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도시 신청 뚜껑 열어보니… 기업도시에 기업이 없다?
기업도시 신청 뚜껑 열어보니… 기업도시에 기업이 없다?
지방을 먹여 살릴 ‘특단의 대책’ 이처럼 기업도시가 지방을 ‘먹여 살릴’ 특단의 대안이 될 거란 기대가 크다. 기업도시는 말 그대로 ‘기업하기 좋은 도시’다. 기업이 개발의 주체로 산업시설을 건설하고 여기에 교육·의료·문화 기능이 융합되는 자족형 도시를 의미한다. 미국 실리콘밸리, 일본 도요타, 프랑스 니스 등이 대표적인 기업도시로 꼽힌다. 기업도시는 전국경제인연합회가 제안한 일자리 창출 프로젝트다. 전경련은 2003년 10월 처음으로 이 개념을 소개한 데 이어, 지난해 2월에는 일자리 창출을 위한 중점 추진과제로 기업도시 건설을 채택했다. 지난해 말 ‘기업도시개발특별법’이 제정되면서 기업도시 건설이 빠르게 추진되고 있다. 전경련 측은 “외환위기 이후 기업들의 설비투자 증가율이 0.3%에 그치는 등 기업이 투자의욕을 잃고 있고 경제 전망이 불확실한 상태에서 전경련이 내놓은 구체적인 위기 타개책이 기업도시 건설”이라고 밝혔다. 전경련은 500만 평의 첨단산업 기업도시를 개발할 경우 3년간 28조원대 투자가 예상된다고 전망했다. 경제 회복의 관건은 투자 활성화와 일자리 창출에 있고, 여기서 기업의 투자 마인드를 높일 수 있는 매력적인 상품이 기업도시라는 논리다. ‘지역경제 살리기’에 여념이 없는 지방자치단체로서는 솔깃한 사업이 아닐 수 없다. 지난 1년여 동안 기업도시 유치를 희망한 지자체만 30곳이 넘었다. 지자체들한테는 사실 희망을 넘어 ‘매진’이었다. 한창희 충주시장은 “그동안 수십명의 CEO들과 접촉하고 투자유치 지원실 직원이 서울에 상주하다시피 하면서 기업 투자 유치에 공을 기울였다”고 말했다. 강기석 무안군 부군수는 1월부터 4개월 내내 수∼금요일을 서울에 머물며 250여 명의 기업인을 만났다. 강 부군수는 “서해안고속도로를 타고 1만㎞를 주행했다”며 “근무지를 반쯤은 서울로 옮긴 셈이었다”고 말했다. 기업도시개발특별법이 제정되고 나서 100여 일. 건설교통부가 4월 15일까지 기업도시 시범지역 후보 신청을 받으면서 기업도시 건설은 본궤도에 올랐다는 평이다. 14일 충주시가 지식기반형, 무안군이 산업교역형 시범기업도시 신청서를 제출했다. 마감일인 15일에는 강원 원주(지식기반형), 충남 태안, 전남 영암·해남, 경남 사천, 전북 무주, 경남 하동·전남 광양(이상 관광레저형) 등 모두 8개 도시가 신청서를 냈다. <도표 참조> 건교부는 이들 지자체가 신청한 사업계획에 대해 사전 검토작업을 거친 뒤 국토연구원 등에 평가작업을 맡기고, 6월 안으로 2∼4곳의 시범사업 대상지를 선정할 방침이다. 박상규 건교부 신도시기획단장은 “시범사업 선정이 끝나면 내년부터 매년 1∼2곳씩 기업도시를 지정할 것”이라고 밝혔다. 아직은 미지근한 기업들 전경련이 ‘투자 카드’를 내놓고 정부가 ‘당근’을 더한 것이 기업도시개발특별법이다. 토지 매입부터 시작해 회사 설립 규제를 풀어줌으로써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만든다는 취지다. 법안에 따르면 기업도시에 입주하는 기업에 대해 모두 41개 법안과 88개 인허가 사항을 원스톱으로 처리해준다. 제한적이기는 하지만 인프라 투자에 대해서는 대기업의 출자총액제한제도 적용에서 예외로 인정된다. 이 밖에도 사업 예정 부지의 50% 이상을 매입하면 토지 수용권을 주고, 평당 3만원인 농지전용 부담금이 감면되는 등 투자 메리트도 주어진다. 설립 초기 3년간은 법인·소득세를 면제해주는 등 세제 혜택도 있다. 이렇게 ‘먹을 것’이 많아 보이지만 기업도시의 주체인 기업의 반응은 아직까지 미지근하다. ‘기업도시’에 ‘기업’이 없는 것이다. 한화국토개발·롯데건설·전경련 등이 참여하는 ‘영암·해남 관광레저형 도시’나 대한전선이 주도하는 ‘무주 관광레저형 도시’ 정도를 빼면 대기업의 참여는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 오히려 영향력 있는 기업은 몸을 사리고 있는 형편이다. 반대로 구색 맞추기용이거나 ‘실체가 없는 기업’도 눈에 띈다. 실제로 A기업 관계자는 “유치 희망 도시 인근 지역에 공장부지를 개발할 계획을 가지고 있어 혹시나 하고 발을 담근 것이지 기업도시 건설에 뜻이 있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한 지역에 1000억원대 투자를 밝힌 B회사는 최근 3년간 영업실적이 전무한 상태라 투자 능력을 의심받고 있다. 상장기업인 C회사의 한 공시담당 임원은 “우리 회사가 투자 유치를 한 사실이 있느냐”고 되묻기도 했다. 기업이 머뭇거리는 이유는 간단하다. 기업도시 유치 희망지역이 비수도권에다 인프라가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낙후지역이기 때문이다. 이런 의미에서 전경련의 유재준 기업도시팀장은 “기업도시 선정은 처음부터 기업의 자율성·창의성을 침해당했다”고 지적한다. “기업도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기업의 자율성과 창의성이다. 현재 정부 방침은 낙후지역 중심으로 우선순위를 주도록 돼 있다. 지역 균형발전도 중요하지만 투자 활성화, 일자리 만들기, 차세대 성장동력 찾기라는 기업도시의 또 다른 목표가 후순위로 밀렸다. 기업들이 들어올 ‘문’을 4분의 1쯤 막아놓은 것이다. 이렇게 제한된 상황에서 기업도시를 만들려다 보니까 모양새가 한정될 수밖에 없다.”(유재준 기업도시팀장) 사실 기업도시안에 대해 정부는 정부대로 환영할 만한 이유가 충분했다. 부진한 설비 투자로 고민하고 있던 참여정부로서는 재계의 투자 ‘뉴스’도 반가웠지만 국가 균형발전을 모토로 하고 있던 터라 낙후된 지역경제에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다는 계산을 한 것이다. 이에 따라 시범 기업도시 선정에서 수도권과 광역시를 제외하며, 낙후지역을 최우선 선정·배려한다는 꼬리표가 붙었다. 재계와 정부가 처음부터 ‘다른 꿈’을 꾸고 있었던 것이다. 김현아 건설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기업들은 수도권 혹은 수도권 인접지역에 기업도시를 개발하고 싶어한다”며 “기업도시를 비수도권으로 유도하려면 더 혁신적인 유인장치가 필요했다”고 지적했다. “기업도시 안은 혁신적인데 정부는 아직 규제의 틀에 갇혀 있다. 현행 개발법대로 하면 1급 낙후지역에 투자해도 개발이익을 환수하게 돼 있다. 반대로 투자 손실이 생기면 정부가 보전해 줄 것인가?”(김현아 연구위원) 문제는 개발이 아니라 운용 인력 유치도 문제거리다. 한국경제연구원 이수희 기업연구센터 소장은 “기업도시의 성공에는 연구개발 인력을 포함해 우수 인력을 유치하는 것이 관건이다. 이런 인력을 데려오려면 서울에 준하는 교육·의료·문화 여건이 제공돼야 한다”며 “현재의 기업도시 안은 이런 면에서 미흡하다”고 지적했다. 그렇다면 기업도시 건설은 ‘말잔치’로 끝나고 말 것인가? 꼭 그렇지는 않다. 전문가들은 “단 한 곳이라도 성공사례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유재준 기업도시팀장은 “한두 곳이라도 기업도시 조성이 성공한다면 효과가 클 것이다”라고 말했다. 김현아 연구위원 역시 “참여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행정복합도시처럼 기업도시도 하나 정도만 하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지역 안배 차원에서 정치적으로 시범사업을 벌일 것이 아니라 확실한 성공사례를 만들어 ‘기업도시가 안전하다’는 사인을 줘야 한다는 것”이 이들의 조언이다. 프로그램에 의한 순차적 개발도 고려해 볼 요소다. 김수삼 한양대 부총장(건설교통학부 교수)은 “가령 정부가 기업도시 후보지역을 고시하고, 기업은 원하는 곳에 프로젝트를 진행한다. 이를 연도별 선택 계획으로 하는 것도 한 방법”이라고 제안했다. 이를 통해 효율과 균형 발전이 동시에 담보된다는 것이다. 유재준 팀장은 “시범지역 선정이 기업도시의 ‘마지막’이 아니라 도시 건설의 목적에 맞게 시간을 두면서 사업을 펼쳐야 한다”고 강조했다. 기업도시에 투자하는 기업가의 입장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있다. 문제는 개발이 아니라 운영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박성민 이사장의 ‘고민’은 기업도시의 성공 여부를 저울질하는 본질적인 문제가 된다. “근본적인 문제는 기업도시가 단순한 개발사업이 아니라 경쟁력 있는 도시의 ‘운영’이라는 점이다. 기업도시는 개발 자체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10년, 20년 후에 자생력을 갖춘 도시로 운영돼야 한다. 정부는 지금 도시 개발에 대한 지원을 약속하고 있지만, 정작 더 중요한 것은 ‘개발’이 아니라 ‘개발 그 이후’에 있는 것 아닌가?”(박성민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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