 압축된 정보를 재생해 주는 오디오기기가 MP3플레이어다. 아이리버 출시 이전에도 수많은 MP3플레이어들이 한국 시장에 나와 있었지만 그때까지 MP3플레이어는 ‘신개념’ 제품에 머물렀다. 아이리버는 ‘신개념’인 제품을 ‘대중적인 상품’으로 만든 최초의 MP3플레이어라고 볼 수 있다. 첫 출시 이후 6개월 만에 미국 시장점유율 1위를 차지하면서 AV기기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 2001년 첫 판매 이후 4년 만에 총 650만대를 판매했다.이후 2002년 9월에 내놓은 아이리버 프리즘(Prism)은 플래시메모리 타입의 MP3플레이어로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다. 이노디자인이 디자인한 프리즘은 이후 아이리버 크래프트(Craft), 아이리버 마스터피스(Masterpiece) 등 후속모델과 함께 베스트셀러가 됐다. “아이리버는 오디오 기기지만 비주얼로 승부한다”는 말이 나온 것도 이 때문이다. ‘가지고 다니면 폼이 나는’ 제품을 지향한 결과다.아이리버는 플래시메모리타입 MP3플레이어의 시장선도력을 기반으로 하드디스크 드라이브(HDD) 타입 MP3플레이어 분야에도 도전장을 내밀고 있다. 지난 16일 발표한 HDD 타입의 H10은 현재 하드디스크 드라이브 타입의 세계 1위인 애플의 아이포드(i-pod)를 겨냥한 야심작이다. 양사장은 “유저 인터페이스(user inte rface·사용자 편의성)를 최우선으로 만든 제품”이라고 설명했다.

아이리버의 성공비결
1. 남성에서 여성, 학생에서 성인까지 소비층 확대
2. 완성도 높이고 부가기능 많이 넣어 시장 리드
3. 대량생산 기반 갖춰 급성장 시장에 적절히 대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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